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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65일 궁극의 행복(깨달음)의 길을 따라서
내 삶의 목표는 내면의 평화, 깨달음이다.
나는 무신론자, 불가지론자가 아니라 영적 추구자(spritual seeker), 영적 수행자(spritual aspirant)를 넘어 영적 헌신자(spritual devotee)다. 그리고 나의 영적 스승은 '데이비드 호킨스' 선생님이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자신의 동기만 바꾸면 된다. 영적 가르침이 통합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영적 진보는 자유의지와 선택의 문제로서 받아들임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오직 자신이 선택한 세상만을 경험한다.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한 순간에 삶의 방향뿐만 아니라 사람의 목표와 가치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영적으로 진화한 모든 사람들이 알아낸 매우 가치있는 통찰력은 개인의 의식수준이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확정하는 결정적인 영향임을 아는 것이다'
15년전 한의과대학 임상교수로 환자를 보던 어느 날이었다. 후배 수련의가 남겨둔 '의식혁명'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늘 이유를 알수 없는 마음의 혼란속에서 살고 있었던 나에게 의식혁명이라는 책 제목은 무엇인가를 찾는 마음을 끌어냈고, 곧바로 책을 펼쳐들었다. 첫장을 지나 둘째 장 '근육테스트의 역사와 방법론'에서 근육검사는 모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호기심과 설렘의 마음으로 바로 근육검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내게는 진실이 아니었다(근육검사 Truth reflex는 200이상의 온전성을 가진 인류에게만 진실과 거짓을 알려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그 책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1년이 지났을까? 또 다시 알수없는 마음의 혼란에 속에서 '의식혁명'이라는 책이 또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때 인생의 나침반이 된 '의식지도'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숨도 제대로 못쉬고 떨리는 마음으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 당시 나는 행복수준 22%밖에 되지 않는 자존심(175)수준에 철저하게 가로막혀 있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농사꾼의 아들이 대학병원 침구과 전문의, 한의과대학 교수라는 성공한 삶이었지만 마음은 늘 혼란스러웠다. 동양의학, 동양철학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공자의 말대로 나이 40이 되면 불혹(어떤 것에도 혼란스럽지 않다), 50에는 지천명(하늘의 뜻을 안다), 60에는 이순(어떤 말을 들어도 귀가 편하다)이 될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삶은 이유를 알 수없는 고통과 혼란으로 가득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태어났는가?
삶은 무엇일까?
세상은 왜 이렇게 혼란스러울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 서문을 처음 읽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어느 날 마음이 말했다.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행복은 어째서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을까?
"어디에서 답을 구해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무엇일까?
"내가 제정신이 아닌걸까?
세상이 미친걸까?
어떤 문제든 해법의 효과는 잠시만 지속되는 것 같다. 해법자체가 다시 새로운 문제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탈출할 가망이 없는 것일까?"
"모두들 나처럼 마음이 혼란스러울까?"
"신은 자신이 어찌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신은 죽고 없는 것일까?"
마음은 끝없이 재잘거린다.
"비법을 아는 사람은 어디 없을까?"
놀랍게도 의식지도에서는 자기장의 에너지 장에 정렬하듯 모든 감정, 생각, 행동의 범위가 개인의 의식수준에 따라서 정해져 있다(위치성, positionality)고 했다. 자존심 수준에 있는 사람의 감정, 생각, 행동 그리고 그것의 동기는 내 삶, 나의 내면과 너무도 일치했다.
이후로 나는 달라지기 위한 결연한 의지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내가 다니는 모든 동선에 의식지도가 눈에 띄도록 배치했고 '깨평기사이포자중용(깨달음, 평화, 기쁨, 사랑, 이성, 포용,자발성, 중용, 용기)'을 외우고 다녔다. 거의 매일 의식수준을 점검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명상하고 묵상하고 달라지기 위한 간절한 시도와 실패의 반복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1년에 의식지도의 한계단씩 올라나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내면의 혼란은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350의 의식수준인 용서, 포용, 받아들임에서 몇년동안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이후로 400 의식수준인 이성, 이해, 통찰에서 10년을 넘게 머물렀다.
처음 10여년은 내면의 변화, 의식성장, 깨달음을 삶의 목표로 두었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다만 에고의 작은 틀, 자동화된 에고의 반응속에서 로봇처럼 살수는 없었기에 변화하지 않으면 단지를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실제로 나는 마음속에 칼을 가지고 다녔다. 의식수준 170 자존심 수준의 로봇같은 조종받는 삶을 바꾸어 내지 않으면 손가락을 자르려했다. 다행히 손가락은 지금도 멀쩡하다).
대학생활 내내 한의학 공부보다는 신학, 종교학, 반야심경, 노자 도덕경, 중용, 대학, 논어, 맹자, 동양철학, 서양철학, 신과학 운동, 포스트모더니즘, 뇌과학, 각종 심리학 등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당시에는 그런 책만 찾아 읽는 이유를 몰랐다. 물론 나중에는 MBTI유형으로 INTP, 에니어그램 유형으로 5w4의 자동화된 내면의 성격반응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상당한 충격속에서 살았다.
달라지기 위해서 '프로이트, 융, 밀턴 에릭슨의 정신분석, 교류분석, 게슈탈트 심리학, 윌리엄 제임스 초월심리학, 행동주의 심리학, 자기확언 기법, 리더십 트레이닝, 각종 강좌, 자기계발 서적, 성공한 사람들 전기, 명상수행의 마음으로 풀코스 마라톤, 차크라 명상, 요가명상, 단월드 명상, NLP최면, 전생최면, 기적수업 등에 몰입하고 또 몰입했다.
지금도 부산 해동용궁사의 비석에 새겨진 글을 보고 한참을 얼음처럼 굳어져 온몸에 전율을 느꼈을 때가 기억난다.
'너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지금 네가 받는 것을 보고
너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그 과정에서 일관되게 지속한 것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의 책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었다. 의식혁명, 나의 눈, 호모스피리투스, 의식수준을 넘어서, 진실대 거짓, 내안의 참나를 만나다, 현대인의 의식지도, 치유와 회복, 놓아버림 등 데이비드 호킨스의 모든 책을 읽고 또 읽고 묵상했다.
그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놓아버림 명상몰입 480여일, 기적수업 365일 두번 묵상이었다. 지금도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 말대로 '놓아버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놓아버림으로 하루를 끝내라'를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의식혁명 책을 만난 이후로 임상의학 공부이외의 독서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저서속에서 소개한 책들,'잭켄필드 성공의 원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인생수업, 사후생', 루이스 헤이 '치유-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 '나를 치유하는 생각' 이븐 알렉산더 '나는 천국을 보았다', 데이비드 도사 '고양이 오스카' 법구경, 화엄경을 읽고 묵상했다.
순진한 의식을 낮은 의식수준으로 재프로그램하는 헤비메탈 음악, 각종 드라마를 보는 것에서 완전히 멀어졌고, 심지어 뉴스까지도 멀리하고 있다. 음악은 의식수준 705 로버트가스 키리에, 690 요한 파헬벨, 500대 수준의 차이코프스키, 헨델, 쇼팽, 바하, 모짜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만을 가까이 하고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모든 책은 수십번 이상을 읽고 묵상했다. 매일의 삶은 데이비드 호킨스 '깨달은 스승의 언어'를 화두선삼아 기도, 묵상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생에서의 영적 목표는 540(무조건적인 사랑, 기쁨, 감사, 축복)의 수준에 안착하는 것이고, 590수준인 기적이 일상화되는 '싯디'의 체험이다.
놀랍게도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아들, 동생, 친구 등 많은 지인들이 에고망동의 시달림이 있을때면 놓아버림으로 내면이 행복해지는 것을 체험하며 감사를 표했다. 많지는 않지만 환자들이 의식지도를 접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도 했다. 루프스, 만성복합통증증후군(CRPS), 류마티스 관절염, 악성종양(암), 크론병, 모야모야병 등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의식수준의 향상, 에고망동의 놓아버림으로 완치 또는 치유되어 가고 있다.
5-6년전부터는 명확하게 '삶의 목표는 깨달음이다'라고 공언하며 살고 있다. 의식수준의 위치성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는 의도를 가지고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호킨스 스승님의 말씀대로 영적 의도를 가지고 조금만 몰두하면 누구나 도달 가능하다는 '무조건적인 사랑, 기쁨, 감사, 축복(의식수준 540)' 과 함께 할 도반을 찾고 있다. 그리고 내면의 정직성과 명확한 영적 의도를 가지고 영적 재고조사, 놓아버림 수행, 영적 몰두, 봉헌, 헌신을 계속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더 나아가 빛비춤 600의 수준을 넘어 현인, 깨달은 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깨달음은 영적 몰두와 카르마의 귀결이라 했기에 개인의 영적 열망은 간절한 소망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내가 뭘'이라는 중생상의 한계가 웅성거리지만 매일 자기제한 신념 놓아버림, 영적 재고조사-놓아버림을 통한 에고의 정화속에서 에고의 초월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한의사로서 몸-마음-영혼의 치유의 적용을 위한 임상의료의 삶을 살고 있지만, 조만간 찾아올 절연의 시점을 준비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한국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가 깨달음의 길을 따라서(Along the path to Enlightment 365)를 번역하고 주석을 달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모든 행위의 의식수준은 의도(intention)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의도를 진리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내면의 기쁨에 두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당신이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의식수준의 향상이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말대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드문 일이다.
깨달음에 대해서 듣는 것은 더 드문 일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더욱더 드문 일이다'
'현대인이 깨달을 수 있는 확률은 붓다 시대에 비해 천배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깨달음은 궁극의 행복상태다. 지금 마음이 혼란하다면, 행복해지고 싶다면 '궁극의 행복, 깨달음의 길을 따라서 365', '놓아버림'의 책을 들고 내면으로 들어가 기도, 묵상, 화두선에 몰두하기를 추천한다.
조만간에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검은 구름이 사라지면 밝은 태양빛이 비추듯이 내면의 혼란, 근심, 걱정, 분노는 사라지고 내면의 평화, 행복이 깃들 것이다. 검은 구름을 치우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 의지를 가지고 지금 이순간 결단하고, 그리고 점수(漸修)하듯 인내심을 가지고 몰두, 헌신하기만 하면 된다.
눈을 감고 기도 또는 명상을 한 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무신론자인가?
불가지론자인가?
선형적 마음의 세계에 만족하는 사람인가?
영적 자만심이 있는 사람인가?
영적 추구자(spiriutal seeker)인가?
영적 수행자(spiritual aspirant)인가?
영적 헌신자(spiritual devotee)인가?
비선형적 세계의 깨달은 자인가?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는 지성과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에 감사하고 깨달음의 언어를 현대어로 전해준 데이비드 호킨스 스승님께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이 책을 내면의 정직함, 겸손함을 가슴에 둔, 영적 의도, 영적 의지를 가진 영적 추구자, 수행자, 헌신자에 바친다.
Student : What statement would summarize a whole life of spritual experience and dedication?
제자 : 어떤 진술로 영적 경험(spiritula expericece)과 봉헌(dedication)의 전 생애를 요약할 수 있습니까?
Teacher : Gloria in Excelsis Deo!
(Glory to God in the Highest!)
스승 : 저 높은 곳에 하나님께 영광!
Contents
preface by Dr. David R. Hawkins
Introduction
Daily Reflections
Glossary
About the Authors
Preface(서문)
Each step along the way to enlightenment is exciting and rewarding when its essence is revealed. Taken out of context, any critical insight can seem baffling, yet intriguing. For each seeker, there are important key understandings that light the way and facilitate success. This is a collection of such truths that serve as fulcrums for major leaps forward. Although there are many doorways to heaven, each seeker must find his or her own route.
Comprehension at great depths unravels the essential truth of seeming complexity. It is said that there are 10,000 ways to God, yet they can all be reduced to certain critical elements common to all successful pathways. Therefore, each of the accompanying quotes is proven to be of great valul.
- Bon voyage!
David R. Hawkins, M,D. , Ph. D.
깨달음의 길을 따라가는 매일의 걸음은 그 본질이 드러날 때 흥미진진하고 보상적입니다. 맥락에서 벗어날 때, 어떤 중요한 통찰력도 당혹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흥미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각각의 영적 추구자에게는, 깨달음의 길을 밝히고 성공을 촉진하는 중요한 핵심적 이해(key understanding)가 있습니다. 이 글은 큰 도약을 위한 지렛대의 역할을 하는 그런 진실들의 모음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출입구는 많을지라도, 모든 영적 추구자는 각자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아주 깊은 이해에 도달할 때, 복잡해 보이는 것의 본질적인 진리문제가 해결됩니다. 신에게로 가는 길은 1만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성공적인 길에 도달하기 위해 공통적인 '특정한 중요요소(certain critical element)'로 모두 축약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공한 제공한 인용문구는 큰 가치가 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데이비드 호킨스
첫째날
January 1
Q : Where dose one begin the search for spritual truth and selfrealization called enlightenment?
A : It is simple. Begin with who and what you are. All truth is found within. Use verified teaching as a guide.
질문 : 영적 진리(spritual truth)와 깨달음((enlightenment))이라 불리는 자아각성(selfrealization)을 찾기 위한 탐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합니까?
답 : 그것은 간단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당신이 무엇인지에서 출발하세요. 모든 진리는 내면(withiin)에서 발견됩니다. 증명된 가르침을 가이드로 삼으세요.
질문과 묵상 꺼리
1. 영적 진리, 깨달음, 자아각성이란 무엇인가?
2. 모든 진리, 깨달음은 내면에서만 발견된다.
3. 증명된 가르침이란 무엇이고,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예수님 말씀, 부처님 말씀 또는 어디에 있는가?
4. 자신이 매일 하는 생각, 유튜브, 인터넷 검색에서 삶의 의미, 진리를 찾는다면?
5.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
The world of the ego is like a house of mirrors through which the ego wanders, lost and confused, as it chases the images in one mirror after another. Human life is characterized by endless trials and errors to escape the maze. At times, for many people (and possibly for most), the world of mirrors becomes a house of horrors that gets worse and worse. The only way out of the circultous wanderings is through the pursuit of spritual truth.
에고의 세계는 거울속의 집과 같아서 에고는 거울속 이미지를 차례로 쫒으면서 방황하고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한다. 인간의 삶은 그 미로를 탈출하기 위한 끝없는 시행착오(trials and errors)가 특징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울속 세계는 점점 더 나빠지는 공포의 집이 되어간다.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방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영적 진리(spritual truth)를 추구하는 것이다.
질문, 묵상꺼리
1. 거울속의 집과 같다는 작은 나(self), 에고란 무엇인가?
2. 큰 나(참자아, 진아, Self)란 어디에 있고, 무엇인가?
3.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방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영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4.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3.
All life ebbs and flows. Everyone is born, suffers afflictions and dies. There is happiness and sadness, catastorphe and success, increase and decreas. The stock market rises and falls. Disease and accidents come and go. The karmic dance of life unfolds in the karmic theater of the universe.
모든 삶은 밀물과 썰물처럼 오간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고통받고 죽는다. 행복과 슬픔이 있고 파국과 성공, 오름과 내림이 있다. 주식시장은 오르고 내린다. 질병과 불행 역시 오고간다. 우주의 카르마 극장(karmic theater)에서 삶의 카르마적 춤은 펼쳐진다.
질문, 묵상꺼리
1. 삶이란 무엇인가?
2. 카르마란 무엇인가?
3. 지금 나의 고통, 삶은 우주 카르마 극장에서 카르마적 춤에 불과한가?
4.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4
To become more conscious is the greatest gift anyone can give to the world; moreover, in a ripple effect, the gift comes back to its source.
‘조금 더 의식하는 것’은 누구든 이 세상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게다가, 파급 효과로 그 선물은 다시 근원으로 돌아온다.
질문, 묵상꺼리
1. 의식(consciousness)의 장이란 무엇인가?
2. 근원이란 무엇인가?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5.
The infinite field of consciousness is All Present, All Powerful, and includes All of Existence. Thus, nothing can possibly happen outside its infinite domain because it is the Source of Existence. Within this infinite field of power, there are decreasing levels of energy fields. As they are expressed progressively in form(linearity), their relative power decreases all the way down to the individual. The giant field could be compared to an immense electrostatic field in which the individual is like a charged particle that, because of the infinite power of the field, is automatically aligned within the field according to its individual “charge.” The charge of the karmic spiritual body is set by intention, decision, and alignment by intention. It appears to naive perception that what is not intellectually explicable seems to be “accidental,” especially when the event is unpredictable. In as much as the infinite field of consciousness is unlimited in dimension, nothing can happen outside of it. All that occurs within it is under its influence, and therefore, nothing “accidental” is possible in reality.
무한한 의식의 장은 모든 현존(All Present), 전능(All Powerful)이며, 존재의 모든 것(All of Existence)을 포함한다. 따라서, 아무것도 그 무한한 영역의 바깥에서는 발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모든 존재의 근원(Source of Existence)이기 때문이다. 이 무한한 파워의 장 안에는, 감소하는 에너지 장의 수준들(levels)이 있다. 그것들이 점진적으로 (선형적} 형상으로 드러나면서, 그들의 상대적 파워는 개인에 이르면서 감소한다. 그 거대한 장은 엄청난 정전기장에 비교될 수 있는데, 그 안에서 개인은 그 장의 무한한 파워때문에 개인의 책임에 따라 그 장 내에서 자동적으로 정렬되는 하전입자와 같다. 카르마적 영체(spritual body)의 책임은 의도(intention), 결단(decision), 그리고 의도에 따른 정렬(alignment by intention)에 의해 정해진다. 지성에 의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우연’ 이라는 것은 순진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 사건이 예측 불가능할 때 더욱 그렇다. 의식의 무한한 장이 한계가 없는 차원인 한, 그 밖에서는 어떤 것도 발생할 수 없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식의 장 영향속에 있기 때문에, 비선형적 실상에서는 그 어떤 것도 '우연'은 없다.
질문, 묵상꺼리
1. 선형적 형상과 비선형적 실상은 무엇인가?
2. 나의 의도, 결단, 의도에 따른 정렬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3.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4.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6.
The goal of society in general is to succeed in the world, whereas the goal of enlightenment is to transcend beyond it.
일반적으로 사회의 목표는 세상에서 성공에 있는데 반해, 깨달음(enlightenment)의 목표는 세상을 초월하는데 있다.
질문, 묵상꺼리
1. 이 세상에서 지금 내 목표는 무엇인가?
2. 깨달음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7
By inner humility plus wisdom, the seeker of truth takes serious note of the inherent limitations of the human psyche itself and no longer relies on the impressionable personal ego as its sole arbiter of truth.
내면의 겸손함과 지혜가 있을 때, 진리를 찾는 사람(seeker of truth)은 ‘인간 정신 자체가 가진 타고난 한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유일한 진리의 결정권자(arbiter of truth)로서, 더 이상 쉽게 영향을 받는 개인적 에고(personal ego)에는 의지하지 않게 된다.
질문, 묵상꺼리
1. 인간 정신 자체가 가진 타고난 한계란 무엇인가?
2. 진리의 결정권자로서 에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8.
Spiritual development is not an accomplishment but a way of life. It is an orientation that brings its own rewards, and what is important is the direction of one’s motives.
영적 성장(spiritual development)은 성취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영적 성장은 자신에게 보상을 가져다주는 지향점이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동기(motives)의 방향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영적성장은 도달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2. 영적 성장을 위한 내 동기의 방향은?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9
To merely hear a great teaching is itself the consequence of spiritual merit. To act on it is of even greater benefit.
단지 위대한 가르침을 듣는 것만도 그 자체로 영적 공덕(spiritual merit)의 귀결이다. 그 가르침에 따라 행하는 것은 훨씬 큰 혜택을 가져다 준다.
질문, 묵상꺼리
1. 개인의 의식수준에 따른 위대한 가르침은 어떻게 다를까?
2. 위대한 가르침에 따라 행한다.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0
Q : What can we actually do to be helpful to the world?
A : Make a gift of your life and lift all mankind by being kind, considerate, forgiving, and compassionate at all times, in all places, and under all conditions, with everyone as well as yourself. That is the greatest gift anyone can give.
질문 : 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대답 : 언제 어디서든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고, 용서하고, 연민으로서 당신의 삶을 선물로 만들고, 모든 인류를 들어올리세요. 그것이 누구나 줄 수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질문, 묵상꺼리
1.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사려깊고, 용서하고, 연민하기
2. 자신의 삶이 선물이 되게 하라.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1
Spritual learning does not occur in a linear progression like logic. It is more that familiarity with spritual principle and disciplines opens awareness and self-realization. Nothig 'new' is learned, instead, what already exists presents itself as completely obvious.
영적 학습은 논리(logic)와 같은 선형적 진보(linear progression)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영적 원리와 영적 규율에 대한 친숙함이 자각(awareness)과 자아-각성(self-realization)의 문을 연다. 새로 배울 것은 없고, 대신에 내면에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자체로 명백하게 드러날 뿐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영적 학습은 논리, 이성과 같은 지식이라는 선형적 진보로 일어나지 않는다.
2. 영적 원리, 규율에 대한 친숙함이 바로 자각, 자아각성의 문을 연다
3.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참자아가 그 자체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4.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2
All spritual truth is contained in every spiritual concept. It is necessary to completely and totally understand one single concept to understand all of them in order to arrive at the realization of the Real.
모든 영적 진리는 각각의 영적 개념(spritual concept)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실상의 각성(realization of the Real)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알기 위해 단 하나의 개념(one single concept)을 완전히,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질문, 묵상꺼리
1. 영적 진리, 영적 개념, 실상의 각성을 위한 단 하나의 개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2. 완전히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3
All avenues of questioning lead to the same ultimate answer. The discovery that nothing is hidden and truth stands everywhere revealed is the key to enlightment about the simplest practical affairs and the destiny of mankind. In the process of examining our everyday lives, we can find that all our fears have been based on falsehood. The displacement of the false by the true is the essense of the healing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모든 의문의 길(avenues)이 한결같은 궁극적인 해답으로 이어진다. 감춰진 것은 없고, 진리는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는 발견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실질적인 일(pracitcal affairs)이자 인류의 운명에 대한 깨달음의 열쇠다. 매일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두려움이 거짓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진리가 거짓을 대체하는 것이야말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치유하는 본질이다.
질문, 묵상꺼리
1. 감춰진 것은 없고, 진리는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
2. 진리가 거짓을 대체하는 것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4
Classically, the readiness for serious spritual work is referred to as 'ripeness', at which point even hearing a single word, phrase, or name may trigger a sudden decision and commitment to truth. The advent of spritual dedication may thus be subtle, slow, and gradual and then take a very sudden and major jump. By whatever route, once the seed falls on ready ground, the journey begins in earnest. Commonly, the turning point can be triggered by an unexpected flash of insight, and from that moment on, life changes.
고전적으로 진지한 영적 작업을 위한 준비상태를 '무르익음(ripeness)'이라 하고, 이 시기에는 말 한마디, 구절 하나, 이름만 들어도 갑작스러운 결단과 진리에 대한 몰두가 시작될 수 있다. 따라서 영적 봉헌의 도래는 미묘하며, 느리고 점진적일 수 있고, 그 다음에 갑작스럽게 큰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 어떤 경로로든, 준비된 땅에 씨앗이 떨어지면, 본격적으로 (깨달음의) 여정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그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통찰의 순간에 의해 시작될 수 있고, 그 시점부터 인생은 바뀐다.
질문, 묵상꺼리?
1. 진지한 영적 작업을 위한 준비상태 '무르익음'
2. 큰 도약, 준비, 여정의 시작, 통찰의 순간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5
Out of all-inclusive, unconditional compassion comes the healing of all mankind.
모든 것을 포함한, 무조건적인 연민에서 모든 인류의 치유는 시작된다.
질문, 묵상꺼리?
1.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연민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6
In a universe where 'like goes to like' and 'birds of a feather fly together', we attract to us that we emanate.
'사랑은 사랑을 끌어당기고', '같은 깃털의 새들이 함께 나는' 우주에서, 우리는 우리가 발산하는 우리 자신에게 끌린다.
질문, 묵상꺼리?
1. 깃털이 같은 새가 함께 나는 우주
2. 자신의 묵상 꺼리?
January 17
The will is activated and empowered by devotion, and it responds with inspiration, which leads to illumination by grace. The personal will dissolves into Divine Will, and the spark that leads to the spiritual search and inquiry is a Divine gift.
의지는 헌신에 의해서 활성화되고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의지는 영감에 반응하여 신의 은총에 의한 빛비춤(의식수준 600,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개인의 의지(personal will)는 신성 의지(Divine Will)로 용해되고, 영적 탐구와 연구로 이어지는 불꽃은 신성의 선물(Divine gift)이다.
질문, 묵상꺼리?
1. 개인의 의지, 헌신, 영적 탐구, 영감, 신의 은총, 신성 의지
2. 의식수준 600, 깨달음, 빛비춤이란?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8
Every act or decision we make that supports life supports all life, including our own. The ripples we create return to us.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모든 활동이나 결단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지지한다. 우리가 일으킨 물결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질문, 묵상꺼리?
1. 우리가 일으킨 물결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19
Everything in the universe constantly gives off an identifial energy pattern of an specific frequency that remains for all time and can be read by those who know how. Every word, deed, and intention creates a permanent record: every thought is known and recorded forever. There are no secrets: nothing is hidden, nor can it be. Everyone lives in the public domain. Our sprits stand naked in time for all to see. Everyone's life, finally, is accountable to the universe.
우주의 모든 것은 특정 주파수의 식별가능한 에너지 패턴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는데, 그것은 영원히 남아 있고,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영원히 남아있고,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읽어낼 수 있는, 특정 주파수의 식별가능한 에너지패턴을 지속적으로 방출한다. 모든 말, 행위 그리고 의도는 영원한 기록을 남기고, 또한 모든 생각은 알려지고 영원히 기록된다. 그 어떤 비밀도 없다. 어떤 것도 숨지 못하고 또한 숨어서 존재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은 그 공공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영(sprits)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적시에 벌거벗고 서 있다. 모든 사람의 삶은 결국 우주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질문, 묵상꺼리
1. 모든 말, 행위, 의도 그리고 모든 생각은 의식의 장에 특정 주파수의 식별가능한 에너지 패턴으로 영원히 기록된다.
2.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그 에너지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 그 방법은 진실반응 검사(근육 검사)다.
3. 모든 사람의 삶은 우주에 책임이 있다.
4.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0
Q : What should be the overall context of spritual endeavor?
A : Selfless service out of love for all creatures and creation. To pursue enlightment serves God and fellow humans. Be alert and attuned to the innate beauty of all that exists. See the charm and quaintness of oven what the world would consider old, beat-up, and ugly.
질문 : 영적 노력의 전체적인 맥락은 어떠해야 합니까?
대답 : 모든 생명과 창조물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사심없는 봉사에서 출발하세요.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신과 동료 인간을 섬기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타고난 아름다움에 호흡을 맞추세요. 세상 사람들이 낡아빠지고 추하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매력과 운치(고상하고 우아한 멋)를 보세요.
질문, 묵상꺼리?
1.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 사심없는 봉사
2.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신과 동료 인간을 섬기는 것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1
It could be said that truth and reality represent an equivalence, and the validity of that equivalence can now be verified by reference to a calibrated scale of levels of truth that are objective, impersonal and independent of the opinion of the observer.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a statement of an alleged truth requires specification of context.
진리와 실상(reality)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둘이 같다는 타당성은 객관적이고 비개인적이며 ,관찰자의 의견에 독립되어 있는, 진리수준의 수치화된 척도에 의해 검증될 수 있다. 진리라고 주장하는 진술은 맥락의 구체화(specification of context)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질문, 묵상꺼리?
1. 진리와 실상은 같다. 이 사실은 근육검사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다.
2. 맥락의 구체화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2
One basic principle has the power to resolve the problems of the social marketplace. Support the solution instead of attracking the supposed causes.
단 하나의 기본원칙이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place)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파워를 가진다. 추정된 원인을 추적하는 대신에 해결책(solution)을 찾아라.
질문, 묵상꺼리?
1. 원인을 추적하는 대신에 해결책을 찾아라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3
Humanity is an 'affliction' we're all burdened with. We don't remember asking to be born, and we subsequently inherited a mind so limited it is hardely capable of distinguishing what enhances life from what leads to death. The whose struggle of life is in transcending this myopia.
인간임(Humanity)은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하나의 고통이다. 우리는 태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한 기억이 없고, 우리의 타고난 마음은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죽음으로 이끄는 것과 삶을 향상시키는 것을 구별하기 어렵다. 우리 삶의 몸부림은 이러한 근시안을 초월하는데 있다.
