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8주일 강론(가해)
신이 사랑한 목소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은총이라면 주님을 믿는 가톨릭 신자가 된 것도 큰 은총입니다. 이 은총을 은총으로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남의 권유에 의해서 마지못해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주위의 사람들, 친구나 친척들에 의해서, 혹은 태중 교우로 신자가 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주님께서 성령의 은총으로 보잘것없는 나를 불러주셨다는 사실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나라에 초대받은 이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체면 때문에, 눈치 때문에 남의 잔칫상에 앉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기쁨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초대의 응답은 곧 그 초대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어도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 즉 함께 있어도 기쁘지 아니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어도 마음에서가 아닌 겉치레에서 나오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22, 1-14)의 말씀은 “하늘나라의 잔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잔치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누릴 기쁨의 잔치를 미리 맛보게 하고 있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았으나 초대에 응하지 않은 신자들은 교만과 독선과 이기주의에 빠져 초대받은 기쁨을 전혀 모르는 냉정하고 몰인정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즉 마음의 문을 다고 자기 집안일이나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는 자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자들이 초대를 거절하자 거리에 나가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조건없이 초대하는 것은 초대가 곧 어떤 특정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열려있는 개방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초대의 보편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임금님의 초대에 응할 수 있고 초대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조건 없는 초대라 하더라도 초대에 응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예의는 손발을 깨끗이 씻고 예복을 갖추어 입는 일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초대받은 자로서 예모를 갖추지 못해 추방되는 것은, 아무리 모든 이를 초대한다 하더라도 자격이 결여된 자는 잔칫상에 앉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996년 11월 17일 독일의 라이트 헤비급 세계챔피언 헨리 마스케의 은퇴경기가 있던 날,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눈을 감은 남자가수의 손을 잡고 등장했습니다. 장내는 술렁거렸습니다. “저 장님가수는 누구지?”, “대체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 은은한 선율이 흘러나오자 두 가수는 눈빛대신 서로의 마음을 맞춰가며 『time to say goodbye』라는 곡을 불렀습니다. 이후 경기가 시작되고 헨리 마스케는 안타깝게도 판정패를 당하고 아쉬움과 미안함에 링 위에서 내려오질 못하자 2만 2천 명이나 되는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를 위해 다시 한 번 『time to say goodbye』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헨리 마스케와 팬들을 감동시킨 이 노래는 독일 음반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유럽을 거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이날 노래를 부른 서른여덟의 맹인가수 안드레아 보첼리(1958~)는 이른바 국제적인 스타로 뜨게 되었습니다.
선천성 녹내장을 안고 태어나 12세 때 불의의 사고로 완전히 시력을 잃어 비록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고자 했던 안드레아 보첼리. 수많은 좌절과 시련, 궁핍한 생활과 장애인이라는 편견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전 세계가 사랑하는 음악가가 되었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가톨릭 성가 및 종교음악에도 몰두하여 바로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유명 종교음악들을 모아 앨범에 담기도 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제게 눈 대신 목소리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2015년 10월 25일 연중 제30주일 대구주보 5면]
안드레아 보티첼리는 자신의 역경을 극복하고 하느님이 주신 목소리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도 어려움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자신이 놓인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 오히려 역경을 극복하고 함께 사는 이웃들과 사랑과 정을 나누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비록 막노동을 어렵게 농사를 짓고 험한 일을 하는 자라도 자신의 처지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기쁘게 살 때, 이렇게 사는 삶은 부귀 영화와 학식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평불만 속에서 살아가는 삶보다는 주님 나라에 더 가까이 가 있고 그분의 초대에 합당한 예모를 갖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초대에 응한다고 다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늘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삶, 감사의 삶을 살고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며 살 때 거기에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은 자로서의 예모를 갖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 인간 사랑이 하느님 사랑으로 바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합당한 삶을 살 때에 이것이 바로 초대받은 자로서 예모를 갖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