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복음살이]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
2004년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역대 교황들의 회칙과 연설 등을 포함한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사회적 가르침을 모아 주제별로 정리한 <간추린 사회교리>를 발표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간추린 사회교리>의 제1장인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사회교리의 핵심이 현대 세계에서 어떻게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라면, 우리는 먼저 우리 인간을 사랑의 계명을 통해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세우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제1장은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해방 활동에 대한 체험을 고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무상으로 주셨습니다. 이러한 무상성을 체험한 인간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자신이 받은 은총을 이웃과 나누게 됩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하느님의 은총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특히 이집트에서의 해방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느님의 무상의 행위에 대해 ‘계약’으로, 즉 ‘십계명’으로 응답하도록 요청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은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 대한 정의와 연대라는 사회적 의무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구약의 안식년 법(7년 마다)과 희년(50년 마다)의 규정 역시 빚을 탕감해주고 노예를 해방하고 땅을 돌려주는 규정을 통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무상의 행위와 정의로운 나눔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줍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인간은 이처럼 하느님의 무상 행위를 보여주는 표지이자 효과적인 도구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이런 사랑에 등지고 자신의 삶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는 인간의 불복종은 인간 내면의 일치, 남녀의 친교,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조화를 파괴했습니다. 파괴된 친교를 회복하려는 하느님 사랑의 계획은 이제 성자의 파견으로 이어집니다.
“서로 사랑하라”하느님 백성의 삶의 법칙
둘째로,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성자 그리스도는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드러내십시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긴밀한 친교를 이루시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해방과 자비, 그리고 하느님의 무상성의 사랑을 펼치십니다. 성령께서도 우리 마음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는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의 무상의 은총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하느님 백성의 삶의 법칙입니다. 이 계명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에 영감을 불어넣고 이 관계를 정화하고 들어 높였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인격체이기에 인격 상호 간의 친교로 부름 받았습니다. 인류 가족은 이 계명에 따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긴밀히 유대를 형성하고 의존하면서 ‘친교’를 이루어야 합니다.
셋째 부분은 하느님 사랑의 계획안에 있는 인간에 대해 가르칩니다. 사랑의 친교를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기원과 목표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목헌장 24항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삼위일체와 인간의) 이 유사성은 지상에서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바라신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루카 17,33 참조).” 즉 하느님을 닮은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사랑과 정의와 연대의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신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남녀의 상호보완성은 세상 안에서 삼위일체적 사랑의 표상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과 인간 전체(全人)를 위한 보편적이고 완전한 구원을 전해주셨습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성령의 기쁨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고 성부와 영원한 생명의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습니다. 이 구원의 부르심은 하느님 자녀들의 아낌없는 응답과 수용을 요구합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은 이런 믿음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며, 흔들리지 않는 희망으로 하느님 사랑에 응답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보편적인 것이며 완전합니다. 이 구원은 인간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 확고한 유대를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첫째가는 계명은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마르 12,29-31 참조).
사랑의 계명을 받은 인간의 내면에는 정의와 연대에 대한 의무와 하느님 계획에 부합하는 사회 경제 정치 생활을 성장시킬 의무가 뿌리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제자들은 먼저 그리스도와 동화됨으로써 내적 변화와 회개를 겪고 나서 이웃에 대한 책임과 지속적인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활동은 오만과 지나친 자기애로 날마다 위기에 봉착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정화되고 완성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셔
마지막 부분은 하느님 계획에 대한 교회의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게 하신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인간 초월성의 표지이며 보루”입니다(사목헌장 76항).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구원을 선포하고, 하느님과의 친교, 인간들 사이에 친교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현세적 차원은 온 인류가 복음적 가치들을 삶에 구현하고, 성령의 활동에 열려 있는 것이지만, 종말론적 완성을 지향하므로 교회는 현세의 정치공동체와 구별되고, 어떤 정치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궁극적인 소명을 드러냄으로써 인류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데 관심을 가집니다.
