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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우리는 한국전쟁 71주년을 맞았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남한과 북한뿐 아니라 유엔군과 중국, 소련까지 관여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발생한 최대의 국제전이었습니다. 3년에 걸친 전쟁이 끝난 후,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우리 나라는 눈부신 발전과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내었지만, 이 전쟁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우리의 가슴에 아픔으로 혹은 분노로 남아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나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긴장이 이어지고, 이산 가족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국가의 위기에 헌신했던 이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며 오늘 우리 시대의 과제와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이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추모하며 다윗이 불렀던 조가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가나안에 정착한 후로도 오랫동안 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며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이 직접 자신들을 다스리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나자, 이스라엘민족은 이웃 나라들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으려면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중앙집권적인 권력, 즉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영적인 지도자였단 사무엘에게 간청하여 왕을 세우게 되었고, 그 때 왕으로 추대된 인물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왕위에 오른 뒤 주변 나라들과 맞서 싸우며 왕정의 기초를 쌓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강력한 이방 세력인 블레셋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다윗이라고 하는 어린 소년이 골리앗이라고 하는 블레셋의 장수를 쓰러뜨리고 큰 승리를 거둔 이후, 백성들 사이에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울은 그런 다윗을 시기하였습니다. 그 인기가 자신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고,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다윗은 마침내 블레셋으로 넘어가 블레셋 왕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가 사울왕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블레셋과 사울왕 사이에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아벡에 집결하였고, 이스라엘은 이스르엘 평원에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이 전투에 블레셋 왕은 다윗을 참전시키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전장에 나간 다윗이 마음이 변하여 블레셋을 배반하고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군에 가담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신하들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는 수 없이 블레셋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군대는 이스르엘로 진격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사울의 군사는 크게 패하여 길보아 산으로 퇴각을 하였고, 끝까지 추격해온 블레셋 군사들에 의하여 요나단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사울도 블레셋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울은 살아서 포로가 되면 블레셋 군대에게 모욕을 당할까 두려워, 자기의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러져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그 전장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 병사 하나가 다윗에게 달려와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사무엘하 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손에는 사울의 머리에 쓰던 왕관과 팔에 걸던 고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병사가 사울의 최후를 다윗에게 고하는데, 부상을 당한 사울이 자기를 죽여달라고 요청을 해서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보고를 한 것입니다. 사울왕의 온갖 박해를 받았던 다윗이기에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말하면 분명히 다윗이 기분이 좋아 자신에게 상을 내릴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병사를 처형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어찌하여 네 손으로 죽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였다”고 17절에 말씀하였습니다. ‘슬픈 노래’는 히브리 원어로 ‘키나’입니다. ‘소리내어 운다’는 뜻을 가진 ‘쿤’이라고 하는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그래서 키나는 ‘슬픈 노래’, ‘죽은 자를 애도하는 노래’, ‘조가’로 번역할 수 있는데, 개역개정은 ‘슬픈 노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고 다윗은 이 ‘슬픈 노래’를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였습니다. 노래를 유행시키라는 말이 아니라, 온 민족이 함께 사울 왕과 요나단을 애도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노래를 성경은 ‘활 노래’라고 부르고, 이 노래가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살의 책’은 여호수아기 10장에도 등장합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기브온에서 아모리족과 싸울 때,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놀라운 기사가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야살의 책’은 전해지지 않지만, 학자들은 이 책이 이스라엘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나 혹은 놀라운 사건을 노래한 서사시들을 모아둔 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을 애도하는 이 노래도 바로 이 야살의 책에 기록해 두라고 다윗은 명한 것입니다.
이 슬픈 노래를 ‘활 노래’라고 우리 성경에는 부르고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노래’라는 말이 없고, ‘케셰트’ 즉, ‘활’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본다면 다윗이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한 것은 ‘활’입니다. “활을 가르치라” 그래서 킹제임스 번역은 “유다의 소년들에게 활의 사용법(the use of the bow)을 가르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성경은 문맥을 따라서 오늘 본문처럼 ‘활’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애가를 유다족속에게 가르치라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 애가를 ‘활’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윗으로서는 요나단과 활은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22절에 보면, 적과의 싸움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가장 능숙하게 다루었던 무기가 활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을 돕기위해서 요나단은 활을 사용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0장에 보면, 요나단이 사울의 심기를 살펴 다윗이 궁궐로 돌아와도 될지, 아니면 도망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암호를 정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이 숨어있는 방향으로 활을 쏘고, 소년을 보내어 그 화살을 찾아오게 하는데, “화살이 이쪽에 있다. 가져오너라!” 하고 소리치면 그것은 ‘돌아와도 좋다, 네가 무사할 것이다’라는 뜻이고, “앞으로 더 가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라고 소리치면, 이것은 ‘즉시 도망치라. 사울 왕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암호대로 다윗은 사울왕의 추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요나단을 애도하며 부른 이 노래를 ‘활’, 혹은 ‘활 노래’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슬픈 노래의 내용을 살펴보면, 19절에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망자에 대한 최고의 찬사입니다.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라는 말이 19절, 25절, 27절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20절에서는 “이 일을 가드에게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가드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을 대표하는 성읍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할는지 잘 알기에, 다윗은 차라리 그들이 이 사실을 모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1절에는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를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한 길보아 산에 이슬과 비가 더 이상 내리지 않고, 하나님께 제사드릴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던 이스르엘의 평원도 더 이상 결실하지 못하는 메마른 땅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에 대한 저주가 아닙니다. 억누를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길보아 산도, 비옥한 밭도, 슬픔에 잠긴 다윗의 마음처럼 사울과 요나단을 함께 애도하라는 의미입니다.
