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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토)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스포츠 위크를 했다.
더 다양한 스포츠를 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건의로 만들어진 주간이었다.
우리는 매일 축구, 피구, 미식축구 등등의 게임을 하나씩 했다.
토요일은 마지막 결승전 날이었다.
우리는 닭싸움과 꼬리잡기 두 게임을 했는데,
우리팀은 닭싸움에서 지고 꼬리잡기에서 이겼다.
우리팀은 스포츠위크 최종스코어 5:3으로
최종우승과 함께 상금 5달러를 거머쥐게 됐다.
일주일간 게임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이 참 놀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조금만 뛰어도 힘이 쫙 빠져서 항상 게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열광적으로 게임을 하고도 힘이 남아도는지
매번 또 다른 게임을 더 하자고 했다.
나는 이렇게 열심인 아이들이
단어 시험보기 싫다고 불평하던 그 아이들이 맞나,
책을 읽을 때면 꾸벅꾸벅 졸던 그 아이들이 맞나. 의심이 됐다.
공을 들고 달릴 때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목표물을 위해서
눈에 불을 키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독립투사들 같았다.
이때만큼은 나라를 구하기라도 할 것 같은 불타는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학교 책상에만 앉아있으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다.
이제야 아이들이 왜 그렇게 학교수업시간에 떠들고 집중을 못했는지,
졸고 무기력해 했는지 이해가 됐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내포된 그 모든 열정과 의지를
펼쳐내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이 숨막히는 공간에서 날개짓 한번 못하고 대부분 자포자기했다.
학교 교육은 나같이 움직이기 싫어하고 앉아있는 것이 딱 체질인
아이들만을 위한 수업이었다는 사실을 이 아이들을 보며 알게됐다.
학교에서는 체질에 따라 이렇게 수업만 듣는 게
잘 맞는 학생이 모범생이 되고,
그렇지 않고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학생은
수업 방해자, 열심히 공부 안하는 학생으로 낙인찍힌다.
나는 교실에 학생들을 가둬두는 수업에도,
학교가 모범생과 문제학생을 나누는 기준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는 이렇게 독립투사만큼 열정적일 수 있는 아이들을
안에서만 보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움직이기 싫어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딱 체질인
학교 선생님들과 교육부 공무원들이
자신의 체질만 생각하고 만든 기준과 수업인지도 모른다.
교실에서 떠들고 뛰어다니고 자는 아이들을
무조건 혼내고 조용히 시킬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질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충분히 빛날 수 있도록.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6/24(일)
1차 정산때부터 14차 정산때까지 열심히 모아온 돈이다.
총 270.9리라.
한국 돈으로는 6만원정도 되는 돈인데,
이 돈이 요즘 나를 참 힘들게 한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걸 살 생각을 하면 기쁘다가도,
내게 돈이 한정돼있고 이것으로 필요한 것을
나눠사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복잡하다.
한국에서는 6만원이 나를 이렇게 고민시키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샀고,
돈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돈 270.9리라는 내가 3개월간
한장한장씩 정말 피땀흘려 번 돈이고,
그렇기에 이 돈은 내게 너무 귀하다.
나는 이 돈을 정말 잘 쓰고 싶다.
돈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계획없이 쓰게 될 것 같아서,
나는 지출 원칙을 정했다.
<이스탄불에서의 지출 원칙>
1.100리라는 그동안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딜라이트를 사는 데에 사용한다.
->내 자신에게 이 정도 보상은 해주어야 또 다시 힘을 얻어 열심히 정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40리라 이상은 아이들과 무언가 나눠먹는데에 사용한다.
->이동때마다 항상 짐이 되고, 평소에 일을 할 때도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을 많이 못주어서
돈을 벌면 꼭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어 고마움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이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건, 누군가는 이만큼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내가 잘 번 것에 감사하는 의미,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이기도 했다.
