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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각자 체력에 따라
A 코스 '북한산성 입구 → 의상봉 갈림길 → 의상봉 → 가사당암문 → 용출봉 → 용혈봉 → 증취봉 → 부왕동암문 → 나월봉 → 나한봉 → 청수동암문 → 삼천사 갈림길 → 삼천사 계곡 → 삼천사 → 삼천탐방지원센터'의 8.4km, 4시간 코스와
B 코스 '북한산성 입구 → 계곡 갈림길 → 주 등산로 → 등운각 → 법용사 → 중성문 → 용학사 → 부왕동 갈림길 → 부왕사지 → 부왕동암문 → 삼천사 갈림길 → 삼천사 계곡 → 삼천사 → 삼천탑방지원센터'의 6.7km, 2시간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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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의상능선 코스 - 공룡능선 축소판
백운대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주 능선은 문수봉에 이르러 가지를 친다. 문수봉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비봉능선, 북쪽으로 7개의 암봉을 솟구치며 뻗어 내린 능선이 의상능선이다.
문수봉은 북한산의 모든 봉우리와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멀리 북한산 정상부의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의 화려한 바위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오고 서쪽으로 비봉능선의 승가봉, 비봉, 향로봉이 발아래 펼쳐지고, 서북 방향으로 뻗은 의상능선엔 나월봉, 용출봉, 의상봉 등 의상 8봉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의상능선을 오르는 가장 큰 재미는 북한산을 한눈에 보는 것이다. 의상봉 못미처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며 웅장한 자태를 나타내기 시작하며 능선을 오를수록 북한산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정상에 서면 북한산의 참모습을 보수가 있다.
의상능선은 북한산성 12 성문 종주 코스의 기점이기도 하다. 북한산성 12성 문종주란 의상능선에 있는 성문과 주 능선 위의 성문, 원효능선상에 있는 성문 등 모두 12개의 성문을 산행 대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능선에 이어지는 8개의 암봉이 공룡능선의 축소판 같다고 하듯 산행이 다소 힘겹다. - 한국의 산하
매월 4주 차 토요일은 등산방 정기산행 일이고, 그중 짝수 달은 87 산악회와 연합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칼봉산 연합산행 때[산행기], 10월 산행을, 통영 사량도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11월 연기하기로 했으나, 11월 말 섬 산행은 겨울 바다의 낭만을 추위가 압도한다는 주변의 의견에 따라, 내년 봄으로 연기했다. 따라서 10월 연합산행을 11월로 연기할 이유가 사라져, 예정대로 10월 4주 차에, 서울 근교의 단풍이 좋은 산 중 하나를 골라 단풍산행을 하기로 했다. 서울 부근의 단풍 하면, 소요산 아니면, 북한산인데, 소요산은 근교이기는 하나, 대중교통으로 가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많은 인원이 쉽게 참석할 수 있는 북한산을 선택했다.
연합 산행은 다양한 체력의 각 학번 동문 산악회의 연합이라는 성격 때문에 거의 모든 산행은 A, B 코스로 나누어 진행한다. 물론 양 코스가 비슷한 시각에 산행을 끝낼 수 있도록 코스를 계획한다. 해서 이번 북한산행은 A 코스가 북한산 내부를 한눈에 조망하며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의상능선이고, B 코스는 계곡을 따라 움직이는 계곡 산행에 가깝다. 아주 당연히 A, B 코스는 비록 다르나, 들머리나, 날머리는 같아, 날머리 부근 식당에서 뒤풀이할 예정이다. 다만, 거리나, 시간이나, A 코스가 더 길고, 더 걸려, A 코스 하산 시간에 맞춰 먹방을 진행할 예정이라, B 코스 친구들은 그만큼 더 여유가 있어, 유유자적 계곡과 단풍을 즐길 수 있다.