질문, 묵상꺼리?
1. 우리의 타고난 마음은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죽음으로 이끄는 것과 삶을 향상시키는 것을 구별하기 어렵다.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4
The living proof of God's love and will for you is the gift of your own existence.
자신을 위한 신의 사랑과 의지(God's love and will)의 명백한 증거는 자기 자신의 존재라는 선물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신의 사랑과 의지
2. 자기 자신의 존재라는 선물
3.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5
Life itself has no opinion; it just is. Life effortlessly diverts quickly from one form to another without innate reaction or resistance. It dose not even register a reaction to change of form. Life, like light, is innately formless and beyond preference, resistance, or reaction.
생명 자체는 의견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있다. 생명은 타고난 반응이나 저항없이, 쉽게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빠르게 전환된다. 생명은 형태의 변화에 대한 반응을 등록조차 하지 않는다. 빛과 같이, 생명은 형태가 없고 선호, 저항 또는 반응 너머에 있다.
질문, 묵상꺼리?
1. 생명은 형태가 없고 선호, 저항 또는 반응 너머에 있다.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6
The human world represent a purgatorial-like range of opportunities and choices, from the most grim to the exalted, from criminality to nobility, from fear to courage, from despair to hope, and from greed to charity. Thus, if the purpose of the human experience is to evolve, then this world is perfect just as it is.
인간 세계는 암울함에서 존귀함으로, 범죄에서 고결함으로, 두려움에서 용기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탐욕에서 자애로의 기회와 선택의 연옥같은 범위를 대표한다. 그래서 만약 인간 경험의 목적이 진화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질문, 묵상꺼리?
1.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7
Life unfolds of its own and does not need commentary. The habit of editorializing about what is witnessed needs to be voluntarily surrendered to God.
삶은 저절로 펼쳐지고 어떠한 논평도 필요하지 않다. 목격한 모든 것에 대하여 의견을 내는 습관은 자발적으로 신에게 내맡길 필요가 있다.
질문, 묵상꺼리?
1. 모든 것에 대하여 의견을 내는 습관은 신에게 내맡겨라.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8
Although the human mind likes to believe that it is 'of course' dedicated to truth, in reality, what it really seeks is confirmation of what it already believes. The ego is innately prideful and does not welcome the revelation that much of its beliefs are merely perceptual illusions.
비록 인간의 마음은 그것이 '당연히' 진리에 봉헌된 것이라고 믿고 싶어할지라도, 실제 찾는 것은 이미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일 뿐이다. 에고는 선천적으로 교만해서, 그 믿음의 대부분이 단지 인식의 환상(perceptual illusions)이 드러난 것뿐이라는 사실을 마음편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질문, 묵상꺼리?
1. 인간의 마음, 이미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29
Dedication to truth itself is the rapid road to it's discovery.
진리 자체에 대해 봉헌(dedication)하는 것이 진리를 발견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진리에 대한 봉헌이란?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30
The mature spiritual aspirant is one who has explored the ego's options and false promises of happiness.
성숙한 영적 수행자(spiritual aspirant)는 수많은 에고의 선택지들과 행복의 거짓 약속들을 거쳐온 사람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성숙한 영적 수행자, 수많은 에고의 선택지들과 행복의 거짓 약속을 거쳐온 사람?
2. 자신의 묵상꺼리?
January 31
Do not compare yourself with others regarding 'holiness', merit, goodness, deservingness, sinlessness, and so on. These are all human notions, and God is not limited by human notions.
거룩함, 공덕, 선함, 공로, 순결함 등과 관련해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인간의 관념(human notions)이며, 신은 인간의 관념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질문, 묵상꺼리?
1. 신은 인간의 관념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
In truth, we exist and survive, not because of the ego, but in spite of it.
사실, 우리가 존재하고 생존하는 것은 에고 덕분이 아니라 에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다.
질문, 묵상꺼리?
1.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에고 덕분이 아니라 에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rary 2
Q : Where is the reality of eternal truth to be found?
질문 : 영원한 진리의 실상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나요?
A : Begin by accepting the very important statement that all truth is subjective. Do not waste lifetimes looking for an objective truth because no such thing exists. Even if it did, it could not be found except by the purely subjective experience of it. All knowldege and wisdom are subjective. Nothing can be said to exist unless it is subjectively experienced.
'모든 진리는 주관적이다'라는 매우 중요한 진술을 받아들임으로부터 시작하세요. 객관적인 진리를 찾으러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러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그것이 있더라도, 순전히 주관적인 경험에 의하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지식과 지혜는 주관적입니다. 만약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면, 어떤 것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질문, 묵상꺼리?
1. 모든 진리는 주관적으로 경험되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다.
2. 주관적으로 경험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3.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3
To best serve the world, seek enlightment and transcend illusion rather than contribute to them.
이 세상에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은 세상에 기여하기 보다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환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세상에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rary 4
The capacity to recognize the truth is an potential within human consciousness, and the combined intention of the consciousness of all people in that direction intensifies the overall field. At some intuitive level, everyone knows that truth supports life and falsity brings death.
진리를 지각하는 능력은 인간 의식(human consciousness)안에 내재된 잠재 능력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 의식(consciousness of all people)의 합해진 의도는 그 방향으로 전체 장(overall field)을 강화한다. 약간의 직관만 있어도, 모든 사람은 '진실이 생명을 지지하고 거짓이 죽음으로 이끈다'는 것을 안다.
질문, 묵상꺼리?
1. 인간 의식, 인류 의식, 전체 장이란 무엇인가?
2. 진리를 지각하는 능력은 인간 의식안에 내재된 잠재 능력이다.
3.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5
Human progress is evolutionary, and therefore, mistakes and errors are inevitable. The only real tragedy is to become older but not wiser.
인간 진보는 진화적이기 때문에 실수와 오류는 피할 수 없다. 유일한 진짜 비극은 나이가 들어도 지혜로워지지 않는 것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오류는 피할 수 없다. 유일한 비극은 나이가 들어도 지혜로워지지 못하는 것이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6
Acceptance is the great healer of strife, conflict, and upset. It also corrects major imbalances of perception and precluldes the dominance of nagative feelings. Everything serves a purpose. Humility means that we will not understand all events or occurences. Acceptance is not passivity, but non-positionality.
받아들임(Acceptance)은 다툼, 갈등 그리고 분노의 위대한 치유자다. 그것은 또한 인식의 주요 불균형을 바로잡고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하는 것을 막아준다. 모든 것은 목적에 부합한다. 겸손함은 '우리가 모든 사건이나 일을 이해해야하는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받아들임은 수동성이 아니라 비위치성(non-positionality)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수용, 포용, 받아들임은 다툼, 갈등, 분노의 위대한 치유자다.
2. 받아들임은 수동성이 아니라 비위치성이다.
3.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7
To even hear of enlightment is already the rarest of gifts. Anyone who has ever heard of enlightment will nerver be satisfied with anything else.
깨달음에 대하여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장 귀한 선물이다. 이미 깨달음에 대해서 들은 사람은 그밖의 다른 것에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질문, 묵상꺼리?
1. 깨달음에 대하여 듣는 것만으로도 가장 귀한 선물이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8
The benefit of accepting one's defects instead of denying them is an increase in an inner sense of self-honesty, security, and higher self-esteem, accompanied by greatly diminished defensiveness. A self-honest person is not prone to having his or her feelings hurt by others: therefore, honest insight has an immediate benefit in the reduction of actual, as well as potential, emotional pain.
자신의 결점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의 이로움은, 저항이 크게 줄어들면서, 내면의 자기-정직성, 안전감 그리고 높은 자아존중감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자기-정직성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감정을 다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직한 통찰력은 실질적일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감정적 고통 감소에 즉각적인 이로움이 있다.
질문, 묵상꺼리?
1. 내면의 자기-정직성, 안전감, 높은 자아 존중감
2. 자기-정직성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감정을 다치지 않는다.
3.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9
Realize that the depiction of God as a 'judge' is a delusion of the ego that arises as a projection of guilt from the punishment of childhood. Realize that God is not a parent.
신을 심판관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린시절 처벌과 관련된 죄책감의 투사에서 오는 에고의 망상이라는 것을 각성하라. 신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각성하라.
질문, 묵상꺼리?
1. 여기서 부모란 에릭번의 교류분석에서 '아이, 부모, 어른' 비유
2. 자신이 묵상꺼리?
February 10
How best to 'serve the highest good' is in accordance with the prevailing level of consciouness of the observer. There is no single answer for everyone.
'최고의 선(good)에 봉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찰자의 지배적인(prevailing) 의식수준을 따른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단하나의 정답은 없다.
질문, 묵상꺼리?
1. 관찰자의 지배적 의식수준에 따라 최고의 선이 다르다. 자신의 의식수준에 맞는 행동을 한다.
2.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딱 맞는 정답은 없다.
3.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1
Spiritual progress ensues automatically from choosing goodwill, forgiveness and lovingness as a way of being in the world at large rather than viewing it as a gain-seeking transaction.
영적 진보는 이익을 추구하는 거래의 관점보다는 좀더 크게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주로 선한 의지(goodwill), 용서(forgiveness), 사랑임(lovingness)을 선택함으로서 자동적으로 뒤따른다.
질문, 묵상꺼리?
1. 선한 의지, 용서, 사랑을 선택하여 좀더 크게 세상에 존재하기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2
Spritual evolution is the automatic consequence of watching the mind-and its proclivities as an 'it'-from the general viewpoint of the paradigm of context rather than content. Instead of trying to force change, it is merely necessary to allow Divinity to do so by deeply surrendering all control, resistance, and illusions of gain or loss. It is not necessary to destroy or attack illusion but merely to allow them to fall away.
영적 진화는 내용보다는 맥락이라는 패러다임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그것'으로서의 성향인- 마음을 관찰한 자동적인 귀결이다. 변화를 강제하는 것 대신에, 모든 지배, 저항, 득과 실의 환상을 깊이 항복하여 신성(Divinity)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인식의) 환상을 파괴하거나 공격할 필요없이 단지 그것들이 서서히 사라지도록 허용하기만 하면된다.
질문, 묵상꺼리?
1. 영적 진화는 마음을 관찰한 귀결이다. 내용보다는 맥락이라는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3
To transcend the world requires compassion and acceptance, the result of inner humility, by which the world is surrendered to God with increased peace of mind.
세상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내적 겸손함의 결과인 연민(compassion)과 받아들임(acceptance)이 필요하고, 이로써 세상은 커진 마음의 평화와 함께 신에게 내맡겨진다.
질문, 묵상꺼리?
1. 깨닫기 위해서는 내적 겸손함의 결과인 연민과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4
It is not the world that is a trap, but one’s attachment to it, along with one’s observations that cloud the search for Truth.
덫(trap)은 세상이 아니라, 진리 추구를 흐리게 하는 자신의 관찰과 함께하는 세상에 대한 집착이 바로 덫이다.
질문, 묵상꺼리?
1. 진리 추구를 흐리게 하는 세상에 대한 집착이 바로 덫이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5
Attachment is a very peculiar quality of the ego. It can be totally undone in all of its pervasive and multitudinous forms of clinging by simply letting go of one’s faith in it, or belief in its value as a reality. The attachment to “self” or “me” or “I” is a basic trap. One can seek out its fantasy value-the self gets attached to what it values. Note that attachment requires and is sustained by an energy and an intention. The mind is attached to the very process of attachment itself as a survival tool. Letting go of the ego is based on the willingness to surrender attachment to it as a substitute for God.
집착(Attachment)은 에고의 매우 기이한 특성이다. 에고의 모든 구석에 스며있는 다양한 형태의 집착은 단순히 신념(faith)을 놓아버리거나, 실상으로서 에고의 가치에 대한 믿음(belief)을 단순히 놓아버리는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떨쳐낼 수 있다. 작은 나(self), 또는 나를(me), 또는 (I)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함정이다. 우리는 에고의 공상적 가치(fantasy value)를 찾아낼 수 있는데 '작은 나'는 가치있는 것에 집착한다. 집착은 에너지와 의도가 필요하고, 그것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에 주목하라. 마음은 생존의 도구로서 집착 그 자체의 과정에 집착한다. 에고를 놓아버린다는 것은 신을 위한 하나의 대체물로서의 에고를 기꺼이 포기하려는 자발성(willingness)에 기반을 둔다.
질문, 묵상꺼리?
1. 집착, 신념, 믿음, 작은 나, 에너지와 의도, 마음, 에고의 특성
2. 에고를 놓아버리려는 자발성
3. 자신의 묵상꺼리?
Februrary 16
What the ego cannot lift with all its might is like a feather to the grace of God.
에고가 모든 힘을 다해도 들어 올릴 수 없는 것도 신의 은총에게는 깃털처럼 가볍다.
질문, 묵상꺼리?
1. 에고, 신의 은총, 깃털처럼 가볍다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7
The best attitude is one of devotion to truth rather than being contentious toward falsehood. Open-minded curiosity leads to progressive discovery of information never before available, which may therefore seem confrontational upon first exposure.
가장 좋은 태도는 거짓에 대해 논쟁적인 것 보다는 진리에 헌신하는 것이다. 열린 마음의 호기심은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정보의 진보적 발견으로 이끄는데, 당연히 처음에는 이것이 대립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질문, 묵상꺼리?
1. 거짓에 대해 논쟁적인 것보다는 진리에 헌신하는 태도
2. 자신의 묵상꺼리?
February 18
Appearance is not essence, perception is not reality, and the cover is not the book. Error is quite often convincing, which is an unpleasant fact to consider and accept. Everyone secretly believes that his or her own presonal view of the world is real, factual, and true.
외관(appearance)은 본질이 아니고, 인식은 실상이 아니고, 책 표지가 책은 아니다. 오류는 때로 설득력이 있는데, 이것은 고려하고 받아들이기에 불유쾌한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대한 그 자신의 개인적 관점이 실제이고, 사실이며, 참이라고 은밀하게 믿는다.
February 19
Spritual progress is based on acceptance as a matter of free will and choice, and thus everyone experiences only the world of his or her own choosing. The universe is totally free of victims and all eventualities are the unfolding of inner choice and decisions.
영적 진보는 자유의지와 선택의 문제로서 받아들임(acceptance)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오직 자신이 선택한 세상만을 경험한다. 이 우주에는 희생자들이 전혀 없으며, 모든 결과는 내면의 선택과 결단(inner choice and decisions)의 펼쳐짐이다.
February 20
The less the 'wants' prevail, the greater the experience of freedom.
원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자유의 경험은 더욱 커진다.
February 21
It is helpful to remember that value and attraction are in the eye of the beholder and are not qualities of the world itself. What is imagined to be 'out there' stems from 'in here'. The same applies to cherished positionalities and seductive presumptions. There are no temptations 'out there', and their attraction diminished by simple refusal and renuciation.
가치와 매력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있으며 세상자체의 특성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저 바깥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여기(내면)'에서 유래된다. 같은 원리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위치성과 마음이 끌리는 가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 밖'에는 유혹이 없어서, 그들의 매력은 간단한 거절과 절연에 의해 감소한다.
February 22
Accept that the concept of 'the fear of God' is ignorance. God is peace and love, and nothing else.
'신의 두려움'이라는 개념이 무지임을 받아들여라. 신은 평화와 사랑일뿐 그 어떤 것도 아니다.
February 23.
Traditionally, the pathways to God have been through the heart(love, devotion, selfless service, surrender, worship, and adoration) or through the mind(Advaita, or the pathway of nonduality). Each way may seem more comfortable at one stage or another, or they alternate in emphasis. Where you take the pathway of the heart or the mind, it is a hindrance to consider that there is a personal self or an 'I' or an ego that is doing the striving or seeking or which will become enlighted. It is much easier to realize there is no such thing as the ego or an 'I' identity that is doing any seeking; instead, it is an impersonal aspect of consciousness that is doing the exploring and seeking.
전통적으로 신에 이르는 길은 가슴의 길(사랑, 헌신, 사심없는 봉사, 내맡김, 예배, 경배) 또는 마음의 길(아드바이타 또는 비이원성의 길)을 통해왔다. 각각의 길에서 어떤 단계에서는 가슴의 길이, 다른 단계에서는 마음의 길이 좀더 편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 또는 단계별로 어느 한쪽이 더 중요시 될 수도 있다. 가슴의 길이나 마음의 길을 택할 때, 애쓰거나 찾고 있거나 또는 깨달음을 얻게 될, 개인적인 자기(personal self) 또는 '나' 또는 에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방해가 된다. 어떤 것을 추구하는 에고 또는 '나' 정체성같은 것은 없다고 각성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대신에 그것을 탐색하고 추구하는 것은 의식의 비개인적인 측면이다.
February 24
To strive to know God is in itself pristine and the ultimate aspiration.
신에 대하여 알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오염되지 않은 궁극의 열망이다.
February 25
A useful approach is to let the love for God replace the willfulness that is driving the seeking. One can release all desire to seek, and realize that the thought that there is anything else but God is baseless vanity. This is the same vanity that claims authorship for one's experience, thoughts and actions. With reflection, it can be seen that the body and the mind are the result of the innumerable conditions of the universe, and that one is at best the witness of thin concordance. Out of an unrestricted love for God arises the willngness to surrender all motives except to serve God completely. To be the servant of God becomes one's goal rather than enlightenment. To be a perfect channel for God's love is to surrender completely and to eliminate the goal seeking of the spritual ego. Joy itself becomes the initiator of further spritual work.
유용한 접근법은 신에 대한 사랑이 구도자의 계획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추구하려는 모든 욕망은 놓아버릴 수 있고, 신 이외에 어떤 것이 있다는 생각은 근거없는 허영심이라는 것을 각성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 생각 그리고 행위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그런 허영심과 같다. 돌이켜보면, 몸과 마음은 이 우주의 수많은 조건의 결과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는 기껏해야 그중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신을 향한 제한없는 사랑에서 완전히 신을 섬기는 것 이외의 모든 동기를 기꺼이 내맡기려는 자발성이 생긴다. 깨달음보다는 신을 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된다. 신의 사랑을 위한 완벽한 통로가 되는 방법은 전적으로 내맡기는 것과 영적 에고의 목표추구를 제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쁨 그 자체는 영적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February 26
One is not 'forced' to feel resentment by a negative memory, nor does one have to buy into a fearful thought about the furture. These are only options. The mind is like a television set running its various channels for selection, and one does not have to follow any particular temptation of thought. One can fall into the temptation of feeling sorry for oneself, or feeling angry or worried. The secret attraction of all these options is that they offer an inner payoff or a secret satisfaction that is the source of the attraction of the mind's thought.
부정적인 기억에 의해 분노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되고, 미래에 대한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혀서도 안된다. 이것은 오직 선택지일 뿐이다. 마음은 다양한 채널에 선택할 수 있는 TV와 같아서 어떤 특정한 생각의 유혹을 따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자기자신을 한탄하거나, 화내거나 걱정하는 감정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선택지들의 은밀한 매력은 그것이 '마음의 생각을 끌어당기는 원천'인 내면의 보상이나 은밀한 만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February 27
Within limits, we tend to experience the reflection of what we have become.
한계가 있는 세상내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된 것의 반향'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February 28
The source of joy is always present, always available, and not dependent of circumstances. There are only two obstacles: 1) the ignorance that it is always available and present and 2) valuing something other than peace and joy above that peace and joy because of the secret pleasure of the payoff.
기쁨의 근원은 항상 존재하고, 항상 이용가능하며, 어떤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직 두가지 장애물이 있다. 1) 기쁨이 항상 이용가능하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함. 그리고 2) 보상의 은밀한 쾌락때문에 평화와 기쁨보다 평화와 기쁨이 아닌 어떤 것을 더 중요하다고 가치 평가하는 것.
February 29
The teeth of spritual work occur when we are confronted with that we cannot avoid. It is the direct confrontation that requries a leap in consciousness.
영적 작업의 날카로움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일에 직면할 때 생긴다. 의식(수준)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March 1
The experience of the presence of God is available and within at all times, but awaits choice. That choice is made only by surrendering everything other than peace and love to God. In return, the Divinity of the Self reveals Itself as ever present-but not experienced-because it has been ignored or forgotten, or one has chosen otherwise.
신의 현존의 경험은 언제나 이용가능하고 내면에 있지만, (그것은)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선택은 오직 신에 대한 평화와 사랑이외의 모든 것을 내맡길 때 이루어진다. 그 대가로, 참나의 신성은 언제나 현존하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무시되거나 잊혀졌거나 또는 달리 선택했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다.
March 2
Q : What characteristics facilitate comprehension and transformation?
A : Dedication, devotion, faith, prayer, surrender, and inspiration. When the barriers are relinquished, Truth reveals itself spontaneously.
질문 : 어떤 특성이 이해력과 탈바꿈을 촉진하나요?
대답 : 봉헌, 헌신, 신념, 기도, 내맡김 그리고 (영적) 영감입니다. 그 장벽을 포기할 때, 진리는 저절로 그 자체를 드러냅니다.
March 3
Disruption of life by the unexpected also creates anxiety at the forced readjustment, which may require major decision making. It is important to know that spritual research indicates that all suffering and emotional pain result from resistance. Its cure is via surrender and acceptance, which relieve the pain.
강제된 재조정 과정과 같은 예상치 못한 삶의 혼란은 또한 불안을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의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영적 연구에 따르면 모든 고뇌와 감정적 고통이 저항(resistance)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것의 치료법은 고통을 덜어주는 내맡김(surrender)과 받아들임(acceptance)을 통해 이루어진다.
March 4
The realization that there is an source of joy and happiness that is beyond the ego is a major step. Then curiosity and an interest in how to reach spritual goals arises. Belief also arises, which is then bolstered by faith, and eventually by experience. Next follows the acquisition of instruction, information, and the practice of what has been learned. By invitation, the spritual energy increase, followed by dedication and the willingness to surrender all obstacles. Even the decision to turn one's life over to God brings joy and gives life a whole new meaning. It becomes uplifting, and the greater context gives life more significance and reward. One eventually become unwilling to support negativity, within or without. This is not because it is wrong, but merely futile. Although the journey to God begins with failure and doubt, it progresses into certainty. The way is really quite simple.
에고 너머에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 있다는 각성은 하나의 중요한 단계다. 그러면 영적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일어난다. 믿음(belief)도 생겨나고, 신념(faith)에 의해, 그리고 결국에는 경험에 의해서 강화된다. 그 다음에는 가르침, 정보의 획득과 배워왔던 것의 실행이 뒤따른다. 요청에 의해, 봉헌과 모든 장애물들을 내맡기려는 자발성을 뒤따르고 영적 에너지는 증가한다. 신(God)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한 결정조차도 기쁨을 가져다 주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희망을 주고, 더 큰 맥락은 삶에 더 많은 의미와 보상을 준다. 마침내 우리는 안팎으로, 부정성을 옹호하는 것은 꺼리게 된다. 부정성을 옹호하는 것이 잘못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헛될 뿐이기 때문이다. 신을 향한 여정이 실패와 의심으로 시작되더라도, 결국에는 확신이 된다. 그 방법은 정말로 간단하다.
March 5
To win in life means to give up the obsession of 'who's at fault'. Graciousness is far more powerful than belligrence. It is better to succeed than to win.
인생에서 승리한다는 의미는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친절함은 호전성보다 훨씬 더 강하다. 이기는 것보다는 성공하는 것이 더 낫다.
March 6
By it's nature, the pathway to God is not easy. It requires considerable courage, fortitude, willingness, and forbearance. It is strengthened by humility and a benign conscience.
인간의 본성상, 신에게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 길은 상당한 용기, 불굴의 의지, 자발성,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은 겸손함과 온화한 양심에 의해 강해진다.
March 7
An extremely valuable insight that is learned by all spritually evolved persons in the course of their development is seeing one's own personal consciousness as the decisive influence that determines all that occurs in one's life.
영적으로 진화한 모든 사람들이 알아낸 매우 가치있는 통찰력은 개인 의식수준(personal consciousness)이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확정하는 결정적인 영향(decisive influence)임을 아는 것이다.
March 8
Holding a goal in mind is inspirational and actually helpful to it's accomplishment, because what is held in mind tends to actualize. However, it is a mistake to attack oneself with guilt for failing to achieve the ideal. Upon examination, it will be frequently discovered that it was not really the goal that was desired, but the satisfaction that was associated with it.
목표를 마음에 두는 것은 영감을 주고 실제로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마음에 둔 것은 실현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에 빠져 자기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실수다. 내면을 조사해보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단지 그것과 관련된 만족감이라는 것을 흔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March 9
Effective spritual endeavor is an consequence of constancy and persistence rather than fits and starts of enthusiasm.
효과적인 영적노력은 간헐적인(fits and starts) 열정이라기 보다는 꾸준함과 끈기의 결과다.
March 10
Inner satisfaction becomes more important than worldly gain or the desire to control or influence others. Attraction replaces promotion. Eventually, resistance is no longer related to worldly life and its perceived values. Instead, the inner intention is one of purity and selflessness. Thus, evolution becomes the consquence of the process itself rather than a consquence of 'seekingness' or acquisition.
세상의 이익이나 다른 사람을 통제, 영향을 미치려는 욕망보다 내면의 만족감(Inner satisfaction)이 더 중요해진다. 매력은 진보로 대체된다. 결국 저항은 세속적인 삶 및 인식된 가치와는 더이상 관련이 없어진다. 대신에 내면의 의도(inner intention)는 순수함과 사심없음이 된다. 그래서 영적 진화는 '추구함(seekingness)'이나 획득(acquisition)의 귀결보다는 과정자체( process itself)의 귀결이 된다.
March 11
Along the spritual pathway, blocks and temptations appear, as do doubts and fears. Classically, they have been termed the 'tests' that arise from the ego, which does not relish relinquishment of dominion. These are overcome by reaffirmation of goals and commitment, as well as by reinforcing counterbalancing principles such as dedication, tenacity, constancy, courage, conviction, and intention. The greater the challenge, the greater the development of inner strength, decision, and determination. By persistence and discipline, it can be seen that temptation is an option to merely refuse rather than an impulse that calls for attack or negation.
의심과 두려움이 있는 한, 영적인 길을 가다보면 방해와 유혹이 나타난다. 고전적으로, 방해와 유혹은 지배권 포기를 좋아하지 않는 에고에서 나오는 '시험'이라고 했다. 이것은 목표와 몰두의 재확인뿐만 아니라 봉헌, 끈기, 꾸준함, 용기, 확신, 그리고 의도와 같은 균형잡힌 원리를 강화함으로써 극복된다. 도전이 크면 클수록 내면의 강인함, 결단력, 결정능력이 더 발달한다. 끈기있게 훈련을 지속하면, 유혹은 공격이나 부정을 필요로하는 충동이 아니라, 단지 거부하는 하나의 선택지임을 알 수 있다.
March 12
Attachment are illusions. They can be surrendered out of one's love for God, which inspires the willingness to let go of that which is comfortably familiar.
집착은 환상이다. 환상은 신을 향한 사랑에서 내맡겨질 수 있는데, 그것은 편하고 친숙한 것을 놓아버리려는 자발성을 고무시킨다.
March 13
Subjectively, all that is needed to progress are patience, prayer, faith in the process, and the surrendering of resistance. Confusion, like a change in the weather, is a transitional condition that clears with patience and also with emergence into the next stage, whereby the confusing condition is transcended.
개인적으로, 영적진보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것은 '인내, 기도, 과정에 대한 신념 그리고 저항의 내맡김'이다. 혼란은 급변하는 날씨처럼 과도기적 상태이며, 그것은 인내와 다음단계의 출현과 함께 깨끗이 제거되고, 결국 혼란스러운 상태는 초월된다.
March 14
It's pleasing to discover that it isn't necessary to drive oneself forward; instead, one can simply allow oneself to move forward as blocks are removed. Thus, one becomes attracted by the future rather than propelled by the past.
앞으로 전진하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대신에 우리는 단순히 장애물을 제거하여 앞으로 나아가도록 허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에 의해 밀려나가기보다는 미래에 이끌리게 된다.
March 15
With spritual maturity, one understands that this lifetime is precious and too valuable to waste on the ideas of being superior or other ego-inflating, vainglorious illusions.
영적 성숙과 함께, 우리는 이번 생(lifetime)이 귀중하고, 우월하다는 생각이나 에고를 부풀리는, 자만심넘치는 환상에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March 16
The best defense against the development of anger is to see others as equals, lessen expectations, and, via humility, surrender the fulfilment of one's wants to God. With progressive detachment and relinquishment of the ego's demands and expectations, anger diminishes.
