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꿈꾸며 캘리포니아에 온 뉴욕 청년 바비 돌프먼(제시 아이젠버그)은 영화계의 거물인 삼촌 필 스턴(스티브 커렐)의 회사에서 새 일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할리우드의 속물근성에 물들지 않은 필의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사랑에 빠지고, 뉴욕으로 돌아가 보니와 결혼하여 소박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한데 바비는 보니가 필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필은 25년을 함께한 아내와 이혼하고 25세의 보니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보니도 젊고 미래가 불확실한 바비 대신 필을 선택하고 만다. 그렇게 보니는 바비의 외숙모가 되었고 바비는 뉴욕에서 갱스터인 형 벤이 소유한 상류사회 클럽의 매니저가 된다.
1930년대가 배경인 이 영화는 순수했던 서로를 잊지 못하는 보니와 바비의 사랑 이야기지만, 자신이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 처음 온 바비에게 할리우드 스타들의 저택을 안내해주면서 보니는 그들이 불쌍하며, 자신은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세계에 뛰어들 수 있을 것처럼 아름답고 총명한 보니가 하는 말이니 바비는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다. 따라서 보니가 돌연 부자 삼촌의 부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1년 반 만에 대단한 인맥과 부를 자랑하는 속물이 되어 뉴욕에 나타났을 때 바비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그런데 이즈음엔 바비 또한 만만치 않은 속물이 되어 있었다. 형의 나이트클럽을 사교계의 명소로 만드는 데 바비가 크게 기여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할리우드에서 쌓은 사업가 부부와의 인연을 적극 활용한 결과였다.
더욱이 바비는 ‘카페 소사이어티’가 명사들의 비밀로 유지되는 세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화는 그가 천 달러짜리 샴페인을 마시며 손님들의 사연을 듣고 인생을 배웠다고 증언한다. 그의 카페는 아내 몰래 처제와 자는 남자와 같은 거물들의 사적인 정보에서부터 주식투자 정보, 검경의 수사 첩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비밀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마침 바비는 진실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보니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애인이 있는지 묻지조차 못했다. 이때 바비는 철학자인 매형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질문들은 차라리 답을 모르는 것이 낫다.”
사교계 클럽 매니저 역할에 최적화된 바비의 이러한 기질은 꽤 오랜 궤적을 지닐 뿐 아니라 일종의 집안 내력인가 싶다. 장남 벤의 직업을 둘러싼 가족들의 반응은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정직하게 벌지 않은 돈은 받지 않겠다면서도 모친은 벤이 건네는 5백 달러 지폐를 뿌리치지 않았고, 바비는 형을 너무 사랑하므로 진실이야 어떻든 그가 식자재 납품업자라고 믿기로 한다. 누나 에블린과 매형 레너드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사나운 옆집 남자와 라디오 볼륨 문제로 심한 갈등을 빚은 후, 에블린은 은근히 벤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불평을 전했고, 그 결과 옆집 남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죄책감을 느꼈지만 남자의 실종이 자신이 초래한 폭력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철학자인 레너드는 평소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인 해결은 안 된다는 신념을 지닌 인물이지만, 사건이 터졌을 때 침묵을 택하고 모른 체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바비가 그랬듯이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곤란해지지 않기 위해 답 모르는 상태를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끄럽지 않은 일상과 어느 정도의 부를 누렸을지 모르나 자신들이 경멸하던 인간이 될 운명은 어쩔 수 없는 상실이다. 이를테면, 보니는 자신이 불쌍히 여기던 허세 많은 인간이 되었고 이미 손에 피를 묻힌 레너드와 에블린은 다시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진심으로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 유태인인 바비의 엄마는 아들 벤이 전기의자에서 죽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내세를 믿는 가톨릭 신자가 되어 있는 것을 비극적으로 목격해야 했다.
바비와 보니는 결국 재회하지만 둘은 한동안 외도를 즐긴 후 섣불리 재결합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신년 파티가 열리는데, 보니는 캘리포니아에서, 바비는 뉴욕에서, 각자 단꿈을 꾸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들은 다시 열정적으로 만나게 될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 각자 가진 것을 포기할 만큼 더는 젊지도 어리석지도 않거나, 다 이루지 못한 욕망이 더 지속적으로 달콤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거나. 전자의 경우라면 그들이 완벽하게 ‘카페 소사이어티’의 멤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고, 후자라면 삶에 대한 우디 앨런 특유의 관조와 낙관의 결과일 것이다.
냉소와 아이러니의 달인답게, 매력 없는 인생을 창조하는 데 관심이 없는 코미디 작가 우디 앨런은 우리의 주인공들을 충분히 검사되지도 탐구되지도 않은 상태로 열어두어 그들이 던진 질문에 관객 스스로 답하도록 초대한다. 혹시 당신이 욕망을 억누르고 오늘을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건 무엇 때문인가. 당신은 이미 ‘카페 소사이어티’의 회원인가. 한때 당신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아 했던 인간의 모습으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모르기로 했기’ 때문인가.
하지만 우디 앨런은 여전히 우디 앨런이어서, 영화는 도덕적인 선택을 독촉하는 유의 이야기는 아니다. 발상의 전환을 도울 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순 없지만 잠시 잠깐 꿈꾸는 눈으로 삶을 멈출 수 있다면, 실현하지 못한 욕망은 결핍이라기보다 차라리 생의 동력 아닐까. 그러므로 각자의 자리에서 새해를 맞는 바비와 보니의 얼굴이 그토록 해맑아 보이는 것은 앨런 할아버지의 위트이자 위로다. 단, 정답에 능하고 생각만으로도 죄가 되는 율법의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아한 막장드라마일 수밖에 없다는 것!
첫댓글 철학적인 막장 드라마죠. 인간의 내면을 꿰뚫고 있으니까요.
저는 며칠전 자기 앞의 생을 보았는데요, 거기 소피아 로렌이 나와요.
아직 살아서 영화를 찍었더라고요!
넥플릭스 독점이라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지만 보는 내내 감탄했어요.
역시 소피아 로렌!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당당함이 여전했어요!
보는 내내 우디 앨런의 느낌이 솔솔. 정말 대단한 영감님^^
소피아 로렌-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죠. 시간 내서 꼭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