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는 자동차용 정밀절삭가공 부품 전문 기업이다. 엔진의 진동을 줄이는 밸런스샤프트 모듈(Balance
Shaft Module), 엔진 내부에 연료를 분사하는 고압 연료분배장치, 정밀기어인 선 기어(Sun Gear) 등 주
력 제품을 비롯해 500여 종의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동보는 국내외 자동차 부품 모듈회사는 물론, 이름
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사로 갖고 있다. 그 명성만큼이나 입맛이 까다로
운 고객사들을 상대로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철저한 공정별 품질 관리로 성과 거둬
특히 몇 년 전부터 세계 자동차 산업은 품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리콜 사태에서도 보
듯이 품질 경쟁력은 가격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고객이 제품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도 하다. 김재경 회장은 “우리 회사는 최종 완성품의 품질만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공정마다 품질 확
보를 하고 있다”면서 “가령 10개의 공정이 있다면 그 각각의 공정에서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다음 공
정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정에서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품의 불량 확률이 그만큼 높아집니다. 품질에는 타협이 없고 절대
적인 만큼 품질 확보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지요.”
동보의 품질에 대한 자긍심은 성과에서 나타난다. 2000년대 초 수출을 시작한 이후 치명적인 불량품으
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다. 오히려 일본의 모 업체로부터 70여 개 협력회사 중
품질 부문 1위로 꼽히는 평가를 받았고, 2008년에는 미국 업체로부터 최우수 협력사 상을, 지난해에는
미국 GM으로부터 우수품질상을 받았다.
창업주인 김 회장은 경상북도 경주 출신. 사업을 했던 부친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 동국대 경
제학과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제대한 때가 1960년대 중반이었다. 사회 진출에 대한 고민은 컸지만 마땅
한 직종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마냥 놀면서 허송세월 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이쇠를 깎아내는, 일종의 절삭가공 제조 공장을 권유했는데 그것이 창업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무슨 대단한 비전을 갖고 시작했던 건 아니고 우선 먹고 살아야겠다는 것이 창업 동기이자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사업을 권유하던 지인과 함께 제조 공장을 찾아갔더니 쇠가 쇠를 깎아내는 겁니다. 처음 보는 광경이어
서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걸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무모했
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창업 초창기 두 번이나 공장 문 닫아
구형 수동 선반 1대와 로구로(회전을 이용해 성형이나 표면 가공을 하는 장치) 6대, 대여섯 명의 직원이 전부
였다. 철도청에 철도차량 보수용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첫 사업이었다. 직장에 다닌 적도, 사업 경험도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보잘것없는 설비와 한정된 수주 물량, 자금 부족 등 온갖 어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창업 후
2년 동안 두 번이나 공장 문을 닫는 시련도 겪었다. “공장 문을 닫을 때는 빚을 내서라도 직원 월급부터 정리
했고,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공구비 등 외상대금도 모두 갚았습니다. 제게는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인
식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그것이 결국 세 번째로 공장을 시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습니
다. 뿔뿔이 흩어졌던 직원들이 다시 모이고 공구 판매상에서 외상으로 공구를 제공하는 등 그동안 쌓은 신용
이 공장 재가동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김 회장은 품질과 납기 준수, 대출 원리금 상환
준수 등 신용을 경영의 첫 번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신용이야말로 창업 후 두 번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
게 한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도차량 부품에 이어 농기계·중장비 부품을 생산할 당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1차 오일쇼크가 닥친 때문이었다. 때마침 정밀부품 가공 설비를 일본에서 수입한 직후였다. 그런데 엔화 환율이 2배 가까이 급등
하면서 대출 원금이 2배가 됐고 대출이자도 뛰어올랐다. 경제가 위축되면서 일거리마저 끊어져 한 달간이나
공장을 쉬어야 했다. 그때의 호된 경험 탓에 김 회장은 지금까지도 금리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외화자금을 이
용하지는 않는다.
정밀절삭 부품으로의 업종 변경이 도약의 계기
동보가 순항을 이어가게 된 것은 자동차 정밀절삭 부품 업종으로 변경하면서부터다. 특히 1980년대 기아자
동차의 봉고용 부품을 생산하게 된 것이 도약의 기회가 됐다. 미니승합차인 봉고는 생산 초기만 해도 업계
의 반응이 회의적이었다. 그렇다보니 부품 업체들 역시 봉고의 판매율이 낮을 것으로 판단해 부품 개발 수
주를 꺼렸다.
하지만 김 회장은 적극적으로 밀어붙였고 봉고는 시장에 나오자 ‘봉고 신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판매가 폭
발했다. 그에 따라 동보 역시 부품 생산량과 함께 매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봉고 신화에 이어 또 한 번의 기회는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의 수동변속기용 로드시프트를 전 품목 수주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대우의 1차 협력업체로 지정되는 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요.”
