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차 대전문화유산답사 <대전의 아름다운 지명을 찾아서> 답사후기
일시 : 2022년 7월 2일 (토) 09:00~14:00
코스 : 노루벌, 물안리, 야실, 정뱅이, 미림이 등
참가자 : 11명
강사 : 향토문화연구가 조영연 선생님
제46차 대전문화유산답사가 있었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영연 선생님의 안내로 대전의 아름다운 지명에 관심이 많은 참가자분들과 뜻깊은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대전 시청에서 만나 대전의 남쪽으로 향했는데요 갑천의 상류의 마을들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벌말, 새뜸, 상보안, 노루벌, 물안리, 야실, 정뱅이, 미림이, 원정동을 다녔는데 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여행이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함께 해주신 참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상보안 : 위쪽에 있는 보 안쪽에 있는 마을
노루벌 : 노루가 뛰어노는 형상. 장자벌(노루장 아들자) 이라고도 했음. 장평보(노루벌의 한자이름)
물안리 : 한자로 수내리. 물 안쪽의 마을
야실 : 두계천과 벌곡천이 만나 갑천을 이루는 마을. 대장간이 있었던 마을
정뱅이 : 소정방이 다녀간 곳이라 이렇게 부른다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다름
미림이 : 용의 우리말 이름, 용촌
무도리 : 물이 마을을 휘돌아서 물돌이>무도리
- 아래는 조영연 선생님께서 주신 글입니다. 부족한 후기보다 훨씬 도움이 될 듯하여 첨부합니다.-
★ 정다운 이름과 아름다운 풍광의 흑석리 산책길
사회가 도시화, 문명화로 인해 지리적인 큰 변화 속에서 아직도 옛이름과 모습들을 간직한 곳은 그리 흖지 않다. 그런 가운데 아직도 비교적 땅과 이름들을 간직한 대전의 땅은 용촌동, 봉곡동, 흑석동, 원정동 일대다. 이 일대는 빼어난 풍광뿐 아니라 땅이름조차 남다르다.
벌곡으로 향하는 29번지방도로, 고려 때 왕승상이 살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는 승상골을 지나 야실마을에 이른다. 그 서쪽으로는 정뱅이, 미리미 들의 마을들이 머지 않다.
용촌동의 모태가 된 토박이말 이름 미리미는 아직도 용촌동 못지않게 활발히 살아 있는 이름이다. 용의 토박이말 미르에서 유래된 미르메-미르미-미리미다. 주변에 미르뫼(용산), 미리미(마을)가 존재한다. 마을 앞 천변에 있던 삼노정은 이제는 마을 입구에 용촌정이 대신한다.
용촌동 정뱅이는 백제 때 소정방이 진을 친 곳이라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소정방과의 관련은 의문스럽다. 다만 사서 속 밀암고성(密岩古城. 출처 湖西邑誌. 현 흑석리산성. 眞峴城)에서 나당군과 백제부흥군 간 벌였던 격전을 고려한다면 신라군 주둔 가능성은 어떨지 모른다. 이곳 길은 백제를 정복한 당군에 대한 신라의 양도 즉 식량 보급로였기에 나당군으로서는 꼭 지켜야 할 길목이었다.
정뱅이는 과거 쇠가 생산됐다는 이웃마을 쇠실, 야실(불무골-쇠를 다루던 야철지, 불무간)과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점방의 변음으로 여겨진다. 야실 앞에서는 두계천과 벌곡천이 합류하혀 현지에서는 두물머리라 하는데 그것은 두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국가하천으로 관리하는 갑천이다. 이 부분은 고 지지서들에 용촌동 근처 계탄(鷄灘)과 괴곡동 상보안 근처인 듯한 차탄(車灘)으로 등장하는 지점으로 추측되나 그에 관련된 토박이말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灘은 강이나 바다에서 물살이 세게 흐르는 얕은 곳이다. 이들은 옛말을 고려해 볼 때 닭여울(내) 내지 수릿여울(내) 정도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정뱅이, 야실을 비롯한 구봉산 기슭에는 봉곡동 쇠점(금곡), 원정동 무도리와 세편이 등 철과 연결된 이름들(동국여지지 속 自然銅 물산 기록)이 있어 그와의 연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계룡산에서 발원하여 두계를 거쳐 무도리, 용촌동 정뱅이 앞을 스쳐온 두계천은 야실 앞 두물머리에서 벌곡천과 합세, 갑천을 이룬다. 야실 마을 어구에는 비보림이 있어 마을을 보호해 준다. 이 갑천은 야실과 고무래봉(흑석산성) 사이를 빠져나와 북행, 버드내(유천동)와 대추벌을 휘돌다가 다시 남쪽으로 머리를 돌린 다음 물안리를 품고 또 한번 크게 회절하여 동류한다. 그 후 안물안리에서 90도 가까이 북향하다가 동으로 꺾인 물줄기는 소혓바닥처럼 돌출한 노루벌 들을 감아돌면서 괴곡동 상보안을 거쳐 정림동 방면으로 빠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버드내와 대추벌, 물안이와 장자벌, 노루벌 등 충적지들을 급히 감싸 흐르면서 회절하는 갑천의 모습은 아름다운 마을 이름들과는 달리 S자형으로 심하게 웅크리며 움직이는 화가 난 뱀을 연상시킨다.