화(anger)의 발달을 막는 최선의 방어는 다른 사람들을 동등하게 보고, 기대를 낮추고, 겸손함을 통해 자신의 욕구충족을 신에게 내맡기는 것이다. 에고의 요구와 기대를 조금씩 멀리하고 포기하면, 화는 줄어든다.
March 17
One does not become a success by envying and vilifying success, but by limitating it. Thus, the angry person has to go back and make up for what was missing in his or her own education and development.
우리는 성공을 시기하고 비방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제한함으로써 성공한다. 그래서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은 돌아가서(go back) 자신의 교육과 발달에서 놓친 것을 만회해야 한다.
March 18
There is no art withoud love. Art is always the making of the soul, the craft of man's touch, whether that touch is corporeal or the touch of the mind and sprit-so it has been since Neanderthal times, and it will always be.
사랑이 없는 예술은 없다. 예술은 항상 영혼을 만드는 것이고, 인간의 손길이 만들어낸 기교다. 그 손길이 물질적인 것이든 마음과 영의 손길이든 상관없이 네안데르탈인 시대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March 19
True asceticism is simply a matter of economy of effort. It is not possessions themselves but the presumed importance or value projected onto them that is significant. Therefore, it is recommended that one 'wear the world like a loose garment'
진정한 금욕주의는 단순히 노력의 실속 문제다. 중요한 것은 소유물 자체가 아니라 중요하다고 가정되거나, 중요하다고 그것에 투사된 가치다. 그러므로 '세상의 옷을 헐렁하게 걸쳐라'라는 영적금언이 권고된다.
March 20
Frustration rusults from exaggerating the importance of desires.
좌절은 욕망의 중요성이 과장됨으로써 발생한다.
March 21
Awareness of the overall silent contextual field is facilitated by a contemplative lifestyle that could be likened to shifting interest from details to 'the big picture'. It 'gets' overall qualities of atmosphere without going into specifics, and therefore intuits generalities rather than thinking or analyzing. The resistance of the ego/mind is that it is afraid it might 'miss' something, as it is addicted to processing the details of the content of form, which is the attraction and lure of the world. To 'renounce the world' means to withdraw energy from it and decline activities that require attention to specifics, thereby abiding in the Self rather than in the amusements of the self.
전체적이고 고요한 맥락장(contextual field)에 대한 자각은 관상적 생활방식에 의해 촉진되는데, 그것은 흥미가 세부사항에서 '큰 그림'으로 전환하는 것에 비할 수 있다. 관상적 생활방식은 구체적인 것으로 들어가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얻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거나 분석하기보다는 보편성(generalities)을 직관하게 된다. 에고/마음의 저항은 형상이라는 내용의 세부사항, 즉 세상의 매력과 유혹을 처리하는 것에 중독된 것처럼 무엇인가를 '놓칠'까 걱정하는 것이다. '세상과 절연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에너지를 거두고, '세부사항에 주의가 필요한 활동들을 거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작은 나의 즐거움보다는 참나안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March 22
We witness, observe, and record apparent processions of experience. But even in awareness itself, nothing actually happens. Awareness merely registers what is being experienced; it has no effect on it. Awareness is the all-encompassing attractor field of unlimited power identical with life itself. And there is nothing the mind believes that is not erroneous at a higher level of awareness.
우리는 명백한 경험의 과정을 목격하고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러나 자각의 상태에서는 어떤 일도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자각은 단지 경험하고 있는 것을 기록할 뿐,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각은 생명 자체와 동일한, 무한한 파워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끌개 장(attractor field)이다. 그리고 자각(awareness)이라는 높은 수준에서는 틀린것이 아니라고 믿는 그 마음이 없는 것이다.
March 23
The process of creativity and genius is inherent in human consciousness. As every human has within himself the same essense of consciousness, so is genius a potential that resides within everyone. It simply waits for the right circumstance to express itself.
창의성과 천재성의 과정은 인간의 의식(human consciousness)에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의식의 본질(same essense of consciousness)을 자신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재적 잠재력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 발현하기 위한 적절한 상황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March 24
The processing out of anger requires inner honesty and the willingness to surrender what is lacking integrity and essentially unworkable, and replace it with self-confidence. Compensatory attitudes that are far more powerful than anger are dedication, reason, humility, gratitude, perseverance, and tolerance.
분노의 처리에는 내면의 정직성이 필요함과 동시에, 온전성이 결여된 것 그리고 본질적으로 실행불가능한 것을 내맡기려는 자발성이 필요하고, 그것을 자신감으로 대체하면 된다. 분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보상적인 태도는 봉헌, 이성, 겸손함, 감사, 인내심, 관용이다.
March 25
Everyone already at a certain level knows that they 'are'; the ego then quibbles about the details of definition, but the Self is not fooled the ruse. All false identifications can be dropped in an instant with the willingness to surrender all 'mentalization' to God.
모든 사람은 이미 어떤 특정수준에서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에고는 개념의 세부사항에 왈가왈부하지만, 참나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거짓 식별은 모든 정신화(mentalization)를 신에게 내맡기려는 자발성으로 즉시 제거할 수 있다.
March 26
The mind is caught between desires and aversions, both of which are binding. An aversion is also innately an attachment to a conditional perception, and it is disassembled by acceptance.
마음은 욕망과 혐오사이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둘은 서로 얽혀있다. 혐오는 또한 선천적으로 조건적인 인식(conditional perception)에 대한 집착이고, 받아들임(acceptance)에 의해서 흩어진다.
March 27
All the mind's statement are provisional at best, and an awareness of that limitation is an intrinsic quality of wisdom. Wisdom denotes a degree of humility as well as flexibility.
모든 마음의 진술은 기껏해야 잠정적이고, 그 한계에 대한 자각은 지혜(wisdom)의 본질적 특성이다. 지혜는 겸손함뿐만 아니라 유연함의 정도를 나타낸다.
March 28
All things are self-created by Divine expression as existence. Therefore, each 'thing' can only be what is because of the totality of the entire universe. It also implies a conservative, cautious attitude that is aware that further information. Thus, wisdom considers all knowldege to be provisional and subject to change, not only in meaning but also in significance and value.
모든 것(All things)은 존재로서의 신성의 표현(Divine expression)에 의해 스스로 창조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사물(each thing)'은 온 우주의 전체성 때문에 있는 그대로일 수 있다. 지혜는 또한 상세한 정보를 알고있는 상태에서의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지혜(wisdom)는 모든 지식(all knowldege)이 의미뿐만 아니라 중요성과 가치에 있어서도, 일시적이고 변경될 수 있다고 고려하는 것이다.
March 29
The dualistic mind sees what appears to be and event, a happening, or a thing and hypothesizes another concept, that of 'change'. The mind seeks explanations and naive as to its own structure, motivations, and limitations. In language, it is said that the 'I' or an 'it' caused a 'that', much like that which is intrinsic to sentence structure in which a subject acts on an object via a verb. The self then presume that there is an inner primary causal agent, such as the 'doer' of deeds, the 'thinker' of thoughts, and the deciders' of decisions. Without such a dualistic explanation, the linear mind is at a loss to explain the appearance of phenomena.
이원론적 마음은 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과 사건, 일어난 일 또는 사물을 보고, '변화'라는 또 다른 개념의 가설을 세운다. 마음은 설명을 구하고 자신의 구조, 동기 및 한계에 대해 순진무구하다. 언어의 세계에서는 '나' 또는 '그것'이 '저것'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것은 주어가 동사를 통해 대상에 작용하는 문장구조에 내재된 것과 비슷하다. 작은 나(The self)는 행위의 행위자, 생각의 생각하는 자, 결정의 결정하는 자처럼, 내면에 주요 인과요인(primary causal agent)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이원론적 설명이 없으면, 선형적 마음은 현상의 출현을 설명할 방법을 잃어버린다.
March 30
Spritual work involves withdrawing attachment to, or identification with, content-and then progressively realizing that one's reality is context. The briefest explanation is that the self is content and the Self is context.
영적 작업은 내용(content)에 대한 집착 또는 동일시를 철회하고, 그 다음에 점진적으로 자신의 실상(one's reality)이 맥락이라는 것을 각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가장 간단한 서술은 '작은 나(the self)는 내용이고 참나(the Self)는 맥락이다'라는 것이다.
March 31
The destinity of the sprit will be, for better or worse, depending on the choices and decisions one makes.
영의 운명(destinity of the sprit)은 자신이 내리는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 좋아지거나 나빠질 것이다.
April 1
The level of consciousness is determined by the choices made by the spritual will, and therefore is the consquence as well as the determinant of karma. Freedom to evolve requires a world that affords the greatest opportunity to ascend or descend the spritual ladder. Viewed from that perspective, this is an ideal world, and its society constituted by a wide range of experiential options.
의식 수준(level of consciousness)은 영적의지(spritual will)에 의한 선택(choices)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따라서 카르마의 결정요인(determinant of karma)이자 귀결이다. 자유롭게 진화하기 위해서는 영적단계(사다리)를 오르거나 내릴 수 있는 위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하나의 세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세상은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이며, 사회는 다양한 경험적 선택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April 2
Until one acknowledges the intrinsic genius within oneself, one will have great difficulty recognizing it in others-we can only acknowledeg without what we realize within.
자신에게 내재된 천재성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타인이 가진 천재성 또한 알아내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자각한 것만을 인지할 수 있다.
April 3
One's range of choice is ordinarily limited only by one's vision.
선택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오직 자신의 시야에 의해서 제한된다.
April 4
Freedom is the opportunity to fashion one's own destinity and learn the inherent spritual truths that are essential. For merit or demerit to occur, the choices have to be made in a state of belief and experience to be considered 'real'. Thus, even illusion subserves spritual growth, for it seems real at the time.
자유(freedom)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기회이면서,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타고난 영적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공덕 또는 악업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진실('real)'라고 여겨지는 믿음과 경험의 상태에서 선택(choices)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심지어 환상조차도 영적 성장을 보조하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그것이 진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April 5
To consistently choose love, peace, or forgiveness leads one out of house of mirrors.
지속적으로 사랑, 평화 또는 용서를 선택하는 것은 거울의 집(에고의 한계)에서 나오게 한다.
April 6.
Human life subserves the sprit. The world is less painful to witness if it is appreciated as the ultimate school wherein we earn salvation and serve each other through our own lives.
인간의 삶은 영(sprit)을 보조한다.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구원을 얻고, 자신의 삶을 걸고 서로를 섬기는 궁극적인 학교라는 것에 감사하면, 우리는 세상을 덜 고통스럽게 바라볼 수 있다.
April 7
Awareness is a quality of consciousness itself that is not encumbered by having to 'do' anything. It just 'is', and by virtue of its innate capacity, apprehends essence directly.
자각(Awareness)은 어떤 것을 해야한다는 것에 의해 지장받지 않는 의식자체의 특성이다. 자각은 단지 '존재한다는 것('is)'과' 그것의 타고난 능력덕분에 곧바로 본질(essence)을 파악하게 된다.
April 8
Actions are the automatic consquence of the integration of context, field, and intention. All action is actually spontaneous and reflects karmic propensities and local conditions that may or may not favor expression. To depersonalize actions, it is only necessary to let go of the belief that there is a separate, indenpendent causal agent called 'I' or 'me'. The presense of Divinity as Self is effortless.
행위라는 것은 맥락, 장, 의도를 통합한 자동적인 귀결이다. 모든 행위는 실제로 자발적이며, 호의 표출(favor expression)이거나 그렇지 않아도 되는 카르마적 성향(karmic propensities)과 국소조건들을 반영한다. 행위를 비인격화하려면 단지 '나 I' 또는 '나 me' 라는 따로 떨어진, 독립적인 원인요소가 있다는 믿음을 버리면 된다. 참나로서의 신성의 현존(presense of Divinity)은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다.
April 9
Actualization is an option and a choice as an aspect of the will. Each positive choice increase the likelihood and probability of additional positive choice. Each positive choice moves one closer to a higher attractor field of consciousness.
자기 실현은 하나의 선택지(option)이자 의지의 한 측면으로서의 선택(choice)이다. 각각의 긍정적인 선택은 추가적인 긍정적 선택의 가능성과 개연성을 높인다. 각각의 긍정적인 선택은 사람을 더 높은 의식의 끌개장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April 10
Q : How should one envision spiritual work?
A : The process is one of discovery and is thus directed within. It is by influence of the Self that spritual endeavor becomes chosen as a life goal. It is primarly a decision.
질문 : 영적 작업(spiritual work)을 어떻게 마음속에 그려야 하나요?
대답 : 그 과정은 하나의 발견이고, 따라서 내면으로 향합니다. 그것은 영적 노력이 삶의 목표로 선택되는 참나의 영향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작업은 주로 결단입니다.
April 11
As the ego's dominance of perception recedes, so does the appearance of the world and the mind's interpretations. Decisions are based on projected perceptions. Thus, the mind perceives endless illusions, including classifications based on judgement. Those that are interpreted as 'good' options are attractive to choice and agreement. Therefore, all perceptions reflect content.
에고 인식의 지배가 약해지면, 세상의 모습과 마음의 해석도 그렇게 된다. 결정은 투사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마음은 판단에 기초한 분별을 포함하는 끝없는 환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좋은' 선택지들이라고 해석된 것들은 선택과 동의(choice and agreement)에 이끌린다. 따라서 모든 인식은 (맥락이 아니라)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다.
April 12
Commitment is to the core of truth itself and is free of seduction by proselytization or secrecies. All that is necessary is curiosity and an attraction to truth, which is complet, total, and selfsufficient.
몰두는 진리자체의 핵심이고 개종 또는 비밀유지에 의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다. 필요한 것은 호기심, 그리고 완전하고 전체적이고 자족하는 진리에 대한 이끌림뿐이다.
April 13
Objectively, it can be seen that thoughts really belong to the consciousness of the world; the individual mind merely processes them in new combinations and presumptions. What seem to be truly original thoughts appear only through the medium of genius and are invariably felt by their authors to be a gift, found or given, not self-created. It may be the case that we're each unique, as no two snowflakes are alike. . . however we're still just snowflakes.
객관적으로 볼 때, 생각(thoughts)은 실제로 세상의 의식(consciousness of the world)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마음(individual mind)은 단지 새로운 조합과 가정으로 생각을 처리할 뿐이다. 진정 본원적 생각(original thoughts)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천재성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나타나고,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생각의 저작권에 의해서 발견하거나 주어진 선물이라고 변함없이 느끼게 된다. 두 눈송이가 같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각각 유일무이(unique)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 .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눈송이일뿐이다.
April 14
There is no inner 'thinker' behind thouthts, no 'doer' behind actions, no 'seeker' of enlightenment. Seeking occcurs on its own when the time is right, and it emerges as a focus of attention. All aspects and qualities of consciousness are self-actuating and energize each other under the general direction of the will.
생각 뒤에 내면의 '생각하는 자'가 없고, 행위 뒤에 '행위하는 자'가 없으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도 없다. (영적) 추구는 때가 되면 저절로 일어나며, 그것은 주의집중(focus of attention)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의식의 모든 측면과 특성은 스스로 작동하고, 의지(will)의 보편적인 안내에 따라 서로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April 15
In Reality, everything occurs of its own, with no exterior cause. Every thing and every event is a manifestation of the totality of All That Is, just a it is at any given moment. Once seen in its totality, everything is perfect at all times, and nothing needs an external cause to change it in any way. From the viewpoint of the ego's positionality and limited scope, the world seems to need endless fixing and correction. This illusion collapses as a vanity.
실상에서는, 모든 것이 외부 원인없이 저절로 일어난다. 모든 사물과 사건은 모든 것 있음(All That is)의 총체성의 나타남이며, 단지 그것은 주어진 순간에 있을 뿐이다. 일단 전체로 보면, 모든 것은 항상 완벽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바꾸기 위한 외부원인이 필요하지 않다. 에고의 위치성과 제한된 범위의 관점에서, 세상은 끝없는 수정과 교정이 필요해보인다. 이런 환상은 허영심처럼 허물어진다.
April 16
Nothing in the universe happens by chance or accident. The universe is a coherent concurrence and interaction of innumerable conditions attendant on the infinite number of energy patterns. In the state of awareness, all this is obvious and can be clearly seen and known. Outside that level of awareness it could be linkened to innumerable, invisible magnetic fields that automatically coalesce or repel one's position, and which interact according to the positions and relative strengths and polarities. Everything influences everything else and is in perfect balance.
우주의 어떤 것도 우연이나 사고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는다. 우주는 무한한 수의 에너지 패턴에 수반되는 수많은 조건의 일관성있는 동시성과 상호작용이다. 자각의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해서 명확하게 보이고 알 수 있다. 자각수준 밖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자동적으로 합치거나 밀어내는 무수한 보이지 않는 자기장에 비할 수 있으며, 그것은 위치와 상대적인 힘 및 극성에 따라 상호작용한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April 17
When one realize that one is the universe, complet and at one with All That Is, forever without end, no further suffering is possible.
자신이 완전한 우주이고, 영원히 끝이없는 모든 것 있음(All That Is)과 하나라는 것을 각성할 때, 더이상 고통은 없는 것이다.
April 18
By observation, it can be seen that beneath the images and words themselves, there is a driving energy, a desire to think, to keep busy with any input the mind can find to fill in the gaps. One can detect a drive to 'thinkingness' that is impersonal. With observation, one can detect that there is no 'I' thinking the thoughts at all. In fact, the 'I' rarely intervenes.
관찰해보면, 이미지와 단어 자체 아래에 추진 에너지, 생각하고 싶은 욕구, 마음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어떤 입력으로 빠브게 지내려는 욕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비개인적인 '생각함(thinkingness)'에 대한 하나의 충동을 발견할 수 있다. 잘 관찰해보면, 생각을 생각하는 '나'는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April 19
What is searching for higher truth is not a personal 'I' but an aspect of consciousness itself, which expresses as inspiration, devotion, dedication, and perseverance - all of which are aspects of the spritual will. Therefore, the source of the search for the Self is the processes by virtue of its own qualities, which are facilitated by Grace.
더 높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개인적인 '나'가 아니라, 영감, 헌신, 봉헌, 끈기로 표현되는 의식자체의 한 측면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영적의지(spritual will)의 한 측면이다. 그러므로, 참나를 찾는 근원은 참나 자신의 특성 덕분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그것은 신의 은총에 의해 촉진된다.
April 20
Like springtime, the promise of a new era in man's understanding of God is emerging. Now the level of consciousness of mankind is high enough to be able to recognize the truth of a God of Love instead of worshipping the god of guilt and hate.
꽃피는 봄처럼, 인간의 신에 대한 이해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약속이 출현하고 있다. 이제 인류의 의식 수준은 죄책감과 미움의 신(god)을 숭배하는 대신, 신(God)의 진리에 대한 사랑을 알수 있을만큼 충분히 높다.
April 21
All 'problems' are products of mental processing only and do not exist in the world.
모든 문제는 단지 정신처리의 산물일 뿐, 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April 22
In Reality, everything is automatically manifesting the inherent destiny of its essence; it doesn't need any external help to do this. With humility, one can relinquish the ego's self-appointed role as savior of the world and surrender it straight to God. The world that the ego picture is a projection of its own illusions and arbitrary positionalities. No such world exists.
실상에서는(In Reality),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그 본질의 타고난 운명(inherent destiny)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외부의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겸손함과 함께, 우리는 에고가 스스로 맡은 세상의 구세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신에게 직접 내맡길 수 있다. 에고의 상이라는 세계는 자신의 환상과 자의적인 위치성의 투사다.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April 23.
Q : Is a contemplative lifestyle possible in today's world?
A : With strong intention, daily life conforms. Contemplation implies nonattachment, which does not preclude acitivity.
질문 : 오늘날의 세계에서 관상적 삶이 가능한가요?
대답 : 강력한 의도가 있으면, 일상의 삶이 순응합니다. 관상은 일상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비집착을 의미합니다.
April 24
True happiness is always in the 'right now' of this moment. The ego is always anticipating completion and satisfaction in the future 'when' a desire gets fulfilled.
진정한 행복은 항상 '지금' 이순간에 있다. 그런데 에고는 항상 욕망이 충족되는 미래의 '언제'에 완성과 만족을 기대한다.
April 25
All fields of human knowledge change over time, and even the reporting of history itself is subject to revision based on new discoveries and methodologies. Thus, all beliefs and information are tentative in that even if the facts don't change, their significance or meaning is subject to change over time.
인간지식의 모든 분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역사의 보고조차도 새로운 발견과 방법론에 따라 수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모든 믿음과 정보는 사실이 변하지 않더라도, 그것의 중요성이나 의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에서 잠정적이다.
April 26
People with adequate self-esteem have no need to hate others.
적절한 자기-존중감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
April 27
Like a cork in water or a balloon in the atmosphere, each sprit rises to its own level of buoyancy within the infinite realms of energy fields of consciousness. No external 'judtement' or Devine coercoin is involved. Each being radiates forth its essence and so determines its own destiny. Thus is Divine justice perfect. By choice, each sprit became what it has chosen. Within all realms, there exists the moment-to-moment choice of the absolute reality that is ever present and whose absolute choice results in liberation.
물속의 코르크 마개나 풍선처럼, 각각의 영은 의식 에너지 장(energy fields of consciousness)의 무한한 영역내에서 자신의 부력수준으로 올라간다. 외부 판단 또는 신성의 강압(Devine coercoin)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각각의 존재는 그 본질을 발산하고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따라서, 신성한 정의(Divine justice)는 완벽하다. 선택에 따라서, 각각의 영(each sprit)은 선택해온 것이 되어간다. 모든 분야에서, 항상 현존하는 절대적 실상의 순간순간의 선택(moment-to-moment choice)이 존재하는데, 이 선택은 곧 해방으로 이어진다.
April 28
In this interconnected universe, every improvement we make in our private world improves the world at large for everyone. We all float on the collective level of consciousness of mankind so that any increment we add comes back to us. We all add to our common buoyancy by our efforts to benefit life. What we do to serve life automatically benefits all of us because we are all included in that which is life. We are life. It's a scientific fact that 'what is good for you is good for me'.
상호 연결된 우주에서, 우리가 사적 세상(private world)에서 만드는 모든 진보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세상을 크게 향상시킨다. 우리 모두는 인류의 집단적인 의식수준(collective level of consciousness) 위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성장이라도 우리가 추가한 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혜택이 된다. 우리 모두는 생명에 도움이 되는 노력으로 공공의 부력(common buoyancy)에 힘을 더한다. 우리가 생명에 봉사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은 자동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오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생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이다. '당신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다는 것'은 과학적 진실이다.
April 29
A question cannot be asked unless there is already the potentiality of the answer.
만약 정답의 가능성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질문도 청할 수 없다.
April 30
The major limitation of consciousness is its innocence. Consciousness is gullible; it believes everything it hears. Consciousness is like hardware that will play back any software that's put into it. We never lose the innocence of our own consciousness; it persists naive and trusting, like an impressionable child. Its only guardian is a discerning awareness that scrutinizes the incoming program.
의식의 주요 한계는 그것의 천진무구함이다. 의식은 잘 속는다. 그래서 듣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는다. 의식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넣는대로 재생하는 하드웨어와 같다. 우리는 자신의 의식의 천진무구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 의식은 쉽게 외부에 영향을 받는 아이처럼 순진함과 신뢰를 유지한다. 의식의 유일한 보호자는 들어오는 프로그램을 면밀히 조사하는 분별력있는 자각(discerning awareness)이다.
May 1
Independent of content, the capacity to be, to know, to exist, and to be aware are the a priori substrates to life in its expression as consciousness. To exist and be conscious of existence supersedes all logic, reason or proof. Awareness is aware that it is aware. To know God, it is only necessary to know and fully comprehend the significance that one exists.
내용과 무관하게, 있고(to be), 알고(to know), 존재하고(to exist), 자각할 수 있는(to be aware) 능력은 의식으로서 그것의 외현에서 삶이라는 선험적 기질(priori substrates)이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함을 의식하는 것은 모든 논리, 이성 또는 증거를 대신한다. 자각은 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신(God)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를 알고 충분히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May 2.
An analysis of the nature of consciousness reveals that redemption occurs as the result of the return of consciousness to its original pristine state of nonduality. It can do so only by the 'obedience' of surrending the dualities of will and willfulness of the ego to the nonduality of God's Truth. The return from the duality of the ego to the nonduality of the sprit is so difficult and unlikely that only by Divine Grace is it even possible. Thus, man needs a savior to be his advocate, his inspiration, and the fulcrum of his salvation from the pain and suffering of the ego.
의식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구원은 비이원성의 근본적인 순수한 상태(prinstine state)로 의식이 회귀한 결과로 일어난다고 한다. 구원은 의지의 이원성과 에고의 계획을 신의 진리(God's Truth)라는 비이원성에 내맡기려는 '순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에고의 이원성에서 영의 비이원성으로의 복귀는 가능성이 거의 없을 만큼 너무 어려워서 오직 신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지지, 영감, 그리고 에고의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구조해줄 구원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구원자가 필요하다.
May 3
Q : What does 'surrender to God' really mean?
A : It means to surrender control and the secret satisfaction of the ego's positionalities. Turn only to love and to God as the source of life and joy. This choic is available in every instant. When finally chosen, the reward is great. By invitation, spritual awareness illuminates the way. The key is willingenss.
질문 : '신에 내맡긴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대답 : 그것은 에고의 위치성에 대한 통제와 은밀한 만족감을 내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생명과 기쁨의 근원(source of life and joy)인 사랑과 신에게로 향하세요. 이 선택은 모든 순간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선택하기만 하면, 그 보상은 위대합니다. 신과 사랑의 초청에 의해, 영적 자각(spritual awareness)은 길을 밝혀줍니다. 핵심 열쇠는 기꺼이 그렇게 하려는 마음(자발성)입니다.
May 4
To surrender what one thinks one is to God does not leave one as 'nothing', but quite the contrary; it leads to the discovery that one is everything.
자신의 존재가 신(God)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것을 내맡긴다고 해서, 그것은 '무(nothing)'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everything)이라는 발견으로 이어진다.
May 5
In and of itself, anger is merely a subjective emotion that does not actually accomplish anything in the world, as the use of reason and restraint would. Anger is used by the ego as a substitute for courage, which really only require being resolute, determined, or committed.
분노는 그 자체로 실제로 세상에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주관적 감정일 뿐이다. 마치 이성과 (무의식의) 억제의 사용이 무용지물인 것처럼 말이다. 분노는 흔히 용기의 대체물로서 에고에 의해서 사용되는데, 오직 실제로 필요한 것은 단호함, 결단력, 몰두뿐이다.
May 6
Whereas the goal of the ego/mind is primarily to do, act, acquire, or perform, the intention of contemplation is to 'become'. While the intellect wants to know 'about', contemplation seeks knowingness itself and autonomous wisdom. Rational thinking is time related, sequential, and linear. Contemplation, in constrast, occurs outside of sequential time-it is nonlinear and related to comprehension of essence. Devotional contemplation is a way or style of being in the world whereby one's life becomes a prayer.
에고/마음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실행하고(do), 행동하고(act), 획득하거나 수행하는(perform) 것이지만, 관상의 의도는 '되는 것(become)'이다. 지성은 '~에 대하여(about)' 알고 싶어하는 반면 관상은 앎 자체(knowingness itself)와 자율적 지혜(autonomous wisdom)를 추구한다. 합리적 사고는 시간 연관적이고 순차적이며 선형적이다. 반면에 관상은 순차적 시간의 외부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비선형적이고 근원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헌신적 관상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나 양식이고, 이로써 우리의 삶은 기도가 된다.
May 7
Spritual process occurs in stages: In the begining, one learns of spiritual realities and studies them. Then comes the practice and application of the teachings in every aspect of life, and eventually one becomes the prayer. Through devotion, commitment, and practice, spritual concepts become experiential realities.
영적 진보는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처음에 우리는 영적 실상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탐구한다. 그 다음에는 삶의 모든 면에서 가르침의 실천과 적용에 이르고, 결국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헌신, 몰두, 실천을 통해 영적 개념은 경험적 실상이 된다.
May 8
That which manifests and is then said to exist is knowable by virtue of awareness alone, which is that quality of consciousness that allows the knowledge, experience, and awareness that one exists or that one is. To be is one thing, but to know that you are is another.