늦가을 단풍산행답게 산행 당일인 토요일 북한산은 11~12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종일 흐릴 거라는 예보다. 추우면서도 조망까지 좋지 않을 예정이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 때문에 A 코스도 상황을 봐서 부왕동암문에서 하산할 생각도 있다. 준비물은 목표 하산 시각이 13시 30분이라 점심을 뒤풀이 장소에서 먹기로 해, 간식거리와 물 정도라, 무게 부담은 거의 없다. 다만, 영빈이 정상주로 소주나, 막걸리를 가져올 것에 대비해, 오전 8시경 대조시장 반찬가게가 문을 열었으면, 홍어 무침을 아니면, 비상식으로 들고 가는 사과가 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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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까지 북한산성 입구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평소 산행 일보다 느지막이 일어나, 끓인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가볍기 그지없는 배낭을 둘러메고, 8시경 집을 나섰다. 물론 홍어 무침을 사기 위해 대조시장을 관통하는 길을 택해, 시장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8시간 넘어, 반찬 가게는 문을 열었으나, 홍어 무침은 없고, 삭힌 홍어만 보인다. 그 홍어를 노려보고 있으니, 가게를 정리하던 주인장이 살 거냐? 물어, 무침은 없냐고 되물었더니, 아직 도착을 안 했다고. 해서 홍어 하나를 사서 배낭에 넣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중앙 버스정류장을 건너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데, 목적지인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는 704번 버스가 정류장을 떠나고 있다. 704번이 언제 올지 모르니, 시외 34번을 타야겠다 생각하고, 신호대기가 끝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 운행 상황판을 확인했다. 시외 34번은 24분, 704번은 6분 후 도착한다. 시외 34번의 배차 간격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느낌이다. 어쨌든 6분 후 도착한 704번을 타고 놀랐다. 대개 이 시간에 이 정류장에서 타면 대여섯 자리의 빈자리가 있는데, 없을 뿐만 아니라, 서서 가기 좋은 자리도 이미 등산객이 차지하고 있어, 뒤의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불광역을 출발한 버스는 연신내역에서 등산객으로 만원을 달성했음에도, 구파발역에서 그만큼을 더 태워, 숨쉬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로 변했다. 지난 시장 때는 성수기 구파발 버스 정류장에서 등산객을 정리하는 요원이 있어, 혼란이 없었는데, 오늘은 요원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앞·뒷문으로 서로 타려고 우왕좌왕 난리다.
구파발역의 혼란 상황을 보고 나니, 과연 오늘 제시간에 산행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버스 타는 게 쉽지 않은데, 그 이전에 버스를 타지 않고, 구파발역에서 탈 생각으로 오는 친구들이 있다면, 버스 몇 대는 그냥 보낸다. 출발한 버스가 백화사 정류장에 정차하자, 우리와 같이 의상 능선이 목표로 보이는 3명의 등산객이 인파를 뚫고 내리는데, 쉽지 않다. 그걸 보고 나는 다들 내리는 산성 입구에서 내리는 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도착했음에도 승객이 내릴 생각을 안 한다. 해서 인파를 뚫고 내렸는데, 내린 승객은 나를 포함 예닐곱에 불과하고, 그보다 많은 숫자가 앞문으로 타고 있다. 얼마 전 흥수가 SNS에서 '숨은벽' 단풍이 절경이라는 글을 봤다고 했는데, 다들 숨은벽으로 몰려가는 거 같다. 숨은벽 단풍이라?!
9시 4분에 만남의 광장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서너 명이 앉아 있으나, 아는 사람은 없다. 하긴 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도착한 친구가 있을 리가. 해서 배낭을 벗어 한쪽에 두고 의자에 앉아 오가는 등산객을 구경하고 있는데, 양주방항에서 빈 관광버스가 들어와, 무언가 집히는 게 있어 앞창을 보니, 예상대로 '산악회 북한산'이라 쓴 종이가 있다. 숨은벽 들머리인 효자 2리나 사기막골에 승객 즉 등산객을 내려주고 산성 입구 주차장으로 온 거다. 숨은벽 단풍을 감상하고 백운대에서 인증을 남긴 후, 산성 입구로 하산하는 코스일 확률이 99%다. 인증꾼이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니, 단풍이 절정이라는 숨은벽을 들머리로 삼아 까만 소 인증을 하러 온 지방 안내산악회다. 그런데, 수없이 북한산을 다녔지만, 지방 안내산악회 버스를 보는 건 처음이다. 아니, 과거에는 안내산악회라는 걸 몰라, 보고도 알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좀 지나자 버스가 한 대 더 들어온다. 대덕관광, 대전?
