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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대에게 주는 말1. 信天함석헌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 아니다
아주 더러워진 공기
여러분하고 한 시간 같이 생각을 하며 보내게 돼서 감사합니다. 예까지 오기 대단히 힘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는 사회가 그래서 그렇다고 해야지요. 강연회 하나 하기도 참 어렵군요. 이걸 이렇게 만드시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지금 얘기대로 우리 사회가 어려운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걸로 해석을 해야 옳겠지요. 더 자세하게 말하면 정치가 어딘지 잘못돼서─어딘지가 아니지, 우리가 다 아는 거지.(웃음) 다른 것도 있지만 주로 정치가 잘못돼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겁니다. 사람이란 옛날부터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그랬지만, 난 그 말을 아주 안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현실에 정치가 없을 수는 물론 없지요. 나는 반드시 무정부주의는 아니에요. 정치는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모양으로 이렇게 정치가 모든 것을 다 간섭해야 하느냐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건 잘못해서 이런 거지요.
이 정치는 왜 그렇게 잘못돼 가고 있느냐 그러면, 그건 또 우리 나라만 그렇다고 할 수도 없을 거예요. 단적으로 말하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각 방면에서 이 괴로움이 어디서 좇아왔나? 먼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려면 끝이 없지요. 다른 역사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 나라 역사는 고난의 역사라고 수십 년 전부터 보아 오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고난의 역사라고 하더라도 지금같이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팔십이 지나도록 이 속에 살아오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괴로운 때는 없었어요.
일제 시대에 나라의 정치 주권을 빼앗겨 버렸다고 하는 때에도 지금처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괴롭다는 건 신체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다는 얘기지요. 그때는 물론 정치 주권을 잃었으니까 그랬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이 아주 나빠졌어. 좀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이 사회의 공기가 아주 흐려져 버렸어요. 그게 크게 걱정이 되는 거예요. 우리 지금 이 방 안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이 공기를 마시지 않아요? 원하거나 아니 원하거나 간에 이 강당에 들어왔으면 이 공기를 같이 마시게 마련인데, 한번 내가 들이마셨던 걸 토하고 또 그걸 네가 마시고, 네가 토한 걸 내가 마시고. 어쨌거나 이 공기는 어쩔 수 없이 공유한 것이 되고, 이 한 시간 반 동안은 그것이 우리의 이 신체를 지배하고 있지 않아요? 나라 살림도 그래요.
한 시대의 풍조 혹은 기풍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서로 한 방 안에 있어서 들이마시고 토하고 하는 걸 반복하는 동안에 언젠지 모르게 흐려져 버렸어. 그래 너와 나에게 다 같이 해를 입히고 있어요. 있어도 그런 줄을 모르고 있을 수 있는 모양으로 국가 살림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신체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제약을 받는 것도 괴롭지만, 더 괴로운 것은 알지 못하는 동안에, 이 공기가 얼마만큼 흐려졌는지를 모르는 동안에 거의 치명적으로 나빠진다는 겁니다. 날마다 날마다 우리에게 경고가 와요. 신문도 사회 실상을 충실하게 보도해 주느냐 하면 그렇지는 또 못하지요. 이 사회가 얼마나 정신이 흐려졌느냐, 얼마나 험악해졌느냐, 사람으로서의 면목을 얼마나 잃고 있느냐, 내가 설명할 것 없이 아침마다 저녁마다 여러분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참 크게 걱정되는 문제라 그 말입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게 젊은이다
그것은 물론 우리 나라에서 더 지독한 것이지만, 또 크게 생각하면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저 막연하게 “세계가 다 그러니까 그렇지”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어 세계적으로 이러는 것인가, 세계적으로 그런 것이 어떻게 작용해서 우리 살림에까지, 내 몸에까지 미치게 되느냐, 그 점을 많이 반성을 하셔야 할 거예요. 그건 옛날 사람과 다릅니다. 옛날 사람이 살던 사회도 인간의 사회는 사회지만, 거기다 비하면 지금 사회는 굉장히 복잡해졌어요.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어요. 엊그제 토인비 강연하는 데도 같이 그 말을 들은 이가 있는 줄 압니다마는, 물리에서 말하는 가속도라는 게 우리 문명 속에도 작용하고 있어서 문명이 점점 더 가속적으로 돼 간다는 아주 무서운 말이 있어요. 우리 지금 살기를 그러한 사회 속에 살고 있어요.