그것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과 그 다음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오직 자각덕분에 알수 있는데, 이것은 지식, 경험 그리고 우리가 존재(exist)하거나 있다(is)는 자각을 허용하는 의식의 특성이다. 있다는 것(to be)과 당신이 있다(you are)는 사실을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May 9
Serious inner spritual work may sound tedious and demanding (to the ego), but is exciting to the sprit, which is eager to return home. Consciousness innately seeks its source.
진지한 내면의 영적 작업이 (에고에게는) 지루하고 힘들게 들릴수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영에게는 흥미진진하다. 의식은 본성적으로 그것의 근원을 추구한다.
May 10
The most important element in facilitating an upward movement in consciousness is an attitude of willingness, which opens up the mind through new means of appraisal to the possible validity of new hypotheses. Although motives for change are as multitudinous as the innumerable facets of the human condition, they are most often found to arise spontaneously when the mind is challenged in the face of a puzzle or a paradox. In fact, certain discipline (such as Zen) deliberately create such an impasse in order to finesse a leap of awareness.
의식수준의 향상을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발성의 태도이며, 자발성은 새로운 가설의 타당성에 대한 새로운 평가수단을 통해 그 마음을 연다. 비록 변화를 향한 동기는 수많은 인간조건의 측면만큼 다양하지만, 그것들은 어려움이나 역설에 직면하여 마음이 도전을 받을 때 흔히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선수행과 같은) 특정 훈련은 자각의 도약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고의로 그러한 교착상태를 만든다.
May 11
To contribute to the welfare and happiness of others is gratifying and leads to the discovery that generosity is its own reward.
다른 사람의 안녕과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흐뭇한 일이며, 너그러움은 그 자체로 보상이라는 발견으로 이끈다.
May 12
All mental (linear) dipictions of spritual/religious truth are subject to invalidation, argument, and dispute. In contrast, consciousness itself (nonlinear) is beyond definition or description, and thus not subject to skepticism, doubt, or disbelief.
영적/종교적 진실의 모든 정신적(선형적) 묘사는 비타당성(invalidation), 논쟁, 말다툼의 대상이다. 반면에 의식 자체(비선형)는 개념이나 묘사를 초월해있기 때문에 회의, 의심, 불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May 13
As spritual awareness advances, the flow of spiritual energy increases and enable transcending prior, seemingly insurmountable obstacles. As the attractions of the world and emotions decrease, there is a progressive attraction to qualities such as beauty, lovability, and peace, rather than 'things' or seeming gains. Forgiveness becomes a habitual attitude, and the innate innocence of all creation shines forth. The teachings of great saints and teachers become one's own from within.
영적 자각이 발전함에 따라, 영적 에너지의 흐름은 증가하고, 전에는 겉으로 보기에 극복할 수 없을 것같은 장애물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세상에 대한 매력과 감정이 줄어들수록, 사물이나 외견상의 이득보다는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그리고 평화와 같은 특성에 점진적인 끌림이 생긴다. 용서는 습관적인 태도가 되고 모든 창조물의 타고난 순수함이 빛을 발한다. 위대한 성인과 스승의 가르침은 내면에서 자기 것이 된다.
May 14
Spritual commitment is energized by the alignment of the spritual will with the attributes of Divinity, which are truth, love, compassion, wisdom, and nonpartiality. Devotion prioritizes one's life and attracts that which is of assistance. To be a servant of God is a dedication whereby the goal takes precedence over all other positionalities, attractions, or distractions.
영적 몰두는 진리, 사랑, 연민, 지혜가 있고 편파적이지 않은 신성의 속성과 함께하는 영적의지와의 정렬에 의해 에너지를 받는다. 헌신은 자신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고 생명에 도움이 되는 것을 끌어당긴다. 신의 종이 된다는 것은 결국 봉헌인데, 이로서 목표는 다른 모든 위치성, 매력 또는 오락활동보다 우선한다.
May 15
Without consciousness, there would be nothing to experience form. It could also be said that form itself-as a product of perception with no independent existence-is thus transitory and limited, whereas consciousness is all-encompassing and unlimited. How could that which is transitory (with a clear beginning and ending), creat that which is fromless (all encompassing and unlimited)? However, if we see that the notion of limitation itself is merely a product of perception with no intrinsic reality, then the riddle solves itself: form becomes an expression of the formless.
의식이 없다면, 형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형상 자체(form itself)는 독립적인 존재를 가지지 못한 인식의 산물(product of perception)로서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의식(consciousness)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제한이 없다. 덧없고 일시적인 것(시작과 끝이 분명함)이 어떻게 형상없는 것(모든 것을 포괄하고 무제한적인)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우리가 한계라는 관념이 단지 본질적인 실상이 아닌 인식의 산물임을 알면, 수수께끼는 저절로 해결된다. 즉 형상은 형상없는 것의 외현(expression)이 된다.
May 16
We influence others by what we are rather than by what we say or have.
우리는 우리가 말하거나 가진 것보다는 우리가 된 것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May 17
When examined as a function of the ego, opinion reveals itself to be nothig more than an idea to which self-importance has been added because it is 'my' opinion. An opinion is an idea that has acquired the glamour of self-importance and is therefore more attractive than just reason, logic, or facts.
에고의 기능을 잘 살펴보면, 그것이 나의 의견이기 때문에 자기-중요성이 더해진 견해이라기 보다는, 의견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의견은 자기-중요성의 매력을 획득한 하나의 견해이고, 그래서 이성, 논리 또는 사실보다 더 매력적이다.
May 18
Although inherent to consciousness itself, context is usually not stated, identifed, or defined. Therefore, there has previously been no actual science of truth itself, much less a means of verification or confirmation. So it is inevitable that humanity flounders and repetitively falls into endless disasters (such as repeating the same mistake over and over, hoping for a different result).
비록 의식자체에 내재되어 있을지라도, 맥락은 일반적으로 언급되거나 식별되거나 또는 정의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전에는 진리자체의 실질적 과학이 없었고, 검증이나 확인의 수단은 더욱 없었다. 그래서 인류는 우왕좌왕하고 반복적으로 끝없는 재앙(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과 같은)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불가피했다.
May 19
God's grace could be understood as the absoulte certainty of the karmic coherence of the entire universe in all its expressions as realms and possibilities. Grace is the provision within the realm of consciousness, for the availability to use all the means to salvation and absolute freedom. By choice, one determines one's own fate. There are no arbitrary facets to be reckoned with.
신의 은총은 영역과 가능성으로서 나타난 모든 것에서 전체 우주의 카르마적 일관성의 절대적 확실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은총은 구원과 절대적 자유를 위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의식의 영역내에서 제공되는 것이다.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 고려해야 할 임의적인 측면은 없다.
May 20
In gratitude for the gift of life, one dedicates that life back as a gift to God through selfless service to His creation as all of life.
생명이라는 선물에 대한 감사로, 우리는 신의 모든 생명이라는 창조물에 대한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 우리가 선물받은 삶을 다시 신에게 선물로 바친다.
May 21
That which has existence is already total and complete or it would not exist. Existence does not require dependence on some other condition. Conditional existence is therefore an illusion of the ego/mind, which believes that nothing exists except as dependent on something outside itself. Existence is self-complete and unconditional. Existence is solely by the grace of God, by Divinity ordinance.
존재를 가진 것은 이미 전체적이고 완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는 다른 조건에의 의존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조건적인 존재는 에고/마음의 환상이며, 에고/마음은 자기 외부의 어떤 것에 의존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존재는 스스로 완전하고 무조건적이다. 존재는 오직 신의 은총, 신성의 법도에 의한 것이다.
May 22
If the essential dynamic of one's spiritual seeking is not spritual ambition (to get somewhere) but the progressive surrender of the obstacles to love, then that which is called 'spritual ego' doesn't arise as an obstacle later.
만약 우리의 영적 추구(spiritual seeking)의 중요한 동력이 영적 야망(어딘가에 도달하려는)이 아니라, 사랑의 장애물에 대한 점진적인 내맡김이라면, 흔히 '영적 에고(spritual ego)'라고 하는 것도 나중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May 23
Q : How can one prevent the development of a spritual ego? Each success seems like it would feed it.
A : Realize that there is no such entity as the doer of deed or actions. There is no doer/self to take blame or credit. Progress is the result of a quality of consciousness that has been activated by the assent of the spritual will. Spritual inspiration becomes the energy that is operating; it doesn't emanate from the ego/self.
질문 : 어떻게 해야 영적 에고의 발달을 막을 수 있나요? 각각의 성공은 영적 에고에 먹이를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답 : 행위나 행동을 하는 행위자로서 어떤 독립체(such entity)는 없다는 것을 각성하세요. 비난하고 책임을 물을 행위자/자기(self)는 없습니다. 진보는 영적 의지(spritual will)의 동의에 의해 활성화되는 의식의 특성의 결과입니다. 영적 영감(Spritual inspiration)은 작동하는 에너지가 되어 줍니다. 그것은 에고/자기(self)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May 24
Emotion is not an indicator of truth, as it is both reflective and determinative of positionalities and conditioning.
감정은 위치성과 조건을 반영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진리의 지표가 아니다.
May 25
Q : What is the most serviceable presumptive view of the world for a spritual student/devotee/seeker?
A : Presume that the world's actual 'purpose' is perfect and fully known only by God. See it as neutral overall, but with the benefit that it provides optimal oppoutunity for spritual growth and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It is a school for enlightment and the revelation of Divinity, whereby consciousness/awareness reawakens to its source. Thus, to pursue enlightment in and of itself serves the world and God.
질문 : 영적 제자/헌신자/추구자에게 가장 실용적인 추정적 세계관은 무엇입니까?
대답 : 세상의 실제 '목적'은 완전하고 오직 신만이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하세요. 세상은 전체적으로 중립적이지만, 영적성장과 의식의 진화를 위한 최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혜택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세요. 세상은 깨달음과 신성의 드러냄을 위한 학교이며, 이로써 의식/자각은 그 근원을 다시 일깨웁니다. 따라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과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May 26
True generosity expects no reward, for there are no strings attached.
진정한 너그러움은 무조건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May 27
A self-honest person is not prone to having his or her feeling hurt or 'having a bone to pick' with others. Honest insight has an immediate benefit in the reduction of actual as well as potential emotional pain. A person is vulnerable to emotional pain in exact relationship to the degree of self-awareness and self-acceptance.
내면이 정직한 사람은 상처를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지 않는다. 정직한 통찰력은 실질적인 고통뿐 아니라 잠재적인 감정적 고통의 감소에 즉각적인 이득이 있다. 사람은 '자기-자각과 자기-수용의 정도'와 정확히 비례하여 정서적 고통을 받는다.
May 28
The key to painless growth is humility, which amounts to merely dropping pridefulness and pretense, and accepting fallibility as a normal human characterisc of self and others.
고통없는 성장의 열쇠는 겸손함이며, 이는 단순히 교만함과 겉치레를 버리고, 불완전함을 자신과 타인의 정상적인 인간적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May 29
It is of great value to select a basic dictum to live by, such as the decision to be kind and of goodwill toward all life in all its expressions.
나타난 모든 것에서 모든 생명에 대한 친절과 선의를 갖겠다는 결정을 삶의 기본지침으로 선택하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May 30
It is helpful to remember that neither truth nor enlightment is something to be found, sought, acquired, gained, or possessed. The Infinite Presence is always present, and its realization occurs of itself when the obstacles to that realization are removed. It is, therefore, not necessary to study the truth, but only to leg go of that which is fallacious. Moving away the clouds does not cause the sun to shine, but merely reveals what was hidding all along. Spritual work, in other words, is primarily a letting go of the presumably known for the unknown, with the promise by others who have done it that the effort is more than well rewarded at the end.
진리나 깨달음은 발견하거나 추구하거나 획득하거나 얻거나 또는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한 현존(Infinite Presence)이란 늘 현재이며, 그것의 각성은 각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제거될 때 스스로 생겨난다. 그래서 진리를 탐구할 필요는 없고, 단지 틀린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구름을 치워서 태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동안 가려져 있었던 것이 드러나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영적 작업(Spritual work)은 주로 이미 해본 사람들이 결국에는 더 나은 보상을 얻으리라 약속한 바를 믿고, 미지에 대한 추정적 앎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May 31
Selecting a basic spritual dictum to live by operationally becomes a set of attitudes that change perception. It is a style of positioning oneself and relating to life rather than a set of linear belief systems. Attitudes tend to generalize as discerment rather than definable perception.
최고의 기능으로 살기위한 기초적인 영적 금언의 선택은 인식을 바꾸는 일련의 태도가 된다. 그 태도는 선형적 믿음체계라기보다는 자신을 위치시키고 삶과 관련된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면, 우리의) 태도는 설명가능한 인식보다는 분별력으로써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June 1
The decisions to 'be kind to all of life' or to respect the sacrendness of all that exists are powerful attitudes in spritual evolution, along with the virtues of compassion, the willingness to forgive, and seeking to understand rather than to judge. By constantly surrendering, perceptions dissolve into the discernment of essence.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신성함을 존중하기로 한 결정은 연민의 미덕, 용서하려는 자발성,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영적 진화에서 매우 강력한 태도다. 끊임없이 내맡김으로써, 인식은 본질의 분별력으로 용해된다.
June 2
Judgmentalism is the great vanity of all egos. Scripture says, Judge not, lest ye be judge. Also, 'Judgment is mine, sayeth the Lord'. Christ said to forgive. The Budda said that there is nothing to judge because perception can only see illusion. Perception is always partial and limited by an arbitrary context. In truth, no judegment is possible.
심판주의(매사에 판단하는 마음)은 모든 에고의 가장 큰 허영심이다. 성경에서는 '판단하지 마라, 심판관이 되지 않게하라'라고 말한다. 또한 심판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예수는 용서하라고 말했다. 붓다는 '인식은 오직 환상만 볼 수 있기 때문에 판단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인식은 항상 부분적이며 임의적인 맥락에 의해 제한된다. 진리의 세계에서는, 어떤 심판도 가능하지 않다.
June 3.
Q : What about Judgement Day?
A : Man extrapolates the ego's qualities to God and then fears God. Judgement Day is every day; it is already here and is constant and unending.
질문 : 심판의 날은 어떻습니까?
대답 : 인간은 신에 대한 에고의 특성을 기반으로 추론한 다음에 신을 두려워합니다. 심판의 날은 매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여기에 있으며 끝이 없이 계속됩니다.
June 4
While it is obvious that there are many elements and forces in the world that are deleterious to human life and happiness, it isn't necessary to hate or demonize them-instead, merely make appropriate allowances and avoid them.
세상에는 인간의 삶과 행복에 해로운 많은 요소와 세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미워하거나 악마화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적당히 허용하고 피하면 된다.
June 5
By observation, one will see that the good/bad dichotomy is merely the reflection of an overall contextualization based on unexamed presumptions. With deep humility, one will soon realize that unaided, the mind is really unauthorized, ill equipped, and incapable of making such judgemental discernment. It can make this discovery by just beginning to ask for whom is it good, for whom is it bad, when, and under what circumstances. This eventually leads to examing one's overall contextualization of the significance and meaning of human life itself as a transitional learning experience.
관찰을 통해, 호/불호의 이분법은 단지 검증되지 않은 추정에 기반한 전체적인 맥락의 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깊은 겸손함이 있을 때, 우리는 도움이 안되고, 마음이 정말로 권한이 없고,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그리고 그러한 심판의 분별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좋은지, 누구에게 나쁜지, 단지 묻기 시작함으로써 이러한 발견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과도기적 학습경험으로서 인간 삶 자체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한 전반적인 맥락화를 검토하게 한다.
June 6
It is unrealistic as well as eventually injurious to believe that other people 'should' adopt and live by one's own personal standards, morals, and code of conduct as well as interpretation of reality. Projected moralism is always expressed as 'should' and often leads to resentment, hatred, grudges, or even retaliatory vengeance-and of course, war(such as the naive American view that all other nations 'should' be demoncracies). One can, by choice, reject the temptation to habitual judgementalism. The result is a great inner peace.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표준, 도덕, 행동강령 및 현실의 해석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비현실적일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해롭다. 투사된 도덕주의는 항상 '해야한다'로 표현되며, 종종 분노, 증오, 원한 심지어는 보복적 복수 그리고 으레 전쟁으로 이어진다. (예를들어 다른 모든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순진한 미국인의 관점). 선택을 통해, 우리는 습관적인 심판주의에 대한 유혹을 거부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위대한 내면의 평화다.
June 7
Every advance that we make in our awareness benefits unseen multitudes and strengthens the next step for others to follow. Every act of kindness is noticed by the universe and is preserved forever.
자각(의 상태)에서 우리가 이루어낸 모든 진전은 보이지 않는 다수에게 혜택을 주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야 할 다음단계를 튼튼하게 해준다. 모든 친절한 행동은 온 우주가 알고 영원히 보존된다.
June 8
Simple kindness to one's self and all that lives is the most powerful transformational force of all. It produces no backlash, has no downside, and never leads to loss or despair. It increase one's own true power without exacting any toll. But to reach maximum power, such kindness can permit no exceptions, nor can it be practiced with the expectation of some selfish reward. And its effect is as far-reaching as it is subtle.
자신과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단순한 친절이 가장 강력한 탈바꿈의 힘이다. 그것은 반발을 일으키지 않고, 단점이 없으며, 손실이나 절망으로 이끌지도 않는다. 그것은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의 진정한 파워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최대의 파워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러한 친절은 예외를 허용해서는 안되며, 또한 어떤 이기적인 보상을 기대하면서 실행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그것의 효과는 미묘할 만큼 광범위하다.
June 9
Humility removes the ego's underpinnings of judgmentalism, positionality, and moralizing.
겸손함은 에고의 심판주의, 위치성, 도덕적인 척하기(morilizing)의 토대를 제거한다.
June 10
Detachment from positionalities - and especially the positionalities by labeling-leads to serenity, freedom, and security. Greater serenity arises from relating to the context of life rather than to the content, which is primarily a game board of interating egos. This broader style of relating to life leads to greater compassion and emancipation from being at the effect of the world.
특히 꼬리표 달기에 의한 위치성으로부터 거리두기는 고요함, 자유 그리고 안전함으로 이어진다. 큰 고요함은 주로 상호작용하는 에고의 게임판인 내용보다는 삶의 맥락(context of life)과 관련하여 발생한다. 삶과 연관된 이 넓은 방식은 세상의 영향에서 된 것(being)으로부터 더 큰 연민과 해방으로 이끈다.
June 11
Like any limiting ego position, it is not the postion itself that requires relinqushment but the emotional payoff or energy that holding on to that position provides to the ego.
어떤 제한적인 에고의 위치와 마찬가지로,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위치 자체가 아니라 에고에게 제공하는 그 위치를 유지하는 감정적 보상 또는 에너지다.
June 12
This moment is the only reality that is being experienced; all else is an abstraction and a mental construct. Therfore, one cannot actually live 70 years at all; only this exact, fleeting moment is possible.
지금 이 순간만이 경험되는 유일한 실상이다. 다른 모든 것은 추상적 관념이며 하나의 정신적 구조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70년을 살 수 없다. 정확하게는 눈깜짝할 순간만이 가능하다.
June 13
Personal judgment is based on perception that is reinforced by belief and prior programming, all of which are held in place by the payoff of the negative energies of the ego. The ego just 'loves' suffering a 'wrong', being the martyr, being misunderstood, and being the endless victum of life's vicissitudes. Consquently, it gets an enormous payoff-not only from the positionality itself but also from sympathy, self-pity, entitlements, importance, or being 'center stage' in which the self is the hero or heroine of the melodrama.
개인적인 판단은 믿음과 이전 프로그램에 의해 강화된 인식에 기반하며, 이 모든 것은 에고의 부정적인 에너지의 보상에 의해 제자리를 유지한다. 에고는 단지 '잘못된' 고통을 '사랑'하고, 순교자가 되고, 오해를 받고 그리고 인생 부침의 끝없는 희생자가 된다. 결과적으로, 에고는 위치성 자체 뿐만아니라 동정, 자기-연민, 자격, 중요성, 또는 작은 나가 멜로드라마의 영웅인 '무대의 중심'에 서는 것으로부터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June 14
The world is actually entertainment. Like amusement, it is meant to be worn lightly. Heaven is within and is revealed by awareness. The world is merely an appearance. Its melodrama is an artifice of the distored sense of perception. It leads one to think that the world is large, powerful, and permanent and that the Self is small, weak, and transitory; exactly the oppisite is true.
세상은 사실상 오락게임이다. 놀이처럼, 세상은 헐렁하게 걸치도록 정해져 있다. 천국은 내면에 있고 자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은 단지 하나의 겉모습일뿐이다. 세상의 멜로드라마는 하나의 왜곡된 인식의 계략이다. 그것은 세상이 크고 강력하며 영원한 반면에 참나는 작고 연약하며 일시적이라는 생각으로 이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반대가 진실이다.
June 15
The option for truth, peace, and joy is always available, although seemingly buried behind an ignorance and non-awareness that results from having chosen other options as a habit of thought. The inner truth reveals itself when all other options are refused by surrender to God.
진리, 평화, 기쁨을 위한 선택은 항상 가능하다. 비록 생각의 습관으로써 다른 선택의 결과로 생기는 무지와 비-자각(non-awareness) 뒤에 숨어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신에 대한 내맡김에 의해 다른 모든 선택지가 거부될 때 내면의 진리는 스스로 드러난다.
June 16
By internal observation, one can differentiate that the personality is a system of learned responses and the persona is not the real 'I' lies behind and beyond it. One is the witness of that personality, and there is no reason one has to identify with it at all.
내면의 관찰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성격이 학습된 반응 체계이며, 페르소나는 그 뒤에 숨어있고 초월한 진짜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성격의 목격자이며, 그 성격과 동일시해야만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June 17
The truly successful have no inclination to act arrogantly, for they consider themselves not better than others, just more fortunate. They see their position as a stewardship, a responsibility to exercise their influence for the greastest benefit of all.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거만하게 행동하려는 마음이 전혀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모두의 최대이익을 위한 영향력에 대한 책임을 가진 관리자 직분으로 본다.
June 18
At first, spritual purification seems difficult, but eventually it becomes natural. To consistently choose love, peace, or forgiveness leads one out of the house of mirrors. The joy of God is so exquisite that any sacfifice is worth the effort and seeming pain.
영적 정화는 처음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결국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지속적으로 사랑, 평화 또는 용서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를 거울의 집에서 나오게 한다. 신의 기쁨은 너무도 정교하여,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노력과 외견상의 고통을 겪을만한 가치가 있다.
June 19
Peace can be the consquence of surrender to the inevitabilities of life. The religious/spritual skeptic can look within and observe that the inner fundamental irreducible quality of life is the capacity of awareness, consciousness, and the substrate of subjectivity. Without consciousness, we would not 'know' or even 'know if we know', so that consciousness is the determinable awareness of existence, irrespective of the content of that existence. Thus, consciousness itself can be accepted as an obvious reality, without the elaboration of being Divine(as recommended by the Budda). To 'be' is one thing; to know that one 'is' obviously requires a more transcendent quality.
평화는 피할수 없는 삶을 내맡긴(surrender) 귀결일 수 있다. 종교적/영적 회의론자도 내면을 들여다 보고, 내면의 근본적이고 환원할 수 없는 삶의 특성이 자각 능력, 의식, 주관적 기질임을 관찰할 수 있다. 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알수도 없고 또는 심지어 우리가 아는 것만 알 수 있다. 그래서 의식은 그 존재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의 자각이다. 따라서 의식자체는 신성한 존재(being Divine)라는 부가 설명이 필요없는 명백한 실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부처가 언급한 대로). '존재한다('be)'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며, 우리가 명백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 초월적인 특성을 필요로 한다.
June 20
To surrender a goal does not mean to automatically lose it. What is illusive via greed often effortlessly materializes as a consquence of evolving to a higher level of consciousness.
목표를 내맡긴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목표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탐욕을 통해 환상에 빠지는 것이 종종 더높은 의식수준으로 진화하는 귀결로 쉽게 구체화되기도 한다.
June 21
There is a peaceful relief when judgment and criticism are abandoned, since they cause constant unconscious guilt as well as fear of retribution.
판단과 비평을 버릴 때 평화로운 안도감이 있다. 왜냐하면 판단과 비평은 끊임없는 무의식적 죄책감뿐만 아니라 보복의 두려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June 22
One can ask oneself the question, is this worth giving up God for? Thus, ego positionality has a price, which is where the willingness should be addressed. Each positionality is based on the presumption that its fulfilment will bring happiness. Thus, nothing is really valued aside from the illusion that it will bring that about.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이것은 신을 위해 포기할 가치가 있는가?' 따라서 에고 위치성은 대가를 치르게 되며, 그것은 자발성으로 처리해야 하는 지점이다. 각각의 위치성은 그 성취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를 둔다. 따라서 성취가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실제 가치가 없다.
June 23
Without belief in its appearance as defined by perception, the world we thought was real disappears. When one chooses to be at one with the inner, ever-present potentiality of joy and peace, the world transforms into a humorous amusement park; and all the drama is seen to be just drama.
인식에 의해 정의된 그것의 나타남(appearance)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면, 우리가 실제라고 생각했던 세상은 사라진다. 우리가 내면에 상존하는 기쁨, 평화의 잠재력과 하나되기로 선택할 때, 세상은 유머스러운 놀이동산으로 변하고, 모든 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로 보인다.
June 24
Existence is its own reward. It is more gratifying in the long term to fulfill potentiality than to try to achieve results. Therefore, one becomes aligned with excellence of performance for its own sake.
존재는 그자체로 보상이다.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잠재력을 발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만족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탁월함 그 자체를 위해 수행의 탁월함(excellence of performance)과 정렬하게 된다.
June 25
Rational humility, through which the mind becomes teachable, is basic to learning. The mind can then absorb, incorporate, and identify with verificable and true knowledge. The key is to success is to study and imitate a truthful authority rather than resist or attack it through competitive envy, jealousy, or hostility.
합리적 겸손함, 그 겸손함을 통해 마음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배울 수 있게 해주는) 그것은 배움의 기본이다. ?
그러면 마음은 검증가능한 참된 지식을 흡수, 통합할 수 있고 그것과 하나될 수 있다. 성공의 열쇠는 경쟁적인 시기, 질투, 또는 적대감을 통해 저항하거나 공격하기보다는 진실한 권위를 탐구하고 모방하는(imitate) 것이다.
June 26
The higher the level of consciousness, the greater the likelihood that what is held in mind will actualize. Thus, to see solutions that 'serve the highest goal' is more powerful than simply projecting fulfilment of merely personal selfish desires and gain.
의식수준이 높을수록, 마음에 품은 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더 커진다. 따라서 '최고의 목표(goal)에 공헌'하는 해법을 찾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과 이익의 성취를 계획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June 27
Partial and limited positionalities creat the illusions called 'problems'. In reality, no such thing as a problem is possible; there is merely what we want and what we don't want. Suffering is due to resistance.
부분적이고 제한된 위치성은 '문제(problems)'라고 하는 환상을 만든다. 실상에서는, 문제라고 하는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고통은 저항때문이다.
June 28
One 'owes' contrition and confession only to the Self. One 'owes' the undoing of 'sin and guilt' to the Self. One 'owes' the obligation to change one's ways to the Self. One 'owes' it to the Self to give up positionalities. Suffering only serves the ego. Of what use would it be to God, Who has no needs or emotion, and Who would in no way be pleased by human agony?
우리는 오직 참나에게 참회와 고백을 빚지고 있다. 우리는 참나에게 '죄와 죄책감'을 취소하는(undoing)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참나에게 자신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의무를 빚지고 있다. 우리는 참나에게 위치성을 포기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다. 고통은 오직 에고에게만 제공된다. 필요나 감정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신에게,그리고 인간의 고뇌때문에 전혀 기쁘지 않은 신에게 무엇이 소용있겠는가?
June 29
A helpful source of strength during the processing out of painful emotions is to identify with all humanity and realize that suffering is universal and innate to the phenomenon of being human and the evolution of the ego.
고통스러운 감정을 처리하는 동안 도움이 되는 힘의 원천은 모든 인류와 하나되는 것이고, 고통은 보편적이고, 타고난 인간임(being human)과 에고의 진화의 현상임를 아는 것이다.
June 30
Success in any venture is simply the automatic consquence of being the best that one can be as a lifestyle, without looking for gain.
어떤 위험에서든 성공이란 그저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최선을 생활방식으로 삼는 것의 자동적 귀결이다.
July 1
The linear domain entails suffering; thus, the best teachers throughout history taught the ways of salvation or enlightment as the only answer to escape from that suffering.