지방의 산꾼도 찾는 북한산과 같은 명산이 수도에 있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하며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동선과 영빈이 도착했다. 그리고 미옥은 집에 일이 있어 한 시간가량 늦게 출발한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고로 85는 영빈의 동행을 빼고 다 왔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영빈이 한 친구를 데려왔는데, 마스크를 써서 정확하지는 않으나, 익숙한 얼굴이라, 마스크를 벗어 보라고 했다. 미국에서 혼자 사는 친구 딸내미다. 2005년 5월에 보고 처음이니, 18년만인가? 반갑게 인사하고, 엄마와 같이 안 온 이유를 물으니, 바쁘단다. 그리고 87 친구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87 산행 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남의 광장이 아니라 위의 등산로 입구에서 기다린다는 거다. 마침 막걸리 한잔할까 생각 중이라, 기쁜 마음으로 위로 올라가자, 두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어, 그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 묵무침과 어묵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오랜만의 하산주(下山酒)가 아니라 등산주(登山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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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한 친구들이라 버스를 타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예정보다 많이 늦은, 10시 10분경 함께 하기로 한 모든 친구가 도착했다. 해서 먼저, A, B 코스를 나누려고 했는데, B 코스를 하기로 했던 친구 둘이 분위기에 휩싸여 A 코스로 넘어오는 바람에 졸지에 B 코스가 없어졌다. 해서 87, 6명, 친구 딸내미 포함 85, 4명 총 10명이 북한산 단풍산행으로 A 코스인 의상봉을 오르기로 했다. 선두는 87 행동 대장이, 후미는 내가 봤다. 등산로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산행을 시작해 10시 19분에 의상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10시 34분에 백화사 갈림길을 지나, 10시 40분경 의상봉 암릉의 시작 지점에 도착했다. 후미에서 뒤로 쳐지는 친구들을 독려하기도 하고, 오랜만의 의상봉 산행이라,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며, 올라가는데,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맑아 조망은 좋은 편이었다. 미세 먼지로 저 서해까지 보는 건 무리지만. 그렇게 올라가자, 체력적인 문제로 등산지팡이로 여기까지 올라왔던 친구들이 지팡이가 짐이 되기 시작해 한 친구의 지팡이를 내가 들고 뒤에서 따라갔다. 그러다, 또 한 친구가 거의 탈진 상태라 그 친구의 배낭도 내가 짊어졌다. 그렇게 배낭 두 개에 등산지팡이까지 들고, 암릉을 즐기며 후미에서 따라가는데, 배낭을 내게 넘겨준 친구가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암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서서히 고개가 뒤로 넘어간다. 해서 20m만 더 가면 쉼터가 있으니, 거기서 쉬자고 말하며, 그 친구 얼굴을 보니, 금방 노랗게 변하고, 눈이 정상이 아니다.
그걸 보자마자 뛰어올라가, 그 친구의 가슴을 눌러주고, 옆의 다른 친구에게 119로 전화하라고 소리쳤다. 계속 가슴을 눌러주며 물을 먹이고,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이 준 사탕을 먹이자, 이 친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해서 119는 다시 문제가 생기면 전화하겠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의상봉 정상은 얼마 남지 않았으나, 그보다 더한 용출봉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라 이 친구는 산행을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내가 동행해 하산하기로 했다. 물론 여기까지 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워 처음 계획했던 B 코스 산행을 하기로 하고. 다행히 내가 짊어졌던 이 친구 배낭은 직전에 87 산행 대장에게 넘겨준 후라, 짐의 부담은 없었다.