돈을 쓰다보면 또 마음이 흔들릴까봐 미리 일기장에 이렇게 원칙을 써두었다.
3.이스탄불을 떠나기 전에 이 돈을 한 푼도 남김 없이 몽땅 사용한다.
->나는 그동안 번 돈을 전부 다 터키쉬 리라로 받았다. 저축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나라에서 번 돈은 그 나라에서 다써버리기로 했다.
이번에 꺼낸 돈은 터키에서 몽땅 시원하게 다써버릴거다. 터키 경제도 살려줄겸ㅎㅎ
오늘이 바로 대선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다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있었다.
투표 결과, 결국 그 사람이 당선됐다.
이미 15년간 터키의 정권을 잡아왔으며 이번 선거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그 사람.(이름은 터키어라 잘 모르겠다)
앞으로 5년간 더 집권한다고 하는데, 이 사람이 또 법을 마음대로 바꾸어서
다음 대선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에 아무때나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람은 몇년 집권하다가 자신의 인기가
높아졌을 때에 다시 투표를 해서,
더 오랫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정권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건물에 붙어있는 저 큰 사진 속 얼굴의 주인공이 터키의 대통령이다.
터키. 제발 앞으로 잘 번영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
나는 터키가 너무 좋고, 또 오고 싶단 말이다.
독재 대통령이지만, 진정 국민들이 원했던
대통령이라면 어찌됐든 잘됐다.
이 대통령이 끝까지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말고,
국민들의 믿음을 잘 지켜나가길 바란다.
6/25(월)
터키는 잔디밭에 보면 이렇게 허연 것들이 흩뿌려져있다.
나는 이게 잔디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의 정체는 바로 ‘해바라기씨 껍질’이었다.
터키 사람들은 해바라기씨를 정말 많이 먹는다.
종이 봉투에서 무언가 집어먹고 있으면, 다 해바라기씨다.
대장님 말씀으로는, 터키에서 해바라기씨가 굉장히 많이 수확된다고 하는데,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땅이 넓기 때문이란다.
터키의 동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해바라기씨 농장이 광대하게 펼쳐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찬희쌤 가시는 날까지 D-4. 오늘의 찬희쌤: 저녁 운동 후 숙소로 돌아가고 계신 찬희쌤의 뒤모습을 찍었다.
나중에 운동을 할 때면 찬희쌤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ㅠㅠㅠ
6/26(화)
오늘은 드디어 정말 돈을 대방출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갈라타 브릿지를 건너기 전에 있는 번잡한 거리에 쇼핑을 나갔다.
4시반에서 6시까지, 제한 시간은 1시간 30분.
나는 돈을 잘 쓰고 말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서둘러 쇼핑을 시작했다.
나는 먼저 spice bazaar에 들어갔다.
처음엔 이곳이 그랜드 바자르인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그랜드 바자르는 아니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향신료들을 주로 파는 시장이었다.
신기한 가루들과 원통형으로 생긴(통키 과자처럼 생긴) 향신료, 말린 고추같이 생긴 향신료 등등 다양한 향신료들이 펼쳐져 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향신료들은 뭘 만들 때 다 쓰이는 건지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간장, 참기름, 된장, 고추장 같이 넣기만 해도 음식이 맛있어지는
터키의 마법 조미료같은 것들인지도 몰랐다.
한번 사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리도 못하는 내가
이걸 그냥 밥에 얹어서 먹을 수도 없고, 가루채로 털어먹을 수도 없고 해서,
결국 사는 것은 포기했다.
나는 스파이스 바자르를 통과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골목을 계속 올랐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앞이 거의 않보일 정도였다.
신발, 옷, 가방, 각종 악세서리들을 파는 상점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있었지만,
역시 나의 발걸음을 멈춘 건 ‘딜라이트’였다.