몸으로 고통을 겪어 보세요. 내 몸으로써 말하는 그것을 잘 들을 수 있으면 혹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도 유익이 될 수 있고 알아들을 수가 있지만, 자기가 스스로 고통을 느낄 만한 그런 것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말해도 바로 들을 수도 없고 바로 비판할 수도 없을 거예요.
우리 사는 이 세계가 지금 그렇게 되고 있다면, 그럼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되고 있었나? 그건 여러분이, 나보다 공부하는 분들이 도리어 더 잘 알 거예요. 나는 그런 점에서는 벌써 많이 뒤져 버렸어요. 뒤지지 않고 따라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시대가 급속도로 달라져 가고 있으니까. 사람의 이 육체가 늙을 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정신에도 역시 늙음이 오지 않는 게 아니에요. 지금 강연하자는 것도 사실 어느 면에서는 내 속에 있는 말을 좀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도 또 한편엔 사양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있어요. 왜 그런고 하니 정신이 아무래도 이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해요. 이전에도 썩 잘 했다고 할 수가 없지만, 나 자신이 알기에 그런 마음입니다.
이건 오늘 이 문제와 직접은 관계 안 되는 문제지만, 젊으신 여러분이니까 좀 알려 주고 싶어. 어쩔 수 없이 이 육체란 육체의 법칙에 복종하는 거니까, 물론 육체를 이겨 거기서 주인 노릇을 하는 건 내 마음이지만, 그러나 육체라는 이 집을 아니 쓰고 있을 수는 없어요. 또 이 육체라는 건 살아가려면 사회라는 집, 혹은 이제 말한 대로 정치라는 것, 그것도 집이라면 집인데, 그걸 쓰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기에 있는 어느 법칙을 알아서 그게 어떻게 맞나 아니 맞나를 알고 고칠 걸 고쳐 가면서 그래야 하지, 그걸 무시하고는 아마 안 될 거예요.
나는 지금 나이 많으니까 그전에 우리 살던 시대와 아주 다른 걸 느껴요. 단적으로 표시해 말하면 지금은 아주 고도로 발달한 기술 사회에 있다는 겁니다. 옛날에도 기술 없지 않았지요. 본래 사람이 문명이라고 시작할 때는 벌써 그것이 하나의 기술이니까. 호모 파버(Homo Faber)란 뭘 만든다는 그런 말에서 나왔어요. 만드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생각해서 또 뭘 만드는 인간입니다. 만드는 것이 사람다운 건데,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 만들어진 것이 내게 마음대로 작용을 하기도 하고 해서 인간에게 어렵지 않아요?
신체 방면에서 젊었을 때는 암만 생각을 미리 한다고 해도 늙음이 올 줄을 몰라요. 말로는 알지만 우리도 가다 어느 때는 늙어질 것이요 또 늙음이 심해지면 죽는 때도 올 거다,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할 거예요. 나도 그렇게는 못 느꼈습니다. 일찍부터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좀더 내가 주의하고 시간을 아껴 쓴다든지 내 자신의 부족을 철저히 반성해서 고치기도 하고 그랬겠는데, 지금 와서 후회가 많이 있어요.
