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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올해의 끝자락에 이르렀네요. 코비드 19에서 약간은 해방되었지만,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음에도 한 해의 마지막 걸음이라 그런지 강릉 여행안내 센터가 꽉 찰 정도[100명 가까이 되어 보였어요]의 바우님들이 모였습니다.
‘썰’국장님의 썰과 간단한 세리머니를 거치고, 구간지기님이 마련하여 주신 맛있는 시루떡과 귤을 챙겨 학이시습지길 들머리로 향합니다.
‘학이시습지’는, 바우길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지만, 공자의 《논어(論語)》 첫머리[1편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인용하여 강릉대학교 어느 교수님께서 이름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길 이름에 갑자기 《논어》 얘기가 나오는 것이 다소 생뚱맞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교와 지역 트레일 단체가 합심하여 탐사하였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들머리인 해람지(解纜池) 앞입니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면 이 해람지라는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람이란 사전에서는 출항=출범이라고 간단히 설명되어 있습니다만, [닻줄(纜)을 푼다(解)]는 이 말을 이곳이 대학교라는 점과 아울러 살펴보면, 대학생들이 이제 대학에 들어와 앞으로 그들의 앞에 무한히 펼쳐질, 때로는 비바람도 몰아칠, 저 넓고도 거친 바다를 항해해 나가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들머리 쉼터를 지나 숲속 길로 들어섰습니다. 길게 이어진 바우님들의 행렬[제가 바우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이렇게 긴 줄은 처음이었지요]을 따라 얼마간을 걸어 숲길을 벗어나니 저편 대관령과 바로 앞의 유천지구가 조망됩니다. 며칠 춥더니 날씨가 많이 풀리고 바람도 전혀 없어 포근하기까지 한 날씨입니다만, 대관령 쪽에는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았는지 조망은 시원치 않습니다.
숲길을 벗어나 땅재봉 앞에 멈춰 서서 베테랑 숲해설가이신 구간지기님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도 잠시 듣고.
우리들이 멈춰 선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땅재봉이라고 하네요.
그저 자연을 감상하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우리가 걷는 길에 있는 사물의 유래를 알면 더욱 의미있는 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어, 아시는 분도 계실 터이나, 땅재봉과 강릉 사주산(四柱山)에 관하여 잠깐 살펴보기로 하지요.
[땅재봉과 강릉 사주산]
땅재봉은 강릉시 유천동에 있는 봉우리이다. 옛날 이 봉우리에 당제(堂祭)를 올리던 당집(堂)이 있었다고 하여 당재봉[집 당(堂), 있을 재(在), 봉우리 봉(峰)]이라 하였는데, 당재봉의 음이 변해 땅재봉이 되었다. 땅재봉은 삿갓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으며, 동서남북으로 뻗어 내린 네 줄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또 땅재봉에는 좋은 묏자리가 많아 인근 마을 사람들이 밤에 몰래 시신을 가매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강릉의 4주산(四柱山)은 강원도 강릉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기둥(柱)같은 산봉우리를 말한다.
강릉의 4주산은 강릉 시내로 흐르는 남대천을 기준으로 하여 남쪽에 모산봉(母山峰)과 월대산(月帶山)이 있고, 북쪽에는 땅재봉과 시루봉이 있다. 네 개의 산봉우리는 강릉을 중심으로 외곽에 마름모꼴로 버티어 강릉의 터를 단단히 다져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옛 선현들은 강릉에 4주산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다고 믿었다.
4주산 중 모산봉은 굴산사 가는 길(바우길 7구간), 시루봉은 신사임당길(11구간)에서 만나볼 수 있지요.
땅재봉 곁을 지나 마을 어귀로 들어서니 ‘느릅내’라는 마을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느릅내]
느릅내[楡川(유천)]는 예전에 마을로 흐르는 냇가[위촌천(渭村川) 하류]에 느릅나무(楡)가 많이 자라 생긴 이름이다. 이 내는 위촌천으로 성산면 위촌리에서 흘러와 죽헌저수지로 흐른다. 마을은 땅재봉에서 마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있어 이 줄기를 기준으로 윗느릅내, 아랫느릅내로 나뉜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유천동도 이 느릅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느릅내 곁을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기 전 느릅내 가에서 한참을 쉬어 갑니다.
학이시습지길이 대개 평탄하여 난이도가 ‘下’일 터이나 이 숲길 때문에 ‘中’으로 자리매김되었다는 구간지기님의 설명을 끝으로, 이곳을 지나 숲길로 접어듭니다.
숲으로 들어서더니 구간지기님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를 들어보라”고 하십니다.
“구~~르르릉”하는 마치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가 얼음장 밑으로 들립니다.