츄러스 같이 생긴 빵과 맛있게 생긴 딜라이트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동안 봐두었던 Mustafa에서
딜라이트를 살 계획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딜라이트집에서
현혹되지 않으려고 했으나, 해인쌤께서 츄러스를 한개만 먹어보자고 하셨다.
해인쌤이 산 것을 한 입 맛봤는데, 진짜 이건 따로 안사먹고는
지나칠 수가 없는 맛이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먹고 싶을때 딱 사서 먹어줘야 제일 맛있다’는
말로 스스로에게 합당한 이유를 대가며
처음으로 내 돈을 내고 2.5리라짜리 딜라이트를 하나 사서 입에 물었다.
딜라이트를 입에 넣는 순간 ‘바사삭!함과 동시에 페스추리가 짓눌리면서
따뜻한 꿀이 터져나왔다.
입속은 금세 꿀로 흥건히 적셔졌고, 나는 한입씩 베어 먹을 때마다
흥분한 혈관 속의 피들이 입에서 발가락 끝까지 빠르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와
내 몸 속의 장기들과 조직들, 그리고 작은 세포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소리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일평생 내게 있을 행복을 전부 끌어모아
바로 그 순간 인생 전체를 통틀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말 그대로 무아지경에 있었고, 아직도 그때의 솟구쳐 오르는
흥분감과 황홀감을 잊을 수가 없다. 몸이 붕떠서 하늘 위로 승천하는 기분이었다.
정리하자면 세상 전부를 얻은 듯한, 나폴레옹과 칭기즈 칸이 그 넓은 영토를 정복했을 때 느꼈을 기쁨과도 맞먹는 기쁨을 나는 느꼈다.(이 정도 설명으로도 그때의 내 상태를 다 설명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지만, 어쨌든 그 순간을 떠올리자면 이렇다.)
나는 급 기분이 좋아져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웠던 적은 여행하면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 써니쌤, 대장님께 드릴 감사 선물과 찬희쌤께 드릴 이별 선물, 호근이 생일 선물, 한국에 가져갈 기념품을 사야했는데, 막상 사려고 하니 뭘 사야할지 막막했다.
길가의 상점들에서 이것저것 둘러봤으나 딱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결국 나는 어슬렁거리기를 멈추고, 가장 확실한 곳에 먼저 가기로 했다.
바로 Hafiz mustafa 1864.
내 계획에 유일하게 ‘꼭 방문해야 할 곳’으로 적어두었던 곳이었다.
나는 사실 조금 더 저렴한 중저가 딜라이트 가게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목표했던 곳이 처음부터 ‘무스타바’였기에 더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한번 먹을 때 제대로 먹어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승쌤 말로는 다른 곳은 모두 설탕으로 딜라이트를 만드는데,
무스타파만 제대로 된 꿀로 딜라이트를 만든단다. 다른 곳의 딜라이트는
먹으면 뒷꼴이 당기고 목젓 앞부분이 따끔따끔하며 공격적인 맛이 나는데,
무스타파의 딜라이트는 아무리 먹어도 몸이 불편하지 않고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기 때문에 가격과 맛과 품질을 비교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곳은 무스타파라고 했다.)
나는 돈이 넉넉히 있을 때에 마음편히 먼저 계획했던만큼 딜라이트를 사고,
남은 돈으로 나머지 것들을 충당하기로 했다.
나는 드디어, 정말 드디어 딜라이트를 샀다.
아까 것은 맛보기였고 이번엔 정말 제대로 구입할 차례였다.
나는 먹고 싶은 것들을 직접 골라서, 중간 사이즈 통에 담았다.
그 순간 또한번의 기쁨과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동안 눈물, 콧물 빼며 열심히 살아왔던 3개월이 모두 압축되어
이 상자 안에 들어간 것 같았다.
값은 51리라. 키로그램당으로는 100~120리라라고 적혀있어서
훨씬 더 비쌀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51리라면 생각보다 괜찮은 값이었다.
나는 내 것과 써니쌤, 대장님 것. 이렇게 두 상자를 샀다.