조심조심 하산을 시작해 11시 30분경 의상봉 갈림길로 돌아와 도로를 따라 대서문 방향으로 가며, 계속 왼쪽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그렇게 왼쪽을 주시하며 올라가자, 자연보호헌장 비가 있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심고 있는 게 보여 그게 뭔지 물어봤다. 아무리 봐도 잔디 같은데, 여기다 잔디를 심는 게 이상해서다. 돌아온 답은 "맥문동"이다! 맥문동?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모르겠다. 그들을 지나, 50여 미터를 올라가자, ‘자연관찰로’ 갈림길이다. 볼 것도 없이 좌회전해 자연관찰로로 들어섰다. 그 길을 따라 계곡 쪽으로 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위로 올라가는 방향은 누군가 나무로 가지 말라는 표시를 해 놓았다. 물론 아래로 가는 산성 입구 쪽은 열려있다.
가지 말란다고 안 갈 우리가 아니라, 가지 말라고 나무로 막아 놓은 방향인 위로 갔다. 역시 예상대로 곧 길이 사라졌다. 하지만, 산책로가 사라졌을 뿐 과거의 등산로는 풀숲 사이로 희미하게 그 흔적이 보여 그 길을 따라갔다. 그 길을 가며, 급경사의 암릉을 피해와서, 오지 산행을 하고 있다는 등의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가시에 찔리기도 하며, 풀숲을 헤치고 나가 11시 45분에 오가는 등산객으로 번잡한 계곡 길에 도착했다. 뒤로 돌아 저 멀리 의상봉을 사진으로 남긴 후 계곡 길을 따라, 중성문을 향해 올랐다. 11시 50분에 유적발굴이 끝나 신축 중인? 끝난? 절을 지나, 11시 56분에 이름 있는 폭포는 아니나, 이 구간 계곡에서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작은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를 동영상으로 남긴 후 계속 올라갔다. 그런데 한동안 안 왔더니, 길이 많이 변한 걸 알았다. 등산객이든 관광객이든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건 중요하다. 다만 산이 망가지는 게 문제일 뿐. 12시 15분에 계곡 길을 벗어나, 대서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났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책로의 시작이다. 물론 이 길도, 지금까지 따라온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로 대남문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중간에서 계곡을 건너, 부왕동암문으로 향한다. 그 중간에 있는 중성문을 목표로 올라가는 중 의상능선을 타고 있는 87 산행 대장과 전화로 12시 30분에 부왕동암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재 그들은 용출봉을 지나, 용혈봉에서 내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럼 다음 봉우리가 증취봉으로 12시 30분까지 부왕동암문 도착은 멤버 조합상 쉽지 않다. 물론 우리도 부왕사를 지나 암문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깔딱에서 이 친구가 얼마나 힘을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약속 시간 8분 전인 12시 22분에 중성문을 지났다. 고로 약속 시각에는 이미 늦었다. 해서 다시 전화하니, 그쪽도 예상대로라, 30분을 늦춘 1시로 시간을 연기했다. 중성문과 그 옆 시구문이 잘 있는 걸 확인하고, 대남문 방향으로 올라가자 단풍이 장관이다. 산을 좀 타는 등산객은 숨은벽으로, 관광객은 북한산성계곡 길로, 산꾼은 의상능선으로 분산해 단풍을 즐기는 건지, 여기도 길을 가다 말고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의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기며 계속 올라, 12시 34분에 부왕동암문 갈림길에 도착했다. 남은 거리는 0.9km, 약속까지 남은 시간은 26분. 내 페이스라면 10여 분이면 도달할 거리와 코스나, 동행하는 친구의 체력에 맞추면 간신히 약속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다. 그래도 우리가 빠르겠지만.
