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樞機, 지도리, 돌쩌귀, 문틀)’를 통해서 본 문(門)의 상징성
가톨릭에서 교황 다음의 성직자로 추기경(樞機卿)을 두고 있는데, 이때 쓰이는 추기경의 정확한 말뜻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문 것 같다. 교황이나 주교, 신부, 수녀 등의 직책명은 글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데, 지도리 추(樞)에 기틀 기(機), 벼슬 경(卿)을 쓰는 추기경은 얼른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명칭이다. 직책으로야 교황 선출권과 피선거권이 있는 교황 다음의 최고 성직자인줄이야 알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카디날(cardinal)을 추기경으로 번역한데는 필시 아주 중요한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경은 유럽식으로 존칭의 의미로 붙였다지만 ‘추기(樞機)’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동양 사상의 가장 근본을 이루면서도 일반인들에게 편향되게 알려진 [주역]의 계사전에서 공자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다.
言行君子之樞機樞機之發榮辱之主也 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可不愼乎
(언행은 군자의 추기니, 추기의 발함이 영화와 욕됨의 주됨이 되느니라, 언행은 군자가 이로써 천지를 움직이는 바니 어찌 감히 삼가지 아니하랴)
바로 주역에서 추기(樞機)란 말이 언급되고 있는데 언행을 군자의 추기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추기경은 서양식의 君子라고 할 수 있다. 추기경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천지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서 가톨릭의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천당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님은 왜 언행을 추기(樞機)에 비유했을까. 추기의 명칭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그 뜻을 새겨보자.
‘추(樞)’는 돌쩌귀나 문장부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순우리말로는 지도리라고 한다. 우리 문화가 급격히 서구화되면서 점차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말들이자 전통 가옥에서라면 쉽게 볼 수 있는 문과 관련된 구조물 명칭이다.
돌쩌귀는 방문이나 창문을 여닫기 위해 문설주와 문짝에 달아 놓은 쇠붙이로, 암짝은 고정된 문설주에, 수짝은 동적인 문짝에 붙인다. 그래야만이 햇볕 쨍쨍한 추석 전에 창호지를 바르기 위해 문짝을 떼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에야 서양식 구조물이기 때문에 돌쩌귀 대신 경첩을 단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목수분들은 돌쩌귀를 조선경첩이라고 한다.
문장부란 대문이나 광문(요즈음의 창고 문에 해당)의 문짝처럼 굳이 떼었다붙였다 할 필요가 없는 큰 문을 여닫기 위해 널 문짝의 축 아래위로 상투같이 다소 길게 깎아 문둔테 구멍에 끼울 수 있게 만든 부분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추(樞)’곧 지도리란 문을 여닫기 위한 장치들을 말하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陰陽이 조화를 이뤄 하나의 장치를 완성시킨다. 돌쩌귀의 암수 구분이 그렇고, 문둔테와 문장부(아래 쪽 사진)가 그러하다. 암 곧 陰이 정(靜)적인 장치이고, 수 곧 陽은 동(動)적인 작용을 한다.
기틀을 뜻하는 ‘기(機)’는 사전적 의미로는 ‘일의 가장 중요한 고동’이란 뜻이다. ‘고동’은 기적 소리 혹은 기계 따위를 움직여 활동시키는 장치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는 순우리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 말고도 집을 지을 때 기틀이란 바로 문을 달기 위한 틀을 말한다. 즉 문인방⋅문지방⋅문설주를 통틀어 기틀이라고 한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추기(樞機)는 문(門)틀 전체를 의미한다. 즉 문(門)이라고 하면 보통은 주변의 장치를 모두 뺀 네모난 문짝만을 연상하지만 ‘추기(樞機)‘라 할 때는 여닫는 기능과 문이 문답기 위한 기틀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門‘틀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추상적 의미로는 세상과 통하는 門이기도 하다. 나의 문(門)을 닫아둔다는 것은 아무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나의 문(門)을 연다는 것은 말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나의 門을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결정이 되는 것이다. 공자가 言行을 군자의 추기(樞機)에 비유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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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은 안과 밖, 나의 영역과 남의 영역, 이쪽과 저쪽을 확연히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곧 門은 닫기 위해서도 만들었지만 열기 위해서도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나 함부로 열 수 있는 門은 아니다. 남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열고 들어갈 수 있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도둑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성경에도 보면 ‘…문(門)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나는 양의 문(門)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한복음 10장 중에서)‘고 했다. 바로 이 대목과 주역 계사전의 ‘언행(言行)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며 추기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영욕이 교차된다‘는 구절에서 ‘카디날’이 ‘추기경’으로 번역된 것 같다.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최고 경전의 멋진 만남이다.
문(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나라처럼 다양한 형태의 문(門)이 발달한 문화도 드물 것이다. 앞서 말한 영역 구분과 출입 기능 뿐만 아니라 환기 역할도 하고, 누가 왔는지, 바깥 날씨가 어떤지 내다보는 기능도 있다. 또한 부와 권위에 따라 그 형태도 다양하다.
성역을표시하는 홍살문, 대원군이 쇄국 의지를 담아 강화도 바닷가에 세운 해문(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 ‘해무방수타국선신물과‘라고 쓰인 비로 열강들의 개항 압력과 함께 침략이 한창일 때 덕진진 앞에 세워 두고 다른 나라 배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경고하고 있다.) 등은 판문(板門, 널짝문이라고도 한다)이 없는 상징적인 의미의 문(門)이다.
사찰에는 일주문을 세우고 부처님의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고 있다.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며, 외부 세력의 침입을 감시할 수 있게 만든 문으로는 성곽의 문(門)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조선시대 한양의 4대문(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과 수원 화성의 4대문이 볼 만하다. 4대문 사이사이에는 小門을 두었다.
특히 궁궐의 문(門)은 상하신분 질서에 따라 출입하는 문(門)도 다 다르게 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예로 들자면 가운데는 왕만이, 동쪽 문은 文人이, 서쪽 문은 武人이 출입할 수 있게 삼문의 형태를 두었다. 세력가들의 저택이나 서원 등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솟을대문을 만들어 부와 권위를 상징하려 했고, 가난한 백성들은 초가집에 싸릿가지나 나뭇가지, 대나무 등을 엮어서 삽짝문을 달았다. 이 삽짝문은 높이도 나지막하여 굳이 문을 열지 않더라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살가운 맛이 있다. 집의 규모에 따라 門이 결정되는 것이지 고래등같은 집에 삽짝문이나 삼칸 초가에 솟을 대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큰집의 경우는 정문인 대문을 통과하고도 한두 개의 門을 더 지나야만이 방에 이르는데 방문도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꽃문, 살문, 외짝문, 분합문, 삼분합문, 사분합문 등 집 주인의 의지에 따라 다채로운 형태들이 구현되어 답사 다니는 이들의 눈맛을 즐겁게 해준다. 문(門)이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열려는 의지를 갖고 열 때만이 열린다는 데서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례로 “입은 재앙을 초래하는 문(門)이요, 혀는 몸을 죽이는 도끼이다.”라며 자신의 폭정을 간하는 신하들을 죽인 연산군의 행위에서도 문(門)은 의지에 따라 열린다는 사실을 악용한 사례이다. 어쨌거나 입은 함부로 놀려서는 안되며 말은 가려서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린 아이들부터 만인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살벌한 단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공자님이 말씀하신 ‘言行은 군자의 추기(樞機)‘라는 말을 곰곰 씹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