하느님께서는 개별 인간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요구에 맞게 사회관계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맡겨진 과제로서 복음의 영감을 받아 성찰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 세상과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진리와 자유의 씨앗을 함께 추구하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완성과 세계를 개혁하는 근본 법칙은 사랑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이 사랑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으며, 인간관계를 움직이는 모든 힘의 궁극적인 규범이 됩니다. 교도권은 시대의 징표가 요구하는 해답을 제시하면서 무엇보다 세상의 변화의 가장 강력한 도구인 인간들 사이의 상호 사랑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죽음을 넘어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확고한 종말론적 희망은 현세의 삶에 필요한 활동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화시킵니다. 인간의 존엄, 형제애, 자유 등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이 지상에 널리 퍼져 있는 좋은 것들은 더욱 광채가 더해져서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간의 완전한 실현은 역사 안에서 전개되고, 다른 사람들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 관계는 정의와 평화 안에서 세상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 덕분에 완전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언제나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지만,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은 그 자체로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궁극적으로 이바지 하는 의의와 효력을” 지니기 때문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8항).
이런 활동은 약속된 나라를 우리 시대에 미리 맛보게 해 줍니다. 이처럼 하느님 사랑의 계획은 구세주 그리스도와 닮음으로써 은총과 영광으로 불림 받은 인간이 사랑의 계명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살이] 교회의 사명과 사회교리
2011년 주교회의에서 12월 첫째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정한 이후로 한국 교회 내에 사회교리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었지만 여전히 사회교리에 대해 생소하게 여기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레오13세 교황이 1891년 <노동헌장>을 반포한 이후로 교회는 100여 년 동안 복잡한 사회 문제를 복음의 빛으로 고찰 해 왔고, 1992년에 교황청에서 공식 발간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대폭 수용되었지만 정작 한국 교회의 교리서들은 2004년 이후에야 사회교리를 제대로 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교회의 사명과 사회교리가 서로 어떤 관계인지 <간추린 사회교리> 제2장 ‘교회의 사명과 사회교리’가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 크게 1부, 2부, 3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봉사자”로 세상 한가운데 존재
우선 1부에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복음화’의 도구로서의 사회교리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자유와 진보를 위한 모든 참된 활동과 노력을 장려하고 지지”하면서 “구원의 봉사자”가 되어 세상 한가운데 그리고 역사의 구체적 상황 안에 존재합니다.
“인간 문제의 전문가인 교회”는 “사회 교리로 복음을 선포하고 사회관계의 복잡한 구조 안에 복음을 현존”시켜 인간의 요구를 돌봄으로써 “선교와 구원 활동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내리는 결정이 서로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교회는 그런 결정에 무관심하지 않으며 특히 도덕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교회는 정치, 경제, 노동, 법률, 문화 등이 단지 “세속적인 지상의 실재” 만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과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은 인간이며 사회는 바로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회교리로써 그리스도의 “자유와 구원의 메시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인간 역사 안에 현존하게” 만듭니다. 교회는 인간의 품위를 알리고 “하느님의 지혜에 부합한, 정의와 평화가 요구하는 바”를 가르칩니다. 현대인에게 울려 퍼지는 복음인 사회교리는 “성령에게서 비롯되는 진리와 은총의 효력”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을 사랑, 정의, 자유, 평화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즉 복음화란 복음의 의미와 힘을 “인간 마음에 불어넣어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인간다운 사회를 증진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구속은 분명은 “초자연적 질서에 속”합니다. 그러나 초자연적 질서는 자연계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를 더욱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피조물이나 인간질서는 신앙과 은총의 초자연적 질서와 무관하지 않고 오히려 연결되고 드높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교리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복음화 사명