“얼음 깨지는 소리예요”
아마도 저 얼음장 밑으로는 얼음이 깨지면서 봄이 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닌 게 아니라 이 구간 때문에 ‘中’으로 평가받는다는 설명이 전혀 허언(虛言)은 아닌듯합니다. 아니 모처럼의 오름길이라 그런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니 차라리 ‘上’이라고 함이 적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헐떡거리며 올라 아무 곳에 펄썩 주저앉고 말았네요(하여 이곳에서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했지요). 아무튼 우리들은 이곳에서 한참을 쉬어갑니다.
참고로 위 사주산 지도와 ‘마을 뒤에 있는 제일 높은 봉으로 강릉대학 뒷산 주봉(主峯)’이라는 인터넷 설명을 아울러 보면 우리가 한참을 쉬던 그곳이 마명산(馬鳴山)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다시 숲길을 이리저리 휘돌아 하산을 합니다. 하산하기 직전 비교적 너른 공터에서 구간지기님이 식사 후 한옥마을에 1시까지 집합할 것을 공지한 후 마을길로 내려섭니다.
하산하여 몇몇 바우님들과 소머리국밥에 소주 한잔 걸치고 집합 장소로 향합니다. 오후의 걸음은 평지만을 걷는 것이어서 별 부담이 될 것이 없어 그저 한가롭게 따라 걷기만 하면 되니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기도 합니다(반주로 마신 술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까지 지변(池邊-못가-여기서 말하는 못이 우리들 출발지에 있던 해람지는 아닐까요??)교회가 있던 자리에 묘한 카페가 하나 생겼네요. 바둑, 체스, 미니골프를 함께 즐길 수 있다고 하여 ‘바체프’라고 이름을 붙인 듯합니다.
이 역시 《논어(論語)》 12편 안연(顏淵)편에 나오는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는 ‘사물(四勿-네 가지를 하지 말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햇살 잘 드는 사물재(四勿齋) 앞에서 몇몇 바우님들이 해바라기를 하며 밝게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논어》 1편에서 출발하여 12편까지 왔으니 많이 온 셈입니다. ㅋㅋㅋ
오후의 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낸 벌거벗은 메타세콰이어길도 지나고.
얼음이 반쯤 녹은 경포 생태저류지에는 청둥오리들이 한가히 노닐고 있고, 냇가에는 무성한 갈대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연말이라 그럴까요, 선교장도 한산합니다.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선교장 안에 있는 월하문(月下門) 곁을 지납니다(13:24). 여느 때 같으면 구간지기님이 잠시 멈춰 이 월하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법함에도 참석 인원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버스 시간에 대려고 잰걸음으로 이동하는 탓인지 그냥 지나치십니다.
그전에 있었던 구간지기님의 설명과 인터넷자료로 다시 한번 정리해 봅니다.
이 시는 원래 중국 당나라의 가도(賈島)가 지은 시의 일부 구절입니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이 시를 지으면서 ‘밀/퇴(推)’ 자를 쓸까 ‘두드릴/고(敲)’ 자를 쓸까 망설이고 있던 중, 마침 지나가던 한유[韓愈-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문명(文名)이 높았다]와 마주쳐 그의 조언으로 문을 두드린다는 ‘고(敲)’ 자를 썼다는 고사에서 퇴고(推敲)[글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다듬는 일]라는 말이 생겼다지요.
며칠 따뜻한 날이 이어지더니 큰개불알꽃이 벌써 피어있네요.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꽃’ 중에서)
이 세상에 이름없는 꽃은 없습니다. 다만 이름을 모를 꽃이 있을 뿐. 그런데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부르기에 민망한 꽃도 있습니다. 이 사진의 큰개불알꽃이 그런 꽃일 겁니다[‘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도 그러하다]. 그 열매가 개(犬)의 불알(陰囊)을 닮아서 일본 식물학자가 명명한 것을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채용해 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봄을 알리는 봄까치처럼 이른 봄에 피어 봄을 알리는 꽃이므로 (큰)봄까치꽃으로 부르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만, 들꽃의 이름을 그 명명한 유래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불알 친구’라는 말을 어감이 좋지 않다고 꼭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점잖게 불러야 할 것이냐?” 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곳 김시습 기념관도 그냥 지나칩니다. 하여 그 전의 구간지기님의 설명에 인터넷 자료를 더하여 김시습에 대한 일화 하나를 보기로 합니다.
<김시습은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재능으로 유명하여 그 명성은 당시 세종(世宗)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세종은 궁금하여 김시습을 불러 한시(漢詩)를 짓도록 했다. 당시 다섯 살이던 김시습은 기대에 부응하는 시를 지었고, 세종은 답례로 비단 50필을 내렸다. 모두가 김시습이 어떻게 비단 50필을 들고 갈까 궁금해했다. 김시습은 비단 50필을 풀어 허리에 묶고는 집으로 유유히 돌아갔다.
