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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북한의 오페라 소개(1) : 혁명가극 <피바다>
‘당중앙(김정일)의 지도’하에 “1971년에 창조한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중에서 혁명가극 《피바다》(7장 4경)”이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종래의 가극들과는 달리 자주성에 대한 문제, 자주적인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완벽한 예술적해답을 줌으로써 가극의 주제령역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또한 노래를 절가화하고 방창을 도입하며 무용을 유기적으로 배합하고 립체적인 흐름식무대미술을 받아들일데 대한 당의 방침을 빛나게 구현하여 종래가극의 도식적인 틀을 마스고 가극의 형식과 극작술에서 전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혁명가극은 무엇보다도 가극음악을 절가화하고 절가를 가극음악의 기초로 삼음으로써 가극음악의 표현적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이였으며 가극의 노래를 인민대중이 알기 쉽고 즐겨부를수 있게 하였다. 절가로 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혁명가요 《피바다가》와 《〈토벌〉가》는 일제와 조선인민간의 모순과 대립이 극도로 첨예화되고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고있던 1930년대의 엄혹하고도 격동적인 시대상을 폭넓게 펼쳐보이면서 작품의 주제사상해명에 힘있게 이바지하고있다. 이밖에도 가극의 1장에서 불리우는 노래 《울지 말아 을남아》, 《소쩍새야》, 2장 2경에서 불리우는 노래 《 그 앞날 밝혀다오》, 《녀성들도 모두다 힘을 합치면》, 《혁명의 한길에서 싸워가리라》, 《광복의 새날 안고 돌아오너라》, 7장에서 불리우는 《혁명만이 살길이다》 등은 다 절가의 풍부한 표현력과 다양한 서술적기능을 뚜렷이 보여주는 좋은 실례로 된다. 혁명가극은 노래를 절가화하였을뿐아니라 3자적서술에 기초한 방창을 도입하여 음악극작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방창이 새롭게 도입됨으로써 등장인물의 노래로만 의사를 교환하고 사상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으로 되여온 종래가극의 낡고 도식적인 틀이 깨여지고 보다 다채롭게 풍부한 음악형식에 의거하여 가극의 높은 사상예술성을 확고히 담보할수 있게 되였다. 방창은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부각시키고 정황을 설명하는 등 다양한 표현적기능을 수행한다.(…).
혁명가극은 무용과 무대미술에서도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혁명연극에서 무용은 종래가극에서와 같이 가극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삽입물이나 여흥무용과는 달리 작품의 주제사상을 해명하고 주인공의 사상감정을 개방하며 극을 추진시켜나가는데서 필수적인 형상수단으로서의 독특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수행하고있다. 백두산장면의 무용, 꿈장면의 무용, 물방아간장면의 가무 《유격대원호의 노래》 등이 그 대표적인 실례로 된다. 혁명가극은 또한 무대미술을 주인공들의 생활환경과 행동조건을 고착된 상태에서 보여주는 단순한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주인공은 운명발전과 작품의 내용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다양하게 변하는 립체적인 흐름식무대미술로 전환시킴으로써 가극무대미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1장과 6장의 피바다장면에서 펼쳐지는 립체적인 조형적화폭, 5장 어머니의 꿈장면에서 급변하는 무대의 황홀한 전경, 7장에서 성벽이 갈라지는 무대적처리 등은 주인공의 운명과 극발전의 요구에 따라 자유롭게 변하는 립체적인 흐름식무대미술의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들로 된다. 영광스러운 당중앙의 지도밑에 혁명가극 《피바다》가 창조됨으로써 가극혁명의 력사적과업이 빛나게 수행되고 이 땅에 《피바다》식가극의 새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백과전서(5)》, 523~5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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