그러므로 “정의, 자유, 발전, 민족들의 관계, 평화” 등 “인간 공동체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느 것도 복음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복음화 되어야 할 인간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구체적인 존재이기에, 복음화에는 정의와 평화로 참된 인간 발전을 증진시켜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사회교리는 “그 자체로서 복음 선교를 위한 도구적 가치”를 지니면서, 복음의 메시지가 새로운 사회 환경을 만날 때 마다 새롭게 생겨납니다. 사회교리는 “교회가 말씀의 봉사직과 예언직을 수행하는 특별한 방법”이며 “사회교리를 가르치고 보급하는 것은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속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부차적인 활동이 아니라 “교회의 봉사 직무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 그리스도를 선포할 교회의 고유한 권한으로 말하는” 종교적 사명을 수행합니다. 즉 교회는 인간 공동체에 이바지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지, 각 영역의 전문적인 문제에 개입하거나 사회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체계나 모형 등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교회의 사회교리는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인간 해방의 메시지에서 나오는 권위를 가지고 “사회와 사회 구조에 영향을 끼치는 일”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사회교리를 통해 수행하는 교회의 의무와 권리의 첫째는 “구원의 길에 있는 인간을 돕는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인류에게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될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것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삶의 경험과 책임과 관련됩니다. 아무리 그것들이 세속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에 참여하라고 부르시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산, 노동, 사업, 금융, 무역, 정치, 문화, 사회 매체 등의 분야에서 “복음의 해방 말씀이 울려 퍼지도록 사회 상황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교회의 권리”이자 동시에 주님이 교회에 부여한 의무입니다.
셋째로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인간의 기본권이나 영혼들의 구원에 요구되는 한도만큼” 사회질서에 관한 것까지 어떤 인간 사항들에 대해서도 윤리적인 판단을 내릴 소임이 있습니다. 복음과 신앙은 공적인 삶에서 드러나고, 불의나 죄악의 결과도 사회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종교는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사적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지표
이어 2부에서는 교회의 사회 교리의 성격을 다시 6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사회교리는 윤리신학의 영역에 속하며, 인간 실존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신앙의 빛과 교회 전통의 빛 안에서” 주의 깊게 고찰한 결과를 면밀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교리는 세상의 실재를 해석하고,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관한 복음적 가르침에 그 실재들이 부합하는 지를 규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행동지표가 됩니다. 사회교리의 근본 토대는 성경의 계시와 교회 전통이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신앙은 이성과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성을 통하여 신앙은 계시된 진리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다른 진리와 통합시킵니다.
둘째, 사회 교리는 모든 다양한 학문 분야의 결실을 이용하고 대화합니다. 특히 교회는 철학의 기여를 인정하며, 사회 교리의 기본 개념들, 즉 “인간, 사회, 자유, 양심, 윤리, 법, 정의, 공동선, 연대성, 보조성, 국가와 같은 개념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적절한 도구”로 이해합니다.
교회는 인문 및 사회 과학 등 다른 학문 분야들 덕분에 사회 안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욱 정확히 할 수 있고 동 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신앙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하고 사회 안에서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셋째, 사회교리를 만들고 전파하고 가르치는 주체는 교회이므로 사회교리는 교회에 속하며 교황과 주교들에게 부여된 교도권의 활동입니다. 따라서 사회 교리는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에 속하는 만큼 이와 동등한 위엄과 권위를” 지니며, 신자들은 이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사회교리의 첫 수용자는 교회 공동체 전체
넷째, 사회교리의 대상은 “구원으로 부름 받은 인간,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보살핌과 책임에 맡긴 인간”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인간의 사회생활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정의와 사랑의 관계의 수준은 궁극적으로 얼마나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고, 평화로운 관계를 추구하고 보장하는 가에 달려있음을 잘 압니다. 교회는 이런 가치와 판단 기준, 행동 규범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또한 불의와 폭력, 인권 침해, 특히 약자에 대한 권리 침해에 대하여 고발하고 사회 정의를 추구합니다. 사회교리는 복음화와 구원이라는 종교적인 목적과 함께,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서의 해방과 “인간 전체(全人)와 전 인류의 발전”이라는 도덕적인 목적을 지닙니다.