그런데 젊었을 때는 젊으니 만큼 젊음이 좋아요. 다른 말로 하면 젊어서부터 노인처럼 조로를 해 버리면 못써. 젊었을 때는 어느 정도는, 뭐라 그럴까, 좀 엉뚱한 짓을 할 수 있는 게 젊은이지. 늘 예상대로, 이러면 이렇게 되고 요러면 요렇게 되고, 그걸 다 알아서 일찍부터 늙어 버리면 작은 실수는 없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중요한 건 어떤 때는 평상시에 상상해 보지도 못했던 엉뚱한 일이 터지기도 하고, 내가 터트리기도 하는 거지요. 인류 사회가 나아가는 데 그런 것이 없을 수 없다는 걸 여러분이 알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도리어 늙지 말고 마지막까지 젊은이의 기분으로 나아갔으면 더 좋을는지 몰라.
내 말은 자꾸 뒤집힙니다. 그걸 주의해 들으시오.
알려질 때까지 생각하라
달리 생각하면, 그렇게만 하면 잘못된 걸 타개하는 데는 좋을지 몰라도 또 참 것을 건져 가기 위해서는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은 그대로 들을 줄 알아야 돼요. 반대되는 말이 다 있는 법이에요. 그러면 젊었을 때는 곧 반항하고 싶을 거예요. 왜 반대되는 말을 두 가지로 하느냐 그럴는지 모르지만, 반대되는 말이 다 있는 것이 사람의 세상이고, 그걸 다 알아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에요. 반대야 왼쪽 다리하고 바른쪽 다리는 반대 아니에요? 그렇지만 서로 반대되는 두 다리가 있는 가운데 진행이 되어 가지. 바른쪽 다리도 왼쪽 다리와 늘 같이 나가고 왼쪽 다리도 바른쪽 다리와 늘 같이 온다면 걸음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반대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에요.
반대되는 것이 있으면서도 그걸 써서 어떻게 앞으로 진행이 되나? 그런 걸 생각해야겠는데 그럼 앞으로 진행시키는 건 뭐냐? 그건 또 이따가 말을 시작할 거고, 지금은 우선 젊으신 분을 보고 부탁하는 거니까, 나처럼 늙은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은 후회 많이 있어요. 또다른 의미로는 후회 아니해요!(폭소)
이제 집에 가시면 아버지나 할아버지나 어머니가 계실 터인데 그런 문답을 실제 해봤는지 안 해봤는지 모르지만, 이런 문답이 더러 있을 수 있어요. 뭔고 하니, 아버지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려 하는 아들을 놓고, “야, 이 자식아, 너 세상이 험하단 말이야. 사람 믿었다간 아무 일도 못한다. 믿지 마.” 그런 말을 해줄 때가 있을 거예요. 또 어느 날 가면, “야, 사람의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사람을 믿어야지 남을 의심했다가는 아무 일도 못한다”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이렇게 말씀하고 어떤 때는 저렇게 말씀하지만 그 두 가지가 다 사실이에요. 그럼 믿기만 하라는 말도 아니고 믿지 말기만 하라는 말도 아니고, 믿기도 하면서 안 믿기도 하고 안 믿으면서도 믿기도 하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걸 몰라보고 묻는 자식은 사람 노릇 못하고 말 거예요.(폭소) 아주 어리석단 말이야. 그건 제가 알아서 해야 돼. 내가 지금 사람 노릇 못한다고 했지만 걱정 없어요. 왜 그런고 하니 생각하면 반드시 알려져요. 알려질 때까지 생각하세요.
내가 실지로 당했던 일을 하나 말하리다. 지금은 아주 좋은 친구가 된 사람이 있어요. 이 친구가 신학교엘 들어갔어요. 어떻게 학교 문 앞에서 만나 걸어가는데, “선생님, 어떻게 하면 설교 준비를 잘합니까?” “너 설교를 준비해 가지고 할 터이냐?” “그럼 준비 안해야 됩니까?” 그래서 “설교를 준비도 안하고 해?”(폭소) 그랬단 말이야.
