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희 시집 {바람의 이분법} 출간
조순희의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이분법}은 기원에 대한 탐색으로 가득하다. 푸릇한 최초를 찾아 멀리는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한편으로는 “유목의 낭만”(「풀빛 신전」)을 좇아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첫 시집 꽃 피우는 그 일(2019)에서 보여준 서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확장된 시세계를 보여준다. “새벽이면 복된 하루를 견인하는 마량진”이라는 현실로부터 출발해 “구약성서 속에서 40일 밤낮 떠다녔던 방주 위로 비둘기가 물어왔던/그 푸릇한 최초”를 탐색해 보기도 하고 “오래전 이방의 윤택한 말씀 품고 당도한 푸른 눈의 사내들” “바실 홀과 맥스웰”(「마량진에서 만난 최초」)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한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에 뿌리를 내린 시인답게 시 쓰기를 통해 지역의 현재와 과거를 답사한다.
조순희의 꽃 피우는 그 일과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이분법 사이에는 겨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첫 시집 출간 이후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했으므로 그 사이에 사실상 엄청난 시간적·문화적·정서적 격변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두 시집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출간된 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릇한 최초를 찾아 기원을 탐색하는 조순희 시의 행보가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기도 할 것이고 생명을 지닌 존재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기도 할 것이다.
-이경수 문학평론가, 중앙대 국문과 교수
조순희 시인은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고, 원광대학교 대학원(교육학 석사)과 건양대학교 대학원(행정학 박사)을 졸업했으며, 서해대학교 케어복지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서천군의회 의원과 서천문화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어린이집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8년 『애지』로 등단했으며 2019년 첫 번째 시집 『꽃 피우는 그 일』을 출간했으며,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인『바람의 이분법』을 출간하게 되었다.
조순희 시인은 그의 두 번째 시집인『바람의 이분법』에서 “하늘이 감동하는 시까지는 멀다 할지라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시인의 말])다고 고백한다. 세계적인 대재앙인 팬데믹을 경험한 이후, 푸릇한 최초의 기원을 탐색하는 조순희 시의 행보가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순희의 두 번째 시집은 기원에 대한 탐색으로 가득하다. 푸릇한 최초를 찾아 멀리는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한편으로는 “유목의 낭만”(「풀빛 신전」)을 좇아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첫 시집 꽃 피우는 그 일(2019)에서 보여준 서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확장된 시세계를 보여준다. “새벽이면 복된 하루를 견인하는 마량진”이라는 현실로부터 출발해 “구약성서 속에서 40일 밤낮 떠다녔던 방주 위로 비둘기가 물어왔던/그 푸릇한 최초”를 탐색해 보기도 하고 “오래전 이방의 윤택한 말씀 품고 당도한 푸른 눈의 사내들” “바실 홀과 맥스웰”(「마량진에서 만난 최초」)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한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에 뿌리를 내린 시인답게 시 쓰기를 통해 지역의 현재와 과거를 답사한다.
조순희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는 겨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첫 시집 출간 이후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했으므로 그 사이에 사실상 엄청난 시간적·문화적·정서적 격변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두 시집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출간된 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릇한 최초를 찾아 기원을 탐색하는 조순희 시의 행보가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기도 할 것이고 생명을 지닌 존재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며 “길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방송을 틀면 연일/상한 빵처럼 부푸는 창백한 숫자들”이 보이고 “관 속에서 걸어 나온 소문이/좀비처럼 떠다”니는 시절을 우리는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너와 나의 거리가 서둘러 단속되고/마스크 쓴 봄이/소독약을 피해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는 시절. 그 시절을 지나며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결빙의 마음”(「부직포에 갇힌 봄」) 추슬러 어김없이 봄은 오고 또 왔지만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영영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예감하고 있다. 