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오부치 선언
무엇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것인지,・・・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공식 명칭은 <한일공동선언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1998년 10월 8일에 발표된 이 선언의 취지는 1965년 체제를 총괄하고, 현재 우호 협력관계를 재확인하며, 그리고 지금부터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해 가자고 하는 공동선언이었다.
그러나 DJ・대통령의 본래의 방일 목적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저지른 국가부도의 뒷수습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간 자리였다.
잘 아시다시피 그렇다고 DJ・대통령이 무턱대고 머리를 숙이면서 일본으로 갈 낮은 급수의 정치인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찾아낸 사람이 고려대학교 최상용(崔相龍,1942∼) 교수였는데, 최 교수는 도쿄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와 릿쿄대학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를 취득한 마당발 일본통이었다.
세습정치인으로 일본 금권정치의 대부들인 다나카가쿠에이(田中角栄)와 다케시타노보루(竹下登)에게서 정치를 배웠던 노회한 정치인인 <오부치>는 그의 제안에 손해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만들어 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상용 교수는 그 댓가로 2000∼2002년까지 <일본대사>를 지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총 11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졌으며, 행동계획도 5개 분야 43개 항목으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 계획 등이 포함이 되어 있는 등 겉보기에는 꽤 그럴싸한 선언으로, DJ・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에도 맞았고, 국제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오부치>에게는 행운이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핵심적 내용은 4가지였다.
먼저 총리인 오부치(小渕)가 과거사를 사과한 내용으로, 사상 최초로 대상 국가를 명확히 한국을 지칭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데, <오부치>의 성명 내용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지배로 인해, 한국민에게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함께 마음으로부터의 사죄한다”였다.
두번째는 DJ・대통령이 일본 측에 던져주는 선물로서, 파격적으로 제안하는데, <일본대중문화>를 신속하게 개방하겠다고 선언한다.
당시에는 대단한 결단이어서, DJ・대통령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감도는 단번에 급상승했지만, <왜색문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대단히 컸고, 수많은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국민들이 <왜색>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이를 극복하여 오늘의 <K・팝 문화>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이 준 혜택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지혜로운 대처와 창의적 도전정신의 만들어 낸 결과였다.
세번째는 큰 선물을 안겨준 DJ・대통령의 역제안으로, 재일한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을 요구한다. 이에 양국 정상들이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지만, <오부치> 총리의 급사와 아베신조(安倍晋三)등 극우 정권의 반대로 오늘날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네 번째는 30억 달러를 빌린 대신에 해양영토를 빼앗기게 되는 <한일어업협정교섭(韓日漁業協定交渉)>이다.
당시 IMF 상황에서 달러가 필요했던 한국의 요구를 일본 정부는 <일본수출입은행>으로부터 30억 달러를 대출해 주기로 하면서 <꺾기>와 같은 숫법으로, <어업협정>을 맺어야만 대출을 해주겠다고 조건을 다는데, 일본이 분쟁지역이라고 지정한 곳의 <EEZ의 설정>을 새롭게 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은 어쩔 수 없이 <협정>을 맺는데 1998년 11월 28일에 서명했고, 1999년 1월 6일 국가부도의 주범으로 당명을 바꾼 한나라당도 찬성하여 같은 달 22일에 발효됐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EEZ의 설정 (2)동해 중간수역 설정 (3)제주도 남부수역 설정 등으로, 논란이 된 것은 크게 2가지 사항이었는데, (1)한국과 일본의 EEZ가 겹치는 공동수역으로, 한국은 한계선을 동경 136도로, 일본은 동경 135도로 주장하다가 결국 135.5도로 합의해 줬으며, (3)해안 쪽 경계선이었는데, 한국은 연안으로부터 34해리를, 일본은 35해리를 고수하다가 35해리로 합의해 주게 된다. 결론적으로 IMF로 인해 30억 달러를 빌리면서 동경 0.5도와 연안 경계선 1해리를 모두 양보한 것으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이면에는 역시 왜구들의 숫법이 숨어있었다.
한편 DJ・대통령의 <재일한국인> 참정권 등을 제안한 <참의원 연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던 자는 당시 2선의 중의원의원이었던 아베신조(安倍晋三)였는데, DJ・대통령의 참정권요구에 반대를 표했으며, DJ・대통령이 연설 중에 예로 들었던 임진왜란의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에 대해 “400년 전의 얘기를 들먹인다며,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히데요시(秀吉) 이전에 원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함께 일본을 침략했던 것부터 사과하라”고 조롱했으며, 이어 “국가로서 반성과 청산은 이미 1965년 한일협정 때 끝났는데, 끝난 사항을 공동선언이라고 하는 문구로 사죄하면 다음의 한국 대통령이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일공동성명>에도 반대했다.
이어 2001년 4월에는 극우 역사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도한 후소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일본 문부성 검인정에 통과하자, 이에 우리 정부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 <9개 항목 25개 주제>에 문제가 있다며, 수정을 요구했지만, 일본 측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항의라며 조롱하는데, 그 교과서의 주요 내용은 일본군위안부와 남경대학살, 도쿄재판소의 전범들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용서를 빌지 말라며 다그치고, 용서를 비는 행위는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며 과거사를 모두 부정했다.
이렇듯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3년도 채 되기도 전에 우리의 영토인 바다만 빼앗기고, 결국에는 또다시 왜구들에게 조롱만 당하고 만 것이었는데도,
작금, 그것도 <국민주권정부>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무엇을 계승하겠다는 것인지, 너무나 답답하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다.
참고로 <오부치> 총리의 차녀 오부치유코(小渕優子,1973∼)는 현재 9선의 중의원의원으로, 아베신조(安倍晋三)의 키즈로서, 경제산업성 대신 등을 지냈으며, 2023년 3월 17일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을 호텔로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단독으로 기념 촬영도 하는데, 윤석열은 그녀에게 “친구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진다. 갈등이 있어도 만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찍이 그런 혜안을 보여준 오부치 전 총리에 대한 감사를 딸에게 대신 전한다”고 했다고 한다.
2025.8.25
김강열 <왜구인명사전> 중에서, @-광주의 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