태종(이방원)의 후손 세거지 영모당(永慕堂)...........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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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보면 영모당을 들어가는 입구엔 솟을 대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솟을대문 현판엔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이라고 걸려있다.
본시 한산군(韓山君) 이정(李挺)의 아버지는 우산군(牛山君) 이종(李踵), 조부는 온령군(溫寧君) 이정(李程), 증조부는 태종 이방원이다.
한산군의 둘째 형인 무풍군 이총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아버지 이종과 아들 6형제 모두 절도로 유배되었다가 무풍
군 이총은 1504년에 아버지와 5형제들은 1506년(연산군 12)에 모두 사사되었으며, 그 후 순종 때 신원이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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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 :~한산군종택은 경기도 양주에 있던것을 근래에 이곳으로 이거하여 새로 지은 것이며, 주변에 4대손 추만
이영기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여 지은 영모당과 사덕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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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태종(이방원)의 후손 세거지 영모당(永慕堂)...........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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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亭子) 천국 봉화, 그동안 주지하듯이 정자는 넉넉한 재력을 가졌던 옛날 양반들이 학문을 익히고 풍류를
즐기던 시설로 전국에 760여 개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100여 개, 거의 7분의 1 이상이 봉화군에 남아 있
다는 현실이 허언이 아님을 유랑자가 봉화를 돌면서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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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독 봉화군이 이처럼 많은 정자를 보유하게 된 것은 그 지역이 뛰어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연풍을
타고나 북으로는 태백산 끝자락이 소백산과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낙동강의 최상류에 자리하여 수많은 계곡
과 강하(江河)를 따라 산수가 빼어난 연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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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당(永慕堂)의 현판 :정면에서 보아 왼쪽방 위에는 추원재(追遠齋)의 현판이 있으며.오른쪽의 방 입구에는 추만구택(秋巒舊宅)의
현판이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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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만구택(秋巒舊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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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내성현(奈城縣) 등 봉화군의 일부가 옛적에는 안동부 임내여서 유림들이 많았고, 또 벼슬에서 물러
나 선비들이 즐겨 은거지로 삼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곳 풍정리일대 갈방, 야동, 명동, 시드물, 부현, 노림 등
마을은 전주이씨 온녕군(溫寧君) 후손들이 세거해 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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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太宗, 이방원)의 제7자가 온녕군 이정(李程)이고, 입양을 한 그의 아들이 우산군(牛山君) 이종(李踵)이
며, 손자가 한산군(韓山君) 이정(李挺)이다. 한산군의 둘째형인 무풍군(茂豊君) 이총(李摠)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아버지 이종(李踵)과 아들 6형제가 모두 절도(絶島)로 유배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7부자가 함께 연산군의 미움을 사서 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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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追遠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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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당(永慕堂)은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후손인 호산(毫山) 이장이 1730년에 건립한 제청으로 고종24
년(1887)에 중수 하였으며,현재까지 이영기(李榮基)의 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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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당(永慕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으로,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 협실형
(中堂挾室形)의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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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은 남효온(南孝溫), 손유손(孫裕孫) 등과 함께 청담파(淸談派)의 중심 인물로 시문(詩文)에 능하고 필법이
뛰어났으며, 시조 몇 편이 전하는데, 훗날 순종 때 신원)되어 충민(忠愍)이란 시호(諡號)를 받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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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士禍) 등의 여맥(餘脈)을 피하여 상게 한산군의 현손(玄孫) 이영기(李榮基, 1583∼1661)가 이모(姨母)를 따
라 풍기(豊基) 외가에서 생활하던 중 닭실마을 충재(冲齋) 권벌(權橃)의 증손녀이며, 군자감정(軍資監正) 권래(權
來)의 딸에게 장가들어 많은 재물을 얻어 풍정촌(현 법전면 풍정리 시드물)에 옮겨 살게 됨으로써 전주이씨 시
드물 입향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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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의 전설 :~오랜옛날 한 스님이 황금범종을 만들다 완성하지 못한채 숨을 거두게 되고 죽어 부처님앞에 자신의 일생을 바쳐
만들려했던 황금범종을 마무리하지 못하였으니. 인간세계에 보내달라 간청하여 환생한 스님! 그러나 세상은 변해있었고 자신이
준비하던 황금범종은을 찾을 수 없어 실의에 빠져 한숨짓던 스님 곁에 황금색꽃이 피어있는걸 발견하고 그 꽃의 줄기를 따라 뿌
리를 캐보았는데 그곳에 스님이 만들던 황금범종이 묻혀 있었답니다.
황금범종을 닮은
그 꽃이 별모양의 예쁜 노란 여름꽃 호박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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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효능 (동의보감에 나오는 호박의 효능) ;~호박은 성분이 고르고, 맛이달며, 오장을 편하게 하고, 독이 없으며, 눈을 밝게 하
고, 산후 혈전통을 낫게 하며, 혼백을 밝게 한다. 라고 소개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호박의 유용함을 알고 요리에 자주 사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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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민절사(愍節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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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영모당이 있는 풍정리는 명창골, 불미골, 시드물(풍정), 사택 등으로 이루어 지는데 마을의 유래를 보면 불
미골은 야동으로도 불리는데, 마을이 풀피 형상으로 되어있다 하여 풀피야(冶)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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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물 풍정은 460여년 전 3개군(순흥땅,안동땅,봉화땅) 지경에 우물이 있고 우물 옆에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단풍나무 풍자를 따고 우물정자를 따서 풍정(楓井)이라고 하며 지금도 우물뚜껑에 큰 글자로 풍정이라는 글자
가 남아있다.(전 711-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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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군묘우 종택준공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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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마을 앞 냇가에 맑은 우물이 있고 우물 부근에 큰 신나무가 있다고 해서 시드물 또는 풍정이라고 부르며
본래 이 마을은 안동군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1895년대 봉화군에 편입되고1914년 법전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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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법전면 풍정리(시드물) 마을에 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소유의 영모당(永慕堂)은 사덕정과 담을 사이에
두고서 있는 건물이다. 유랑자는 현재 관리하고 있는 전주이씨 후손의 안내를 받으면 영모당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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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당은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전주이씨 후손인 호산(毫山) 이장(李奬)이 1730년
에 건립한 제청(祭廳)으로 고종24년(1887)에 중수 하였으며,현재까지 이영기의 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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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기(李榮基:1583∼1661)의 자는 광선(光先). 호는 추만(秋巒)으로 종실 태종의 7남(서3남) 온녕군의 양아들
우산군 종(踵)의 셋째아들 한산군 이정(李挺)의 현손이며 용궁현감 이성립(李成立)의 아들로, 류영경(柳永慶)이
추천하여 관직에 출사케 했으나 사양하였고, 병자호란 때 의병참모가 되어 활약하였으며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
지(左承旨)에 추증되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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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당(永慕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으로,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
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의 구조이다, 마루에 올라가 보면 정면에서 보아 왼쪽방 위에는 추원재(追遠齋)
의 현판이 있고, 오른쪽의 방 입구에는 추만구택(秋巒舊宅)의 현판이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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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
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운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오른쪽의 방과 왼쪽방
모두, 마루쪽으로는 넌출문인 3짝의 분합문(分閤門)을 기둥을 중간에 두고 2개씩 배치 하였으며,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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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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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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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법전면 풍정길 80
(지번)법전면 풍정리 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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