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동네 서점에 간다. 서점에서 이책 저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일상이자 휴식이다. 무더위가 일찍이 시작되었던 지난 6월 주말에도 어김없이 서점에 들어갔다. 서점에 들어가 이책 저책을 펼쳐보고 있는 던 중 소설 신간코너에 놓여 있던 책 표지에 나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바람불고 있는 벌판에서 허공을 무심히 바라보고 서 있는 한 여인의 표정이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라는 말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민중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이다.(원래의 의미는 아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정말로 수많은 민중들의 피를 먹고 자라왔다. 「영초언니」는 가장 엄혹했던 박정희 유신독재시절의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떻게 피를 흘렸는지를 보여주는 자전적 논픽션에세이 이자 실화소설이다.
「영초언니」의 주인공 천영초는 1970년대 중·후반 운동권의 상징이었던 인물이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행동하는 여학생들의 서클 '가라열'의 리더였던 영초언니는 유신독재정권에 저항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른바 '산천초목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그후 대공분실에서의 모진고문, 수감생활, 부마항쟁, 박정희 암살, 1980년 광주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질곡을 지나오게 된다. 그 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초언니」의 글쓴이는 천영초의 학교후배인 제주올래 이사장 서명숙이다. 서명숙은 「영초언니」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영초언니는 제게 담배를 처음소개해준 ‘나쁜 언니’였고, 저를 이 사회의 모순에 눈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고,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 ‘지식인의 모델’이었습니다. 천영초는 긴급조치 시대 대학가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였고 주위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이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잊혀버렸습니다. 아무도 그녀의 역사를 기록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았으나 수많은 천영초들이 오늘날의 민주주의 나무를 자라나게 하였습니다.
서점 서가 옆에 서서 찬찬히 읽어내려간 「영초언니」는 내게 말을 했습니다. “언니는 말과 기억을 잃고 시대는 그녀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천영초, 이 이름을 기억하라!”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민중들의 이름을 기억하라고.......
ps. 「영초언니」를 읽고 느낀점을 나누고 싶은 분들은 7월 27일 목요일 저녁 7시 느티나무 모임방으로 오세요.
첫댓글 옙 알겠습니다
스토리펀딩에서도 마음 아프면서도 담담하게 읽고 있었어요.
마구 읽고 싶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