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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감사
제목 : 바른 행위로 드릴 감사의 제사
성경 : 시 50:16~23
찬송 : 588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0707 낙양교회 맥추감사주일 낮 예배
시 50: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시 50: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시 50: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시 50: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시 50: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시 50: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시 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오늘은 맥추감사 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바른 행위로 드릴 감사의 제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해 드리겠습니다.
탈무드에 아주 귀한 명언이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을 하나님께서 만들지 아니한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이미 불행으로 벌하셨기 때문이다." 감사할 줄 모를 때 벌써 그는 불행이라는 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다고 감옥에 보내는 법은 없지만 그는 벌써 불행이라고 하는 심판을 받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감사 할 줄 모르는 것만큼 더 큰 불행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도(욥1:21), 다니엘도 모든 상황을 감사로 해석했습니다(단5:10). 진정한 감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시69:30,31). 감사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시50:23). 감사하는 자에게 더 주신다고 하였습니다(눅17:11-19). 시편 49편 20절에서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의 조건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교만한 마음, 남과 비교하기, 마음속 욕망 등이 감사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도 입원하기 전에는 크게 아파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그렇게 깊이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약 잘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하는 말을 듣고 이제는 조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중에 10년 전부터 파킨슨병이 와서 치료받는 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에는 친구들에게도 쉬쉬했는데 이제는 나이도 들고 그래서 자신이 그런 병으로 치료받고 있다고 이제 밝혀서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건강함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첫째, 감사와 불평도 습관입니다. 기왕이면 감사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둘째,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깨닫는 자가 많이 감사하는 법입니다.
셋째, 기도하면 감사가 더 넘치게 됩니다. 기도는 원망을 감사로 만드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넷째, 감사는 내 인생을 역전시켜 줍니다.
불평하면 불행이 평생 따르고 원망하면 원 없이 망하게 됩니다. 감사는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는 통로입니다.
빛에서 멀어질수록 어둠은 짙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 자들은 죄악의 어두운 길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한 행실을 고발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평가와 책망을 받게 되리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릴 때 어떤 모습으로 전락하게 될까요?
√말과 행실이 다른 신앙의 소유자가 됩니다!
시편 저자는 어떤 사람이 악인인지 가르쳐 줍니다. 악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일상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시편 저자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 말씀을 불필요한 짐처럼 던져 버린다고 고발합니다.
√시 50: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시 50: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시 50: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시 50: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시 50: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악인은 겉과 속이 다른 이들로,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고 말씀을 버린 자들입니다. 그들은 도둑질, 간음, 거짓말, 형제 비방 등을 행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잘 알고 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말씀을 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이런 모습들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법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기로 엄청난 이득을 본 공직자가 어느 교회 장로라는 기사를 접하기도 하고, 커다란 예배당 건물을 지으면서 불법을 저질러 지역 사회에 불편을 끼치는 일들도 우리 귀에 들려옵니다. 어떤 교회는 치유하는 교회라고 이름을 지어 큰 교회가 되었는데 치유가 아니라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들의 간증이나 신앙적 언어를 듣거나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는 신자들입니다. 그들이 이룬 성취와 화려한 성공이 일견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고백뿐만 아니라 순종하는 행실을 감찰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에 불순종하는 신자들과 교회에 대해 악하다고 평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으로 행하는 구체적인 순종이야말로 영적인 예배라고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잠잠히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겔 18:21~23).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기다림과 침묵을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때가 되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 선악 간에 상과 벌을 받을 것입니다(고후 5: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 불순종의 행실이 발견된다면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해야 합니다. 위선적인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릴 때 하나님께 대한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됩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시 50: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불순종과 불법을 보고도 가만히 계신다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왜곡시켰습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입술의 고백만으로도 만족하신다고 생각하거나, 사랑이 많아서 어떤 잘못이나 허물도 눈감아 주신다고 믿어 버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움을 일부러 외면하고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허상의 하나님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잘못된 행실을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자비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반드시 악을 드러내고 심판하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와 찬송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초점을 맞추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함께 강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 지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함께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기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잡힌 지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면 결국 불순종의 나락으로 빠집니다. 지금 이순간이 참된 신앙으로 돌이키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우리는 악해져 더 많은 죄를 지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에서 떠나 헛된 종교 생활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 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악인을 ‘하나님을 잊은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잊는’(사카흐)것은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의적이고 자의적으로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잊는다는 표현은 또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사건들을 잊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던 사건을 기억할 것을 지속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7: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신 24: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신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하나님의 구속 사건을 잊는 것은 은혜의 기억들을 망각하여 감사할 마음이 사라졌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악인들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하십니다. 그들이 계속 죄의 길을 걷는다면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죄인들을 찢어버리시겠다는 표현에서 사자에 비유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심판이 주저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자는 주저 없이 생명을 끊어버리는 짐승이기 때문입니다(시 7:2).
23절은 14~15절 말씀을 반복한 것입니다.
시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1~22절에 드러난 악인들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하고(21절),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22절). 이 두 가지 태도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생각하라’(다마)라는 단어는 예배와 연결됩니다.
시 48:9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예배 중에 하나님이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것을 지금의 경험으로 다시 현재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생각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그들의 교만함을 드러내는 것에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잊음은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의 역사를 잊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셨던 은혜의 사건들을 모두 망각해 버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사건과 그것을 기억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바르게 행동하는 삶에서 나오는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두 개의 가르침이 23절에서 나옵니다.
첫째,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에게 14절에서 한 번 말씀하신 것을 23절에서 다시 강조합니다. 제사의 근본정신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전 인격을 하나님께 드릴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둘째,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자신들의 삶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그들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감사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함으로 예배할 때 기뻐하십니다. 감사는 성도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기리는 구체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감사로 예배하기까지 전제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구속하실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그분의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구원으로 응답하십니다. 구원을 경험한 성도는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가득 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