김시습의 천재성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물론 다소의 과장은 섞여 있다. 비단 50필을 풀어 허리에 묶어도 5살짜리 아이가 끌고 갈 수는 없다. 마찰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린 김시습의 재능을 세종대왕도 아꼈다는 건 사실에 가깝다.>
그런 천재성에 영혼도 자유로웠으니 그에게서 좋은 시(詩)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장 안쪽으로 모과 하나가 뭐가 아쉬운지 아직도 세월을 붙들고 있네요.
둑방길 가에는 남천(南天)의 빨간 열매가 아직도 매달려 있으면서 지나는 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여줍니다.
긴 둑방길을 지나고 이제는 시들어 얼어붙은 자취만 보이고 있는 연꽃밭을 지납니다. 이제 곧 봄이 오고 철이 되면 다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겠지요.
소나무가 울창한 솔숲을 지나 허난설헌 기념관 앞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의 걸음도 대개 끝이 나려 합니다.
숲을 빠져나와 큰길가를 이리저리 돌아 종착역에 이르렀습니다.
해람지(解纜池)에서 출발하여 해람 카페에 도착한 셈이네요.
도장 찍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립니다만 3시에 온다는 버스가 도무지 올 생각을 않네요. 그래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한담을 나누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바우님들의 여유로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자연을 벗 삼아 바우길을 걸으면서 터득한 것이겠지요~~~
<후기>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시들지 않는 풀이 어디 있으며 흐르지 않는 세월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세밑이 되면 공연히 허전해지기도 하는 마음을 한시 한 수로 얽어보았습니다[운(韻)도 없이 다만 글자만을 나열한 제 습작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忽來忽去到送年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가 어느새 송년일새
今年一歲流如夢 금년 한해가 꿈 같이 흐르니
雪鬢明年又促白 눈 같은 귀밑머리 내년에는 더 희어지길 재촉하리
七十何變欲無故 나이 일흔에 뭐가 달라지겠나 그저 아무 일이 없길 바랄 뿐
어느 때부터인가 새해에는 뭘 해보겠다는 그런 무수한 결심을 하여 보기도 했건만, 이젠 다 부질없는 듯한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봄바람이 불고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이 오면 다시 또 희망의 나라도 떠나겠지요. 하여 '희망의 나라' 노래 하나 올려봅니다.
바우님들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길에서 또 뵙지요~~~
*둑방길을 걸으면서 바둑이님이 제6학년 졸업 사진을 찍어주셨어요. 7학년 입학을 축하해 주시면서……이렇게 영정 사진 찍어 두면 더 오래 산다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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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녁에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얼핏 읽어도 학이시습지길의 재해석에 도움이 많이 될 듯 싶네요~^^
백야행님~감사드리고요~
새해 첫 주~월요일~
즐겁게 시작되시길 바래요~^^♡
감동입니다~!!!
아침부터 읽고 또 읽고,,ㅎ
(요즘은 왜 그리 금방 잊어버리는지요,,,ㅋ)
예전에 알려주셨던 해람지의 깊은 뜻은 아직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
땅재봉, 강릉 사주산,
느릅내(유천동에 살면서도 암것도 모른 무식함을 반성합니다)
월화문에 담긴 이야기,
큰개불알꽃, 김시습이야기,
그 어느 누가 이보다 더 자세히 16구간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 배웁니다
마지막 멋진 한시도
덤으로 선물 받습니다
역시 멋지십니다~!!!
백야행님~
다음에 찍으시는 독사진은 좀더 활짝 웃으시며 찍으시는 걸루~^^
귀하게 잘 읽었습니다
금방 또 잊어버리겠지만
다시 찾아보며 기억하겠습니다
건강하고 평안한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백야행님~
자주 뵈어요~
막걸리는 제가 준비할께요~^^
백야행님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눈에 다시한번 담아갑니다
<희망의 나라로>를 듣고 있으니 성악가 테너 엄정행님이 생각나네요... 아는 사이도 아닌데...ㅋㅋ
새해에는 한자 공부를 다시 시작해볼까....ㅋ
자생식물에 문외한인 저에게는 생긴대로 지어진 이름이 딱 와 닿습니다.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요.
행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백야행님 여전하네요!
항상건강하셔요!
저도 토요일 요코스로 갔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언제 휴대폰으로 사진 많이 찍으셨습니다 ^^
7학년 입학을 축하하며 내 닉네임도 바둑이로 개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글을 읽으면서
와 어느분인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천천히 읽어가다보니
마지막에 독사진 한장
어 이분 이구나!
좋은 글 사진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