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의 공포/전 성훈
어지럼증은 누구나 잘 아는 병이다. 자동차나 비행기 혹은 배를 탔을 때 겪는 ‘멀미’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교통기관을 타지 않고도 어지러움을 느끼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누구나 겪는 병은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만이 겪어야 하는 천형(天刑)도 아니다. 어지럼증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귀 안의 균형을 잡아주는 ‘전정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이석증(耳石症)이라는 어지러운 증세를 느끼게 된다. 하늘이 빙글빙글 돈다든지, 어지러워서 서 있거나 숟가락질을 하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메스꺼움과 구토까지 하기도 한다. 상태가 심하면 별수 없이 구급차 신세를 지고 병원 응급실을 두드려야 한다. 어지럼증을 겪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반복적으로 이런 고통을 겪을 소지가 크고, 어지럼증을 겪게 되는 주기도 앞당겨진다고 한다.
지난주부터 아침에 설거지를 할 때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잠시 몸이 가라앉는 듯 한 기분이 들다가 곧바로 괜찮아지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며칠 동안 이런 증세가 계속되어도 ‘곧 괜찮겠지 하며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요일 아침에는 어지러운 증세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계속되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뒷골을 만지는 내 모습을 보고 “어디 아파요”하고, 아내가 물었다. “어지러워서 그래요”라고 대답을 하자, 아내가 “병원에 가 봐요.”라고 하였다. 조금 떨떠름한 기분으로 동네 내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전정기관 이상으로 보인다며 며칠 약을 복용하면 좋아집니다. 라고 하였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지어 집에 돌아와 약을 먹었다. 약에 신경안정제가 들어 있는지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자 졸음이 쏟아져 한 동안 낮잠을 잤다. 그러나 낮잠을 자고 나서도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10여 년 이상 다니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의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자, 과거 진료 기록을 확인하더니 2011년 3월 ‘이석증’으로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다면서 색연필을 눈앞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눈동자를 움직여보라고 한다. 같은 동작을 몇 번에 걸쳐 하더니 이석증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통상 이석증 환자는 3-4년에 한 번씩 재발한다는 보고가 있다며, 그동안 건강관리를 잘 해서 7년 만에 재발하였다고 한다. 이석증의 특별한 원인은 없고, 걱정을 많이 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균형이 흐트러져 생길 수 있다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좋아진다고 한다. 집에서 늘 빈둥거리는 내게 무슨 스트레스며 걱정거리가 많은지 모르겠다.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생선회를 안주로 하는 신년 모임 자리였는데 참석하지 못하니까 정말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주말 3일 동안 낮이고 밤이고 거의 누워서 지냈다. 그냥 누워 있으니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울적한 기분을 들어 책을 꺼내 들고 읽는 둥 마는 둥하면 어느 틈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약을 먹은 지 사흘째 되니까 조금 차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엔 도봉문화원 수필 수업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다.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라서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목에는 딸이 페루 여행에서 선물로 사다 준 ‘라마’털 목도리를 두르고, 가죽 장갑을 끼고 모자도 푹 눌러 썼다.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20분 정도 걸어가 수업을 들었다. 수업시간에 종종 졸음에 쫓겨 하품을 하여 힘들었다. 오후에는 손녀를 노원역 롯데백화점 어린이 문화교실에 자동차로 데려다 주었다.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어지럼증이 회복이 되어서 다행이다. 친구들이나 성당 교우들이 조속한 쾌유를 빈다는 말과 함께 민간요법이나 소문난 이비인후과를 소개해주는 문자를 보내왔다. 역시 병은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조언을 듣는 게 좋다는 속설이 생각난다. 하루 빨리 어지럼증의 공포를 툴툴 털고 일어나서 그전처럼 활기찬 노년의 삶을 즐기며 친구들과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다. (2018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