미리미와 정뱅이 등과 더불어 버드내, 노루벌과 물안이 그리고 대추벌 모두 친근하면서 소박한 이름들이다. 버드나무로 인해 생긴 버드내. 내(川)의 안쪽에 위치해서 붙여진 이름 물안이는 흑석유원지에서 천변 동북편으로 바라보이는 마을이다. 물안이 북쪽 갑천변 산세가 어미노루(獐)가 새끼를 좇는 형국이어서 유래됐다고 하며, 굽이도는 물 안쪽에 있다는 물안이 그 뒤편이다. 142m의 산이름도 노루산이어서 노루벌은 전설보다는 오히려 실제로 노루들이 뛰놀았음 직한 곳이고, 장자벌을 어느 외딴집에서 아기 장수를 나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 하지만 노루벌에서 달아난 새끼노루와 연관 있는 이름이 아닌가 여겨진다. 장자는 노루새끼의 한자음 장자(獐子)로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탄생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옛날 부자를 장자라 일컫기도 했다.
노룻벌 동편에는 일찍이 조성된 보(洑)가 있었기에 상보, 그 안 마을을 상보안이라 했다. 중보, 하보가 있어 노룻벌에 조성된 보는 상보라 불렸다.
괴곡동 상보안으로부터 용촌동 미리미까지 탁 트인 들판과 맑은 물, 산이 어울린 갑천변길은 도시를 벗어나 한가로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수려한 경치는 물론 상쾌한 물소리, 바람소리, 콧속까지 시원한 공기 속에서 아름다운 전설을 들으면서 걷기에 길조차도 평탄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나 아녀자들도 부담감 없이 걷기에도 무리가 없는 길이다. 여기서는 차 같은 문명의 산물들은 오히려 방해꾼이 된다. 아직은 문명의 위협을 덜 받은 속에서 자연에 젖고 여름밤에는 반딧불이를 보면서 백사장에서 캠핑하는 사람들이 즐기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곳이다.
용촌동에서 두계천과 호남선 철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원원정 한가운데 세파정이란 정자가 있어 원정의 이름도 그에서 유래됐고 원원정은 그 중심마을이다. 용촌동과 원정동 사이에는 지금은 폐역이 된 원정역이 있다. 지역의 농산물을 싣고 새벽 일찍 완행열차를 탄 아낙네들이 서대전역 반짝시장에 채소를 팔러 다녔고, 대전에서 학교 다니는 통학생들이 이용하던 길과 역이었다. 6.25 때는 쫓겨가던 빨치산들이 점령하여 행패를 부리는 일들도 여기서 벌어졌다. 뒷골에는 송준길 묘가 있다.
원원정 앞 두계천 너머로는 한다리 건너 세평이와 구만이마을이다. 구만이는 두계천 굽이도는 안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호남선 철길은 웅장한 우렁산(위왕산) 아래에서 기적을 울리면서 명마고개를 넘어 두계로 간다. 이 명마고개 좌측 야산 중뫼(산) 남쪽 산기슭에 자리한 동네를 무도리라 부른다 두계천이 마을을 한 바퀴 휘감아 돌아 구만이 앞으로 빠져 내려가 용촌동에서 갑천을 이룬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무(물)도리가 됐다. 지금은 2,30채의 집들만 남았지만 무도리는 6.25때는 피난민들이 내려와 살아 그들이 경영하던 직물공장들이 여럿 있어 제법 흥청댔던 한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정원직물 하나만 남아 힘겹게 덜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그 때를 말해 줄 뿐이다. 중미 아래 양지 바른 무도리 마을이 평화롭다 못해 고즈넉하기만 하다.
첫댓글 답사했던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다시한번 답사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답사후기 정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네요. 훌륭합니다♡
참말로 수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