그 말 잘 들어보시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거요. 그런 때에 “그럼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설교를 준비해도 안 되고 안해도 안 된다니, 난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건 바보란 말이야. 걱정할 것 없어. 그러지 말고 “나하고 무슨 원수진 선생님 아니겠는데 왜 날보고 이런 어려운 말을 했지?” 그러고 까닭을 생각하노라면 반드시 거기 알려지는 것이 있다 그 말이야.
이런 말을 내가 왜 하는고 하니,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흑백 논리를 그냥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그럽니다. 흑백 논리도 어느 때는 진리지요. 검은 건 검고 흰 건 희지. 희든지 검든지 어느 것 하나를 해야지 흰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니고 희었다 검었다, 검었다 희었다 그런다면 되겠어요?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들은 말이, 공산주의자들도 죽으면서 김일성 만세 부르고 죽는다고 해요. 자기 주의에 철저한 것만은 차라리 좋아요. 그렇지만 그 응어리에 들어가 생각할 점도 물론 있지요. 그러니 그 점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남이 대신 해줄 수가 없어. 가르쳐 주는 선생이 그걸 다 말해 줄 수가 없어. 너 요때는 요렇게 세상을 믿지만 요런 때 가서는 믿지 마라, 그런 걸 다 말을 하려면 한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게 돼 있는 거예요.
그래 예수께서도 그 좋은 말씀을 다 해주고는 마지막엔 “듣는 귀를 가진 자는 들을지어다” 그 말이에요. 겉에 있는 이 귀만이 아니고 속의 귀, 이 말을 하든지 저 말을 하든지 “그게 이 소리로군!” 하고 흑백을 초월해서, 흑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흑백을 갈라 말하는 게 뭣인지를 알 수 있는 그런 귀가 있어. 누구든지 그 귀는 있어요. 생각을 안하면 그 귀는 안 열리고 생각을 하면 열리고. 그런 점은 선생이 해주지 못한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장자(莊子)의 유명한 얘기가 있지 않아요?
장자는 글 잘 쓰는 사람이지만 글 잘 쓰는 사람만이 아니오. 도(道) 통한 사람이오. 난 아주 장자 좋아해요. 노자(老子) 좋아하고 장자 좋아하는데, 나 물론 기독교인이지요. 기독교인이지만 노자, 장자도 좋아해요. 그러면 정통주의 기독교인은 질색을 하겠지만 속이 좁아서 그러는 거니까.(웃음) 속은 좀 넓어야지. 그것도 이제 말하던 흑백 논리와 마찬가진데 어쨌건 제가 아는 그 하나만을 아는 건, 그것만 충실한 건 좋지만, 다른 데서 안 되는 걸 몰라. 자기 생각이라든지 자기 약속한 것에 충실하라고 하는 건 옳은 말이지만, 또 변할 때는 변할 줄 알아야지 변하지 말란 말은 아니에요. 아무리 충실하게 나아간다고 하는 사람도 변할 때가 있어요. 사실은 변하는 줄 모르게 변하지요. 여러분도 변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까지 못 올 거예요. 또 이제부터도 변하니까 사람 노릇 할 수가 있지. 대학생도 대학 생활에 딱 못이 박혀서 그 이상은 변하지 않는다면 아주 섭섭한 말이에요.
언제 서울대학에, 그것도 이제는 수십 년 됐소만, 문리과대학에 강연하러 가서 보니까 다 수재 중에 수재로 뽑혀서 온 사람들이지. 오늘도 마찬가지지. 더구나 관립(官立) 대학이라고 하면 뭐가 나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게 돼서 불행한 점이 있어요. 그걸 좀 깨뜨리느라고 내가 “여러분도 수재 중에 수재로 뽑혀서 여기 왔지. 그렇지만 참 불행한 사람들이오” 그랬어. 일류 학교라는 데를 들어와서 공부의 탄탄대로로 학사를 하고 대학원 가고 해서 다른 사람은 다 못하는 취직을 쉽게 하는데, 어딜 가느냐 그러면 첫째 관청에 가.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 간단 말이야. 그럼 생활은 보장이 되지만, 거기서 그만 고치 수렁이 되어서 들어가는 격이 돼요. 누에란 놈이 뽕 다 먹고 마지막에 제 집을 제가 틀고 그 안에서 갇혀 버리고 말잖아요. 그러니까 재주 있는 놈이 그만 그렇게 된단 말이야.