22절에서 다윗은 생전의 사울과 요나단의 용맹을 이야기합니다. “요나단의 활은 적들과 싸울 때 물러남이 없었고, 사울의 칼 또한 헛되이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사울과 요나단 모두,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를 위해 싸웠던, 패배를 모르는 유능한 용사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또한 아름다웠던 사울과 요나단의 부자 관계를 애도합니다. 23절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 부자는 생전에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다정한 사이였다는 의미입니다. 살아서도 그러더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울 같은 아버지를 둔 요나단은 무척이나 난감하였을 것입니다. 도대체 다윗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잘못했기에 아버지는 자신이 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를 죽이려고 합니까? 사무엘상 20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죽이려고 애를 쓰는 아버지 앞에서 다윗을 두둔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습니다.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아들이 마음에 안 드니, 갑자기 아내를 끌어들였습니다. ‘패역무도한 네 엄마가 잘못 가르쳐서 너 또한 이렇게 형편없는 자식이 되어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대적을 두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네가 이새의 아들 다윗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다윗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너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줄 알라” 그래도 요나단이, “도대체 다윗이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러시느냐”고 따지자 사울은 창을 뽑아 요나단을 겨누며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염려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러나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고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이 다윗이라는 신하를 그대로 두면, 아들 요나단이 왕위를 이어받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기를 쓰고 다윗을 제거하려 한 것입니다. 자녀 사랑에 눈 먼 부모들은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비겁하다고 내가 좀 욕을 먹더라도, 양심에 좀 걸리더라도, 내가 차라리 자녀를 대신하여 지옥에 가도 좋다는 듯, 자녀 사랑에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빗나간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게 인간적인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다윗은 한 아버지로서의 사울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까닭 없이 자신을 죽도록 미워했던 사울이고, 우리가 보기에도 형편없는 사울이지만, 사울과 요나단은 생전에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다정하더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추모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한 아버지와, 아버지의 불의를 끝까지 거부하고 다윗을 지켜주면서도 결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던 그의 아들 요나단의 관계를, 다윗은 사랑스럽고도 아름다웠다고 추모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24절에서 다시 한 번 사울을 추모합니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왕으로서 붉은 옷과 장신구를 걸칠 수 있도록 안정되고 부강을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였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요나단에게 고백합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다윗은 요나단을 마치 친형제와도 같이 “내 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새로운 번역 성경들은 ‘형이 나를 그렇게도 아껴 주었다. 나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토록 끔찍이 나를 아껴주던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한 기이한 사랑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사실, 생전에 요나단은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 다윗을 변함없이 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다’고 하는 표현을, 어떤 엉뚱한 사람들은 동성애 관계를 암시한다고 상상하지만, 그러나 이 말은 요나단의 사랑과 신뢰를 표현하는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사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관계는 단순히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라 가장 친밀한 영적인 결합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이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명예나 권력에 매우 약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비겁해지기도 하고 추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권력도, 명예도 요나단에게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왕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을 가장 유리한 위치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이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의를 행하는 것은 요나단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윗이 왕이 될 것입니다. 다만 나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그 길만 걸어가며 신의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요나단의 신앙과 친구를 향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요나단이 아버지인 사울 왕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애가에서 다윗은 요나단뿐 아니라 사울을 위하여 애도합니다. 나라를 위한 그의 헌신과 그의 업적을 노래합니다. 비록 불의한 일이었지만,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던 것을 또 이해합니다. 사울 왕을 온전히 용서한 것입니다. 일생을 자신을 힘들게 하고 죽이려 했던 원수같은 사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사울을 용서하며 이렇게 애도할 수 있었습니까? 이러한 용서는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 되심을 믿으며,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심을 다윗은 언제나 믿었습니다. 자신의 좌절과 실패와 아픔조차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긍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다윗은 사울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에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었고, 그를 향한 심판 역시도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사울의 시대가 간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위하여 애도하며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 나라의 기초를 놓은 사울의 업적을 칭송합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기에 넉넉한 그의 이와 같은 용서와 관용의 정신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섭리자이심을 믿는 그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믿는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지나간 일들에 사로잡혀 미래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줄 알고 용서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 성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불러야 할 칼의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