1990년대에 일찌감치 기술연구소를 세워 연구개발에 나섰고 품질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동
보가 만들면 믿을 만하다’는 신뢰가 쌓이면서 수주가 계속 이어졌고 몇몇 품목은 시장점유율 1위에도 올랐
다.하지만 IMF 이후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연쇄 부도를 맞으면서 동보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매출액의 70% 정도를 양 사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출채권을 현금화하기가 어려웠고, 차량 생산
이 크게 줄면서 수주 물량도 급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기아차와 대우차의 부도가 시차를 두고 발생
했다는 것이었다. 기아차의 매출이 급감할 때는 상대적으로 대우차가 잘 팔려 매출 감소분을 상쇄했고, 또 대
우차 부도 때는 기아차의 매출이 증가한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철저히 대비를 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 환경
은 늘 변하는 것이어서 언제 어떤 형태로 위기가 닥칠지 모르니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그
간의 경험과 신념이 바탕이 된 겁니다.”
세계 경기 변화에도 철저히 대비
동보는 인천에 본사와 기술연구소를 두고 1개의 계
열사와 인천, 경주, 아산, 창원 등 4개 지역에 공장
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계열사를 포함한 매출액
은 2,260억 원으로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수출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2011년 7천만 달러
에 이어 지난해에는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중 직
수출은 약 2천만 달러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미 미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 자동차 선진국
에 부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품질관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자동차회사에도 자동변속기 부품을 대
량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해
외 전시회 참가, 해외 완성차 및 관계사 방문 등 다
양한 해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까지 해외 공장은 두고 있지 않지만 향후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우리 회사 제품을 생산하는 데는 많은 가공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부품을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에 머물
러 있어요. 하지만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면 중국 등 해외 진출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세
계 경기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면 성과는 자연
히 따라올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위기는 언제든 불시에 닥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으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해 인터뷰 초반부터 배석해 있던 김지만 대표이사 사장(38)이 한 마디 덧붙였다. “세계 경
기가 불투명하다고 해도 실제 피부로 느끼는 것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황이고 리스크도 분산돼 있는 만큼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김 회장의 1남 3녀 중 막내인 김 사장은
미국 미시간대 MBA를 졸업한 재원이다. 2000년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했고 2008년 5월 대표이사 사장을 맡
아 본격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올해 직수출을 늘리기 위해 오는 3월 킨텍스에서 개최되
는 국제 모터쇼에 보다 큰 규모로 참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외 고객 찾기에 나설 계획”이라면서 “FTA 영향과
한국 자동차 부품 산업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새로운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품질 경쟁력에 대한 자부심 커
김 회장은 반세기 가까이 한 우물을 파온 동보의 역사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회사의 전통과 기술력
이 합쳐져야 품질 경쟁력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원래 부품 회사는 가격, 품질, 납기 3가지 모두 경쟁력이 있어야 해요.
그 중에서도 우리 회사가 가장 자신하는 것이 품질입니다. 사실 품질이라는 것이 그 회사의 전통과 인력이 합쳐져서 생기는 것이지 말로
만 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김 회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또 다른 덕목은 바로 ‘신용과 겸손’이다. 제
품의 품질이나 납기에 대한 약속, 자금을 제공하는 은행에 대한 약속, 동보를 믿고 따르는 종업원과
그 가족에 대한 약속 등을 잘 지키는 것이야 말로 미래의 성장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
는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지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그 자리
를 뺏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모든
생각의 출발점은 어떻게 1등을 할 것이냐, 거기에서 시작하는 거지요.” 직원들에게도 “그래 가지고
1등 하겠나, 몬 하겠나(못 하겠나) 그것부터 생각해보라”고 강조한다. 1등을 하기 위해선 때로는 과
감한 투자나 모험도 필요하다는 것이 김 회장의 지론이다.
사업 관련 대화를 나눌 때 다소 엄격한(?) 표정이던 김 회장은 직원 얘기로 화제를 바꾸자 “따뜻한 가
족 같은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다정다감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TV를 보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곧바로 DVD로 만들어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신혼부부 교육자료’라며 기자에게 내미는 DVD를 찬찬히 살펴보니 KBS TV 아침마당에서 방영된 “
부부, 더불어 살아야 더 불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책상 위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
용’ DVD가 종류별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노사 문제 역시 열린 경영을 강조하며 대화로 임해 지금까
지 단 한 차례의 불협화음도 생기지 않았다. 매주 월요일 회장 주재 임원회의에는 노조위원장이 근로
자 대표로 참석해 회사 매출현황이나 생산실적, 품질관리 등의 주요 사항을 공유한다. 또 무주택 사
원을 위해 회사에서 아파트를 구입해 무상으로 사용하게 하는 등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노력들이 무분규는 물론, 결국은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반세기 가까
이 현역에서 활동한 덕인지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지만 특별한 건강 비결은 없다고 말한다. 오
히려 헬스에 등록해놓고 일주일에 한 번도 제대로 못 나갈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 작은 일에도 행
복해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짜증낼 일이 없다는 것이 김 회장의 생활신조다.
김 회장의 꿈은 동보를 10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이 탄탄하고 인력이 안정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하기보다는 오랫동안 잘되는 회사를 만드는 데 더욱 관심이 많다.
“지나치게 빠를 필요 없어요. 차근차근 성장해 가야지요. (수십 년 동안) 내가 기틀을 잡아주었다면 앞
으로는 우리 동보 가족들이 책임지고 역량껏 키워 나가겠지요. 따뜻한 가족같이 정을 나누고, 오순도
순 잘사는 회사. 그런 회사가 되었으면 하는 게 바로 내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