차라리 재주가 없었던들, 여기 가서도 못 쓰이고 저기 가서도 못 쓰이게 되면 ‘이놈의 세상 도무지 안됐다, 나도 살아가야 하는데 왜 이러지?’ 그러니까 딴 마음이 생겨. ‘이놈의 세상이 왜 이렇지?’ 그렇게 보니까 딴 게 봬요. 아닌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외양으로는 일없는 것 같은데 이게 단단히 결함이 있는 사회구나, 그런 생각을 해서 그 사람은 도리어 공부해서는 수재라는 말을 못 들었고 출세는 못했는데 인생길은 옳게 걸어.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고치는 데 손을 대게 되니까 그건 뜻있는 살림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아요?
하지만 수재로 들어간 놈은 남의 품팔이꾼으로 팔린 것밖에 없어. 관청은 옛날 임금들의 종놈들이고 지금도 정부의 종이지 별거 없어. 그러니까 벌벌 떨어요. 내쫓을까 봐서. ‘아유, 여기서 나가면 큰일이지.’ 속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걸 못 보고 지나가. 그건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재주가 아주 비싸게 팔리는 바람에 ‘내가 아주 제일이 됐지’ 하고 긍정을 해 버리기 때문에 그런다 그 말이야.
사람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을 할 줄 알아야 사람이 돼요. 그럼 부정만 하랍니까? 그러면 또 사람이 되겠어요? 안 돼.(웃음) 지금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책을 참 좋은 책으로 읽었는데, 영국의 유명한 카알라일이라는 사람이 쓴 '의상 철학'에 “eternal no, eternal yes”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영원의 부정을 해야 돼. 산 생명의 눈으로 볼 때 긍정할 수가 없어. 일체가 부정되어야 해. 일체가 부정을 통하지 않고는 참 긍정에 갈 수가 없어. 아주 영원한 긍정, eternal yes. 나는 부정을 하지만 영원한 긍정에 사노라고 스스로 그러는 사람이에요.
신앙이란 다른 게 아니고 ‘영원의 긍정’이에요. 부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터럭만큼도, 터럭만이 아니라 목에서 발에 가기까지 부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 다 긍정이에요. 오늘 직접은 다 말을 못하겠지만 여러분이 알고 싶다면 종교 경전을 통해 알아보세요. 영원의 부정, 영원의 긍정이란 게 뭔지.
재주 있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탄탄대로를 갔기 때문에 무사히 학교 졸업하고 입신출세하고 하니까 사람으론 아주 입지전(立志傳) 중의 인물이라 그러지만, 입지전 중의 인물이라는 사람들이 반드시 역사상에서 참 일을 한 사람이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다 재주 있었기 때문에 제 재주에 갇혀서 그러다 그만 말고 가는 거예요. 타고르더러 시로 읊으란다면 “아, 내가 날마다 날마다 쇠고리를 만드는데 다 만들고 보니까 그게 내 자신을 얽어 매고 있더라.” 자기는 아주 재주 있는 일, 유용한 일을 하느라고 했는데 스스로 자기 한 일에 갇혀 버린다 그랬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까 “가다가 어느 때는 엉뚱한 일을 할 줄 알아야 젊은이지, 엉뚱한 일을 할 줄 모르는 건 젊은이가 못 된다”고 한 겁니다. 그건 내가 증거할 수 있어요. 나는 사실 엉뚱한 일을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무슨 좀더 뜻이 있는 일을 했을는지 몰라요. 그런 건 후회돼요. 본래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동네도 시골 조그만 동네지만 나더러 “쟤는 싸움할 줄 모르는 애”라고 했는데, 애들이 싸움도 할 줄 몰라서 되겠어요? 싸움할 줄 몰라서 좋은 점도 있다면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만 그래서는 도리어 크게 되기가 어렵지요.
