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21일 (월)
제목 : 위협 받는 제자들
오늘의 말씀 : 사도행전 19:21-41 찬송가: 191장(구 427장)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중심 단어
바울, 소동, 데메드리오, 은장색, 아데미, 에베소, 서기장, 신전지기
주제별 목록 작성
데메드리오
24절: 에베소의 은장색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많은 돈을 벌었다
25-29절: 은장색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대적하게 하였다
26절: 바울이 증거한 유일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27절: 아데미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돈벌이 유지에 혈안이었다
도움말
1. 은장색(24절): 은을 두들겨 펴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2. 아데미(24절): 에베소 사람들은 이 신을 다산과 풍요의 신으로 숭배했다.
3. 신전지기(35절): 신전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에베소 성읍이 열렬하게 우상을 섬기는 도시였음을 뜻한다.
말씀묵상
에베소의 은장색들이 일으킨 소동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의 은장색들을 선동해 바울과 그 일행을 대적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에베소와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전도한 탓에,‘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이 무시 당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봐’(27절) 두려워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넘어간 은장색들과 에베소 시민들은 바울의 동료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29절).
바울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동료를 구하러 연극장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성도들과 바울의 친구인 아시아 관리들은 이를 위험하게 여겨 바울을 극구 만류했습니다(30-31절).
일단락된 소요 사태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내세워 자신들은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변호하려 했습니다(33절). 우상 숭배를 금하는 자신들이 바울과 같은 부류로 여겨져 피해를 입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추구했기에 사회를 변혁시키기는커녕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편, 에베소의 행정관인 서기장은 소요 사태에 직면해 아데미를 숭배하는 군중의 자부심을 세워 주면서 저들이 불법적으로 바울의 동료를 체포했음을 지혜롭게 주지시킵니다. 그러면서 바울 일행을 고소하려면 정식 절차를 밟으라고 명하고 군중을 해산시켰습니다(35-41절). 하나님께서 서기장을 통해 성난 군중으로부터 바울 일행을 구하신 것입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데메드리오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서기장은 성난 군중의 자부심을 어떤 말로 추켜세우며 그들을 진정시켰습니까(35절)?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예수님을 부정하거나 예수 믿는 사실을 감춘 적은 없습니까?
2. 여러분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님의 놀라운 도우심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의 묵상>
오늘 새벽에는 이 말씀을 가지고 성령께 묻는 시간을 가졌다.
누가복음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 어떻게 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부인하다는 말은 단순히 자기 생각을 억제하고 절제하는 정도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것을 거절한다는 뜻이다. 모순일 수 있지만 분명히 나의 존재가 있지만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주님은 자기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영혼을 사랑하며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처럼 말인다.
어렵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쓰는 방법은 ‘일단 순종하고 나중에 생각하자!’이다. 기도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면 어느새 내 생각과 의지와 결단과 판단이 들어가서 주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내 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닌 주님이 기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결국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아닐까?
깊은 생각 속에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신다.
‘자기 부인은 네가 나르기 위해서 나로 인해 억울함까지 참아내며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한 자기 부인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을 쫓아주었을 때 여종의 주인들에게 고소를 당해 억울하게 옥에 갇혔던 경험이 있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고 갔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라고 고발하자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를 많이 치고 옥에 가두었다.
에베소에 있었을 때도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과 함께 큰돈을 벌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은장색 데메드리오에게 고발을 당하게 된다. 그가 직공들과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놓고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결국 이 문제는 경제적 이익 때문에 바울을 고발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숭배하는 것은 모순이고 어리석은 행동이 아닌가?
바울의 전도로 인해 사람들이 더 이상 손으로 만든 우상을 신으로 섬기지 않게 되자, 자신의 생업에 큰 위협을 느껴서 고발하게 된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부인 속에 주님보다 풍요를 선택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내 개인의 풍요보다는 들꽃 성도들의 풍요와 교회의 풍요를 구하지만 언제나 주님이 생각과 내 생각의 충돌로 부족함을 느끼고 살아가게 된다. 이것까지 버려야 하는 것인가?
이때 서기장은 흥분한 군중들을 향해 지혜로운 말로 진정시킨다.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말은 에베소 시민들이 가진 아데미 숭배에 대한 종교적, 도시적 자부심을 인정하고 높여주는 말이었다. 먼저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어 감정적인 동요를 가라앉힌 후, 이성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따라야 함을 지혜롭게 설득할 수 있었다. 주님은 이런 소동을 바울이 아닌 이방인 서기장의 지혜로 잠재우게 하신다.
반면 바울은 함께 다니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재판에 붙이려고 강제로 끌고 원형극장으로 들어가자 바울이 흥분해서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제자들이 말렸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주님은 서기장의 지혜로 군중의 흥분을 가라앉게 하고 흩어지게 한다.
내 삶에 ‘데메드리오의 아데미’는 무엇일까?
내 생각, 나의 유익을 과연 복음의 진리 앞에서 고민하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내 안에 주인이 경제적 안정임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자신의 안위를 부인하고 붙잡힌 동려들을 구하기 위해서 위협을 무릎쓰고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 주님은 서기장의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게 하신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막으시면 멈춰야 한다. 내려놓고 주님께 맡겨야 한다. 그럴 때 주님께서 일하신다.
사랑의 주님.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나를 부인하면 손해 보는 것 같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내려놓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성난 군중들 앞에 나의 권세와 권력으로 잠재우고 싶지 이렇게 서기장처럼 인정해주고 높여주는 말로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저도 제 자신의 유익을 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바울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 앞에 내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시고 이끌어 가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억울함과 근심이 저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오늘도 저의 중심이 제가 아닌 주님이 되게 하옵시고, 저에게서 사랑하는 들꽃가족들을 위해 중심이 바뀌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