써니쌤, 대장님께 어떤 선물을 드릴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딜라이트를 드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써니쌤, 대장님 것은
아저씨께 가장 맛있는 것으로 넣어달라고 부탁드렸다.
나는 총 104리라를 무스타파 딜라이트에 지출했다.
번 돈 270리라 중 100리라는 딜라이트에 쓰는 것이 원래
나의 지출 원칙이었기 때문에, 계획에 맞게 잘 산 것이었다.
그동안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고, 꿈꿔왔던 것을
이제 내 손에 넣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있는 나머지 돈에 대한 욕심도,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욕심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갑자기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꿈꾸고 열망했던 것은 두달인데, 그것을 한순간에 얻었다는 것이
마음 한켠을 헛헛하게 했다.
‘딜라이트’가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나를 하루종일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인지.
오늘 나는 딜라이트에서 비롯된 복잡미묘한 감정들에 휩싸여
이런저런 생각들을 참 많이 했다.
해인쌤께서는 런닝을 사셨다.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나 결국 맘에 드는 런닝을 찾은 곳은 ‘엘씨 와이키키’.
역시 요즘은 다국적 기업이 옷을 너무 잘만든다.
다른 상점들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디자인도 예쁘고, 깔끔하고.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 독점에도 뭐라고 반박할 수 없는 이유는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상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상권들이 이 정도의 퀄리티 있는 상품들을 내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다국적 기업과 동네 상권이 경쟁 가능한 상대인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1.5리라짜리 볼펜을 하나 샀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찬희쌤 선물과 호근이 선물, 기념품들은 못샀다.
‘이걸 살까?’ 했다가도 ‘아냐, 더 괜찮은게 있을꺼야’하며 하나둘씩 지나치다 보니
결국 한 개도 건지지 못했다.
선물을 고르는 것과 돈을 쓰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빨리 필요한 것들을 딱딱 사려고 했는데, 너무 고민이 돼서 계속 빙빙 돌기만 했다.
심지어는 2리라짜리 파우치를 사는데도 어떤 무늬가 좋을지를 못 결정해서
그냥 사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사실 돈을 많이 써봤어야 돈을 잘 쓸텐데,
나는 한국에서 용돈을 모은적도 없고, 돈을 제대로 써본적도 없었다.
그냥 사고 싶은 것이 있을때만 부모님께 돈을 받아서 사는 정도였기 때문에
이렇게 계획적으로 돈을 모아서 지출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나의 고질병인 선택장애를 고치고, 돈을 주머니 속에서 썩히지 않고 잘쓰려면,
평소에 내가 직접 돈을 많이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쇼핑 때는 꼭 필요한 것들을 모두 잘 사서,
할일을 못다한 것 같은 마음 속의 이 찜찜함을 없애고 싶다.
D-3. 오늘의 찬희쌤: 아이들이 몇 등신인지 직접 손으로 측정하고 계신 찬희쌤.
재어보니 찬희쌤은 6등신이시다. 황금비율은 아니지만, 아주 좋은 비율을 갖고 계신다. 공부도 잘하시고, 운동도 잘하시고, 어깨도 넓으시고, 유식하시고, 요리도 잘하시는데
비율까지 좋으신 찬희쌤이다. 정말 신랑감으로서는 최곤데, 왜 여자들이 서둘러 안데려가는지 모르겠다.
6/27(수)
오늘은 블루 모스크에 다녀왔다. 지난번엔 공사중이어서 아예 출입이 불가능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들어가볼 수 있었다.
입구쪽에 수돗가가 있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기도하기 전에 머리, 귀, 코구멍까지 깨끗이 닦는다고 했다.
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이슬람은 정말 철저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카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것도, 히잡을 쓰는 것도,
죽기 전에 메카에 다녀와야 하는 것도,
그리고 기도하기 전에 몸을 씻어야 하는 것도.