이런 말을 왜 하는고 하니 데모하는 학생을 긍정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오.(웃음) 정부에서는 자꾸 데모한다고 그러는데, 얼마나 하면 연중 행사라고 그랬겠어요? 그건 박정희 씨가 한 소린데, 박정희 씨야 크게 못 되고 말아 놔서 그래. 그렇게밖에 생각 못한 사람이에요.(웃음) 크게 못 됐기 때문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민족 중흥하겠다” 그랬어요. 기껏 하는 소리가 민족 중흥하겠다는 말이지만, 민족 중흥이 그렇게 되겠어요? 이북에선 그런 말이 있어. “받는 소는 씽 하지 않고 받는다.” 받지 못하는 소가 괜히 씽씽 하고 그러지.(웃음)
나는 잘 믿지는 못해도 예수님이 말해 주신 그대로 살아 보려고 힘을 쓰는 사람인데, 사람보고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 마땅하다 그랬는데, 남의 인격을 그렇게 무시해서 안됐어요.(웃음) 웃지 말고, 데모 진압하는 순사 인격 무시하면 안 돼.(웃음) 내가 이 말은 정말 하고 가려고 왔어요.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 아니다
데모도 못하는 학생이 사람이에요? 기관의 사람이 와도 “우리 나라 아주 유망하오” 그래요. 젊은이들이 수십 년씩 끊지 않고 데모를 하는데 그렇게 유망한 나라가 어디 있어요? 나라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데모할 줄도 모르는 놈, 되겠어요? 헌데 선생들이란 어떤고 하니 역시 그 자리에 가 앉으면 그만 그것이 내 인격이 돼 버려. 그래서는 못쓰지만 그만 사람의 인격을 결정해 버린다는 말이야.
여러분, 그렇게 되지 마시오. 가진 직업의 노예가 되지 말라 그 말이야. 직업의 노예가 되면, 4․19 때나 6․3 데모 때도 같이 했다 그러지만, 그 사람이 수사 기관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심리가 수사관으로 변해요. 그리로 들어간 다음에 그 노릇을 안할 수도 없고 갑자기 나올 수도 없고, 그러니까 한 번 하고 두 번 하느라면 그것이 성격화해 버린단 말이야. 아주 고정은 안 돼요. 죽을 시간에 갔다가도 고치려면 고칠 수 있는 거지만, 습관이 되어 버리면 안 돼. 그러면 참 불쌍한 사람이 된다 그 말이야.
그걸 아까 “엉뚱한 일을 한다”는 말과 비교해 보시오. 엉뚱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진보라는 게 있지. 엉뚱한 게 덮어놓고 좋아서가 아니야. 엉뚱하다는 건 평상시에 생각 못하고 다른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한다 그 말이야. 그러면 “저 자식은 어떻게 되어서 사람이 저렇지?” 남들이 그럴는지 모르지만 그걸 막아 버리면 못쓴다 그 말이야.
내 잘 아는 노인이 한 분 있어요. 세상 떠났는데 그이는 이런 말을 했어. “젊은이는 햇김이 빠져야 된다.” 너무 구멍가게 보는 사람 회계하듯이 일점 일획도 안 틀리게 딱 맞추려고만 하다가는 적게는 성공을 할지 몰라. 하나의 지아비로서, 하나의 주부로서 성공을 할는지 몰라. 하지만 인간으로서, 하나의 역사의 사람으로서는 실패를 하기가 쉽다 그 말이야.
