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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예수님
마태복음 8장 1-13절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라고 할지라도 태풍 중심부에서 반경 10여 Km 이내에는 바람이 강하지 않습니다. 이 지역을 태풍의 눈이라고 합니다. 그 태풍의 눈은 주변은 강력하게 바람이 불지만 기상 현상이 매우 평온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강한 고난이라도 그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계시면,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소식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적이 소개됩니다(7-9장). 이 열 가지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본문에서는 나병환자와 이방인 백부장 하인을 고친 사건이 나옵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산상보훈에서 전하셨던 예수님께서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시는 내용입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1-4)
우리의 상처를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실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상처와 치부를 숨기지 않고 주님 앞에 드러내는 용기가 치유를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몸을 친히 만져 주시면서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1-4)
예수님께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산상보훈을 가르치시고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놀란 많은 무리가 그분을 쫓았습니다. 예수님 권세의 실제는 병을 고치시고 축사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는 대목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은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생이 회복되는 장면을 맨 앞에 배치해서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는 목적과 결과를 선명하게 드러내십니다.
(1)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1)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때에 한 나병환자가 산에서 내려오시는 주님 앞에 나와서 엎드렸습니다. 당시 나병환자는 마을에서 추방되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끊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은 살인죄로 간주하여 돌로 쳐 죽였습니다. 레위기 13-14장 규정에 따라 나병환자들은 부정한 자들로 규정되었으므로 공동체 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질병의 상태가 사라지면 제사장에게 검사를 받고 적합한 예물과 정결 예식을 거쳐서 정결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정결한 공동체나 개인에게 접근할 수 없고 사람을 만나면 접촉이 불가능하도록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소리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음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는 내어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손을 뻗으면 다는 위치까지 온 것은 율법을 어긴 행위입니다. 여기서 나병환자가 보여준 믿음은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권위를 믿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예수님(2-3)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치유하시는 권위를 확신했지만,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2)라고 치유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믿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참된 믿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요구에 의해서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데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나병은 깨끗하게 되는 것으로 3번 반복해서 묘사됩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부정한 상태인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뻗어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으로 치유하기를 원한다는 뜻을 표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정의 감염이 되지 않도록 도리어 거룩함을 전염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3)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즉시 오랜 저주에서 해방을 맛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만이 나병을 치유할 수 있었지만, 이제 예수님 자신이 치유할 수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가 치유됨으로 제사장에게 가서 나은 몸을 보여주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증거로 드리라고 지시합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된 후, 정결한 공동체에 들어가기까지는 8일이 소요됩니다. 레위기 14장에서 피부병에서 회복된 사람은 제사장에게 정결한 비둘기 두 마리를 들고 갑니다. 그 중 한마리를 잡아 피를 신선한 물과 혼합한 다음이 피를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사용해서 병에서 깨끗하게 된 사람에게 뿌립니다. 또 다른 새는 산채로 날려 보냈는데, 이는 사회와 사람을 괴롭힌 문제를 가져가게 하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통해서 더 나은 의와 그것을 행하는 의미를 말씀하신 후에, 나병환자가 치유 받는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하늘나라의 의가 긍휼을 베푸는 것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늘나라는 회복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긍휼을 통해서 일그러진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 하늘나라의 복음입니다.
깨끗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나병환자의 비참한 모습은 나병과 죄의 관련성을 떠올립니다. 사람의 모습을 일그러지게 만드는 죄에서 반드시 해방되어야 하며 구원을 받는 길은 예수님의 긍휼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땅에서 가장 부정한 자인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가졌던 신뢰와 확신은 마태복음에서 ‘잃은 자들’로 하여금 어떤 여건 속에서도 예수님의 권위에 의지해 나오도록 격려합니다. 부정한 나병환자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왔고, 예수님께서는 그와 거리를 좁히십니다.
새 시대에는 하나님과 부정한 자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오는 자는 정결한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침묵을 경고하신 예수님(4)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 치유받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이 명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혹은 민족주의적 해방자로 인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의 사역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옴과 함께 원치 않는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위험성을 알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에게 율법이 규정해놓은 예물을 드리라고 나병환자에를 지도하는 예수님의 모습(레 14:10이하)은 그가 레위기 14장이 정해놓은 정결 규례를 따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방인 하인을 고쳐 주신 예수님(5-13)
믿음이란 예수님의 권위와 그 권위에서 나오는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늘나라를 상속 받는 조건입니다. 그 나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갈 백성의 자격을 알 수 있습니다.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5-13)
하늘나라는 유대인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에는 백부장과 같은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본문은 이제 또 다른 믿음의 사람인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 사건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자신의 문제도 아닌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호소하고 나왔습니다.
(1) 한 백부장과 만난 예수님(5-7)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자 한 백부장이 다가와 간청합니다. 100명의 보병 군사를 이끌었던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로마인이었습니다.
백부장이 자기 종의 치료를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의 치유하는 권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차례에 걸쳐 그의 믿음을 언급하십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응답하십니다. 백부장을 만나 주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시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능력입니다.
(2) 백부장의 반응과 칭찬(8-10)
예수님께서 직접 방문하여 치유하시겠다고 반응하시자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으니 오지 말고, 말씀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말씀만 하셔도 종이 나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백부장은 권위 있는 예수님을 맞이할 자격이 없으니 말씀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의 말인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9)라는 백부장의 말에서 증명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고 말씀만 하셔도 종의 병이 낫게 될 이유를 자신의 직업 경험을 통해 설명합니다.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치유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말을 듣고 매우 놀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이 정도의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3) 종의 치유하신 예수님(11-13)
본문에서는 이방인의 믿음과 그 나라의 아들들에게 있는 불신을 대조하면서 누가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인지를 밝힙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와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식탁에 앉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식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글허게 기대하는 것이며 그들은 메시아의 잔치에 참여해서 먹고 즐길 것이라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이방인들이 아니라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모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11절에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라고 하신 말씀에, 그곳에 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으신 종말론적 새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조상들과 함께 메시아의 만찬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동서로부터 와서 잔치에 참여할 것이지만, 본 나라 유대인의 자손들은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계기로 구속사를 설명하십니다. 믿음은 이방인을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만들고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장벽을 무너뜨립니다.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이 아니며 백부장과 같이 오직 예수님의 권위를 믿는 자들이 하늘나라 잔치인 메시아 잔치에서 이스라엘 조상들과 함께 연회를 즐길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백부장 정도의 수준에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권위에 직접으로 같은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웃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예수님께 있음을 확신하는 데까지 나아갈 때 참믿음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환자는 자신을 대신해서 간청한 주인의 믿음 때문에 치유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치유를 경험한 백부장과 같은 사람들이 마태복음에서 이어진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는 말씀하신 분에게서 나옵니다. 이방인 백부장은 자신의 권세에 비추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종을 고쳐 주려고 하시자 백부장은 말씀만으로 자신의 종을 고쳐 주시길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비록 직접 오시지 않아도 절대적인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계시기에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질병이든 귀신이든 그 어떤 악한 세력도 즉시 떠날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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