다섯째, “양심에 호소하여 사회에서 정의와 사랑의 의무를 인식하고 완수하게” 하는 사회교리의 첫 수용자는 교회 공동체 전체입니다. 사회교리는 또한 선의를 지닌 만인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써 “복음의 빛으로 사회를 비추고 모든 인간을 조명함으로써” “인간의 깊은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게” 하고, “인간의 잠재력과 인간답게 만드는 힘을 깨닫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교리는 보편 가치를 바탕으로 삼는 교리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대의 사건에 참여하여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쇄신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현세의 변천하는 상황에 대처하여 쇄신의 원천인 복음에서 자극을 받아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살이] 사회교리 문헌의 역사와 특징
1891년 5월15일 레오 13세 교황이 산업화에 따른 사회 문제, 특히 노동자의 인권과 국가의 책임 등을 다룬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한 이후, 특정 시기의 주요 사회 문제들을 교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회교리 문헌의 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태>는 교황의 사회회칙 또는 교회의 사회교리 문헌의 효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은 임금 노동자와 사용주와의 계급 갈등, 사유재산권,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와 인권 침해, 국가의 개입과 한계, 중간 단체의 기능과 교회의 역할 등을 다룬 <새로운 사태>는 이후 지속적으로 발표되는 사회교리 문헌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의 사회 활동에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새로운 사태>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5월호 참조).
1931년 비오 11세 교황은 <새로운 사태> 반포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40주년>이라는 회칙을 반포하였는데 여기에는 1914-1917년 사이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과 혼란, 그 이후 독점 자본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다 1929년 대공황을 초래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시기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서유럽 전체에 사회주의 물결이 휩쓸면서 자본주의는 흔들리고,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으로 결사의 자유가 위협받던 때였습니다.
<40주년>은 <새로운 사태>의 주요 가르침을 다시 확인하면서 특히 임금은 노동자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임금 계약에서는 단체협약을 하되, 기업의 형편과 공공의 경제적 복지도 고려하도록 권고합니다. 회칙은 ‘새로운 사회 질서의 재건’을 위해 계급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정의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또 이를 위해 국가는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노동조합과 직능 단체 등 자발적인 중간 단체들을 육성하고 사회보장제도 및 빈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 다뤄
1939년에 비오 11세의 뒤를 이은 비오 12세 교황은 사회 회칙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성탄 라디오 담화’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중요한 발언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는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심각하게 흔들린 국제 질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국가의 법과 체제가 자연법적 도덕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재임한 요한 23세 교황은 두 개의 사회 회칙을 반포하였습니다. 당시 세계는 핵무기 증강, 제3세계의 독립 국가 건설,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폭발적인 세계인구 증가, 도시화로 인한 농촌의 피폐, 빈부 격차의 심화 등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1961년 반포한 <어머니요 스승>에서 공정한 임금 개념을 확장시켜, 공정한 임금을 위해 가족의 생존뿐 아니라, 사회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전 사회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완전 고용’과 ‘사회복지제도’까지 고려하도록 촉구합니다. 또한 제3세계의 빈부 격차 해소와 참된 발전을 위해 경제개발 계획이 정의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지적합니다. 또한 도시와 농촌간의 불균형을 감소시키고 교육 및 문화 등 공공을 위한 혜택이 균등하게 전달되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회칙은 교회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선의를 지닌 모든 이와 협력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가르칠 것을 촉구합니다.
1963년 <지상의 평화>에서 요한 23세 교황은 핵 확산 시대에 군비 축소와 평등한 국가 간의 협력 관계 등 평화 문제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삼았습니다.