나는 일요일이면 항상 늦게 일어나 감지 못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교회에 가곤 했었는데.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원형님과 해인쌤은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둘렀는데,
나는 관리 아저씨가 이렇게 바지를 입으라고 주셨다.
아무래도 머리가 짧아서 내가 남자인줄 착각하신 모양이다.
블루 모스크는 1616년 오스만 제국의 왕이 된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그는 원래 금으로 모스크를 만들라고 지시했으나, 그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신하들은, 터키어로 금을 뜻하는 ‘알틴’을, 숫자 6을 뜻하는 ‘알트’로 일부러 잘못 알아듣어서
금 모스크가 아닌 미나렛이 6개가 있는 모스크를 만들었다.
당시 메카 시바성전의 미나렛 개수가 6개였는데, 그 어떤 모스크도 미나렛 개수가 시바성전과 같거나 넘어서는 안되어서, 블루모스크가 지어진 후 술탄 아흐메트 1세는 시바성전에 미나렛 한 개를 헌납했다고 한다.
이후 시바성전에는 미나렛 2개가 더 설치되어서 현재 미나렛 개수가 9개이고,
블루모스크는 그대로 미나렛 6개를 가지고 있다.
미나렛은 예배시간을 알려주는 첨탑으로 하루에 다섯번씩 코란을 읽어준다.
이것을 ‘애잔’이라고 부르는데, 블루모스크는 소피아 성당과 애잔을 주고 받는다.
소리가 겹치면 시끄러울까봐 한쪽이 끝나면 한쪽이 답가를 하는 방식으로
일부러 맞춘 것 같다.
이슬람 사원은 성화를 그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대신 다양한 무늬의 타일과
코란으로 내부가 꾸며져있었다.
블루 모스크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아닌 ‘블루 모스크’ 불리는 이유가 뭔지
알아내는 것이 이번 미션이었다.
내 생각에는 타일의 꽃 무늬들이 모두 파란색이고, 스테인드 글라스라 파란색이어서
‘블루 모스크’인 것 같다.
이맘(이슬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는 강단이 놓인 방향이 특이했다.
교회나 성당 같으면 앞을 바라보고 강단이 있을 텐데, 여긴 왠지 옆쪽에 강단이 있는 듯 했다.
이건 강단이 메카의 방향을 바라보도록 놓여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모스크를 지을 때 나침반으로 메카의 방향을 직접 다 측정해서 강단을 설치했을까?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기독교인들은 방향이 어디든 손만 올리면
그곳에 있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데,
이슬람교도들은 기도를 할 때 방향까지 생각해야 하니.
머리가 훨씬 복잡할 것 같았다.
단순하고 관대한 기독교에 감사하며,
앞으로 교회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숙소 근처 아트샵에서 마음에 드는 두건을 하나 건졌다.
주인이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란다. 안그래도 터키 전통 옷이나 스카프 같은 것을
사고 싶었는데, 이 두건을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딱들었다.
원래는 65리라였으나 써니쌤께서 잘 흥정해주셔서, 나는 50리라에 이 두건을 샀다.
(잘 어울리지 않나요?ㅎㅎ)
오늘은 우리나라와 독일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연장시간에 2골을 넣어서 2:0으로 독일을 압승했다.
우리나라가 독일을 이긴 것은 정말 엄청나게 대단한, 전설에 남을 만한 일이라고
다들 펄쩍펄쩍 뛰고, 서로 끌어안고, 기뻐서 난리가 났다.
하반하 아이들이 그동안 정말 열심히 축구경기를 응원했는데,
오늘은 탄식소리가 아닌 함성소리를 낼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D-2. 오늘의 찬희쌤: 처음으로 오카리나를 혼자 독학하신 찬희쌤.