선형적 세계의 영역은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인류역사 속에서 최고의 스승들은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해답으로 구원(가슴의 길)이나 깨달음의 길(마음의 길)을 가르쳤다.
July 2
Accept that all sentient beings live by faith. Despite naive and pretentious claims to the contrary, all people live solely by the principle of faith-it is only a question of faith in what. Faith can be placed in the illusory, the intellect, reason, science, progress, political and worldly power, ego satisfactions, pleasure, wealth, or hope(such as 'tomorrow')
모든 지각있는 존재(sentient being)는 신념으로 산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그 반대라고 순진하고 허세부리는 주장을 하지만, 모든 사람은 순전히 신념체계로 살아간다. 그것은 오직 무엇에 대한 신념의 문제일 뿐이다. 신념은 환상, 지성, 이성, 과학, 진보, 정치 및 세속의 권력, 에고 만족, 쾌락, 부, 또는 희망(내일에 대한)에 대한 것일 수 있다.
July 3
Dedication is a more important sign of integrity than enthusiasm. It is necessary to have faith in a pathway and clear away doubts to ascertain if they are realistic or merely forms of resistance. A seeker should have the security and support of inner certainty and firm conviction that are consequent to study, personal research, and investigation. Thus a pathway should be intrinsically reconfirming by discovery and inner experience. A true pathway unfolds, is self-revelatory, and is subject to reconfirmation experientially.
봉헌은 열정보다 좀더 중요한 온전성의 지표다. 가는 길(마음의 길 또는 가슴의 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의심이 실제적인지 아니면 단순한 저항의 형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의심을 치울 필요가 있다. 영적 추구자는 내적확실성의 안전함과 지지가 있어야 하고 연구, 개인적인 탐구 및 조사의 결과로 생기는 강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가는 길은 발견과 내적경험에 의해 본질적으로 재확인되어야 한다. 옳은 길은 펼쳐지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며, 경험적으로 재확인해야 하는 대상이다.
July 4
Simply stated, integrity is strong, 'works', and is constructive and successful, whereas its opposite fails. Integrity is therefore practical; its absence leads to weakness and collapse.
간단히 말해서, 온전성은 강하고, 작동하고, 건설적이면서 성공적이다. 하지만 그 반대는 실패한다. 따라서 온전성은 실제적이고, 그것의 부재는 약함과 붕괴로 이어진다.
July 5
By being loving toward others, we discover that we are surrounded by love and lovingness. When we unreservedly support life without expecting gain, life supports us in return. Whenever we abandon gain as a motive, life responds with unexpected generosity. And when we perceive in this way, the miraculous beings to appear in the life of every dedicated spiritual aspirant.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사랑과 사랑임에 의해 둘러 싸여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이익을 기대하지 않고 생명을 전적으로 지지할 때, 생명은 보답으로 우리를 지지한다. 우리가 동인으로써 이득을 포기할때마다, 생명은 기대하지 않은 너그러움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인식할 때, 기적적인 존재(miraculous beings)가 모든 몰두하는 영적 수행자의 삶에 나타난다.
July 6
The more educated spiritual seeker takes responsibility for what seems to be happening 'out there', since inner investigation always reveals that the perception and source of the 'out there' is actually 'in here'
좀더 학식있는 영적 추구자는 '저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데, 그 이유는 내면조사가 항상 '저 바깥'의 인식과 근원이 실제로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July 7
There is no opposite to the Allness, Love, and Totality of God. Unless one is unreservedly willing to surrender one's very life and die for God, then spritual purification should be the goal of one's endeavor instead of enlightment.
신의 전체성(Allness), 사랑(Love), 완전성(Totality)에 반하는 것은 없다. 온 삶과 죽음까지도 남김없이 신에게 내맡기겠다는 의도가 아닌 한, 깨달음(enlightment)보다는 영적 정화(spiritual purification)가 우리 노력의 목표여야 한다.
July 8
Problems cannot be solved at their own calibrated level of consciousness, but only by rising to the next higher level.
문제는 현재 자신의 낮은 단계의 의식수준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오직 다음 단계의 높은 의식수준으로 상승할 때 해결할 수 있다.
July 9
An individual's level of consciousness is determined by the principles to which he or she is committed. To maintain progress in consciousness, there can be no wavering from principle, or the individual will fall back to a lower level.
개인의 의식 수준은 자신이 헌신하는 원칙(principles)에 따라 결정된다. 의식의 진보를 지속하려면, 원칙에서 흔들리지 않아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개인이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July 10
In reality, it is the forgiver and not the forgiven who benefits most.
진실로, 용서받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이 가장 큰 혜택을 본다.
July 11
The narcissistic core of the ego is aligned with being 'right', whether being 'right' means being in agreement with wisdom or rejecting it as invalid. With humility, the serious searcher discovers that the mind alone, despite its education, is unable to resolve the dilemma of how to ascertain and validate truth, which would require confirmation by subjective experience as well as objective, provable criteria.
에고의 자기애적 가치는 '옳음(right)'이 지혜를 따르는 것을 의미하든 또는 그것을 근거없는 것으로 거부하든 오직 '옳음'에만 정렬한다. 마음탐구에도 불구하고, 겸손함을 가진 진지한 탐구자(searcher)는 마음만으로는 주관적 경험뿐만 아니라 객관적이고 입증가능한 기준에 의해 확인이 필요할 수 있는, 진리를 알아내고 입증하는 방법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July 12
Q : The attractionts of the world seem endless. Is it really safe to go there? I often just want to escape.
A : The attractions are not innate to the world, but reflect projected values and the expectation of the payoff and ego satisfactions. In actuality, joy stems from within and is not dependent on externals. Pleasure is associated with what is valued and esteemed. Much of projected value arises from immagination, and values reflect desires. In reality, nothing is more valuable than anything else other than spiritual fulfilment.
질문 : 세상의 매력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가는 것이 정말로 안전합니까? 가끔 저는 단지 벗어나고 싶은데요.
대답 : 매력은 세상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투사된 가치와 보상에 대한 기대, 에고 만족을 반영합니다. 사실상 기쁨은 내면으로부터 나오고 외부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쾌락은 가치있고 존중받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투사된 가치의 대부분은 상상에서 나오고, 가치는 욕망을 반영합니다. 실제로, 영적 성취보다 가치있는 다른 어떤 것은 없습니다.
July 13
When one willingly lets a hated perpetrator 'off the hook' by forgiveness, it is not that person who is taken off the hook, but oneself.
우리가 용서로 미워하는 가해자를 기꺼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 곤경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자기자신이다.
July 14
To choose to forgive by giving up the 'juice' of justified resentments and grudges disconnects all the associated thoughts and grievances from them, along with their multiple rationalizations and memories.
정당화된 분노와 원한의 단물을 포기하고 용서를 선택하는 것은 관련된 모든 생각과 그것으로부터의 불만, 덧붙여 많은 합리화와 기억들을 차단한다.
July 15
The ego is clever. It substitues spritual pride for personal pride. It goes right on, undaunted. It takes personal credit for spritual comprehension instead of realizing that the capacity for understanding itself is a spritual gift from God.
에고는 영리하다. 에고는 개인적 자만심을 영적 자만심으로 대체한다. 그것은 흔들림없이 진행된다. 에고는 이해능력 자체가 신으로부터의 영적 선물임을 각성하기보다는 영적이해에 대한 개인적인 공로라고 생각한다.
July 16
Q : What prayers are useful?
A : Ask to be the servant of the Lord, a vehicle of Divine love, a channel of God's will. Ask for direction and Divine assistance, and surrender all personal will through devotion. Dedicate one's life to the service of God. Choose love and peace above all other options. Commit to the goal of unconditional love and compassion for all life, in all its expression, and surrender all judgment to God.
질문 : 어떤 기도가 도움이 되나요?
대답 : 주님의 종(servant of the Lord), 신성한 사랑(Divine love)의 매개체, 신의 의지(God's will)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길 안내와 신성의 도움을 구하고 헌신을 통해 모든 개인의 의지(personal will)를 내맡기세요. 신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치세요. 다른 모든 선택에 앞서 사랑과 평화를 선택하세요. 드러난 모든 것에서 모든 생명을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의 목표에 헌신하고, 모든 판단을 신에게 내맡기세요.
July 17
Supplication and prayer to Divinity are facilitated by a profound and deep surrender to humility. This humility is merely their truthful acknowledgment of the actual fact that the ego/mind, by virtue of its structure and design, is intrinsically incapable of being able to differentiate truth from falsehood(that is, essence from appearance).
신성(Divinity)에 대한 간청과 기도는 겸손함에 깊고도 깊은 내맡김에 의해 촉진된다. 겸손함은 에고/마음이 그것의 구조와 설계때문에, 내재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즉 나타남으로부터 본질)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July 18
Courage implies the willingness to try new things and to deal with the vicissitudes of life. At this level of empowerment, one is able to cope with and effectively handle the opportunities of life. . . . There is the capacity to face fears or character defects and to grow despite them, and anxiety does not cripple endeavor as it does at the lower stages of evolution.
용기(courage)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삶의 우여곡절을 처리하는 자발성을 의미한다. 이 자율의 수준에서, 우리는 삶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처리할 수 있다. . . . 용기의 수준에서는 두려움이나 성격결함에 직면하는 능력과 그것들에도 불구하고 성장시키는 능력이 있고, 진화의 낮은 단계에서 그런 것처럼 근심, 걱정이 우리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지 못한다.
July 19
Courage does not mean absence of fear, but the willingness to surmount it-which, when accomplished, reveals hidden strength and the capacity for fortitude. Fear of failure is diminished by realizing that one is responsible for the intention and effort but not the result, which is dependent on many other condition and factors that are nonpersonal.
용기(courage)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발성을 의미한다. 이것을 달성할 때 숨겨진 힘과 굴하지 않는 능력이 드러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비개인적인 다른 많은 조건과 요인에 의존하는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의도(intention)와 노력(effort)으로 책임지는 것임을 각성함으로써 감소한다.
July 20
At every instant, one is really making a choice between heaven or hell. The cumulative effect of all these choices determines the calibrated level of consciousness and one's karmic and spritual fate.
매순간 우리는 정말로 천국 또는 지속사이에서 선택을 한다. 이 모든 선택의 누적효과가 의식수준과 카르마 그리고 영적 운명(spritual fate)을 결정한다.
July 21
Q : Is the ego the source of karma?
A : It is its locus and repository. It is very important to realize that the ego and karma are one and the same thing.
질문 : 에고가 카르마의 근원인가요?
대답 : 에고는 카르마의 위치와 저장소입니다. 에고와 카르마는 하나이며 같은 것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July 22
The capacity for forgiveness arises from accepting with honest humility the limitation inherent in the human condition itself - which is, after all, merely on a learning curve of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용서 능력은 인간의 조건 그자체에 내재된 한계를 정직한 겸손함으로 받아들이는데서 비롯된다. 그것은 결국 의식진화의 학습곡선에 불과하다.
July 23
Compassion arises from the acceptance of human limitation and by seenig that everyone is really the captive of his or her own worldview. With nonattachment, there is no longer the pressure to try to change the world or other people's viewpoint, or to make them wrong by virtue of disagreement.
연민은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모든 사람이 실제로 자신만의 세계관에 사로잡혀있음을 앎으로써 발생한다. 집착이 없으면, 세상이나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바꾸려고 하거나, 관점의 불일치로 인해 그들이 틀렸다는 것으로 만들려는 압력이 더이상 없다.
July 24
The difficulty with a closed mind is that it is innately prideful.
닫힌 마음의 어려움은 그것이 선천적으로 교만하다는 것이다.
July 25
If unimpeded, the human psyche is creative and inventive. Each level of consciousness has its own innate problems, but also its concordant solutions. The desire to undo the past is understandable but futile, and blinds one to the opportunities of the present.
만약 방해받지 않는다면, 인간의 정신은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다. 각 의식 수준에는 고유한 타고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해결책도 가지고 있다. 과거를 취소하려는 욕망은 이해할 수 있지만 헛된 것이고, 현재의 기회를 보지 못하게 한다.
July 26
The mature mind knows that it is evolving and that growth and development are satisfying and pleasurable in and of themselves. Maturity implies that one has learned how to be comfortable with uncertainty and has included it as a legitimate ingredient. Uncertainty leads to discovery, whereas skepticism is stultifying.
원숙한 마음(mature mind)은 그것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과 성장, 발전이 그 자체로 만족스럽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원숙(Maturity)이라고 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왔고, 불확실성을 적당한 (삶의) 구성요소로 포함시켜왔음을 의미한다. 불확실성은 발견으로 이끄는 반면, 회의론은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July 27
The downside of pride is arrogance and denial. These characteristics block growth.
자부심의 단점은 오만함과 거부다. 이러한 특성은 성장을 방해한다.
July 28
The evolution is to turn one's life into a prayer/contemplation/meditation/supplication and surrender. One's life becomes the prayer-the prayer is the contemplation.
진화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기도/관상/명상/간청과 내맡김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관상이 된다.
July 29
Every act of kindness, consideration, forgiveness, or love affects everyone.
친절, 배려, 용서 또는 사랑의 행위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July 30
Our perception of events happening in time is analogous to a traveler watching the landscape unfold before him. But to say that the landscape unfolds before the traveler is merely a figure of speech: Nothing is actually unfolding; nothing is actually becoming manifest. There's only the progression of awareness.
시간속에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여행자앞에서 풍경이 펼쳐진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비유적 표현일 뿐이다. 실제로 펼쳐지는 것은 없고, 실제로 나타난 것도 없다. 단지 자각의 진행(progression of awareness)이 있을 뿐이다.
July 31
The ego/mind presumes and is convinced that its perceptions and interpretations of life experiences are the 'real' thing and therefore 'true'. It also belives by projection that other people see, think, and feel the same way; and if they do not, they are mistaken and therefore wrong. Thus, perception reinforces its hold by reification and presumptions.
에고/마음은 삶의 경험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실제로 있는 것(real thing)이며, 따라서 사실이라고 추정하고 확신한다. 에고/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보고 생각하고 느낀다고 투사함으로써 믿는다. 만약 타인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그들은 실수한 것이고 따라서 틀린 것이 되어 버린다. 이와같이, 인식은 구체화와 추정을 통해 그 지배력(hold)를 강화한다.
August 1
Q : How should one best relate to the world?
A : To be 'in' it but not 'of' it. Remember that the world is a means and not an end. Nonattached interaction reveals habitual styles and attitudes that are consequent to inner ego positionalities.
질문 :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세상과 가장 잘 관계하며 사는 것인가요?
대답 : 그것 '안'에 있지만 '그것의'가 아니도록 존재하세요. 세상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을 기억하세요. 집착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내면의 에고 위치성에 수반하는 습관적인 방식과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August 2
Meaning is so important that when life loses meaning, suicide commonly ensues. When life loses meaning, we first go into depression; when life become sufficiently meaningless, we leave it altogether. Force has transient goals; when those goals are reached, the emptiness of meaninglessness ramains. Power, on the other hand, motivates us endlessly. If our lives are dedicated, for instance, to enhancing the welfare of everyone we contact, our lives can never lose meaning.
의미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삶이 의미를 잃을 때, 흔히 자살이 뒤따른다. 삶이 의미를 잃을 때, 우리는 먼저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삶이 완전히 무의미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버린다. 힘(force)은 일시적인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에 도달할 때 무의미한 공허함만이 남는다. 반면에 파워는 우리에게 끝없이 동기를 부여한다. 예를들어 우리의 삶이 만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향상시키는데 바친다면, 우리의 삶은 결코 의미를 잃지 않을 수 있다.
August 3
If we examine much of what the world traditionally calls 'evil', what we discover is not evil, which is an abstraction, epithet, and label. Instead, we see behaviors that could be described as primitive, infantile, egotistical, complicated by the psychological mechanisms of denial, projection, and paranoia in order to justify hatred.
세상이 전통적으로 '악'이라고 부르는 것의 많은 부분을 조사해보고 나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그것은 하나의 추상적 관념, 묘사, 꼬리표일뿐이지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에, 우리는 원시적이며, 유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행위를 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부인, 투사, 편집증이라는 심리적 기제에 의해 복잡하게 얽힌 행위다.
August 4
Pride in the form of the vanity of thoughts, concepts, and opinions are all the basis of ignorance. The antidote is radical humility, which undoes the domination of perception. Ask for truth to be revealed instead of assuming that you already know it.
생각, 개념, 의견의 허영이라는 형태의 자만심이 바로 모든 무지의 기초다. 해결책은 근본적인 겸손함인데, 이 겸손함은 인식에 의한 지배를 무너뜨린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추정하기 보다는 진실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라.
August 5
The most important quality necessary for true growth and evolution is the practice and principle of humility. It is far less painful to voluntarily adopt a fundamental attitude of humility than to have it thrust upon oneself as the painful consequence of ineptitude. Despite its negative public and social image in some quarters of society, humility is indicative of expertise, wisdom, and maturity. Because truth is the very bedrock and ultimate reality upon which humility is based, it is not a vulnerability in and of itself. Rather, humility reveals that the mind can only 'know about', and that it cannot differentiate between appearance and essence.
진정한 성장과 의식 진화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겸손함의 실천과 원칙이다. 자발적으로 겸손함의 근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무능함의 결과로 스스로에게 강요되는 것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다. 우리 사회의 일부지역에서 공적,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겸손함은 전문성, 지혜, 성숙함의 지표다. 진리는 겸손함의 기초가 되는 기반이자 궁극적인 실상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취약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겸손함은 마음이 오직 '무엇에 대해서'만 알 수 있고, 나타난 것과 본질을 구별할 수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August 6
The ego relies on force; the sprit influences by power. Awareness knows that it is not what you do, but who you are and what you have become, that counts in the long run.
에고는 힘에 의존하고, 인간 영은 파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자각은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누구이고 당신이 된 것이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August 7
I, of myself, really know nothing is factual, for at best, the mind has only impressions and presumptions. Life 'makes sense' solely in retrospect.
나 자신은 정말로 어떤 것도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기껏해야 마음은 오직 인상과 추정만이 있을 뿐이다. 삶은 오롯이 돌이켜보면 '이해가 된다'
August 8
Humor is a means of detachment or recontextualizing the events of life. It is a way of being lighthearted and 'wearing the world like a loose garment'. It leads to compassion for the totality of human life and reveals the option that one can play at life without getting involved in it as though it were an exhausting life-and-death struggle.
유머는 삶의 사건에 거리를 두거나 재맥락화는 수단이다. 유머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세상을 헐렁한 옷처럼 걸치는' 방법이다. 유머는 인간 삶 전체를 연민으로 이끌고, 전쟁터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선택지를 드러낸다.
August 9
Humor is important to the maturation process, whereby we learn how to not take ourselves so seriously and to laugh at ourselves, thus decreasing narcissistic defensiveness. To be prone to 'hurt feelings' is egocentric and a form of social paranoia. When we admit our downside and learn to laugh at it, we are no longer vulnerable to slights and insults.
유머는 성숙과정에 중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볍게 웃는 법을 배우고, 그 결과 (에고의) 자기애적 방어력을 감소시킨다. '감정이 쉽게 상처받는 경향'은 에고의 자기중심성때문이고, 그것은 사회적 피해망상의 한 형태다. 우리가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웃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더이상 경멸과 모욕에 취약하지 않게 된다.
August 10.
Malice literally makes us sick; we are always the victims of our own vindictiveness. Even secret hostile thoughts result in a physiological attack on one's own body.
악의는 말 그대로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는 항상 자신의 보복의 희생자가 된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은밀한 적대적 생각조차도 자신의 몸을 공격하고 질병을 일으킨다.
August 11
Spritual teachings need to be accepted to become integrated. Resistance comes from the ego, which lacks humility and which, out of pride, resents being 'wrong'. It is better to realize that one is not giving up wrong views but is instead adopting better ones.
영적 가르침이 통합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저항은 겸손함 결여와 자부심으로 인하여 '틀린' 것에 분노하는 에고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잘못된 관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더 나은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다.
August 12
The wise know that the intellect can take one only so far, and beyond that, faith and belief must substitute for knowldege.
지혜로운 사람은 지성의 한계가 있음을 알고, 더 나아가 신념과 믿음이 반드시 지식을 대체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August 13
The spritual information necessary for advanced states should be learned early and stored away for when it is needed. The possible downside of hearing advanced information early is the intellect's presumption of the prideful / know that. It is better to hold the information as / have heard that. To truly 'know' is to 'be', at which point one does not know; instead, one is.
진전된 상태를 위해 필요한 영적정보는 가능하면 일찍 배워두고 그것이 필요할 때를 위해 저장해둬야 한다. 진전된 정보를 일찍 듣는 것의 가능한 단점은 오만한 지성의 추정, 그것을 알고 있다는 추정이다. 정보는 들은 그대로 보유하는 것이 더 좋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 시점에서 우리는 알지 못하고, 대신에 존재한다.
August 14
Most humans believe that love is something you get, that is is an emotion, that it has to be deserved, and that the more they give away, the less they will have. The opposite is the truth. Lovingness is an attitude that transforms one's experience of the world. We become grateful for what we have instead of being prideful. We acknowldege others and their contributions to life and to our conveniences. Love is not an emotion, but a way of being and relating to the world.
대부분의 인간은 다음과 같이 믿는다. 사랑이 하나의 감정으로, 당신이 얻는 어떤 것이고, 받을 자격이 있어야만 하며, 많이 줄수록 덜 가질 것이다. 진실은 그 정확히 그 반대다. 사랑임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태도다. 우리는 교만해지는 대신에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그들이 우리의 삶과 편의에 기여하는 바를 인정한다. 사랑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존재하고 세상과 관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August 15
Love is misunderstood to be an emotion, actually, it is a state of awareness, a way of being in the world, a way of seeing oneself and others. Love for God or nature or even one's pets opens the door to spiritual inspiration. The desire to make others happy overrides selfishness. The more we give love, the greater our capacity to do so becomes. It is a good beginning practice to merely mentally wish others well throughout the course of the day. Love blossoms into lovingness, which becomes progressively more intense, nxxxxonselective, and joyful.
사랑은 하나의 감정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실제로 사랑은 자각의 상태,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자신과 타인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다. 신이나 자연, 심지어 다른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은 영적 영감의 문을 열어준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마음은 이기심이 생기는 것을 중단시킨다. 우리가 사랑을 더 많이 줄수록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더 커진다. 하루종일 다른 사람들이 잘 지내기를 단지 마음으로 바라는 것은 좋은 연습의 시작이다. 사랑은 사랑임으로 성장하며, 그것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비선택적이며 즐거워진다.
August 16
One has to see through the mind's illusion that it knows anything. This is called "humility' and has the value of opening the door for realizations, revelations, and intuitive knowingness.
우리는 '어떤 것을 안다'는 마음의 환상을 간파해야 한다. 이것을 '겸손함'이라 하고 각성(realizations), 계시(revelation), 직관적 앎(intuitive knowingness)의 문을 여는 가치가 있다.
August 17
Strong intention plus dedication assisted by inspiration can surprisingly bring success, despite prior failures. This reveals the inner capacity for bravery and fortitude that greatly increases self-esteem and confidence. Many of life's travails can only be traversed by "white-knuckling it," which builds self-confidence.
영적 영감과 함께하는 강한 의도와 봉헌은 놀랍게도 이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자기-존중감과 자신감을 크게 증가시키는 용맹함과 불굴의 용기을 위한 내면 능력을 드러낸다. 인생 고난의 대부분은 '화이트 너클링(공포의 순간)'에 의해서만 넘어설 수 있고, 그것은 자신감을 키운다.
August 18
The antidote to pride is to choose humility and integrity instead of a positionality such as being important or right, getting even, indulging in blame, or seeking admiration. All credit for accomplishment is given to God as the presence of the Divinity within instead of to the ego; therefore, accomplishment results in gratitude and joy rather than vulnerable pridefulness.
자만심의 해독제는 '중요성이나 옳음, 앙갚음, 비난 탐닉, 또는 감탄 추구와 같은 위치성 대신에 겸손함과 온전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취에 대한 모든 공로는 에고 대신에 내면의 신성의 현존인 신에게 주어진다. 그 결과, 성취는 취약한 자만심보다는 감사와 기쁨을 가져온다.
August 19
Courage arises from commitment and integrity of alignment and dedication. A valuable characteristic of dedication is felicity, which eventually becomes empowered as a quiet but persistent inner fervor. The value of watchful witnessing is that even just awareness of an ego defect tends to undo it. By surrender and prayerful invocation, Divine Will facilitates transition from the lesser to the greater, for the Self effortlessly supports and energizes intention.The Self is like a magnetic attraction by which the personal will is progressively surrendered and resistance is weakened. Thus, the pathway itself is self-fulfilling and gratifying and reveals progressive rewards. Each step, no matter how seemingly small, is equally valuable.
용기는 몰두(commitment)와 정렬의 온전성(integrity of alignment) 그리고 봉헌(dedication)에서 나온다. 봉헌의 가치있는 특성은 더할나위 없는 행복이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내면의 열정으로 힘을 얻는다. 주의깊은 관찰의 가치는 단지 에고 결점의 자각만으로도 그것을 해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내맡김과 신앙심깊은 축원에 의해, 신성 의지(Divine Will)는 작은 것에서 위대한 것으로 전환을 촉진한다. 왜냐하면 참나는 아무런 노력없이도 의도(intention)를 지지하고 강화하기 때문이다. 참나는 자기적 매력과 같은데, 그것에 의해서 개인 의지(personal will)는 점차적으로 내맡겨지고, 저항은 약화된다. 따라서 (영적) 경로자체는 자기-충족적이고 만족스럽고 점진적인 보상을 드러낸다. 아무리 작은 것처럼 보여도, 각각의 단계는 똑같이 가치가 있다.
August 20
Love is the leading edge of reality and the oneness and essence of the spirit. To deny love is to deny God.
사랑은 실상(reality)의 가장자리이고 영(sprit)의 하나임(oneness)이자 본질(essence)이다. 사랑을 부인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August 21
Lovingness is a way of relating to the world. It is a generosity of attitude that expresses itself in seemingly small but powerful ways. It is a wish to bring happiness to others, to brighten their day and lighten their load. To merely be friendly and complimentary to everyone one meets in the course of a day is revealing.
사랑임은 세상과 관계맺는 하나의 방식이다. 사랑임은 겉보기에는 약하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너그러운 태도다. 사랑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고, 그들의 하루를 밝게하고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는 하나의 소망이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단지 친절하고 칭찬의 말을 하는 것이 사랑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August 22
When one's attitude toward everything becomes a devotion, Divinity reveals itself.
모든 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헌신이 될 때, 신성(Divinity)은 스스로를 드러난다.
August 23
Through compassion arises the desire to understand rather than condemn.
연민의 마음이 있을 때,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August 24
A source of regret and loss is the unrealistic expectations of the self and others. Nothing in the world of form is permanent. Eventually, all has to be surrendered to the will of God. To succeed at surrendering, it is necessary to realize that God's will is not personalized to suit individual wishes. The will of God is really the karmic design of the entire universe. To surrender to God's will is to surrender to the truth that nothing other than the Ultimate Reality is permanent. All that arises in form passes away. A loss is an opportunity to become freed from an attachment.
후회와 상실의 근원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다. 형상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신의 의지(will of God)에 맡겨져야 한다. 내맡김의 성공을 위해서는, 신의 의지(God's will)가 개인의 소망에 맞게 개인화되어 있지 않음을 알 필요가 있다. 신의 의지는 정말로 전체 우주의 카르마적 설계(karmic design)다. 신의 의지에 내맡기는 것은 궁극적 실상(Ultimate Reality)외에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에 항복하는 것이다. 형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상실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다.
August 25
The spiritually evolved person who has few wants or attachments is relatively immune to grief, as the experience of the source of happiness originates from within and is not dependent on externals. If the source of happiness is acquired through ego mechanisms, it is based on imagery, belief systems, and projected values rather than on Absolute Reality itself, which is invulnerable to loss. Objects, qualities, or relationships become overvalued by virtue of the mechanism of attachment and the ensuing projection of value.
원함이나 애착이 거의없는 영적으로 진화한 사람은, 행복의 근원에 대한 경험이 내부에서 시작되고 외부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슬픔에 면역이 되어 있다. 만약 행복의 원천이 에고기제를 통해 획득된 것이면, 그것은 상실에 대해 안전한 절대적 실상(Absolute Reality) 자체보다는 이미지, 믿음체계, 투사된 가치에 기반을 둔 것이다. 대상, 특성 또는 관계는 집착기제와 그에 따른 가치의 투사때문에 과대 평가된 것이다.