또한 지상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하느님이 설정하신 질서”를 존중할 것을 촉구하고,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 및 인간의 존엄에 대해 강조하였으며, 특히 개인과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인류가 “진리, 정의, 사랑, 자유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형성”하여 세계의 공동선을 이루자고 촉구합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하며 발표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은 현대 세계 안에서의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룹니다. 교회는 인류 역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공동 운명체이면서, 동시에 인류 사회의 누룩으로서 복음의 빛을 비추고 진리를 밝힘으로서 세상을 구원으로 이끄는 성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혼인과 가정, 문화 발전, 경제, 정치공동체, 평화 증진, 국제 공동체 등 주요 영역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구원임을 강조합니다.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은 회칙 <민족들의 발전>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빈곤과 빈부 격차, 인간 발전 문제를 다룹니다. 특히 진정한 발전이란 단지 경제나 기술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총체적인 완성과 전 인류의 연대적인 발전을 지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의를 실현하고, 약소국에 대한 원조 등 보편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세계적인 불균형과 빈곤 해소를 위해 노력할 것을 호소합니다. 교황은 결론 부분에서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라는 제목을 통해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빈곤, 불의한 사회구조 등을 극복하고 전인적인 자기완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참된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1971년 바오로 6세 교황은 회칙 <80주년>을 반포하여 <새로운 사태>의 가르침을 성찰하면서 현대의 우려되는 사조들을 언급하고, “도시화, 젊은이들의 처지, 여성들의 처지, 실업, 차별, 이민, 인구 증가,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영향, 환경 문제” 등 문제들을 다룹니다. 교황은 각 지역의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도록 권고하고 정치적 행동의 중요성을 인정함으로써 인권의 회복과 민주화 등 교회의 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사회 교리는 ‘시의에 맞는 하나의 교리적 체계’ 구축
<새로운 사태> 반포 90주년인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노동의 영성과 노동 윤리의 틀”을 제시합니다. 노동은 단순히 어떤 물질을 생산해 내는 것으로 이해돼서는 안 되고, “인격의 표현”으로서 자기를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노동과 자본의 상호 보완성을 밝히면서도 노동이 자본보다 본질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자본은 생산의 도구일 뿐이고 노동은 곧 노동자,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민족들의 발전> 반포 2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1987년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발전의 주제를 다시 다룹니다. 교황은 당시 세계의 저개발과 빈곤이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지적하고, 물질과 서비스를 넘어서는 인간 존재의 충만함에 기여하는 참된 발전을 촉구합니다. 참된 발전에는 인권 존중과 신장, 회개와 공동선에 대한 투신의 개념을 담은 연대성, 그리고 자연 세계에 대한 존중에 포함됩니다. 아울러 교황은 ‘인간 문제의 전문가’로서 복음화 사명을 위한 사회교리의 중요성과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전통, 세계의 공동선을 위한 국제 체제의 개혁 등을 강조합니다.
199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새로운 사태>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세 번째 사회 회칙 <백주년>을 반포합니다. 이 시기의 사회적 배경으로는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동유럽 국가의 독립,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여러 나라의 독재 정권의 몰락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교황은 회칙에서 공산주의 붕괴 원인으로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 무신론이라는 영적 공황, 통제 경제의 비효율성 등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시장주의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소비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책임과 경제적 자유에 대한 적절한 법률적 통제의 필요성도 강조합니다.
또한 결론 부분에서 ‘인간은 교회의 길이다’라는 명제를 언급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마지막으로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진리 안의 사랑>을 반포하면서 <민족들의 발전>과 <사회적 관심>의 주제인 ‘인간 발전’의 전통을 이어갑니다. 교황은 참으로 인간다운 발전을 이루기 위해 자본주의에서도 형제애의 표현인 ‘무상성의 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인류가 정의와 평화를 바탕으로 한 가족처럼 서로 협력해야 함을 지적합니다.
“교회는 이론적 동기에서가 아니라 사목적 관심에서 이러한 사회 교리를 체계화하고 가르쳐 왔으며, 이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이 더 나은 현세 생활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신적 발전은 걸맞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는 무수한 사람들과 인간 존엄성 자체에 미치는 사회 격변의 영향에 자극을 받는다. 이러한 연유로, 이 사회 교리는 ‘시의에 맞는 하나의 교리적 체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다.”(<간추린 사회교리> 104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