우리가 연습하는 노래 something stupid를 들려드렸더니
비눗방울이 떠다니는 듯한 느낌과 병아리가 총총총 행진하는 듯한 느낌으로
오카리나를 더 가볍고 리드미컬하게 불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곧장 오카리나를 집어들어 바로 운지법을 익히시고는
직접 그 느낌을 선보여주셨다.
음악적 재능까지 훌륭하신, 정말 못하는 게 없으신 찬희쌤이다.
6/28(목)
트램을 타고 돌마바흐체 궁전에 갔다.
이 궁전은 술탄의 지시로 만들어진 궁전인데,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비슷하게 지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찬희쌤께서는 돌마바흐체 궁전이 베르사유 궁전과 구조는 비슷하지만,
역시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많이 허술하다고 하셨다.
D-1. 오늘의 찬희쌤: 우리를 가이드 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신 찬희쌤.
찬희쌤은 문화재나 유적지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없는 뇌색남이시다.
찬희쌤이 떠나시기 전에 찬희쌤 머릿속에 있는 모든 지식들을 SD카드에 옮겨 담아서
내 머리 속에 꽂고 싶다.
궁전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못찍었다.
어쨌든 엄청 크고 방도 정말 많았는데, 그렇게 예쁘거나 ‘와우~’할 만큼
멋있는 궁전은 아니었다. 왠지 좀 옛스럽고, 어두침침했다.
이 궁전에 살라고 해도 별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방이 여러 개 있어서
길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고, 계단 오르락 내리락하기도 다리 아플 것 같고,
그렇다고 크게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집이 훨씬 더 깔끔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도 세련되고, 크기도 딱 적당하고, 이웃들도 좋고,
출판사들과 카페들이 있는 마을도 예쁘고, 한적하고 여유롭고, 공기도 좋고.
나는 그동안 궁전보다도 좋은 집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헤르만하우스와 출판단지가 그리웠다.
6/29(금)
아침에 바다에서 수영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추운데 무슨 수영인가’하며
최대한 물에 안들어가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다른 아이들이 다이빙을 하는 모습을 보니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곳이 2주간 내가 정말 사랑했고, 내게 가장 힐링이 되었던 이스탄불의 바다라는 점에서 꼭 한번은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이 바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마침 대장님께서 카메라를 들고 나오셨기에 사진을 꼭 남기고 싶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바람막이 점퍼와 양말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다이빙 밴드 앞에 섰다. 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들었다. 별로 두렵지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다이빙 밴드 앞쪽을 향해 뛰었고
약간은 어설프지만 최대한 멋있는 포즈로 바다에 점프했다.
바닷불이 차가웠지만 춥다는 생각보다는 시원하고 상쾌하다고 느꼈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바다에 몸을 담궈서 너무 뿌듯했다.
이스탄불과 이 바다를 나는 평생 못잊을 것 같다.
한국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그동안은 너무 비싸서 안갔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찬희쌤이 가시 전 마지막 식사여서 이 식당에 가게 됐다.
우리는 김치찌개와 라면과 떡볶이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이라 반갑긴 했지만, 1인당 만원으로 먹기에는 아까운 식사였다.
김치찌개도, 라면도, 떡볶이도 모두 우리가 상상한 그 맛하고는 많이 달랐다.
한국 음식의 맛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터키 음식 같았다.
패키지 여행을 하며 한국음식에서 밥을 먹었던 게 생각났다.
항상 김치찌게, 된장찌게, 삽겹살 같은 것을 먹었었는데,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외국까지 나와서 굳이 한국음식점을 찾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한끼라도 더 현지 음식들을 먹어봐야 하는데, 맛도 애매모호한 한국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게 나는 항상 불만이었다.
물론 오늘은 찬희쌤과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한국식당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또한번 들었다.
터키에서 김치찌게를 찾고, 한국에서 케밥을 찾는 것은,
공부하면서 놀 것을 생각하고, 놀면서 공부할 것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즐길 수 있는 걸 최대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하면서는 최대한 현지 음식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고,
실천을 위해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케밥을 먹었다.ㅎㅎ
아이스크림 22개를 샀다.