널찍한 바위로 만든 징검다리로 북한산성 계곡을 건너, 부왕동암문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여기야말로 단풍이 장관이다. 이번 단풍산행 코스는 제대로 잡았다고 자찬할 정도다. 역시 동영상과 사진을 찍으며 올라가, 12시 44분에 부왕사 앞을 지났다. 암문까지 남은 거리는 500m, 남은 시간 16분. 단풍을 즐기며 위로 올라가다가 뒤로 돌아보니, 친구가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점심시간이 지나, 배가 고픈 것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배낭에 늘 넣고 다니나, 꺼내 먹은 일은 없는 비상식량인 에너지 바, 초콜릿을 꺼내, 건넸다. 그리고 물도 줄려고 배낭 옆 주머니를 보니, 생수가 안 보인다. 아까 의상봉 암릉에서 동선이 내게 생수를 줄 때, 나는 있다며, 다시 돌려준 일이 있는데, 그게 내 배낭 옆 주머니에서 빠진 거였다. 낭패다. 물론 정 목이 마르면 옆 계곡물을 마시면 되나, 조금 있으면 A 코스를 타는 친구를 만나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여, 배낭에서 사과를 꺼내 줬다.
계속 오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단풍 숲 곳곳 너럭바위 위에는 많게는 20여 명, 적게는 두세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계속 가, 12시 57분에 등산 앱이 부왕동암문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정확히는 암문 반경 50m 내다. 역시 예상대로 1시 직전이다. 그런데, 더 올라가 봐야 의미가 없다. 암문 주변에는 10여 명이 둘러앉을 만한 공간이 없으니, 여기에서 식당을 찾아야 한다. 해서 주변에서 꽤 넓은 곳을 찾아, 고목을 끌고 와 사각형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87 산행 대장에게 전화해 보니, 아직 도착 전이다. 해서 암문에 도착하면, 부왕사 방향으로 50m 정도 내려오라고 일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1시 5분경 중간에 합류한 미옥을 포함 의상능선 팀 9명이 식당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싸 온 먹거리를 펼쳐놓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술이라고는 영빈이 사 온 막걸리 두 병이 다라, 많이 부족했으나, 다른 음식은 차고 넘쳐 다 먹을 수가 없었다. 해서, 애초 김밥은 다 풀지 않고, 하산주 안주로 하기로 하고 싸 온 그대로 다시 배낭에 넣었다. 약 15분 정도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모든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87 행동 대장 배낭에 매다는 거로 우리가 있었다는 흔적을 없앴다. 그리고 애초 B 코스로 갈 생각이었던, 두 친구와 다른 한 친구가 합류한 세 친구는 부왕동암문에서 바로 삼천사 계곡으로 내려가고, 나는 다시 A 코스 팀에 합류해 남은 의상능선을 탔다. 사실 부왕동암문부터 문수봉까지는 과히 힘든 코스는 없다. 의상능선에서 힘든 구간은 백화사 갈림길부터 부왕동암문까지라, B 코스로 내려가는 친구에게도 동행하자고 권했었다. 그런데 북한산 안내도를 보면 부왕동암문부터 청수동암문까지, 가장 힘든 구간이라는 의미의 검은색으로 표기한다. 사실 우회로가 없이 암릉으로 다닐 때는 가장 힘든 구간일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그래서 우회로를 만들었지만.
1시 42분경 부왕동 암문에 도착해 나월봉을 향해 올랐다. 의상능선에는 의상, 용출, 용혈, 증취, 나월, 나한, 715봉, 문수 등 8봉을 통칭 의상 8봉이라 부른다. 문제는 저 봉우리의 순서가 계속 헷갈린다는 거. 8봉 중, 715봉은 공식 이름이 없어, 산꾼에 따라 상운봉, 가사봉 등으로 부르나, 일반적으로 높이인 715봉으로 불려 이름 자체가 헷갈리고, 나자 돌림 나월과 나한은 매번 반대로 부른다. 나월이 불교 나한의 우락부락한 모습을 닮아서 그런가? 용자 돌림 용출과 용혈은, 용출(龍出)의 우뚝 솟은 모습이 용이 막 이륙하는 모습이라, 헷갈릴 여지가 없는데! 와중에 의상능선 최고의 조망처라는 나월봉 정상에 올라가려면 언제부터인가 입장료를 내야 한다. 몇 년 전 봄에 왔을 때는 요원 둘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 올라가는 걸 포기했었다. 생각난 김에 내년 봄에 다시 시도해 볼 생각이다.