슬픈 예감 속에서 조순희의 시는 기원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오르거나 자연 속으로 눈길을 돌리는 선택을 한다. 그것은 푸릇한 시의 기원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에서 주로 살아온 조순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서천의 로컬리티를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시의 공간으로 서천을 새롭게 호명하는 것은 물론 서천의 역사와 현재를 시를 통 구축한다. 서천군 서초면 선암리, 한산면 신성리, 서면 마량리, 문산면 신농리, 종천면 지석리 등 서천의 구석구석을 소개함으로써 살아있는 삶의 터전이자 아름다운 시적 공간으로 서천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을 시 쓰기를 통해 실천하고자 한다. 문학의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호명되지 못했던 서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지역 시인으로서의 소명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햇살 맑은 날이면/ 투명한 ㅂ은 공중에 유리알 같은 깃발을 내걸었다// 오래전 골목 끝으로 낡은 단어장을 던진 소년을,/ 바람은 알고 있었다 마을회관 안쪽 누군가의/등 굽은 무용담도 이젠 낙엽만큼 효험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너라는 모서리에 묶여/ 백기처럼 펄럭이던 꽃무늬 손수건, 알고 보면 그 모두는/ ㅂ이 너의 오후에게 저지른 수줍고 향긋한 만행이었다// 투명한 것들이 새떼처럼 불어왔다 떠나간 날이면/ 저녁상 물린 창밖 나뭇가지 어디쯤에 이미 그가 와 있었다// ㅂ은 오래 말을 아꼈고,/ 이따금 그녀 목 안쪽에서 습기 밴 바람 소리가 걸어 나오곤 했다// 아침이면 남쪽 창을 열고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먼 길로 떠나던 무수한 바람들이/ 사나흘씩 ㅂ의 품에 갇혀 향긋한 고백들을 들려줘야 했다// 신성리갈대밭﹡에 가보면/ 태양의 세 번째 심장과 사랑에 빠진 바람이/ 노을 물든 서천을 두루마리처럼 언덕에 펼쳐놓고/ 붓보다 고운 갈대로 길고 긴 편지를 쓴다//
﹡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에 위치한 갈대밭
-「바람의 이분법」 전문
한 지역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내력과 사연이 구석구석 깃든 곳에서 살아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골목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을 기억하는 일이자 지금은 사라진 장소와 그곳에 얽힌 사건을 기억해내는 일일 것이다. 인용한 시에서는 바람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속성을 빌려 구석구석을 누비며 과거의 시간을 불러오기도 한다. 바람이 가닿는 곳에서는 잊고 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바람은 “오래전 골목 끝으로 낡은 단어장을 던진 소년을” 알고 있고 “마을회관 안쪽 누군가의/등 굽은 무용담도” 기억하고 있다. 이 시의 배경을 이루는 “신성리 갈대밭”은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자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바람 소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신성리 갈대밭에 가보면” “태양의 세 번째 심장과 사랑에 빠진 바람이/노을 물든 서천을 두루마리처럼 언덕에 펼쳐놓고/붓보다 고운 갈대로 길고 긴 편지를 쓴다”고 갈대밭에 붉게 물든 노을이 가득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조순희의 시는 옮겨 적는다. 바람이 갈대밭에 쓰는 아름다운 편지는 마치 시 같다. 아마도 시인은 이런 시를 쓰고 싶은 모양이다.
갈대밭 갔다 햇볕 좋은 아침에/ 유목의 낭만 조우하러,// 직선의 계절이 하늘로 크는 성소/ 해그림자 사이사이 바람이 들어있다/ 민낯의 표정 꺼내 혼자 울기 좋은 곳이다//마스크 벗고/ 개개비와 한참을 놀았다// 바람의 목록 펼쳐 직립의 방식으로/ 흔들림을 건축하는 풀빛 신전,// 저기 흰 구름 하나/ 방금전/ 내 안에서 부리 씻던 그리움이다//허리 휜 길 저만치/ 물속 유목의 날들 밀고 가는 금강,/유유하다
-「풀빛 신전-신성리 갈대밭」 전문
신성리 갈대밭을 “풀빛 신전”이라 부르는 이 시에서 주체는 “햇볕 좋은 아침에” “유목의 낭만 조우하러” 갈대밭에 간다.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곳이므로 가히 풀빛 신전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곳에서 주체는 현대 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유목의 낭만”을 조우하곤 한다. 드넓은 갈대밭을 가득 채운 갈대는 직선으로 자라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직선의 계절이 하늘로 크는 성소”라고 갈대밭을 부른다. 바람이 깃들어 머물다 가는 이곳은 “민낯의 표정 꺼내 혼자 울기 좋은 곳이다”. 갈대밭을 웅성대는 바람 소리에 웬만한 울음소리는 묻힐 테니까.
그곳에서 시의 주체는 “마스크 벗고/개개비와 한참을 놀았다”. 지난 2년 7개월 사이에 마스크를 쓴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각자의 골방에 갇혀 있던 시간을 지나 사람이 드문 들판이나 숲을 찾게 되었다. “바람의 목록 펼쳐 직립의 방식으로/흔들림을 건축하는 풀빛 신전” 신성리 갈대밭에 시의 주체도 자주 찾아들었던 모양이다. 인간의 발자취가 줄어들자 자연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갔음을 지난 2년 7개월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자연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시의 주체도 갈대밭이 이룩한 “풀빛 신전”을 우러러본다. “저기 흰 구름 하나”에서 “내 안에서 부리 씻던 그리움”을 발견하고 “저만치/물속 유목의 날들 밀고 가는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목격한다. 조순희 시가 그리는 풀빛으로 가득한 신성리 갈대밭의 풍경은 숭고를 경험하게 한다.
----조순희 시집, {바람의 이분법},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