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온유한 마음으로(호원숙 비아, 작가)
제가 아침마다 숲길을 걸어가는 이야기를 쓴 것을 좋아하셨죠? 그 날도 어스름한 숲길을 오르는데 몸집이 커다랗고 까만 개가 달려들 듯이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가끔 만나는 남자가 데리고 다니던 개였는데 그 날은 개를 풀어놓고 훈련을 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개가 제 앞으로 확 다가오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끈을 묶어주세요!” 하며. 그 날 아침 일어나 처음으로 내는 목소리였는데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소리가 나왔습니다. 저의 조용한 산책이 깨지는 듯했습니다. 남자는 괜찮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순간 화가 났습니다. 시커먼 개가 달려드는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와 여유로운 그 남자의 목소리에 화가 났습니다. 남자는 개를 끌어들였고, 저는 이내 산으로 올라갔지만, 마음의 평온함은 깨져버렸습니다.
무척 무더운 날이 지속되는 주일 미사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제대 앞좌석에서 푹 쓰러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소란에 잠시 주춤했지만, 미사는 진행되었고, 쓰러진 사람은 어린 학생이었습니다. 뒷자리에서 얼른 수녀님이 오셔서 쓰러진 아이를 부축해서 데리고 나갔지만, 어린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피식 쓰러졌을까 안쓰러웠습니다. 에어컨이 있었지만, 성당은 후덥지근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어린이방에 누워있는 아이를 찾아갔습니다. 파리한 중학교 1학년생이 보호를 받고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스틱에 든 꿀을 주었더니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받아먹었습니다. 그게 참 고마웠습니다. 모르는 할머니가 준 비상식을 힘없이 받아먹는 아이는 예비자라고 합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잠시 기도를 하는 동안 미사의 은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온갖 의심을 가지면서도 무릎을 꿇고 세례 때에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앙의 태도도 바뀝니다. 세례성사 때 저는 신앙을 가졌다는 은총에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그때 곁에서 같이 세례를 받은 분이 저를 보더니 감흥이 오지 않는다고 갸우뚱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35년 전 세례 때와 같은 믿음과 감동으로 지내왔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지내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팬데믹 시대가 되어 미사 참여를 못 하게 되자, 아무 아쉬움이 없이 성당을 멀리했습니다. 단지 매일 미사의 말씀을 옮기고 묵상하며 주님 말씀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착하고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으로 제 믿음의 목표를 삼았습니다. 소소한 일상을 적은 저의 글을 보며 가려움증과 암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고 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 염천의 계절에 부디 건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카 8,15)
호원숙(비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