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을 긴 시간에 걸쳐 읽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차분한 문체, 생각하게 하는 질문들
문학이란 무엇인지 삶이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시, 소설 읽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같아 올려 봅니다.
문학은 불가피하다.
인간이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말과 행동이 형편없는 불량품이기 때문이다.
말이 대개 나의 진정을 실어나르지 못 하기 때문이고 행동이 자주 나의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가장 친숙하고 유용해야 할 수단들이 나를 치명적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린다.
왜 우리는 이모양인가?
말은 미끄러지고 행동은 엇나간다.
말에 배반당하기때문에 다른 말들을 찾아 해매는 것이 시인이다.
시인들은 말들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그 실패를 한없이 곱씹는다.
그 치열함이 시인의 시적 발화를 독려한다.
한편 행동이 통제불능이라 그 밑바닥을 들여다 보려는 자들이 소설가다.
소설가들은 법과 금기의 틀을 위협하는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창조하고 그 순간이 요구하는 진실을 오래 되새긴다.
그것이 소설가의 서사구성을 추동한다.
요컨데 문학의 근원적 물음은 이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말할수 있고/없고,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없는가?"
말하자면 나의 진실에 부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관건 이다.
그날 그날의 효율을 위해 이 질문을 건너 뛸때 우리의 정치, 행정, 사법은 개살구가 되고 만다.
문학이 불가피한 것은 저 질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제도와 거기서 생산되는 문학 상품들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저 질문을 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모험들이 불가피한 것이다.
시적인 발화의 실험과 소설적인 행동의 감행이 불가피한 것이다.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시하는 그 모든 발화들에서 시적인 것이 발생하고,
다르게 행동할수 있는 가능성을 개시하는 그 모든 행위들에서 소설적인것이 발생한다.
'시적인 것' 이란 이런 것이다.
시적 발화는 '빈말'(하이데거)들을 뚤고 나와 격발한다.
'소설적인 것' 이란 이런 것이다.
소설적 행위는 타산적인 행위들을 뚤고 나와 작렬한다.
윤리가 문제되는 자리는 '선' 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이다.
선의 윤리는 시스탬을 유지하기 위한 방호벽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진실의 바이러스를 선의 이름으로 퇴치한다.
반면 진실의 윤리는 시스탬을 다시 부팅하는 리셋 버튼이다.
그것은 때로 선이라는 이름의 하드디스크가 말소될 것을 각오한 채 감행되는 벼랑끝에서의 한 걸음이다.
억압된 총체성이 이 진실의 유리학과 더불어 작동할때 어쩌면 종언의 종언은 선언될 것이다.
그 진실의 윤리학을 위해 문학은 있다.
혹은 문학 안에서 그 진실은 솟아 오른다.
물론 시와 소설의 역할이 같지 않다.
시는 발화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틈에서 출몰하는 진실을 겨냥하고,
소설은 행위가 감행되고 철회되는 틈에서 발생하는 진실을 조준한다.
그것이 마침내 격발할 때 진실이 분출하고, 문학의 공간은 '사건'의 현장이 된다.
본래 모든 사건은 수많은 단서들이 착종되어 있는 거대한 질문이다.
이 진실을 어찌할 것인가.
이 난감한 질문들 속에서 사건현장에는 폴리스 라인이 쳐지고 비평은 현장 검증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문학은 이제 대답하지 말고 질문하라.
문제는 정치(의 윤리)를 위한 대답이 아니라 윤리(의 정치)를 위한 질문이다.
대답하면서 장(場)에 참여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면서 장 자체를 개시(開始)한다.
윤리의 영역에서 모든 질문은 첫번째 질문이고,
모든 첫번째 질문은 하나의 창조다.
발화의 종말과 행위의 파국에서 시와 소설은 시작된다.
그대 자신의 말을, 그대자신의 행위를 하라.
이를 무로 부터의 창조(creation ex nibilo)라 부를 것이다.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다.
몰락의 에티카(Ethica)다.
읽을 수록 정말 명 문장이 아닌가 생각 되어집니다.
- 13쪽 부터 19쪽 중에서
첫댓글 읽을 수록 멋진 글이라는 생각이 드러유^^ 넘 좋다. 또 읽어도 좋네~ 자꾸 좋네
오랜만에 밑줄그으면서 읽는데 행복해 행복 하다는 건 이런 건가봐 ㅋㅋ
정말 그러네요 ~^^ 구절구절이 명료하군요 ... 독서란게 만남인거 같아요 간접적인 소통이긴하지만 .....좋은 책을 만나면 작가와 내가 한자리에 있는 듯한 짜릿함이 좋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쁨은 이런 것이겠죠 몰락의 에티카는 익현쌤께 그런 책 인가봐요 저도 덩달아 밝고 명쾌해 집니다
그렇지요. 책상 머리에 붙여놓고 날마다 읽고 싶어요 저한 테는 큰 깨우침이 되는 글 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