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베란다에서 숲을 바라보고 있었어
막 여명에서 벗어난 숲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모습, 나뭇잎의 은빛 일렁임,
그 틈으로 스쳐가는 바람과 공기 알겡이의 미세한 떨림까지
온전히 느끼고 있었지...... 그때 남편이 등뒤에서 어깨에 손을 얹으며
겔러웨이 부인~ 하고 부르는 거였어. 찻잔을 건네며 말이지
그 목소리의 떨림과 남편의 손에서 느껴오던 체온, 몸 깊이 스미던 차향.
순간 가슴 가득히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왔어.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 이후에 지속된 삶에 비하면 말이야.
하지만 그 뒤로 내 가슴에는 그 순간이 늘 현재했어.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나 봐........
버지니아 울프의 ‘겔러웨이 부인’에 나오는 말이다.
정말 그렇게 짧은 순간이, 그 작은 행복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온통 고해의 바다라고 떠들면서도
다들 웬간히 살아가는 걸 보면 말이다.
딴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앙칼진 여인의 손톱자국처럼
삶의 어떤 순간은 영혼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하는 법이니까.
지난 금요일,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 공연을 봤다.
손열음이 피아노를 친 차이콥스키 피협 2번, 그리고 슈만 교향곡 2번
낮에는 바티칸 박물관전 그리고 미국 인상파전을 보고난 뒤였으니
나름대로 감동당할 자세가 되어있었던 듯싶다.
좋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좋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무언가 정보를 얻기 위한 거라면 내 표현은 아예 무시하는 게 낫다.
미세한 음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귀나
연주의 수준을 가늠할 만큼 명민한 눈을 가지지도 못한
어눌은 무지랭이의 감상일 뿐이니.....
그럼에도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가는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노상 글을 얻어읽기나 하는 것이 당체 안스러워서일 뿐이다.
또 하나, 어떤 공연을 보고 좋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 감동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며
그 연주를 듣던 나의 뇌파가 왜 공명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려는 것.
그러나 오래 씨니피앙과 씨니피에의 관계 속에서 사색해 온 내가
저 무거운 옷을 벗어버린 소리의 느낌을 어떻게 드러내려는 것인지
드러내어 어찌 온당함을 입을 수 있을지...... 하아~ 형 없는 소리에
다시 무거운 옷을 입히려는 이 어리석음이라니.
손열음, 그녀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진화의 숲으로 들어서는 호머 아르텐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구분하기 위해 수많은 개념을 만들어왔다.
호머 사피엔스, 호머 루덴스, 호머 폴리틱스...... 그러나
그 모든 개념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피아노를 치는 인간’일 것.
온 몸으로 연주하는 강렬한 터치, 흐름과 끊김, 관현과의 호흡......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녀가 열정을 불사른 뒤 앙코르곡으로 올린 곡은
광풍이 휩쓸고 간 바다를 지나 페네로페의 섬에 닿은 율리시즈 같았다
이 곡 느낌이 좋다......... Tchaikovsky Nocturne in f major, Op. 10 No.1
성시연, 나는 그녀의 지휘봉을 바라보며
내가 설계하고 있던 건축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설계도는 평면으로 그려지지만
설계자의 머릿속에는 그 수천장의 종이가 서로 얽히면서 입체화된다.
설계란 그렇게 입체화된 건축물을 마음의 눈으로 투시하면서
부분들을 연계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 보완해가는 작업인 것.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악기가 어우러진 저 화음은
지휘자의 머리속에서 재구성되고 미세한 조정을 통해 비로서 현현하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 연주된 슈만 교향곡 2번(C장조, Op. 61)은 처음 듣는 곡이다.
그동안 서울시향 연주는 많이 들어왔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성시연의 큰 몸동작에서 나오는 박력 있는 지휘와 오래 준비한 단원들이 빗어낸 하모니.
성시연과 손열음, 그리고 예민한 손끝으로 악기를 연주하던 이들
그 고결한 모습을 땅이나 파며 살아온 나의 일과 비교하다니...... 마땅치 않으며
거듭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나는 달리 느낌을 적을 수가 없다.
아니, 그 느낌을 모두 적자니 알밴 청어의 배를 가르고
그 알을 하나씩 드러내 보이려는 어리석음과 유비되어서다.
행여 말러 카페의 한 귀통이에서 귀밝은 이들의 생각을 오래 얻어듣고 나면
이 어린 귀도 조금 트이게 될런지........ 요원하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 날의 감동이 다시금 느껴집니다.^^
예, 고맙습니다.
어쩌다 가서 그런가봐요
저도 아주 좋았어요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후기를 써주셨네요~두 곡 다 실황으로 듣기 어려운 곡들인데..참 운이 좋으셨습니다.
앞으로 연주회 참석 많이 하셔서 폭 넓은 음악생활 하시길 바래요..^^
땅케, 고마워요... 요하네스브람스님 덕분에
가을아침님~ 허밍이라고 하옵니다.^^
땅과 물을 평정하셨으니 이젠 공중만 남은 것 같습니다.
공중 산책 할 수 있게 공중 즉, 하늘에도 뭔가 지어주세요. 언젠가는!^^
가을아침님~ 사진은 제가 만든 생크림 미니 컵케이크니 맛있게 드세요.^^
일본 건축가 후지모리 데루노부의 하늘을 나는 진흙배 찻집같은^^*
무니님~ 공중에 띄워 놓은 찻집
즉, 하늘을 나는 진흙배 찻집이 이 멋진 건축물이군요.^^
무니님 덕분에 저의 상상을 만나게 되어 반갑네요.
무니님 땡큐~!^^
고맙습니다. 허밍님....
생크~ 맛있게 먹을께요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네요
세미라미스의 공중정원보다 폼나는 뭔가를
생각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가을아침님의 새로운 목표를 응원합니다.^^
건축하시는 분의 섬세한 감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네요. 건축의 과정처럼 음악도 그렇게 구성되고 구축되는 것이 아닐런지요. 가을아침님 만의 풍부한 감수성이 묻어나는 리뷰 감동깊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어머나, 그런 과찬의 만씀을.....
어줍잖은 글이지만 힘이 나는걸요,
고맙습니다.
참 기가 막힌 리뷰이네요.. 예술이네요
이구, 퍼벨스님...고맙습니다.
리뷰축에도 못끼는 어줍잖은 감상문일 뿐인데
많이 배웁니다. ^^
고맙습니다, 브리앙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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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고맙습니다. 그날 들으셨군요. 저는 사실
오래간만에 가보는 시향 공연이었습니다. 시향뿐만 아니라
공연문화를 많이 접할 만한 기회가 없었지요.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니 건축과 음악도 그럴 수 있는 거겠지요.
아름다운 글에 마음이 실리니 더욱 감동이네요.
언제 꼭 뵐 수 있는 영광을 주시길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눈과 귀와 손이 궁금하네요.
어휴, 어쩌죠?
저는 사실 이제 막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