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노정태 옮김/부키(주) 2021년판
독서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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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기존에 뇌리에 머물던 생각들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바꾸며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시간들을 모색하던, 나날이 진중해져 가던 시기에 만난 어떤 책들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삶은 빛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긍정적인 생각들로 꾸역꾸역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이 무렵 만난 책들은 다름 아닌 지구의 온도상승과 기후변화에 따른 장차 다가올 종말론적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연환경관련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예측한 과학서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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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마쳐서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도 지구 환경의 위기에 대해 곳곳에서 경고음을 내는 장면들을 섬뜩하게 일반대중에게 노출하고 있었다. 특히 스웨덴의 어린 소녀 ‘툰베리’가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바깥세상으로 나와 미래에 대해 절망적인 모습으로 시위하는 장면은 뭔가 보통이 아닌 사단이 일어났음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모든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날 이후로 삶의 미래에 대한 시간은 암울한 회색으로 변했고, 주변 일에 대해서 더 이상 기쁘거나 즐겁지가 않게 되었다.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단박에 움츠러들었다. 모든 사물과 상황과 사건에 대한 관점에 그때 무렵에 읽었던 내용들이 뿌리깊이 각인되어 버렸던 것이다.
매사 모든 일에 이상 기후가 끼어들면서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이 변화는 세상과 세계를 이전과는 현격하게 달라져버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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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마이클 셀런버그’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십 년 넘게 끌어온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지구 환경의 위험성’에 대한 가공할만한 ‘개인적 불안’을 단번에 종식시켜버렸다.
육백 쪽에 가깝게 두꺼운 책을 이틀 만에 다 읽었는데, 비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웬만한 재미있는 소설작품을 능가하는, 그야말로 읽는 기쁨을 듬뿍 제공해준 통쾌한 책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전의 긍정적인 시각을 되찾게 해주면서 삶에 대한 시각을 과거 어느 순간의 원점으로 회귀시켜 주었다(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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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린피스의 활동’, ‘신재생 에너지의 효용’, ‘원자력 에너지의 실상’ 그리고 ‘환경보호 활동의 방향’ 등 근간 지구촌에서 뜨거운 이슈(issue)였던 여러 사안들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고 차분한 입장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저자인 ‘마이클 셸런버그’가 환경연구가로서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쌓은 다양한 경험과 연구로 다져진 전문가로서의 시각덕분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전문가로서의 역량과 아울러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금도 지구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진행 중인, 어쩌면 심각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 차분하게 어느 면에서는 정의로운 중립적 입장에서 깊이 있는 철학까지 등장시켜 독자들의 바람직한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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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전적으로 저자의 의견을 신뢰할 수는 없다. 여러 정황과 관련 데이터를 지닌 반대편의 시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읽은 ‘지구 환경에 안전’에 대한 전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서 적어도 중립적인 시각은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읽는 책의 저자의 생각을 따를 수밖에 없는 불안하고 막연한 현실들 속에서 어느 쪽 주장과 사실이 결과적으로 옳고, 그들이 내놓는 대책들이 모두를 위한 올바른 방향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대부분의 독자는 전문가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대부분의 선량한 독자들은 먼저 나온 ‘지구환경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들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불안했던 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환경보호운동’이나 ‘지구 살리기 운동’에 먼저 뛰어든 선구자적인 그들에게 힘찬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여전히 우리는 어떤 결과도, 변화도 보이지 않는 현실 세계에 대해 좌절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막연히 불안하던 차에 급반전과 같은 의견을 내놓은 책을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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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길’이라는 ‘말’의 철학적, 명상적 개념을 처음 터득한 곳은 책(冊)이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름 삶의 길을 찾아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명확하지 않은 삶의 노정을 동행해준 것도 책, 독서였다.
애초 명확한 삶의 노정을 정하지 못한 탓에, 정했지만 전적으로 내 의지와는 다소 무관한 것처럼 느꼈을 때 책과 독서는 많은 위로와 피난처가 되어주었고, 이것은 함께 하는 시간이 차차 많아지게 되면서 독서가 삶 그 자체가 되는 묘한 반전이자 누군가의 말처럼 때때로 운명을 바꾸는 기회가 되어줄 것 같기도 하다.
앞서 ‘지구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먼저 받아들인 것도 책을 통해서였고, 이 시각은 한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 무겁게 자리 잡아 삶의 노정에 관여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우연한 기회에 ‘지구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지닌 책을 접하게 됨에 따라 앞서 가졌던 시각이 전적으로 옳거나 확신적인 것은 아니라는 반전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내 삶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독서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인 동시에 남은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한다는 의미로 느껴지며 매우 흥미롭기 조차하다.
(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