최고의 조망처인 나월 암릉에 올라가지 못하지만, 우회 등산로를 따라가면 전망대가 하나 나온다. 북한산 오 형제 염초, 백운, 인수, 만경, 노적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리고 옛사람들이 백운, 인수, 만경을 합쳐 삼각산이라 부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미 여기서 찍은 사진이 수없이 많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북한산 오 형제 사진 몇 장 찍고, 삼각산을 배경으로 후배의 인증도 찍어준 다음, 저 아래로 보이는 단풍에 쌓인 산성의 모습도 남겼다. 그리고 계속 우회로를 따라가, 2시 15분경 나월봉 영역을 벗어나, 나한봉 영역으로 돌아섰다. 그 기념으로 뒤로 돌아 그 유명한 나월봉의 불꽃바위를 사진으로 남겼다.
나한봉 바위 능선에 올라, 젊은 85와 의상능선과 삼각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으며 유유자적 올라, 2시 25분경 나월 아니 나한봉 정상에 도착했다. 나한봉 정상에서 비봉능선에서 북으로 뻗어나가는 능선과 계곡 중, 삼천사로 가는 여러 방법에 관해 설명하고, 가장 빠른 건 청수동암문에서 하산하는 거라는 걸 87 산행 대장과 행동 대장을 비롯해 주변의 친구에게 알려줬다. 부왕동암문에서 하산한 친구들이 기다리는 것도 있고, 행동 대장이 원하는 응봉능선으로 하산했다가는 야간산행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디로 하산할 건지 결정하는 건 중요하다. 상황이 어쩔 수 없어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나한봉 정상에서 내려와 715봉으로 향했다.
715봉에 오르기 위해 리지로 다가서자, 715봉을 근거지로 등산객 등쳐먹는 호랑이가 막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어 그 뒤를 따라가며 영상을 찍었다. 급경사의 암릉을 오르느라 나는 숨이 가빠죽겠는데, 호랑이는 요염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유유자적 올라간다. 가끔 따라오는지 힐끔거리면서. 이 암릉 구간에도 삼각산을 조망하기 좋은 전망대가 있어, 바위 능선에 올라 숲으로 사라지는 호랑이와 작별하고 여기서 찍은 사진도 많지만, 기록을 위해 삼각산의 모습을 다시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자, 유적 발굴과정에서 나온 기와 조각을 모아 놓은 곳이 있다. 과거에도 있었나?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등산로가 아니라, 성벽 위로 청수동암문으로 향해 2시 38분에 도착했다.
청수동암문에 도착해 젊음 85의 사진을 찍어준 영빈이 문수봉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분명 나한봉에서 청수동암문으로 하산하기로 했는데, 해서 이유를 묻자, '젊은 85가 언제 다시 여기 올 기회가 있겠냐?'라는 답에, 다른 친구들에게는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라고 얘기하고 앞장서서 문수봉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 따라온다. 87 대장들이야 문수봉에 간다니, 반가웠을 거지만, 나머지는 길을 몰라,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사실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내려서는 암릉이 재밌기는 하다. 그렇게 문수봉으로 향하다가, 옛 생각이 나서 입장료를 내야 하는 암봉으로 올라갔다가, 무리하지 말자는 의견에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정상석이 있는 문수봉이 아니라, 진정한 문수봉으로 올랐다. 물론 미옥과 영빈에 나를 포함한 셋만, 나머지는 정상석이 있는 문수봉으로 갔고. 덕분에 서로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어 좋았다.