원래는 아이들에게 오레오 콘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었는데,
그건 1개에 4.5리라라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대신 1개에 2리라인 초코바 아이크림을 샀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신세를 진 것도 많고,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이 아이스크림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어 기뻤다.
사실 나는 짐을 옮겨나르는 것도 못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항상 더뎌서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를 대신해 물을 몇번씩 더 나르고, 짐을 몇개씩 더 드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건 열심히 번 돈을 함께 나눠쓰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크림이 총 44리라였는데 4리라를 잘 깍아서 딱 40리라에 샀다.
40리라이상을 아이들과 나눠먹는데 지출하겠다고 했는데,
계획에 딱 맞아 떨어졌다.
안드시는 선생님들 것을 뺏으면 40리라보다 적게 나왔을텐데,
나는 딱 40리라를 지출할 운명이었나 보다.
남은 아이스크림은 흑해 아저씨 음식점에 갖다드렸다.
D-DAY. 오늘의 찬희쌤: 민승쌤이 선물한 하반하 티셔츠를 입고 좋아하시는 찬희쌤.
오늘은 찬희쌤이 정말로 떠나시는 날이었다. 우리는 송별회를 했다.
찬희쌤께 준비한 노래를 불러드리고, 롤링페이퍼를 전해드렸다.
찬희쌤이 꼭 어학병에 붙으시길, 안전하게 다치지 않고 군대생활을 잘 마치시길 기도한다.
찬희쌤께 마지막으로 투블럭을 부탁드렸다.
찬희쌤은 끝까지 안된다고 거절하셨지만, 결국 나의 설득에 못이겨 바리깡을 잡으셨다.
나는 밀거면 눈에 띄게 제대로 밀고 싶었다.
찬희쌤은 그러면 정말 큰 일 난다고 계속 나를 말리셨지만, 나는 더 밀어달라고 부탁드렸다.
나는 번개 모양 마크까지 머리에 박았다.
나는 내가 꿈에 바라던 바로 그 머리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오빠가 하반하 여행을 떠날 때 투블럭을 했던 게 너무 멋져서
그때부터 항상 투블럭을 해보고 싶었으나, 한국에서는 주변의
시선도 신경써야 해서 쉽게 시도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여행을 하며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서,
이렇게 자유롭게 내 머리를 자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사우나에 가서 깨끗이 때를 밀고 싶은데,
아무래도 머리가 기를 때까지 6개월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또 남자로 오해 받을지도 받을지도 모르니.
그 점을 제외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머리다.
찬희쌤의 마지막 걸작품이 되어 기쁘다.
<스피킹: 내가 판사라면?>
오늘의 주제는 나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까인데요. 사건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원인 모를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거동도 불편하고, 제대로 생각을 하거나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병이 더 심해지기 전에 피고인에게 말했습니다.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이죠. 아버지의 수발을 들어드리던 피고인은 이 말을 듣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한 사건에 수정해야 할 것이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나요?
없다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피고인은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아버지를 죽였죠? 네, 그랬습니다.
피해자인 아버지에게는 죽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피해자는 자신의 의지를
피고인에게 분명히 표명했습니다. 피고인은 죄를 무릅쓰고서라도 피해자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했습니다. 이 점 참작하겠습니다.
피해자는 불치병에 걸렸고, 혼자서는 삶을 유지해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기본 능력을 상실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의 삶을 이어나갔다면 그는 목숨은 부지했겠지만, 그가 건강했을 때에 쌓아두었던 관계와 모든 것들은 오히려 파괴되고, 그는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삶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병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했을 것 입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했던 점, 피해자의 고통을 절감해주고자 했던 점, 참작하겠습니다.