August 26
To sincerely dedicate oneself to be a servant of the Lord and ask what is His will is sufficient. The answers reveal themselves without necessarily even having to be formulated. To be "spiritual" simply means an intention.
자신이 주님의 종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치고, 신의 의지가 무엇이지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해답은 만들어내야 할 필요없이 스스로 드러낸다. '영적임(spritual)'이 되는 것은 단순히 의도(intention)를 의미한다.
August 27
One must remember that love and peace are the greatest threats to the ego, which defends itself by resorting to entrenched positionalities that lie hidden in the unconscious.
사랑과 평화는 '무의식안에 숨겨진 확고한 위치성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방어하는 에고'에게 가장 큰 위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August 28
Love is the opportunity to surrender the personal will to God and to reassess what is the overall purpose of the gift human life.
사랑은 개인 의지(personal will)를 신에게 내맡기고, 선물인 인간 삶의 전체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재평가할 기회다.
Autust 29.
Humility is not just an attitude, but also a reality based on facts. With inner honesty, a devotee needs to realize the limitations inherent in just being human.
겸손함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하나의 실상이다. 내적 정직함과 함께, 헌신자는 단지 인간임(being human)의 타고난 한계를 알 필요가 있다.
August 30
Spritual purity is the consequence of self-honesty, which is a result of true devotion. To be a servant of God is to align with Divine guidance, which leads to looking to the Self rather than catering to the self or the world.
영적 순수함(Spritual purity)은 진정한 헌신의 결과인 자기-정직성의 귀결이다. 신의 종이 된다는 것은 신성의 안내(Divine guidance)에 따라 정렬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작은 나(self) 또는 세상(world)에 영합하기보다는 참나를 찾는 길로 인도한다.
August 31
By virtue of devotion, there is alignment with inner integrity that results in the self-honesty and conviction necessary to transcend the seduction of transitory emotional payoffs of the intransigent ego.
헌신덕분에, 비협조적인 에고의 일시적인 감정적 보상의 유혹을 초월하는데 필요한, 자기-정직성과 확신을 야기하는 내적 온전성에 정렬한다.
September 1
Devotion is of the heart- for at times, it is solely via the power of the heart and Divine love that an obstacle can he transcended.
헌신은 가슴(heart)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때때로 가슴의 파워(power of the heart)와 신성의 사랑(Divine love)을 통해서만 장애물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September 2
What the people in the world actually want is the recognition of who they really are on the highest level, to see that the same Self radiates forth within everyone, heals their feeling of separation, and brings about a feeling of peace.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바라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에서 자기가 진정 누구인가를 알고, 저마다 동일한 참나가 모든 사람의 내면에 비춰내는 것을 보고, 분리된 느낌을 치유하고, 평화로운 감정을 불러오는 것이다.
September 3
Peace is absolutely a choice and a decision, although not a popular one in our society, despite all the rhetoric about the term. The decision to overlook the seeming inequities of life instead of reacting to them is certainly a choice.
평화라는 용어에 대한 각종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가 비록 우리사회에서 인기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는 절대적으로 하나의 선택이자 결단이다. 삶에서 겉으로 보기에 불평등해보이는 것에 일일이 반응하는 대신에, 너그럽게 눈감아 주겠다는 결단은 분명 하나의 선택이다.
September 4
The true source of joy and happiness is the realization of one's existence in this very moment. The source of pleasure always comes from within, even though it is occasioned by some external event or acquisition. In any one instant of time, no such thing as a problem can exist. Unhappiness arises from gonig beyond the reality of the now and creating a story out of the past or the future-which, because neither exists, has no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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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행복의 진정한 원천은 지금 이순간 자신의 존재를 각성하는 것이다. 쾌락의 원천은 그것이 비록 어떤 외부사건 또는 획득에 의해 발생되더라도 항상 내면에서 나온다. 어느 한순간에도 문제와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불행은 지금의 현실을 건너뛰어 과거나 먼 미래의 이야기의 이야기를 창조하는데에서 생긴다.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실상이 아니다.
September 5
Joy arises from within each moment of existence rather than from any outer source.
기쁨은 어떤 외부 근원에서가 아니라 존재의 매순간 내면에서 발생한다.
September 6
Inner peace results from surrender of either attractions or aversions. Perceived values are primarily projections of "wants" and "not wants." The fewer the "wants," the greater the case and satisfaction of life.
내면의 평화는 매력이나 혐오를 내맡김으로부터 나온다. 가치있다고 인식하는 것는 기본적으로 '원함'과 '원하지 않음'의 투사다. 원하는 것이 적을수록, 삶의 상황(case)과 만족도는 높아진다.
September 7
Fear itself actually preclueds the awareness of the presence of God. Only when it is abandoned does profound surrender of the resistant ego reveal a peace beyond understanding.
두려움 자체는 실제로 신의 현존(presence of God)의 자각을 방해한다. 저항하는 에고의 깊은 내맡김은 오직 두려움을 버릴때만, 이해를 넘어선 평화를 드러낸다.
September 8
Power comes from integrity and accepting responsibility for the consequences of one's own actions, choices, and decisions. All choices have inherent risks, and to pretend otherwise lacks integrity; in fact, it is game playing for gain.
파워는 온전성과 자신의 행동, 선택 및 결단의 귀결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수용하는데서 나온다. 모든 선택은 고유한 위험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온전성이 결여된 것이다. 사실 그것은 이득을 위한 게임행위다.
September 9
One mechanism the ego uses to protect itself is to disown any painful data and project it onto the world and others.
에고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한가지 기제는 고통스러운 정보를 멀리하고, 그것을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September 10
By committing to inner honesty, it will become apparent that the underpinning of the ego's responses is the pleasure that is derived from them. There is an inner satisfaction that is the payoff of self-pity, anger, rage, hate, pride, guilt, fear, and the like. This inner pleasure, as morbid as it may sound, energizes and propagates all these emotions. To undo their influence, it is merely necessary to be willing to forego and surrender these questionable, inner secret pleasures to God and to look to God only for joy and happiness.
내면의 정직성에 몰두해보면, 에고 반응의 토대가 바로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쾌락이라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자기-연민, 분노, 폭력, 증오, 자만심, 죄책감, 두려움 등의 보상인 내적만족이 있다. 병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러한 내적 쾌락은 위와같은 모든 감정에 활력을 불어넣고 전파한다. 이러한 에고의 영향력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고, 미심쩍은 내적 은밀한 쾌락을 신에게 내맡기고, 오직 기쁨과 행복을 위해 신을 찾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September 11
It takes inner discipline and surrender of attitudes not to fall into the temptation of identifying with a position about world events.
세상의 사건들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면의 훈련과 내맡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September 12
The events of the world trigger responses based on perception. It is a great theater that invites expressions of perceptions, illusions, and projections of positionalities. As such, one can either turn off the television and avoid it or see it as a major teaching tool.
세상의 사건들은 우리의 인식에 기초하여 반응을 촉발한다. 세상은 인식의 표현, 환상, 위치성의 투사를 초대하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그것을 피하거나 또는 그것을 가르침의 중요한 도구로 대할 수 있다.
September 13
Safeguards against being programmed by society are:
(1) emotional detachment, in which all information is viewed as provisional;
(2) awareness that ordinary mentalization is unable to discern perception from essence; and
(3) knowing that the wolf often hides beneath sheep's clothing.
사회에 의해 프로그램되는 것에 대한 안전장치는 다음과 같다
1) 감정과 거리두기 : 그럼으로써 모든 정보는 잠정적인 것으로 간주됨.
2) 자각 : 일반적인 정신화로는 본질로부터 인식을 구별할 수 없다는 자각
3) 알기 : 늑대는 종종 양의 탈을 쓰고 숨어있다는 것을 아는 것
This suspension of belief is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the basic dictum to 'wear the world like a loose garment'. To 'be in ther world but not of it' is a mode of attention that nevertheless still allows spontaneous interaction and function in society.
이러한 믿음의 보류는 '세상을 헐렁한 옷처럼 입어라'라는 기본 금언을 실제로 적용한 것이다. '이 세계에 있지만 그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주의 방식(mode of attention)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자발적인 상호작용과 기능을 여전히 허용한다.
September 14
It is of little benefit to be personally self-critical or think that one should be farther along the road than one is. Spiritual evolution is irregular, and at fimes often seems sporadic and at other times stationary. Realize that guilt is a narcissistic indulgence.
개인적으로 자기-비판적이거나, 현재보다 더 먼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적 진화(Spiritual evolution)는 불규칙적이어서, 때로는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때는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죄책감은 자기애적 방종(narcissistic indulgence)이라는 것을 각성하라.
September 15
Forgiveness is an extremely important major tool, especially when it is combined with the willingness of humility and acceptance of human fallibility and susceptibility to error. From spiritual intention, the surrendering of egoistic options may seem like a sacrifice-but when recontextualized, they are revealed to be a hidden gift.
용서는 겸손하려는 자발성과 인간의 불완전성 및 실수를 범하기 쉽다는 것의 받아들임이 결합될 때, 특히 중요한 도구다. 이기적인 선택지를 포기하는 것은 희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영적 의도를 가지고 다시 재맥락화할 때, 그것은 숨겨진 선물임이 드러난다.
September 16
Once one becomes willing to give love, the discovery quickly follows that one is surrounded by love and merely didn't know how to access it. Love is actually present everywhere, and its presence only needs to be realized.
일단 사랑을 주고자 하면, 우리는 사랑에 둘러싸여 있고, 단지 그것에 접근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은 실제로 어디에나 존재하며, 사랑의 현존은 오직 각성될 필요가 있을 뿐이다.
September 17
Our experience of the world and life is totally the result of inner beliefs and positionalities. Out of love and respect for God arises the willingness to surrender all these prejudgments, and the humility that ensues opens the doors to the splendor of reality, which is the revelation of the Self. Love is the maga catalyst that brings about the awareness. In the end, faith is replaced by certainty, and therefore it is said that God is found by those who seek Him.
세상과 삶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전적으로 내면의 믿음과 위치성의 결과다. 신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이러한 모든 편견을 내맡기려는 자발성이 생겨나고, 뒤따르는 겸손함은 참나의 드러남인 실상의 광휘(splendor of reality)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사랑은 우리를 자각(awareness)으로 이끄는 거대한 촉매제다. 결국 신념은 확신으로 바뀌고, 그러므로 신은 신을 찾는 사람에 의해 발견된다고 한다.
September 18
Consciousness research confirms that death is not a possibility. Life itself is supported by its eternal source, from which it cannot be separated. That which is linear, circumscribed, and limited in time comes into existence because of what is eternal and nonlinear.
의식 연구에 의하면 죽음은 불가능하다. 생명자체는 분리할 수 없는 의식의 영원한 근원(eternal source)에 의해 지지된다. 선형적이고, 공간 한정적이며, 시간 제한적인 것은 영원하면서 비선형적인 것 덕분에 존재하게 된다.
September 19
Underlyng all fears is the primordial, instinctual fear of death itself; therefore, much inner work can be bypassed by de-energizing this fear as early as possible in one's spritual work. The fear of physical death arises from the animal instinct plus the narcissism of the ego, which is in love with itself. Death implies an end of experiencing and experiencing is equated with life; thus, the ego clings to that which is linear and familiar.
모든 두려움의 기저에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죽음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영적작업에서 가능한 빨리 이러한 두려움을 비활성화함으로써 많은 내면의 작업(inner work)을 건너뛸 수 있다. 육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동물적 본능과 에고 자체와 사랑에 빠져있는 에고의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다. 죽음은 경험의 종말을 의미하고, 경험은 생명과 동일시된다. 이처럼, 에고는 선형적이고 친숙한 것에 집착한다.
September 20
The presence of God as love is self-revealing, since the duality of perception ceases as a consequence of surrendering positionalitics. Love is therefore the doorway between the linear and the nonlinear domain. It is the grand avenue to the discovery of God.
위치성 내맡김의 귀결로서 인식의 이원성이 중단된 이후에, 사랑으로써 신의 현존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랑은 선형과 비선형 영역사이의 출입구다. 그것은 신을 발견하는 웅대한 길이다.
September 21
If one looks at the feeling of happiness, it becomes clear that it is in fact located within. Although the trigger may appear to come from outside oneself, the sensation is totally an inner feeling of pleasure. The source of happiness is within, and it is released under favorable circumstances when the mind experiences a desired outcome. Through inner examination, one will discover that the event merely triggers an innate capacity. With the discovery that the source of happiness is actually within one's inner self and therefore cannot be lost, there is a reduction of fear.
행복의 느낌을 자세히 보면, 그것이 사실상 내면에 있음이 분명해진다. 비록 (행복의) 방아쇠는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감각은 완전히 내면의 기쁜 감정이다. 행복의 근원은 내면에 있으며, 마음이 원하는 결과를 경험하는 우호적인 상황하에서 행복은 방출된다. 내면 조사를 통해, 사건은 단지 타고난 능력(innate capacity)을 촉발시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행복의 근원이 실제로 자신의 내면에 있기때문에 잃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은 감소한다.
September 22
To choose the love for God activates the love of God by prayer and worship.
신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신의 사랑(love of God)을 활성화한다. 기도(prayer)와 예배(worship)에 의해서 말이다.
September 23
What the world ignores as a weed is of beauty equal to that of the flower. The living-sculpture design of all nature is equal, without classification, and everything is realized to be of the same merit or worth. All is an expression of Divinity as creation-all is equally sacred and holy. All is an expression of Divinity as creation-all is equally sacred and holy.
세상이 잡초처럼 무시하는 것도 꽃과 같이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자연의 살아있는 조각설계는 동등하며, 분류가 없고, 모든 것은 비슷한 장점 또는 가치가 있음을 각성한다. 모든 것은 창조로서 신성의 표현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똑같이 신성하고 거룩하다.
September 24
To the spritual aspirant, desire and attachments are deterrents to progress, and as they arise, what they symbolize can be surrendered to God.
영적 수행자에게 욕망과 집착은 진보를 가로막고, 욕망과 집착이 생길 때,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신에게 내맡겨질 수 있다.
September 25
An illusion that drives desire and craving is that the object of desire has become imbued with an exaggerated importance and significance, resulting in an inflated value and attractiveness. Once the object has been acquired, it loses its magical aura, and that seductive image is now projected onto the next object of desire.
욕망과 갈망으로 이끄는 모든 환상은 부풀려진 가치와 매력을 야기하는, 욕망의 대상이 과장된 중요성 및 의미와 함께 부풀려진다. 일단 욕망의 대상이 획득되면, 마법의 오라는 잃어버리고 그 매혹적인 이미지는 이제 욕망의 다음 대상에 투사된다.
September 26
The discovery of the presence of God is not due to fear but to the surrender that was precipitated by the fear.
신의 현존의 발견은 두려움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에 의해 촉발된 내맡김 덕분이다.
September 27
Attachment is the process whereby the suffering of loss occurs, irrespective of what the attachment is to or about: whether
internal or external: whether object, relationship, social quality, or aspects of physical life. The ego perpetuates itself through its elaborate network of values, belief systems, and programs. Needs thus arise that gain more energy as they become embellished and elaborated, sometimes to the point of fixation. The source of pain is not the belief systems itself but one's attachment to it and the inflation of its imaginary value. The inner processing of attachments is dependent on the exercise of the will, which alone has the power to undo the mechanism of attachment by the process of surrender. This may be subjectively experienced or contextualized as sacrifice, although it is actually a liberation. The emotional pain of loss arises from the attachment itself and not from the "what" that has been lost.
집착은 집착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에 관한 것인지와 관계없이, 그것에 의해 상실의 고통이 발생하는 과정이다. 그 집착은 내부 또는 외부에 관한 것인지, 대상, 관계, 사회적 특성 또는 물리적 삶의 측면에 관한 것인지와도 관계 없다. 에고는 가치(value), 믿음체계(belief systems) 및 프로그램(programs)들의 정교한 연결망을 통해 스스로를 영구화한다. 따라서, 에고는 장식되고 정교해짐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를 얻고, 때로는 고착화되면서 요구(needs)가 발생한다. 고통의 근원은 믿음체계 자체가 아니라 고통에 대한 집착과 가상적 가치의 팽창이다. 집착의 내적 처리과정은 의지의 훈련(exercise of the will)에 의존적이며, 의지의 훈련은 홀로 내맡김의 과정(process of surrender)에 의해 집착 기제를 해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은 실제로 하나의 분리(liberation)일지라도, 주관적으로 경험되거나 희생으로써 맥락화될 수 있다. 상실의 감정적 고통은 잃어버린 '무엇'으로부터가 아니라 집착 그자체에서 생겨난다.
September 28
The world and everything in it is transitory; therefore, to cling to it brings suffering.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은 덧없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집착하는 것은 고통을 불러온다.
September 29
Temptation, seduction, desirability, and allure are all projections having to do with appearance and presumptions. These are associated with programmed fantasies of gain. Satisfaction of projected values constitutes the world of illusion.
유혹, 구애, 호감 및 매혹은 모두 나타난 것(appearance) 및 추정(presumptions)과 관련된 투사다. 이런 것들은 이득의 프로그램된 공상(fantasies)과 연관되어 있다. 투사되면서 과장된 가치의 만족이 환상의 세계(world of illusion)를 만든다.
September 30
Meaning is defined by context, which determines motive, and it is the motive that establishes spiritual value. To dedicate one's actions as a service of love to life is to sanctify them and transform them from self-seeking motives to unselfish gifts. We define excellence as dedication to the highest standards. Every act can then be held as an opportunity to glorify God by sheer purity of endeavor. All physical tasks and labor can be ingredients in one's contribution to the world. Even the smallest task can be seen as serving the common good and, if viewed in that light, work becomes ennobled.
삶의 의미(meaning)는 맥락에 의해 정의되며, 맥락이.동기를 결정하고 동기야말로 영적 가치(spiritual value)를 확고하게 한다. 자신의 모든 행위를 삶에 대한 사랑의 봉사로 바치는 것은 그 행위를 성스럽게 하고, 이기적 동기를 이타적 선물로 바꾸는 일이다. 우리는 탁월함(excellence)을 '가장 높은 기준을 향한 헌신'으로 정의한다. 그러면 모든 행위는 깨끗하고 순수한 노력으로 신을 찬미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모든 육체적 일과 노동은 우리가 세상에 공헌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가장 작은 일일지라도 공공선에 봉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노동은 고상한 일이 된다.
October1
Conflict exists in the mind of the observer and not in that which is observed.
갈등은 관찰되는 그것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다.
October 2
How life is contextualized can bring either joy or resentment; stinginess can be replaced by generosity. If others benefit from one's efforts, so much the better. Everyone has the opportunity to contribute to harmony and beauty by kindness to others and thereby support the human sprit. That which is freely given to life flows back to us because we are equally part of that life. Like ripples on the water, every gift return to the giver. What we affirm in others, we actually affirm in ourselves.
삶이 어떻게 맥락화되는지에 따라 기쁨이나 분노가 생길 수 있고, 인색함은 너그러움으로 대체될 수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혜택을 본다면, 그야말로 좋은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함으로써 조화와 아름다움에 기여할 기회를 얻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 영(human sprit)을 지원한다. 삶에 아무댓가 없이 주어지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 오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그 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위의 잔물결처럼 모든 선물은 주는 사람(the giver)에게 되돌아 온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정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October 3
Remember that allegiance is due only to God, to one's relationship with Him, and to purity and holiness. No organization has any special favor with God, and all organizations as such are based on ego premises and illusions.
맹세는 오직 신, 신과의 관계, 순수함과 성스러움으로 인한 것임을 기억하라. 어떤 조직도 신의 특별한 총애를 받지 않으며, 모든 조직은 에고 전제 및 환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October 4
It is to be emphasized that that which is truly holy and of God brings only peace and love.
다시한번 강조하는데, 진실로 신성한 것과 신만이 평화와 사랑을 가져온다.
October 5
If the desire arises to surrender all obstacles to love and to God, then God is already present in the form of willingness. When one reaches devotion, there is already quite an advanced presence that is dissolving the ego and illuminating the way. Spiritual progress and discovery are accompanied by joy, which is the radiance of the Self, and quickly replaces the surrendered ego's positionalities. Spiritual inspiration increases in intensity each step along the way when the self stops looking to the world or to the ego, it discovers that its source has been the Self all along.
만약 사랑에 대한 장애물 및 신에 대한 모든 장애물을 내맡기려는 마음이 생긴다면, 신은 이미 자발성의 형상(form of willingness)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헌신에 이를 때, 에고를 해체하고 길을 밝혀주는 상당히 진보된 현존(advanced presence)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영적 진보와 발견은 기쁨을 수반하며, 이것이 바로 참나의 광휘이고, 내맡겨진 에고의 위치성을 재빨리 대체한다. 작은 나(the self)가 세상이나 에고 찾는 것을 멈출 때, 영적영감은 그 과정에서 매 단계마다 강도가 증가한다. 그리고 그것의 근원이 줄곳 참나(the Self)였음을 발견한다.
October 6
The limitations of love have to do with perceived qualities and differences. Through inner self-honesty and examination, these areas of limitation are revealed, usually as residual judgments or as the impact from prior experience. A key to making love unconditional is the willingness of forgiveness to undo past reservations or experiences, or viewing people as unlovable.
사랑의 한계(limitations of love)는 개인의 인식을 거친 가치와 차이(qualities and differences)로부터 비롯된다. 내면의 자기-정직성과 조사를 통해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남아있는 판단 또는 이전 경험의 충격때문에 이러한 한계지점이 드러난다.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만드는 핵심열쇠는 과거의 의구심이나 경험, 그리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을 취소하기 위한 용서하려는 자발성(willingness of forgiveness)이다.
October 7
The source of restance to spiritual endeavor is the narcissistic core of the ego itself, which seeretly claims sovereignty and authorship of one's existence, decisions, and actions. Thus, despite one's best efforts, willfulness and desire for gain or control have continued to erupt repetitiously. This pattern can be diminished simply by accepting that it is natural for the ego to be vain, greedy, hateful, prideful, resentful, envious, and more. These were learned accretions to the ego during its evolutionary development over eons of time. Therefore, it is not necessary to feel guilty because these primitive emotions merely need to be outgrown and discarded in the transition from self-interest to Self-interest.
영적 노력(spiritual endeavor)에 대한 저항의 근원은 에고 자체의 자기애적 신념(narcissistic core)이며, 에고는 자신의 존재, 결정 및 행동에 대한 통치권과 저작권을 은밀하게 주장한다. 따라서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익이나 통제에 대한 의도와 욕망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분출된다. 이러한 패턴은 단지 에고가 허영심, 탐욕, 증오, 교만, 분노, 부러움 등을 나타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감소될 수 있다. 이것들은 오랜세월 에고의 진화적 발달과정에서 에고에게 학습된 부착물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시적 감정은, 단지 작은 나의 흥미에서 참나의 흥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흥미를 잃고 폐기하는 것만이 필요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October 8
What needs to be surrendered are not the objects of desire, but the quality of desiring and the imbuing of the objects with the magical inflation of value.
내맡길 필요가 있는 것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특성이고, 가치가 마법같이 팽창하여 대상에 스며드는 것이다.
October 9
It is only necessary to shift from devotion to the world to devotion to God and the spirit.
세상에의 헌신(world to devotion)에서 신과 영에 대한 헌신(devotion to God and the spirit)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October 10
Like matter and energy, life cannot be destroyed but can only change form. Thus, death is actually only the leaving of the body. The sense of identity is, however, unbroken. The state of "me" (self) is constant and continues after it separates from the physical expiration; that is, there has to be a "who" that goes on to heaven or other realms or chooses to reincarnate.
물질과 에너지처럼, 생명은 파괴될수도 없고 다만 형태만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은 사실 그저 육체를 떠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정체성 감각(sense of identity)은 중단되지 않는다. '나'<작은 나>의 상태는 변함없어서 육체적 종결로써 분리된 후에도 지속된다. 즉, 천국 또는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거나 환생하기를 선택하는 '누군가(who)'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October 11
Excessive desire creates the illusion of lack, just like seeming money problems are created by spending faster than income.
마치 돈 문제들이 수입보다 더 빨리 지출함으로써 생기는 것처럼, 과도한 욕망은 결핍의 환상을 창조한다.
october 12
The essential fundamental principles for spiritual endeavor are the time-honored ones, such as devotion, humility, fortitude, willingness to surrender, and faith and trust in God. These are reinforced by dedication, prayer, and the supplication and invocation of God's Grace by an act like spiritual will. . . These are empowered by intention, which results in alignment and integration whereby the basic principles become operative. Devotion is a consequence of assent by the will. Complete and total surrender to God can eclipse the process at any given point along the way.
영적노력을 위한 필수적 기본원칙은 헌신, 겸손함, 불굴의 용기, 내맡기려는 자발성, 신에 대한 신념과 신뢰같은 유서깊은 것이다. 이것들은 봉헌, 기도, 그리고 영적 의지같은 것의 실행에 의한 신의 은총의 간청과 기원에 의해 강화된다... 또한 이것들은 의도에 의해 힘이 생기고, 이는 정렬과 통합을 야기하고 그에 따라 기본적인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헌신은 영적 의지에 의한 승인의 귀결이다. 신에 대한 완전하고 전체적인 내맡김은 그 길의 어느 지점에서든 그 과정을 필요없게 만들 수 있다.
October 13
To align one's life with spiritual intention expands its meaning and significance. While the ego/body/mind's life span is limited and temporary, the life of the sprit is eternal, and its importance thus eclipses transitory gains of ego satisfaction. The lesser is then surrendered to the greater by alignment, commitment, and agreement -because it is freely chosen rather than imposed, there is a lessening of resistance.
자신의 삶을 영적 의도(spiritual intention)에 정렬하는 것은 영적의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에고/몸/마음의 수명은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반면, 영의 생명은 영원하다. 그리고 그것의 중요성은 에고 만족의 일시적인 이득을 퇴색하게 한다. 그 다음에 작은 것은 정렬, 몰두 및 동의에 의해 더 큰 것에 내맡겨진다. 이것은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저항이 줄어든다.
October 14
As we get closer to the discovery of the source of the ego's tenacity, we make the amazing critical discovery that we are enamored with ourselves.
우리가 에고 고집의 근원에 대한 발견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홀딱 빠져있다는 놀랍고 결정적인 발견을 하게 된다.
October 15
The ego clings to emotionality, which is intimately connected with its positionalities: it pretends to think that it has no other choices. To 'surrender to God' means to stop looking to the ego for solace and thrills and to discover the endless, serene joy of peace. To look within is to find the underlying, ever-present source of the illumination of the mind itself.
에고는 에고의 위치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감정에 집착한다. 에고는 '다른 선택은 없다'고 생각하는 척한다. '신에게 내맡긴다'는 것은 위안과 전율을 위한 에고찾기를 멈추고, 평화의 끝없고 고요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마음 스스로 근본적이면서 영원한 빛비춤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
October 16
As the true source of happiness stems from within, desire cannot be satisfied-it is a constant projection of specialness onto the external, and is thus the pursuit of a fantasy. As one desire becomes fulfilled and satisfied, the focus then moves on to the next object of desire in an endless procession, like a carrot on a stick.
진정한 행복의 근원은 내면으로부터 나오기때문에, 욕망은 충족될 수 없다. 욕망은 외부에 대한 끊임없는 특별함의 투사이며, 따라서 환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의 욕망이 성취되고 만족되면, 그 초점은 줄줄이 연결된 줄기처럼 끝없이 행진을 하며 다음 욕망으로 이동한다.
October 17
The common element of most fears is that they are based on the illusion that happiness is dependent on externals and therefore vulnerable. To overcome the illusion of vulnerability brings great relief and the correction of being run by fear. Life becomes benign and filled with satisfaction and easygoing, confident attitude, instead of constant guardedness.
대부분 두려움의 공통적인 요소는 행복이 외부에 의존하고 있어서 취약하다는 환상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취약함의 환상을 극복하는 것은 큰 안도감을 가져오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교정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조심성 대신에, 만족스러움과 느긋하면서 자신감있는 태도로 가득차게 된다.
October 18
To undo shame, it is helpful to realize that it is based on pride. The loss of status is painful to the degree that the ego relies on pride as a prop to self-esteem. Were it not for narcissitic pride, a mistake or negative feedback would be experienced only as a regret and ascribed to human frailty and fallibility. Mistakes help one retain humility.