아래에 있는 등산객은 저길 어떻게 올라갔지, 신기해하며 암봉 쪽으로 오다가, 입장료를 받는다는 문구를 보고, 더 오지 않고 아래에서 우리를 구경하며 서로 떠들고 있다. 그런데 그 숫자가 갈수록 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렇게 모여 있다가는 정말 입장료를 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오늘 같은 성수기에는 대남문에 입장료를 받는 요원이 상주하기 때문에 빨리 내려가야 한다. 한데, 아무 생각 없는 두 친구는 유유자적 온갖 자세로 인증을 찍고 있다. 해서 요원 얘기는 안 했으나,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해 그들을 끌고 내려와, 진 문수봉에 올랐으니, 정상석이 있는 문수봉은 무시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문수봉에서 하산하면 당연히 즐기는, 직벽에 가까운 암벽이 처음이라는 친구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랐다. 처음 이 구간을 내려갔던 게 대학 시절이었나? 기억이 맞는다면, 37년 전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물론 철봉은 교체를 계속했겠지만, 했을까? 이런 얘기를 후배와 하며 내려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바뀐 걸 발견했다. 여기를 마지막으로 내려간 게 2016년 10월 15일 영빈, 창우와 의상능선을 목표로 왔다가, 비봉능선까지 달려 족두리봉에서 하산할 때다. 고로 6년 전과 달라진 건, 개인적으로 이 구간에서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고 있던 암벽이 끝나는 부분에 철계단을 설치한 거다.
후배와 내가 제일 뒤에 내려오자, 모두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친구는 삼천사로 내려가는 길을 모른다. 해서 내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승가봉까지 달려서 삼천사로 내려가도 되지만, 단풍 명소는 청수동암문 방향으로 가다가 우회전해서 내려가는 계곡이다. 정규 탐방로임에도 이정표 따위는 없어, 길을 잘 모르는 등산객은 지나치기 쉽고, 이게 국립공원 정규 탐방로가 맞나 할 정도로 길이 좋지 않다. 해서 그길로 들어서자, 87 대장 둘이, 비정규 탐방로가 아닌지 의심한다. 의심을 사도 할 말이 없는 등산로로, 등산로에서 조금만 들어오면, 지름 30cm 정도 되는 나무에 의지해 떨어지지 않은 거대한 바위가 있다. 과거에는 그 밑으로 등산로가 있어, 바위가 떨어질까 두려워 뛰어다녔다. 그러다 언젠가 국립공원 공단에서 그 길을 폐쇄하고, 옆으로 길을 냈다.
이 코스를 아는 산꾼이 많지 않아 인적이 드물어, 길 상태도 좋지 않은데, 예상외로 이번 산행에서는 5팀 정도를 만났다. 평소라면 1팀 만나기도 쉽지 않은 등산로다. 그리고 그들도 여기가 북한산의 단풍 명소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눈과 사진으로 단풍을 즐기며 내려가는데, 4시가 가까워져 오자, 슬슬 배가 고파오고, 날머리와 가까운 삼천사까지 특별히 위험하거나, 길을 잃고 헤맬 구간이 없어, 뒤의 친구를 기다리기보다는 내 페이스대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산하는데, 영빈이 우리가 가는 식당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묻는 전화를 했다. 사실상 이 동네 우리 단골집이라 이름이나 전화번호는 몰라도 위치는 잘 아는 친구가 묻는다는 건 누군가에 전달하기 위함이다. 생각나는 사람은 딱 하나다. 미국인 젊은 85의 한국 엄마!
4시 18분에 B 코스 팀이 하산한 부왕동암문 갈림길에 도착했다. 식당까지 남은 거리는 1.9km다. 그런데, 상류야 뭐 그러려니 했는데, 하류로 내려가도 계곡에 물이 없다. 웬만하면 계곡에서 세족은 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계곡 상태가 세족할 만한 여건이 안 돼, 세족은 포기했다. 계곡 상태를 보니, 11월부터 산불 예방을 위한 입산 통제 기간의 시작인데, 이해된다. 매주 산에 가는 산꾼에게는 악몽의 기간이지만. 바짝 마른 계곡을 따라 내려가 4시 33분에 삼천사에 도착했다. 삼천사는 2021년 사월 초파일을 기념해, 진행, 영빈과 의상능선 종주를 목표로 달리다가, 중간에 지능선으로 빠져 들렸으니, 1년이 조금 넘은 방문이다[산행기].