피고인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아들로서 부양해야 했고,
피해자의 막대한 의료비용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피고인이 짊어 졌을 경제적 부담, 참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인했고,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또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죽여달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가 병자였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이 말의 신빙성에 의심이 갑니다. 피해자는 병이 진전된 상태에서 이 말을 했고, 말을 했을 당시 뇌에 손상이 있었거나 판단에 어려움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혹 피해자가 진심으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이 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피해자는 왜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을까요? 가치없는 삶을 더이상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분명 피해자는 피고인인 아들을 걱정해서,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말은 ‘죽고 싶다’고 하지만, 세상에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고인에게는 어버지의 이런 진심을 알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ㄴㅋ인 괘씸죄가 적용됩니다. 또, 피고인은 아버지를 옳은 방향으로 설득하지 않은 죄, 대안이나 대책을 알아보지 않은 죄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피해자가 피고인인 자신의 아들이 앞으로도 정상적인 삶을 잘 살아가길 원했을 것이라는 점과 피고인이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으로 이미 시달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 죄책감으로 벌을 받을 것라는 점을 감안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본 판사는 피고인에게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600시간을 선고합니다. 집행유예 기간 동안 피고인에게 다른 살인의 용의가 있는지 살필 것이며, 사회봉사 600시간을 통해 피고인이 자신이 죽인 생명을 대신하여 다른 생명들을 돌보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할 것 입니다.
이상,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소감: 이 재판의 답은 결국 더 구체적인 가정을 만들어 판결을 내리는 것이었다.
부자사이의 관계는 어땠고, 집안 형편은 어땠고, 당시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그런 사실관계를 모른다면 판결은 매우 추상적이고, 부정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협박했을 수도 있고, 아버지에게 악감정이 있어 계획적인 살인을 한 것일 수도 있고, 병원에서 치료를 할 수 있는 돈이 충분한데도 재산을 일부러 숨겨두었던 것일 수도 있다.
가정하는 것에 따라 판결은 완전히 반대가 될 수도 있는데, 나는 이번 스핑킹에서
이 점을 놓쳤다. 나는 판결문을 쓰며 이 남자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그쳤다. 결국 나는 주어진 불충분한 정보만을 가지고 허술한 판결문을 써냈다.
스피킹 수업을 할 때마다 써니쌤이 원하시는 요점이 있는데, 나는 항상 그것을 빗겨간다.
그리고는 수업이 끝날 때 써니쌤이 말씀하시면 그제서야 ‘아, 그렇게 할껄’하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나는 언제쯤 요점에 적중하는 스피킹을 할 수 있을까?
첫댓글 엄마가 짐작했던 것보다 은재의 '마음먹고 돈쓰기 프로젝트'는 훨씬 계획적이고 균형잡혀 있으면서도 도전적이고 호기로우며 사랑이 가득찬 프로젝트였구나^^ 돈쓰는 기쁨와 시행착오를 되도록 많이 느낄수있도록..돌아오면 용돈제를 도입하도록 하자!!
무엇보다 그토록 원했던 것들을 실행할수 있었다니 엄마도 기분이 좋다. 딜라이트 먹기와 투블럭 헤어스타일~
은재양 지난주에 보고서가 없어서 뭔일인가 했었네요
완벽한 보고서 최고입니다
이제 은재가 여행을 즐기고 있구나. 시야도 넓어지고 생각도 커지고 있네? 어때? 아빠 말 듣기 잘했지? 근데 우리 가족여행이 모두 패키지상품이었던 건 아니야.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구나. ㅠㅠ
은재의 빼곡한 체험기 정말 실감난당~읽고 간접체험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은재의 수고로움이 느껴져서 조금 날로 체험하는것같아 미안한 마음도 드네..무튼 은재의 소중한 여행기의 독자가 되었단다~여행으로 단단해지는 은재를 보니 든든하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수 있었는데 또 떠남을 준비하는것 같아 넘 아쉽구나..ㅠ
남은여행도 알차고 소중한 추억 많이 만들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