수치심(shame, 의식수준 20)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자만심(pride)에 기초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지위의 상실로 인한 고통은 에고가 자기-존중감에 대한 버팀목으로 자만심에 의존하는 정도에 비례한다. 자기애적 자만심이 없다면, 실수나 부정적인 피드백은 단지 후회로 경험될 것이고, 인간의 나약함과 오류를 범하기 쉬운 특성으로 간주될 것이다. 실수는 겸손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October 19
All forms of loss are an confrontation to the ego and its survival mechanisms. All aspects of human life are transient, so to cling to any aspect eventually brings grief and loss. Each incident, however, is an opportunity to search within for the source of life, which is ever present, unchanging, and not subject to loss or the ravages of time.
상실의 모든 형태는 에고와 에고의 생존 기제에게는 하나의 대립(confrontation)이다.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은 일시적이므로, 어떤 측면에 집착하는 것은 결국 비탄과 상실을 가져온다. 그러나, 각각의 사건은 영원히 존재하고 불변하는 생명의 근원을 위한 내면 찾기(search within)의 기회이며, 시간의 손실이나 파괴의 대상이 아니다.
October 20
Relief of guilt and greater compassion for oneself and others occurs through realizing that the individual person did not volitionally create the structure of the ego, nor did anybody else. The human condition is primarily a karmic 'given'-it can be accepted compassionately as such without condemnation, and is therefore neither good nor bad. Mankind lives in the realm of tension between emotional instincts and the counterbalancing power of spiritual awaking(that is, the animal/angel conflict).
죄책감의 해소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더 큰 연민은, 개인이 의지적으로 에고의 구조를 창조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에고 또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각성함으로써 일어난다. 인간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부여된' 카르마다. 그것은 비난과 같은 것없이 연민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따라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인류는 감정적 본능과 영적 깨어남(spiritual awaking)의 균형을 이루는 힘(즉, 동물/천사 갈등)사이의 긴장영역에서 살고 있다.
October 21
There is no indication from any source of higher truth that God is influenced or assuaged by guilt. The great sages of history do not speak of guilt but instead refer to 'sin' as being due to ignorance.
더 높은 진리의 근원에서는 신이 죄책감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누그러진다는 조짐이 없다. 역사의 위대한 현인들은 죄책감을 말하지 않고 대신에 '죄'는 무지로 인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October 22
In the reality of nonduality, there is neither privilege nor gain nor loss nor rank. Just like a cork in the sea, each sprit rises or falls to its own level in the sea of consciousness by virtue of its own choice, not by any external force or favor. Some are attracted by the light and some seek the darkness, but it all occurs of its own nature by virtue of Divine freedom and equality.
비이원성의 실상에서는 특권도, 이득도, 손실도, 지위도 없다. 바다의 코르크 마개처럼, 각각의 영은 어떤 외부의 힘이나 호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의식의 바다에서 자신의 수준에 맞게 올라가거나 떨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빛에 이끌리고 어떤 사람들은 어둠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모두 신성한 자유와 평등 덕분에 그 자체로 존재한다.
October 23
There is absolutely nothing in ordinary human experience to compare with the joy of the experience of the love of God. No sacrifice is too great nor effort too much in order to realize that presence.
평범한 인간의 경험에서는 신의 사랑을 경험하는 기쁨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그 현존을 각성하기 위해 큰 희생도, 너무 많은 노력도 필요없다.
October 24
To understand the nature of God, it is necessary only to know nature of love itself. To truly know love is to know and understand God, and to know God is to understand love.
신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사랑 자체의 본성을 알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사랑을 안다는 것은 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고, 신을 안다는 것은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다.
October 25
To know that the Self is context-and, in contrast, the self is content-is already a huge leap forward. The naive seeker merely keeps reshuffling the content.
참나(the Self)가 맥락이고, 반대로 작은 나(the self)는 내용'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이미 큰 도약이다. 순진한 추구자는 단지 내용을 계속 편집할 뿐이다.
October 26
The Self is like a person's inner grandmother who watches over him so he does not forget to take his raincoat or mail the rent check. God is not ominous but loving; fear arise from the imagination.
참나는 비옷을 챙기거나 임대료내는 것을 잊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주는 내면의 할머니와 같다. 신은 불길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다. 두려움은 단지 상상에서 나올 뿐이다.
October 27.
The innate qualities of Divinity are mercy and compassion. There are no favors to be sought. It is only necessary to acept what already exists as a given.
신성의 타고난 특성은 자비와 연민이다. 찾아야 하는 은혜(favors)는 없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주어진 것으로 단지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October 28
One makes a gift of one's life and endeavors by sanctifying them with love, devotion, and selfless service. That is the way of the heart to God. In that way, domestic life becomes a form of worship and the source of joy to all. When one seeks to uplift others, everyone is uplifted in the process. Giving is therefore self-rewarding, for there is actually no other that is being given to. Every kind thought or smile is therefore spiritual and benefits oneself as well as all the world.
우리는 사랑, 헌신 및 이타적인 봉사로 자신의 삶과 노력을 신성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선물로 만든다. 그것이 신에게로 가는 가슴의 길(way of the heart)이다. 그렇게 하면, 가정의 삶(domestic life)은 하나의 예배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의 근원이 된다. 우리가 타인을 고양시키려 할 때,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고양된다. 그러므로 선물하는 것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상적인 것이다. 모든 친절한 생각이나 미소는 그래서 영적인 것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에 유익하다.
October 29
Spiritual devotion is a continuous inner lifestyle that incorporates constant watchful awareness. External occurrences are transitory, whereas inner qualities of consciousness are more permanent. Inner work is a constant learning process whereby there is pleasure and satisfaction in discovery and the unfolding of insight.
영적 헌신(Spiritual devotion)은 끊임없는 주의깊은 자각을 통합하는 지속적인 내면의 생활방식이다. 외적인 사건은 일시적인 반면에 의식의 내적 특성은 영원하다. 내면 작업은 끊임없는 학습과정이고, 그것에 의한 통찰력의 발견과 펼쳐짐속에서 기쁨과 만족감이 있다.
October 30
Cessation of fear is the result of learning that the source of happiness is within. It stems from recognizing that this source is the joy of one's own existence, which is continuous and not dependent on externals. This results from surrendering expectations and demands on one's self, the world, and others. The thought I can only be happy if I win or get what I want is a guarantee of worry, anxiety, and unhappiness.
두려움의 종식은 행복의 근원이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결과다. 행복의 원천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지속되는 자기 자신의 존재의 기쁨임을 인정하는데서 나온다. 이것은 자기 자신, 세상 및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포기한 결과다. 내가 이기거나 원하는 것을 얻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걱정, 불안, 불행을 보증하는 것이다.
October 31
Fears are eliminated by graceful acceptance of the qualities inherent in the human condition, which brings to awareness the comforting realization that one's discomforts are shared equally by all. This results in a healing compassion toward all life. To become loving brings an end to the fear of loss of love, for lovingness engenders love wherever it goes.
두려움은 인간조건에 내재된 특성을 기품있게 받아들임으로써 제거되며, 이는 자신의 불편함을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공유한다는 위안을 주는 자각을 가져다준다.
그 자각은 모든 생명에 대한 치유적 연민(healing compassion)을 야기한다. 사랑이 되는 것은 사랑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종지부를 찍게하는데, 왜냐하면 사랑임은 그것이 어디를 가든지 사랑을 낳기 때문이다.
November 1
All that is truly of God brings peace, harmony, and love and is devoid of all forms of negativity. A spiritually aware person realizes that he or she can only carry the message, for it is the inner truth that is the teacher.
진정으로 신의 모든 것은 평화, 조화 및 사랑을 가져오고, 어떤 형태의 부정성도 없다. 영적으로 자각한 사람은 자신이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하는데, 왜냐하면 내면 진리가 바로 스승이기 때문이다.
November 2
Divinity knows its own; therefore, to accept that truth is already feel joy. To not experience joy by understanding this means that it is being resisted.
신성은 자신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서도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저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November 3
Enlightenment is not a condition to be obtained; it is merely a certainty to be surrendered to, for the Self is already one's Reality. It is the Self that is attracting one to spiritual information.
깨달음은 얻어야 하는 하나의 조건이 아니다. 참나는 이미 자신의 실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내맡김되어야 하는 확실성이다. 우리를 영적 정보로 이끄는 것이 바로 참나다.
November 4
In Reality, there are no events, there are no beginnings or endings. The backdrop is silent, still, and undisturbed by the movie. One's reality is the context and not the content. The oneness of life appears to perception as multitudinous. What makes the appearances of the world seem real is a projection of the radiance of the Self. The movie itself has no intrinsic reality as perceived. The actual locus of the sense of realness lies totally within consciousness as subjectivity. Even if there were such a thing as an independent, objective reality, it would only be knowable because of one's internal subjectivity.
실상에는 사건도 없고, 시작이나 끝도 없다. 배경은 조용하고 고요하며, 영화(movie)에 방해받지 않는다. 실상은 맥락이지 내용이 아니다. 삶의 일체성(oneness)은 무수히 많은 인식으로 나타난다. 세상의 모습을 실제처럼 만드는 것은 참나 광휘의 투사다. 영화 자체는 인식으로써의 내재적 실상이 아니다. 진짜임(sense of realness)의 실제 장소는 완전하게 주관성으로써 의식 내에 있다. 비록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실상으로써 어떤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오직 우리의 내적인 주관성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November 5
The radical Reality is that to understand the essence of anything is to know God.
근본적인 실상은 어떤 것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신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November 6
Complete surrender to God unveils the truth; nothing is hidden. Only the ego is blind, and Reality lies just beyond the mind. Out of the fear of becoming nothing, consciousness denies its only reality that it is everything-the infinite, everlasting Allness out of which existence itself arises.
신에게 완전히 내맡기면 진리가 베일을 벗고, 어떤 것도 숨지 못한다. 오직 에고만이 눈이 멀고, 실상은 마음 너머에 있다. 무(Nothing)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의식은 그것이 모든 것(everything)이라는 유일한 실상을 부정한다. 무한하고 영원한 전부임(Allness)은 존재자체에서 발생하는데도 말이다.
November 7
Realization is not a "gain" or an accomplishment, nor is it something that is 'given" as a reward for being good. These are all notions from childhood. God is immutable and cannot be manipulated into granting favors or seduced by bargaining or adulation. Worship benefits the worshipper by reinforcing commitment and inspiration. God is still, silent, and unmoving.
영적 각성은 '이익'이나 하나의 성취가 아니며, 선함(being good)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어린시절의 개념이다. 신은 불변이며, 호의를 베푼다고 조종되거나 흥정이나 칭찬에 의해 유혹될 수 없다. 예배는 몰두(commitment)와 영감(inspiration)을 강화함으로써 예배자에게 유익하다. 신은 고요하고 침묵하며 움직임이 없다.
November 8
Realize that if you are something, there is nothing to understand about it. Reality is the ultimate in simplicity.
만약 당신이 무엇이라면, 그것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각성하라. 실상(Reality)은 단순성의 궁극이다.
November 9
The development of a spiritual ego can be avoided by the realization that spirtual progress is the result of God's Grace, not the result of one's personal endeavors.
영적 에고의 발달은 영적 진보가 개인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신의 은총의 결과라는 사실을 각성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
November 10
The ego often seems to collapse in a piecemeal fashion.
에고는 종종 조금씩 시도하는 것(piecemeal fashion)만으로도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Once faith in the reality of the ego as being the true self is undermined, its dissolution has already begun.
일단 에고가 '진정한 나'라는 믿음이 약화되면, 에고의 해체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When one's loyalty and allegiance is shifted from the ego to the ultimate reality of God, a space is created.
충성과 맹세가 에고에서 궁극적인 신의 실상으로 옮겨질 때, 틈은 만들어진다.
Into the opening flows God's Grace as represented by the Holy Spirit.
신성한 영(Holy Spirit)으로 대표되는 신의 은총은 그 문틈으로 흘러들어온다.
November 11
It is well to keep in mind at all times that the ego/mind does not experience the world but only its own perception of it.
에고/마음은 세상을 경험하지 않고, 오직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인식일뿐이라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좋다.
November 12
The ego gets a grim pleasure and satisfaction from suffering and all the dishonest levels of pride, anger, desire, guilt, shame, and grief.
에고는 고통과 자만심, 분노, 욕망, 죄책감, 수치심 및 슬픔의 모든 부정직한 수준으로부터 암울한 쾌락과 만족감을 얻는다.
The secret pleasure of suffering is addictive.
고통의 은밀한 쾌락은 중독성이 있다.
Many people devote their entire lives to it and encourage others to follow suit.
follow suit :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평생을 바치고, 다른 사람들도 이를 따르도록 격려한다.
To stop this mechanism, the pleasure of the payoff has to be identified and willingly surrendered to God.
이러한 메카니즘을 멈추기 위해서는 보상의 쾌락을 확인하고, 기꺼이 신에게 내맡겨야 한다.
Out of shame, the ego blocks out conscious awareness of its machinations, especially the secretiveness of the game of 'victim'.
machinations : 교묘한 술책
수치심 수준에서, 에고는 특히 '희생자' 게임의 비밀인 에고 계략에 대한 의식적인 자각을 차단한다.
November 13
We change the world not by what we say or do, but as a consequence of what we have become.
우리는 우리가 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된 것의 귀결로 세상을 바꾼다.
Thus, every spiritual aspirant serves the world.
따라서, 모든 영적 추구자는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November 14
The way out of conflict is not to try to eliminate the negative, but instead to choose and adopt the positive.
갈등에서 벗어나는 길은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긍정적인 것을 선택하고 채택하는 것이다.
When one views that one's mission in life is to understand rather than to judge, this automatically resolves moral dilemmas.
우리 삶의 미션이 판단보다는 이해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가질때, 도덕적 딜레마는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November 15
Everyone is exposed to life in its expression as nature, as well as in that human interaction called society.
모든 사람은 자연이라는 삶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사회라고 부르는 인간 상호작용에 노출된다.
Such interaction is impersonal, and the vicissitudes of life are inevitable and unavoidable—this can be either challenging or depressing, depending solely on one's point of view.
이러한 상호작용은 비개인적이며, 삶의 우여곡절은 불가피하고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관점에 따라서 도전이 될수도 있고, 암울한 것이 될 수도 있다.
Without positionalities, life is experienced as serene and interesting.
위치성이 없다면, 삶은 고요하고 흥미롭게 경험된다.
This point of view fosters growth and (hopefully) wisdom, rather than selfpity or bitterness.
이러한 관점은 자기연민이나 비통함보다는 성장과 (바라건대) 지혜를 촉진한다.
Everyone is free to make a choice.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선택한다.
The rain does not determine whether one will be happy or disappointed.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우리가 행복할지 또는 실망할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The surrender of willfulness/positionality brings peace in all circumstances.
의도성/위치성의 내맡김은 모든 상황에서 평화를 불러온다.
November 16
To endeavor to evolve spiritually is the greatest gift one can give.
영적으로 진화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It actually uplifts all mankind from within because of the nature of power itself.
실제로 파워 자체의 본성때문에, 내면으로부터 모든 인류는 고양된다.
Power radiates and is shared; wheres force is limited, self-defeating, and evanescent.
파워는 방출하고 공유된다. 반면에 힘은 제한적이고 자기패배적이며 덧없다.
All society is subliminally and subtly influenced by every kind and loving thought, word, or deed.
모든 집단은 매번의 친절과 사랑스러운 생각, 말, 행위에 의해 잠재의식적으로 미묘하게 영향을 받는다.
Every forgiveness is a benefit to everyone. The universe notes and records every action and returns it in kind.
모든 용서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 우주는 모든 행동을 기록, 저장하고 동일하게 돌려준다.
Karma is actually the very nature of the universe because of the innate structure and function of the universe itself.
카르마는 실제로 우주 자체의 타고난 구조와 기능때문에 바로 우주의 본성이다.
In the universe, time is measured in eons.
우주에서 시간은 영겁으로 측정된다.
November 17
This process of spirituality, in which one works through the obstacles, may seem painful at times, but it is only transitional.
work through : 통과하다
장애물을 뚫고 통과하는 영성의 과정은 때때로 고통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과도기적 과정일 뿐이다.
The mistakes now reappear and are recontextualized from a higher understanding.
실수는 다시 나타나고 더 높은 이해로 재맥락화된다.
This process is shortened and less painful if it is realized that habitual responses are not truly personal, but are part and parcel of the inheritance of being human.
part and parcel : 중요부분, 본질
만약 습관적인 반응이 진정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가 물려받은 유산의 본질이라는 것을 각성한다면 이 과정은 단축되고 덜 고통스럽다.
November 18
The source of joy of spiritual endeavor stems from the work itself and is not dependent on outcomes or the achievement of goals.
영적 노력의 기쁨의 원천은 일 자체에서 비롯되며 결과나 목표의 달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Each movement forward has an inner delight.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내면의 큰 기쁨이 있다.
There is, for instance, an inner pleasure that accompanies progress.
예를 들어, 진보에 수반되는 내면의 쾌락이 있는 것이다.
The replacement of resentment with peaceful acceptance is its own reward.
분노를 평화로운 수용으로 대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
There is a progressive alteration in one's view of self and others.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점에서 진보적인 변화가 있다.
When this happens, one's own life story can then reinterpreted from a more compassionate understanding.
이런 변화가 일어날 때,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좀더 연민적인 이해로 재해석될 수 있다.
Beyond that it doesn't even exist at all.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Every kindness is therefore forever.
그래서 모든 친절함은 영원하다.
November 19
The average person's psyche is overwhelmed by layers of programmed belief systems of which they are unaware.
평균적인 사람의 정신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프로그램된 신념체계의 막에 의해 둘러쌓여 있다.
Out of naiveté and the belief in the principles of causality, the supposed causes and their solutions are sought "out there."
순진함과 인과관계의 원리에 대한 믿음에서는, 추정된 원인과 그 해결책을 밖에서 찾게된다.
With maturity and the wisdom of spirituality, the search becomes directed inwardly, where the source and resolution are finally discovered.
영성의 성숙함과 지혜가 있으면, 탐구는 직접적으로 내면으로 향하게 되고, 결국 근원과 해결책이 있는 장소가 발견된다.
November 20
To spiritualize one's life, it is necessary only to shift one's motive.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자신의 동기만 바꾸면 된다.
To constantly be aware of one's actual motive tends to bring up positionality and pairs of opposites, such as gain versus service or love versus greed.
자신의 실제 동기를 지속적으로 살펴보면 위치성과 이익대 봉사 또는 사랑대 탐욕과 같은 상반되는 쌍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These then become visible and are available for spiritual work because one is now conscious of them.
그러면 그것들이 가시화되고 영적작업에 사용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그것들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November 21
Spiritual reality is a greater source of pleasure and satisfaction than the world can supply.
영적 실상은 세상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의 원천이다.
It is endless and always avalilable in the present instead of the furture.
그것은 무한하고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항상 사용할 수 있다.
It is actually more exciting because one learns to live on the crest of the current moment, instead of on the back of the wave (which is the past) or on the front of the wave(which is the future).
우리는 파도의 뒷면(과거) 또는 파도의 앞면(미래) 대신에, 현재 순간의 물마루에 사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실제로 더 흥미진진하다.
There is greater freedom from living on the exciting knife-edge of the moment than being a prisoner of the past or having expectations of the furture.
과거의 포로가 되거나 미래의 기대를 갖는 것보다는, 이 순간의 흥미진진한 칼날에 사는 것이 더 큰 자유가 있는 삶이다.
November 22
If the goal of life is to do the very best one can do at each unfolding moment of existence, then, through spiritual work, one has already escaped the primary cause of suffering.
만약 삶의 목표가 존재의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 영적작업을 통해, 우리는 이미 고통의 주요 원인에서 벗어난 것이다.
In the stopframe of the radical present, there is no life story to react to or edit.
근원적인 현재의 정지 프레임에서는, 반응하거나 편집할 삶의 이야기가 없다.
With this 'one-pointedness' of mind, it soon become obvious that everything merely 'is as it is', without comment or adjectives.
'마음 집중(one-pointedness)'과 함께, 모든 것은 논평이나 묘사없이 단지 '있는 그대로 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November 23
There is no timetable or prescribed path to God.
신에게로 가는 시간표나 정해진 길은 없다.
Although each person's route is unique, the terrain to be covered is relatively common to all.
비록 각 개인의 길이 고유하더라도, 덮혀진 지형은 모두에게 비교적 일반적이다.
The work is to surmount and transcend the common human failings that are inherent in the structure of the human ego.
(신에게로 가는) 작업은 인간 에고의 구조에 내재된 인류의 공통된 결점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이다.
One would like to think that one is personal, yet the ego itself is not personal- it was inherited along with becoming a human being.
우리는 사람이 개인적이고 반면에 에고 자체는 비개인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에고는 인간임(human being)과 함께 유전되었다.
Details differ based on past karma.
자세한 것은 과거 카르마에 따라 다르다.
November 24
When the mind stops talking, one is aware that one is life.
마음이 말을 멈출 때, 우리는 자신이 곧 생명임을 자각하게 된다.
One is immersed in it rather than being on the surface, talking about it.
우리는 겉에 있기 보다는 생명안에 담겨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Paradoxically, this enables full participation.
역설적으로, 이것은 완전한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When egocentricity diminishes, the joy of freedom and the sheer flow of life sweep one into total surrender.
에고중심성이 감소할 때, 자유의 기쁨과 생명의 순수한 흐름(sheer flow)이 우리를 완전한 내맡김으로 밀어 넣는다.
One then stops reacting to life, so it can be enjoyed with serenity.
그러면 우리는 삶에 대한 반응을 멈추고, 고요함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된다.
November 25
We honor that which we esteem in others as well as ourselves.
우리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공경한다.
Out of this, one honors one's own humanity and that of others and ends up honoring all of life in all its expressions by resignation to Divine Will.
이로부터,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공경하며, 결국에는 신성 의지를 받아들임으로써 드러난 모든 것에서 모든 생명을 존중하게 된다.
With surrender of the ego, the spirit becomes aware of the sanctity of existence.
에고의 내맡김과 함께, 영(sprit)은 존재의 신성함을 자각하게 된다.
November 26
Spiritual evolution occurs as the result of removing obstacles and not actually acquiring anything new.
영적 진화는 장애물을 제거한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지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Devotion enables surrender of the mind's vanities and cherished illusions so that the mind progressively becomes more free and open to the light of Truth.
헌신은 마음의 허영심과 들러붙어있는 환상의 내맡김을 가능하게 하고, 그래서 마음은 점진적으로 더 자유로워지고 진리의 빛에 문을 연다.
November 27
Just one instant in a very high state can completely change a person's orientation to life, as well as his goals and values.
매우 높은 상태에서는 한 순간이 삶의 방향뿐만 아니라 개인의 목표와 가치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It can be said that the individual who was is no more, and a new person is born out of the experience.
과거의 개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Through hard-won progress on a dedicated spiritual path, this is the very mechanism of spiritual evolution.
헌신적인 영적 여정에서 힘들게 얻은 진보를 통하는 이것이 바로 영적 진화의 메커니즘이다.
November 28
Experientially, guilt is an operational 'reality" until the underpinnings of the ego are removed.
경험적으로, 죄책감은 에고의 받침대가 제거될때까지는 하나의 작동하는 실상이다.
Spiritual seekers are sometimes prone to look back critically on their past actions from their newfound spiritual position.
영적 추구자는 때때로 새롭게 발견한 영적 위치에서 과거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뒤돌아 본다.
All self-examination should be done with compassion, keeping in mind that past errors arose within a different context.
모든 자기-조사(영적 재고조사)는 과거의 오류가 다른 맥락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연민과 함께 행해져야 한다.
The best resolution of guilt is to rededicate oneself to God and one's fellow man, and to the forgiveness of self
and others.
죄책감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자신을 신과 동료 인간에게 재봉헌하고, 작은 나(self)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November 29
Wallowing in guilt is feeding the ego and is an indulgence.
죄책감에 빠지는 것은 에고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며 하나의 방종이다.
Therefore, there has to be the willingness to surrender it.
그러므로 그것을 내맡기려는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
November 30
As evolution expresses itself in gradations, some people will be farther along the road than others.
(영적) 진화가 단계적으로 드러남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갈 것이다.
When we see this simple fact, forgiveness and compassion replace anger, fear, hatred, or condemnation.
우리가 이런 단순한 사실을 볼 때, 용서와 연민은 분노, 두려움, 미움 또는 비난을 대체한다.
The willingness to forgive others is reflected in our own capacity for self-forgiveness and acceptance.
다른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려는 자발성은 자기-용서와 받아들임에 대한 우리 자신의 능력을 반영한다.
December 1
Q: What is a workable goal?
실행가능한 목표는 무엇인가요?
A: To verify spiritual truth experientially and to become it rather than just conform to it.
영적 진리를 경험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단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되는 것이다.
The process is an unfolding of discovery resulting in greater happiness and diminution of fear, guilt, and other negative emotions.
그 과정은 더 큰 행복과 두려움, 죄책감, 다른 부정적인 감정의 감소를 야기하는 발견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
The motive is inner development, evolution, and fulfillment of potential, which is independent of the external world.
그 동기는 외부세계와 무관한 내면 발견, (영적) 진화, 잠재력의 실현이다.
Life becomes progressive rather than just repetitive.
삶은 단순히 반복되기 보다는 진보한다.
All experience is of equal value and innately pleasurable so that life stops being an endless sequence of alternating pleasure and displeasure.
모든 경험은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타고난 즐거움이므로, 인생은 즐거움과 불쾌함의 끝없는 반복을 멈춘다. ?
With inner progress, context expands, resulting in greator awareness of significance and meaning-and, therefore, gratification of potential.
내면 진보와 함께 맥락은 확장되고 중요성과 의미의 큰 자각이 생기고, 그 결과 잠재력이 충족된다.
December 2
Human life offers the maximum opportunity for spiritual evolution.
인간의 삶은 영적 진화를 위한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한다.
Perception sees personal as well as social/political/ideational conflicts as obstacles to peace and happiness.
(에고의) 인식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이상적 갈등을 평화와 행복의 장애물로 본다.
In contrast, the spiritual Self sees perfection in the very same world.
반면에 영적 참나는 바로 그 세계에서 완전함을 본다.
December 3
As the payoffs of the ego are refused and surrendered, its grip on the psyche lessons, and spiritual experience progresses as the residuals of doubt are progressively relinquished.
에고의 보상이 거부되고 내맡겨짐에 따라 에고의 정신학습 장악력과 영적 경험은 진보하고, 그에 따라 의심의 잔여물은 점진적으로 포기된다. ?
As a consequence, belief is replaced by experiential knowledge; the depth and intensity of devotion increases and may
eventually supersede and eclipse all other worldly activities and interests.
결과적으로 믿음은 경험적 지식으로 대체된다. 헌신의 깊이와 강도가 증가하고 결국 다른 모든 세속적 활동과 흥미를 대신하고 퇴색될 것이다.
December 4
The basic purpose of spiritual work and dedication is to transcend the innate evolutionary limitations of the ego and thereby access and develop the nascent capacity of consciousness itself, which bypasses all the limitations of the ego/self.
영적 작업과 봉헌의 기본적인 목적은 에고의 타고난 진화적 한계를 초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에고/자기의 모든 한계를 우회하는 의식자체의 원초적 능력(nascent capacity)에 접속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Truth then presents itself by virtue of Divine Grace.
그러면 진리는 신성의 은총 덕분에 저절로 나타난다.
Divinity reveals Itself to those who call upon It in God's time.
신성은 때가 오면(God's time) 신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드러낸다.
The pace of spiritual evolution can seem slow, but spiritual endeavor is never futile.
영적 진화의 속도는 느리게 보일수도 있지만, 영적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게 된다.
Progress can become very sudden and very major in dimension and impact.
(영적) 진보는 매우 갑작스럽고, 차원과 영향력(dimension and impact)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것이 된다.
December 5
Spiritual evolution is a lifetime commitment and a way of life by which the world and all experience subserve spiritual intention.
영적 진화는 평생의 몰두이자 삶의 방식이다. 그것에 의해서 세상과 모든 경험이 영적 의도를 보조한다.
There is no greater calling than to choose to be a servant of God.
신의 종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큰 소명(calling)은 없다.
With spiritual progress, each increment is of equal importance-for, analogously, it is only through the removal of a single brick that an entire wall collapses, and the seemingly impossible becomes possible.
영적 진보와 함께, 각각의 성장은 동등하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벽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하나의 벽돌을 제거해야만 가능한 것과 유사하게, 불가능해보이는 것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December 6
Choose to be easygoing, benign, forgiving, compassionate, and unconditionally loving- toward all life, in all its expressions, without exception, including oneself.