당시에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라 절 안으로는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마애불이 잘 있는지 확인차 들어가 봤다. 무사히 잘 있는 걸 보고, 대웅전으로 내려가, 본존불에게 신고하려는데, 유리문이 앞을 막고 있다. 해서 정식으로 신고하지는 않고, 목례만 하고 내려와 감로수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아예 물이 없다. 아쉬운 마음으로 절 문을 나서자, 주차장 한쪽에 별도로 삼천사계곡에서 끌어온 물이 계속 흘러내리게 만든 시설이 있다. 당연히 그곳에서 손을 씻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4시 39분에 응봉 갈림길을 지나, 4시 47분에 오늘 산행의 날머리이자, 뒤풀이 장소인 토속정에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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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 방문이라, 주인장이 날 모를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먼저 온 친구들을 찾자, 아는 체를 하며, 어느 방에 있는지 알려준다. 날 알아서가 아니라, 손님이 몇 테이블 없어서인가? 뭐 어쨌든 안방으로 가보니, 테이블 세 개에 백숙 둘과 닭도리 하나가 버너 위에 놓여 있고, 밑반찬은 깔려 있는데, 정작 술은 없다. 초반에 무리해 상태가 좋지 않은 친구 때문에 술을 자제하고 있었던 거 같다. 해서 일단, 백숙이 있는 버너에 불을 붙이고, 빨갱이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들고 와 소맥을 만들어, 눈치가 보여 혼술을 못하고, 멍청이 기다리고 있던 후배와 무사 산행을 축하하는 건배를 했다. 오늘은 정말 축하해야 한다. 산신에게 감사하고.
좀 있으니, 뒤에서 바로 따라오던 미옥이 도착해 백숙으로 배를 채웠다. 물론 나는 안주로. 그렇게 먹고 있는데, 5시 5분경 후발팀 모두가 도착했다. 해서 나머지 두 개의 버너에도 불을 붙여 혹은 배를 채우거나, 혹은 안주로 먹고 있는데, 예상대로 미국인 젊은 85의 한국인 엄마가 합류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젊은 85라는 별명이 붙은 사연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웃었다. 87, 85 산행에 85와 같이 등장한 딸내미를 보고 누군가 농담으로 85냐고 묻는 바람에 졸지에 젊은 85가 됐다. 비록 농담이나 본인은 그게 억울했던지,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문자를 보냈다고. 젊은 85가 술을 잘 마셔, 늙은 87, 85와 부어라 마셔라 하는 통에 안주가 부족해 파전과 감자전인가를 더 주문해 빨갱이, 이슬이, 맥주, 소맥 등 취향에 맞게 하산주를 마시고, 몇 시에 헤어졌는지 기억에 없다. 8시가 안 되어 집에 도착한 거 같은데.
의상봉을 오르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처음 계획에는 없던 '북한산성 입구 → 의상봉 갈림길 → 의상봉 중간 → 의상봉 갈림길 → 북한산성 계곡 → 주 등산로 → 등운각 → 법용사 → 중성문 → 용학사 → 부왕사 갈림길 → 부왕동암문 → 나월봉 → 나한봉 → 청수동암문 → 문수봉 → 삼천사 갈림길 → 삼천사 계곡 → 삼천사 → 삼천탐방지원센터'의 119.4km, 6시간 42분의 A, B 코스 혼합 산행을 즐겼다. 이동 6시간 8분, 휴식 34분!
생각보다 시야가 좋아, 오랜만에 삼각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이 코스의 삼천사 계곡 산행은 역시 2017년 단풍산행으로 10월 28일 등산방 정기산행 후 5년 만이다.
북한산 단풍의 절경은 삼천사 계곡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