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인민항쟁특집호 전명선의 「방아쇠」와 1946년 대구 10월항쟁 (1)
돌아오는 10월1일 10월항쟁 78주기 위령제가 올려진다. 1946년 10월1일 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오딧세우스의 기나긴 고난의 항해를 노래한 서사시이다. 오딧세우스는 귀향의 여정 속에서 숱한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중에서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전설의 섬 오기기아 칼립소와 관련된 일화이다. 그는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가 홀로 이 섬에 도착하였다. 칼립소는 오딧세우스를 사랑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를 7년 동안이나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오딧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야 함을 기억하고 칼립소가 그에게 영원한 삶과 재물 권력을 주겠다고 하였음에도 그 섬에서 떠나게 된다. 물론 그로 인해 그는 영생의 삶도, 위험 없는 안락한 삶도 없는 필멸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에게 많은 유혹을 버리고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아내와의 약속이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기억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떤 사건은 그것을 회상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상이한 평가를 받는다. 해방기에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은 1946년 10월 대구를 기점으로 하여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던 민중봉기를 일컬어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조선공산당 총비서였던 박헌영은 그것을 ‘항쟁’이라 이름 붙였다. 정해구는 10월 사건의 성격규정 -‘10월 인민 항쟁, 비조직적 농민반란, 10월 폭동’ 등- 과 관련해 그것이 ‘민중 또는 인민항쟁’이라고 밝히고 또 그것을 ‘10월인민항쟁’이라고 명명하였다. 10월인민항쟁에 명명 작업에 있어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사건’이었다. 10월인민항쟁 을 가치중립적인 ‘사건’의 명명하여 10월사건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대 우익지는 10월사건을 ‘사건’이라고 명명하지만 기사 제목이나 본문의 서사를 통해 그 사건을 정치적으로 반(反)민족적인 ‘폭동’으로, 또는 ‘민중·인민 봉기·항쟁’으로 의미화하였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대구10월인민항쟁’을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이유였다. 그에 관한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조선문학가동맹에서 만든 『문학』 인민항쟁특집호에 수록된 작품 중 전명선의 「방아쇠」를 알게 되었다. 전명선의 「방아쇠」는 파탄에 빠진 노동자의 삶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9월 총파업의 소식을 듣고 힘을 얻은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하던 중 대구 시민들의 쌀 배급요구 시위에 참여했다가 동족에게 발포하는 현실을 보고 느끼는 분노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