자신을 포함하여 예외없이 모든 생명과 나타난 모든 것에 대해 느긋함, 상냥함, 용서, 연민, 무조건적인 사랑을 선택하라.
Focus on unselfish service and the giving of love, consideration, and respect to all creatures.
비이기적인 봉사와 모든 창조물에 대한 사랑, 배려, 존경에 초점을 맞춰라.
December 7
Value, from the ego's viewpoint, is an emotionalized mentalization, and Reality does not require mentalization.
에고의 관점에서 가치는 감정화된 정신화이며, 실상은 정신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With humility, one can honestly state and witness that everything merely "is as it is," independent of projected worth.
겸손함과 함께, 우리는 모든 것이 투사된 가치와 무관하게 단지 '있는 그대로' 일뿐이라고 정직하게 진술하고 목격할 수 있다.
Its intrinsic "value" is that it 'is"; that is, existence is complete within itself and is not needful of projected nominalization as "special."
실상의 본질적인 '가치'는 그것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특별함'으로 투사된 명사화는 필요하지 않다.
When the Divine Essence of All of Creation shines forth without obstruction, then the ego/ mind goes silent in awe.
모든 창조물의 신성한 본질이 장애물없이 빛날 때, 비로소 에고/마음은 경외심속에서 침묵한다.
December 8
Reality needs no agreement.
실상은 승낙이 필요하지 않다.
Reality is not an acquisition, but is instead a purely spontaneous, subjective realization when the positionalities of the
dualistic ego are surrendered.
실상은 획득의 세계가 아니며, 대신에 이원적 에고의 위치성이 내맡겨질 때의 순전히 자발적이고 주관적 각성이다.
December 9
Appreciate that every step forward benefits everyone.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단계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One's spiritual dedication and work is a gift to life and the love of mankind.
우리의 영적 봉헌과 작업은 삶에 대한 선물이자 인류의 사랑이다.
December 10
In true spiritual endeavor, no actual sacrifices are necessary or expected.
진정한 영적노력에서는 실제적인 희생이 필요하거나 기대되지 않는다.
Sacrifice in ordinary terminology means loss or even painful loss.
일반적인 용어로 희생은 상실 또는 심지어 고통스러운 상실을 의미한다.
True sacrifice really means the letting go of the lesser for the greater and is self-rewarding rather than depleting.
진정한 희생은 정말로 더 큰것을 위해 더 작은 것을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하며, 손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보상적이다.
December 11
Devotion dissolves fear, doubt, and hesitation; and it clarifies uncertainty.
헌신은 두려움, 의심, 망설임을 해체한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명확하게 한다.
Intention also becomes even stronger, as does trust in God.
신을 신뢰하는 것 만큼, 의도 또한 더욱 강해진다.
Then arise the inner decision to totally abandon oneself to God
그 다음에 자신을 완전히 신에게 내던지겠다는 내적 결단이 일어난다.
December 12
Truth prevails when falsity is surrendered.
거짓이 내맡겨질 때, 진리는 승리한다.
To do this, however, requires great dedication, courage, and faith, which are supplied by Divine inspiration in response to surrender.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커다란 봉헌, 용기, 신념이 필요하고, 그것은 내맡김에 대한 응답으로 신성의 영감에 의해서 제공된다.
The strigger is the consent of Divine Will.
그 방아쇠는 바로 신성 의지의 허락이다.
December 13
Great leaps in levels of consciousness are always preceded by surrender of the illusion that 'I know'.
의식수준의 큰 도약은 항상 '나는 안다'라는 환상의 내맡김에 선행한다.
December 14
The first illusion to surrender is the belief that there is such a thing as 'mind'.
내맡겨야 하는 첫번째 환상은 '마음'과 같은 것이 있다는 믿음이다.
Experientially, one can only state that thoughts, feelings, images, and memories come into one's awareness in an endless progression.
경험적으로 볼때, 생각, 느낌, 이미지 및 기억이 끝없이 진행하면서 자신의 자각안으로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다.
The word mind in therefore only a concept, as is the word ego.
그러므로 마음이라는 단어는 에고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개념일 뿐이다.
December 15
Trust in the love, mercy, infinite wisdom, and compassion of Divinity, which sees through all human error, limitation, and frailty.
사랑, 자비, 무한한 지혜 그리고 신성의 연민을 신뢰하라. 그것은 인간의 실수, 한계, 연약함을 꿰뚫어본다.
Place faith and trust in the love of God, which is allforgiving, and understand that condemnation and fear of judgment stem from the ego.
모든 것을 용서하는 신의 사랑에 믿음과 신뢰를 두고, 단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에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하라.
Like the sun, the love of God shines equally on all.
하늘의 태양처럼, 신의 사랑은 모두를 공평하게 비춘다.
Avoid negative dipictions(jealous, angry, destructive, partial, favoring, vengeful, insecure, vulnerable, contractual, and so forth) of God as an anthropomorphic projection.
의인화된 투사로서 신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묘사(질투하는, 화난, 파괴적인, 부분적인, 호의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자신없는, 연약한, 계약된 등)를 피하라.
December 16.
Traditionally, the relinquishment of the ego's programs has been described as arduous and difficult, requiring many lifetimes to accomplish.
전통적으로 에고 프로그램의 포기는 매우 힘들면서 어렵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lifetimes)이 필요하다고 묘사되어 왔다.
On the contrary, a profound humility and the willingness to surrender all to God at great depth make it possible for the transition to occur in a split second.
반대로, 깊은 겸손함과 모든 것을 신에게 아주 깊이 내맡기려는 자발성은 찰나의 순간에 전환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
Thus, the pathway to enlightment may be viewed as a slow process or a sudden one.
따라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하나의 느린 과정이거나 또는 갑작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 있다.
December 17
To conciously choose alignment with Divinity and truth is reempowering and shifts identity from the self to the Self, resulting in an increase in confidence, courage, and personal dignity rather than self-abaseent or self-denigration.
의식적으로 신성과 진리와의 정렬을 선택하는 것은 권한을 재부여하고, 작은 나에서 참나로 전환하여(shift), 자기-비하 또는 자기-부정보다는 자신감, 용기 및 개인 존엄성(personal dignity)을 증가시킨다.
Total surrender brings peace; partial or conditional surrender bring lingering doubt.
완전한 내맡김은 평화를 가져오고, 부분적이고 조건적인 내맡김은 지속적인 의심을 불러온다.
December 18.
Surrender of the personal will to the will(wisdom) of God(or Providence or Higher Power) signifies relinquishment of control.
개인적 의지를 신(또는 섭리 또는 높은 파워)의 의지(지혜)에 내맡기는 것은 통제의 포기를 의미한다.
One can expect the ego to resist doing so, and it invents excuses, counterarguments, and multiple fears in order to maintain illusory control.
우리는 에고가 그렇게 하는 것에 저항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고, 에고는 환상의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변명, 반론, 많은 두려움을 날조해 낸다.
The ego's positions are reinforced by pride as well as desire for specific results.
에고의 위치는 자만심뿐만 아니라 특정 결과에 대한 욕망에 의해 강화된다.
Thus, to the ego, to step back and invite the intervention of Divinity seems like a loss; wheres, to the spirit, it is definitely a win.
따라서, 에고에게는 한걸음 물러서서 신성의 개입을 초대하는 것이 마치 손실처럼 보인다. 반면, 영에게 그것은 확실한 승리다.
December 19
Truth is recognized.
진리는 지각된다.
It presents itself to a field of awareness that has been prepared in order to allow the presentation to reveal itself.
진리는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제시를 허용하기 위해 준비되어온 자각의 장에 나타난다.
Truth and enlightment are not acquired or achieved.
진리와 깨달음은 획득하거나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They are states or conditions that present themselves when the conditions are appropriate.
그것은 조건이 적절할 때 스스로 나타나는 상태 또는 조건이다.
December 20
Imperfection exists only in the mind's thoughts.
불완전함은 오직 마음의 사고에 존재한다.
No imperfection exists in December the world as it is.
12월(지금 이순간)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불완전함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December 21.
Ignorance does not yield to attack, but it dissipates in the light, and nothing dissolves dishonesty faster than the simple act of revealing the truth.
무지는 공격에 쉽게 굴복하지 않지만, 빛 속에서 그것은 쉽게 흩어진다. 그리고 진리를 드러내는 단순한 행위보다 부정직함을 더 빨리 용해시키는 것은 없다.
The only way to enhance one's power in the world is by increasing one's integrity, understanding, and capacity for compassion.
세상에서 자신의 파워를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온전성, 이해심, 연민의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December 22.
The absolute subjectivity of revealed truth precludes all considerations or uncertainties, which stem only from the ego.
드러난 진리의 절대적 주관성은 오직 에고에서 비롯된 모든 고려사항 또는 불확실성들을 배제한다.
When the ego collapses, all argument ceases and is replaced by silence.
에고가 무너질 때, 모든 다툼은 멈추고 고요해진다.
Doubt is the ego.
의심이 바로 에고다.
December 23.
The primary defect now is, as it always has been, that the design of the human mind renders it intrinsically incapable of being able to tell truth from falsehood. This single, most crucial of all inherited defects lies at the root of all human distress and calamity.
항상 그래왔듯이, 주된 결함은 인간의 마음(human mind)의 설계가 본질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타고난 결함의 단순하고, 가장 결정적인 것이 바로 인간의 고통과 재앙의 밑바탕에 있다.
December 24
The person who has found inner peace can no longer be intimidated, controlled, manipulated, or programmed. In this state, one is invulnerable to the threats of the world and therefore has mastered life.
내면의 평화를 찾은 사람은 더이상 위협을 받거나, 통제받거나, 조종되거나, 프로그램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세상의 위협에 취약하지 않으며 따라서 삶을 지배해간다.
December 25.
The energy field of love is innately gratifying in and of its own quality. It is discovered that love is available everywhere and that lovingness results in the return of love.
사랑의 에너지 장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의 특성으로 만족스럽다. 사랑은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으며, 그 사랑임은 사랑의 보답을 야기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Although love may start out as conditional, with spritual intention it become a way of life and a way of relating to life in all its expressions.
비록 사랑은 조건적으로 출발할지라도, 영적 의도와 함께 그것은 삶의 방식이 되며, 모든 나타난 것에서 삶과 관련되는 방식이 된다.
December 26
Q : How can one facilitate progress?
문 : 우리는 어떻게 영적 진보를 촉진할 수 있나요?
A : That is a natural curiosity. Choice result in proclivities that become habitual mind-sets of attention. Within each moment are all of the necessary elements for realization. Look for essence rather than just appearance.
답 : 그것은 자연스러운 호기심입니다. 선택은 주의집중의 습관적인 사고방식(mind-sets)이 되는 성향을 낳습니다. 매순간에는 (영적) 각성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있습니다. 단지 나타난 것보다는 본질을 추구하세요.
Everything is perfect if seen as it reality is. Everything is exactly the way it is 'supposed to be', whether it is shiny and new or rusty and dusty.
모든 것은 실상 그대로 보면 완벽합니다. 모든 것은 그것이 반짝이는 새것이든지 또는 녹슨 먼지이든지 상관없이 정확히 '원래의 의도 그 자체'여야 합니다.
Avoid adjectives, for they are all projected, mentalized qualifications. Later, you can even drop verbs and adverbs, for nothing is actually 'doing' anything; it just innately is.
형용사를 피하세요.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투사된, 정신화된 자격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당신은 동사와 부사마저 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어떤 것도 '행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단지 원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Transition is a phenomenon that stems from within the observer, who sees sequence as a verb. If seen in less than 1/10,000th of a second, everything appears to be statitionary.
전환은 연속적인 사건을 동사로 보는 관찰자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만약 1만분의 1초도 안되는 시간에서 보면, 모든 것은 정지된 것처럼 보입니다.
December 27
All reactions to life are subjective. There is nothing happening that is awful, exciting, sad, good, or bad. It is pointless to hold a position that catastrophes shouldn't 'happen' or that the innocent didn't deserve it, or isn't it awful, or it must be somebody's fault. With a broad view, one can remain unpertubered by either the content or the context of life. That requires giving up judgments, expectations, or sensitivities.
삶에 대한 모든 반응은 주관적이다. 끔찍하거나, 흥미롭거나, 슬프거나, 선하거나, 나쁜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재앙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거나, 순진한 사람은 자격이 없다거나 또는 끔찍하지 않거나 또는 누군가의 잘못임에 틀림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넓은 시야에서 보면, 우리는 삶의 내용이나 맥락에 의해서 동요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단, 기대 또는 민감성의 포기가 필요하다.
December 28
Persistent devotion to spritual truth and love allows for the dissolution of resistance.
영적 진리와 사랑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은 저항의 해체를 허용해준다.
December 29
Surrender is a constant process of not resisting or clining to the moment, but instead, continuously turning it over to God. The attention is thus focused on the process of letting go and not on the content of the 'what' that is being surrenderd.
내맡김(항복)은 순간에 저항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대신에 지속적으로 신에게 내맡기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따라서 주의 집중은 항복하는 '무엇'이라는 내용이 아니라, 놓아버림(letting go)의 과정에 집중된다.
질문, 묵상꺼리?
1. 항복이란 지속적으로 신에게 내맡기는 과정이다.
2. 자신의 묵상꺼리?
December 30
The sprit and the heart are one. It is the heart that is at one with God, not the mind. To discover one's own heart is to discovery God.
영(sprit)과 가슴(heart)은 하나다.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가슴이다. 자신의 가슴을 발견하는 것이 곧 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질문, 묵상꺼리?
1. 마음의 길과 가슴의 길
2. 신과 하나되는 것은 마음이 아니다 가슴의 길이다.
3. 자신의 묵상꺼리?
December 31
The truths learned have to be put into daily practice to be effective, and they exist beyond the words. If this is done, change takes place. The purpose of information is for it to be absorbed with familiarity and then mature into understanding.
배운 진리가 효과적이려면 매일 실천해야 하고 그 진리는 언어의 표현을 넘어 존재한다. 만약 이것이 행해지면, 변화는 일어난다. 영적 정보의 목적은 친숙해짐과 함께 흡수되기 위한 것이며, 결국 이해로 성숙된다.
질문, 묵상꺼리?
1. 배운 진리가 효과적이려면 매일 실천해야 한다.
2. 영적 정보의 목적은 친숙해짐과 함께 흡수되기 위한 것이다.
3. 자신의 묵상꺼리?
GLOSSARY(용어해설)
This glossary is a composite of edited excerpts from Dr. Hawkins's work:
이 용어해설집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작업에서 편집된 발췌문을 합성한 것이다.
Consciousness: 의식
Consciousness is the irreducible substrate of the human capacity to know or experience, to perceive or witness, and it is the essence of the capacity for awareness itself. It is the formless, invisible field of energy of infinite dimension and potentiality, and the foundation of all existence. It is independent of time, space, or location, yet all-inclusive and all-present.
의식은 알거나 경험하고, 인식하거나 목격하는 인간의 능력의 환원할 수 없는 기질이고, 그것은 자각 능력(awareness itself) 그 자체의 본질이다. 의식은 무한한 차원과 가능성의 형태가 없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 그리고 모든 존재의 기초다. 그것은 시간, 공간 또는 위치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에 존재한다.
Consciousness is the unlimited, omnipresent, universal energy field, carrier wave, and reservoir of all information available in the universe— and, it is the very essence and substrate of the capacity to know or cxperience. Even more critically, consciousness is the irreducible, primary quality of all existence. Consciousness is an impersonal quality of Divinity expressed as awareness and is nondualistic and nonlinear. It is like infinite space that is capable of awareness and a quality of the Divine essence.
의식은 무한하고 편재하는 우주적 에너지 장이자 반송파(carrier wave)이며, 이 우주에서 이용가능한 모든 정보의 저장고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알거나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의 바로 그 본질이자 기질이다. 좀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의식은 모든 존재의 환원할 수 없는 일차적 특성이다. 의식은 자각으로 표현되는 비개인적인 신성의 특성이며 비이원적이며 비선형적이다. 의식은 자각과 신성한 본질의 특성을 가능케 하는 무한한 공간과 같다.
Context: 맥락
The total field of observation predicated by a point of view. Context includes any significant facts that qualify the meaning of a statement or event. Data is meaningless unless its context is defined.
맥락은 하나의 관점에 근거한 관찰의 전체 장(total field)이다. 맥락은 진술이나 사건의 의미를 규정하는 어떤 중요한 사실을 포함한다. 만약 그것의 맥락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데이터는 무의미하다.
To "take out of context" is to distort the significance of a statement by failing to identify contributory accessory conditions that would qualify the inference of meaning.
'맥락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의미추론에 자격을 부여하는 기여 보조조건을 감별하지 못함으로써 진술의 중요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Duality: 이원성
The world of form characterized by seeming separation of objects, reflected in conceptual dichotomies such as "this/that," "here/ there," "then/now," or "yours/mine." This perception of limitation is produced by the senses because of the restriction implicit in a fixed point of view.
형상의 세계는 '이것/저것', "여기/거기", "그때/지금" 또는 "네 것/내 것"과 같은 개념적 이분법이 반영되어 그 대상이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한계의 인식은 그 감각(senses)에 의해 생성되는데, 고정된 관점에 내재된 제약때문이다.
Ego (or self with a small s): 에고
The ego is the imaginary doer behind thought and action. Its presence is firmly believed to be necessary and essential for survival. The reason is that the ego's primary quality is perception, and as such, it is limited by the paradigm of supposed causality.
에고는 생각과 행동의 배후에 있는 가상적인 행위자(imaginary doer)다. 에고의 존재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고 필수적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 이유는 에고의 일차적 특성이 인식(perception)때문인데, 이처럼 에고는 추정된 인과관계의 패러다임에 의해 제한된다.
The ego could be called the central processing and planning center; the integrative, executive, strategic, and tactical focus that orchestrates, copes, sorts, stores, and retrieves. It can be thought of as a set of entrenched habits of thought that are the result of entrainment by invisible energy fields that dominate human consciousness.
에고는 통합적, 실행적, 전략적인, 또한 조직하고, 대응하고, 저장하고, 검색하는 전술적 초점을 가진 중앙처리 및 계획센터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의식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에 의해 동반된 결과로 확립된, 일련의 사고습관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They become reinforced by repetition and by the consensus of society. Further reinforcement comes from language itself. To think in language is a form of self-programming. The use of the prefix “I” as the subject, and therefore the implied cause of all actions, is the most serious error and automatically creates a duality of subject and object.
사고 습관은 반복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강화된다. 추가적 강화는 언어자체에서 나온다. 언어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프로그래밍의 한 형태다. 접두사 '나'를 주어로 사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행위의 원인이 '나'라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 이것은 가장 심각한 오류이며 자동적으로 주체와 객체의 이원성을 창조한다.
Put another way, the ego is a set of programs in which reason operates through complex, multilayered series of algorithms wherein thought follows certain decision trees that are variously weighted by past experience, indoctrination, and social forces; it is therefore not a self-created condition. The instinctual drive is attached to the programs, thereby causing physiological processes to come into play.
다시말해, 에고는 생각이 과거 경험, 세뇌 및 사회적 힘에 의해 다양하게 가중치가 부여되는 특정 의사결정나무(certain decision trees)를 따르는, 이성이 복잡한 다층 알고리즘을 통해 작동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에고는 스스로 창조한 상태가 아니다. 본능적 충동은 그 프로그램에 결합되고, 이로써 (우리 몸의) 생리학적 과정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Enlightenment: 깨달음
A state of unusual awareness that replaces ordinary consciousness. The self is replaced by the Self. The condition is beyond time or space, is silent, and presents itself as a revelation. The condition follows dissolution of the ego.
깨달음은 평범한 의식을 대체하는 흔하지 않은 자각의 상태로 작은 나(self)는 참나(Self)로 대체된다. 그 상태는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하고, 침묵하며, 드러남으로써 현존 그 자체다. 깨달음의 상태에서는 에고의 해체가 뒤따른다.
Karma: 카르마
In essence, individual karma is an information package (analogous to a computer chip) that exists within the nonphysical
domain of consciousness. It contains the code of stored information that is intrinsic to, and a portion of, the spiritual body or soul. The core represents a condensation of all past experiences, together with associated nuances of thought and feeling.
본질적으로, 개인의 카르마는 의식의 비물리적인 영역 안에 존재하는 정보 꾸러미(컴퓨터 칩과 유사함)다. 카르마는 영체(spritual body)나 영혼(soul)의 일부이면서, 내재적으로 저장된 정보의 코드를 포함한다. 그 핵심은 생각과 감정의 관련된 뉘앙스(미묘한 차이점)와 함께 모든 과거 경험의 응축을 대표한다.
The spirit body retains freedom of choice, but the range of choices has already been patterned. Karma is linear, propagates via the soul, and is inherited as the consequence of significant acts of the will. Karma really means accountability, and, as cited in previous spiritual research, every entity is answerable to the universe.
영체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지만, 선택의 범위는 이미 패턴으로 정해져 있다. 카르마는 선형적이며 영혼을 통해 전파되고, 의지의 중요한 행위들의 귀결로 유전된다. 카르마는 실제로 책임을 의미하며, 이전의 영적 연구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존재는 우주에 대해 책임이 있다.
To summarize, as is commonly known, karma (spiritual fate) is the consequence of decisions of the will and determines spiritual destiny after physical death (the celestial levels, hell, purgatory, or the so-called inner astral planes [bardos]). Included also is the option of reincarnation in the human physical domain, which, by consciousness calibration research, can only be done by agreement with the individual will. So all humans have, by agreement, chosen this pathway.
요약하자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카르마(영적 운명)는 의지의 결정들의 귀결이며, 육체적 죽음(천상계, 지옥, 연옥 또는 흔히 말하는 내부 아스트랄계[중유]) 이후의 영적 운명을 결정한다. 인간의 육체적 영역에서 환생도 선택의 대상에 포함되는데, 의식 측정 연구에 의하면, 환생은 개인 의지의 동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동의에 의해서 이 길을 선택해 왔다.
In addition, consciousness research confirms that all persons are born under the most optimal conditions for spiritual evolution, no matter what the appearance seems to be.
또한 의식 연구에 의하면 외현(appearance)이 무엇이 될것인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영적 진화에 가장 적합한 조건아래 태어난다고 한다.
Linear: 선형적
Following a logical progression in the manner of Newtonian physics and therefore, solvable by traditional mathematics through the use of differential equations.
뉴턴 물리학 방법에서는 논리적 진행을 따르므로 미분 방정식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수학을 풀 수 있다.
Nonduality: 비이원성
When the limitation of a fixed locus of perception is transcended, there is no longer an illusion of separation nor of
space and time as we know them.
인식의 고정된 지점의 한계를 초월할 때, 더 이상 분리의 환상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의 환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On the level of nonduality there is observing but no observer, as subject and object are one. You-and-I becomes the One Self experiencing all as Divine. In nonduality, consciousness experiences itself as both manifest and unmanifest, yet there is no experiencer. In this reality, the only thing that has a beginning and an ending is the act of perception itself.
비이원성의 수준에서 관찰은 있지만 주체와 대상은 하나이기 때문에 관찰자는 없다. 당신과 나는 신성으로서 모든 것을 경험하는 하나의 참나가 된다. 비이원성에서, 의식은 자신을 나타난 것과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경험하지만 경험하는 자는 없다. 이러한 실상에서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은 인식 그 자체의 행위뿐이다.
Positionality: 위치성
The positionalities are structures that set the entire thinking mechanism in motion and activate its content. Positionalities are programs, not the real Self. The world holds an endless array of positions that are arbitrary presumptions and totally erroneous.
위치성은 전체 사고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고, 그 내용을 활성화하는 구조물이다. 위치성은 프로그램일 뿐이지 참나가 아니다. 세상은 하나의 끝없는 입장(positions)의 배열인데, 이는 자의적 추정이며 완전히 잘못이다.
Primordial positionalities are: (1) Ideas have significance and importance; (2) There is a dividing line between opposites; (3) There is a value of authorship-thoughts are valuable because they are "mine" (4) Thinking is necessary for control, and survival depends on control. All positionalities are voluntary.
원초적 위치성은 다음과 같다. (1) 견해(ideas)는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다. (2) 반대되는 것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다. (3) 저작권은 가치가 있고- 생각은 '내것'이기 때문에 귀중하다. (4) 생각은 통제를 위해 필요하고, 생존은 통제에 달려있다. 모든 위치성은 임의적이다.
Self (대문자 S): 참나
The Self is beyond, yet innate in, all form- timeless, without beginning or end, changeless, permanent, and immortal. Out of it arises awareness, consciousness, and an infinite condition of "at home-ness." It is the ultimate subjectivity from which everyone's sense of "I" arises.
참나(The Self)는 타고났지만 모든 형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시작이나 끝이 없고, 불변하고, 영원하며 불멸이다. 참나에서 자각, 의식 그리고 '집에 있음(home-ness)'의 무한한 상태가 발생한다. 그것은 궁극적 주관성인데, 참나로부터 모든 사람의 '나' 감각이 발생한다.
The Infinite Reality does not even know itself as "I'' but as the very substrate of the capacity for such a statement. It is invisible and all present. The Self is the Reality of reality, the Oneness and Allness of Identity. It is the ultimate "I-ness" of consciousness itself as the manifestation of the unmanifest. Thus, only can the indescribable be described.
무한한 실상은 '나'로서 그 자체를 알지도 못하지만, 그러한 진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의 바로 그 기질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현존한다. 참나는 실제의 실상이며, 정체성(Identity)의 하나임과 전부임이다. 참나는 나타나지 않은 것의 나타남으로써 의식 그 자체의 궁극적인 '나임(I-ness)'이다. 따라서, 단지 형언할 수 없는 것이 묘사될 수 있다.
Subjectivity: 주관성
Life is lived solely on the level of experience and none other. All experience is subjective and nonlinear; therefore, even the linear, perceptual, sequential delineation of "reality" cannot be experienced except subjectively. All “truth” is a subjective conclusion. All life in its essence is nonlinear, nonmeasurable, nondefinable. It is purely subjective.
삶은 오로지 경험의 수준에서 사는 것이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모든 경험은 주관적이고 비선형적이다. 따라서 '실상'의 선형적이고, 인식적이며 순차적인 묘사조차도 주관성없이는 경험할 수 없다. 모든 진리는 주관적인 결론이다.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비선형적이며, 측정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다. 그것은 순전히 주관적이다.
Truth: 진리(진실)
Truth is relative and only "true” in a given context. All truth is only so within a certain level of consciousness. For instance, to forgive is commendable, but at a later stage, one sees there is actually nothing to forgive. There is no "other" to be forgiven. Everyone's ego is equally unreal, including one's own.
진리는 상대적이고, 주어진 맥락내에서 오직 '참'이다. 모든 진리는 특정 의식수준내에서만 그렇다. 예를들어, 용서하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지만, 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실제로 용서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용서받을 '다른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의 에고는 자신을 포함하여 동일하게 실제가 아니다(unreal).
Perception is not reality. Truth arises out of subjectivity and is obvious and self-revealing. Truth is radical subjectivity. With the collapse of the illusions of duality, including the supposed "reality" of a separate "self," there remains only the state of the Infinite "I," which is the manifestation of the Unmanifest as the Self.
인식은 실상이 아니다. 진리는 주관성에서 나오며 명백하고 스스로를 드러낸다. 진리는 근본적인 주관성이다. 분리된 '작은 나'의 추정된 '실상'을 포함하여, 이원성의 환상의 붕괴와 함께, 참나로서 나타나지 않은 것의 나타난 것인 무한한 '나'의 상태만이 남게 된다.
Truth has no opposites, such as falsity or “off-ness". Nothing is hidden from the field of consciousness. The ultimate truth beyond is-ness, beingness, or any intransitive verb. Any attempt at Self-definition, such as "I Am That I Am" or even just "I Am”-is redundant. The ultimate reality is beyond all names. “I” signifies the radical subjectivity of the state of Realization. It is in itself the complete statement of Reality.
진실은 거짓이나 '꺼짐(off-ness)'같은 반대가 없다. 의식의 장에서는 어떤 것도 숨지 못한다. 궁극적 진리는 '존재함(is-ness), 있음(beingness), 또는 어떤 자동사를 초월한다. '나는 나다("I Am That I Am)' 또는 '나는 있다(I Am)'와 같은 참나를 정의하려는 어떤 시도조차도 불필요하다. 궁극적인 실상은 모든 이름을 초월한다. "나"는 각성 상태의 근본적인 주관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실상의 완전한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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