하지만 옛날에 훌륭한 일을 했다는 사람들한테는 어떤 때는 엉뚱한 짓을 하게 되는 그 무엇이 있단 말이야. 그건 자기가 하는 줄도 모르게 해요. 사람 속에 있는 그걸 막을 생각은 하지 말라 그 말이야. 그럼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생각을 하는데 생각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어째서 날 뚫고 나오느냐? 엉뚱한 생각이 나온다는 말이야. 그러면 마음이 작은 사람들은―마음이 작은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현실주의자들인데, 이걸 다 놓고 지켜야만 돼. 내가 모처럼 얻은 자린데 이걸 놓치면 안 되지. 그 중에 제일 크다는 게 대통령 자릴 거예요.(웃음)
하지만 아무리 대통령 자리라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인간으로 영원히 잡을 수는 없어요. 거의 영원이라고 할 만큼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해서 지금 이 단계에까지 오는 사람들, 몸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뭔지 모르는 저 이름할 수 없는 세계까지를 생각하고 그걸 상대로, 또 그걸 내 작품 속에 실현해 가면서 창작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데서 보면 한때 몇 해 동안 대통령 노릇 했다고 해도 그리 큰일이 아니라 그 말이야.
이런 말은 잘못하면 내가 그런 걸 못했으니까 시기하는 마음에서 나올 수도 있어요. 그건 내가 지금 의식하면서 하는 말이니까, 그런 염려는 안해도 괜찮지 않아요?(웃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서라도 어떤 때는 엉뚱한 일을 하게 되는 것, 설혹 그것을 하다가 실패가 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낙심한다든지, 그 일 때문에 내가 영 인생을 놓쳐 버렸다든지 그러진 말라 그 말이야. 그 대신에 아까 얘기대로 나를 향하여 페퍼 포그를 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사람이 아니지” 그러진 말라 그 말이야. 그니도 우리 사랑하는 동포지.(웃음) 웃지 마시오. 이건 진담이오.
간디가 그러니까 위대해요.
제2차 세계대전 때 어느 기자가 간디 면회를 한 일이 있어요. 그때 일본이 거의 인도까지 육박해 갔거든. 그랬던 땐데, “일본 비행기가 와서 선생님 위에서 폭격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니까 간디가 “만일 그런다면, 당신이 나를 폭격한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미워하진 않습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그 비행기를 바라볼 거요. 그러면 거기서 내 얼굴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어쩐지 그이가 이해할 줄로 압니다”라는 말을 했어요. 얼마나 좋은 말이에요? 그저 하나의 얘깃거리 모양으로 하는 거지만, 그래도 평상시 간디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요새 저 간디 영화 우리 나라에 아직도 못 왔소. 왜 그런가, 우리 나라 문이 좁은가, 아직도 못 들어왔어요. 그래 비디오를 얻은 게 있어 봤는데 거기 아주 좋은 말이 나옵니다. “나는 비폭력이 내 생활의 원리요 축복(rule and my bliss)이다.” 그러니까 비폭력이 목적이지 뭘 위해서 비폭력한다는 것 없다, 비폭력을 행하는데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그런 따위 시시한 목적을 갖다가 붙여서는 못쓴다 그랬어요. ‘시시한’이라고 그랬어요. 잘 알아들으세요. 국가가 최상이 아니라 그 말이야. 민족도 최상이 아니라 그 말이에요. 그럼 뭡니까? 간디더러 물으면 “내 일생에 내 생명을 바쳐서까지라도 지켜 나아가야 할 어떤 진리가 있다면 그건 하나밖에 없다. 뭔고 하니 ‘모든 인간은 다 같이 살아야 한다.’”
그런 말이 턱 나오면 대통령 같은 건 그리 높은 봉우리가 못 돼. 뭐 저 아래 저 아래 어디쯤에 있겠지. 그니가 얼마나 생각의 높은 지경에 간 사람인가? 그저 보통 하는 생각으로 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하여간 여기 우리는 첫째로 강연 하나 하기 어려웠다…… 나 어저께 전화 많이 했어. 연락이 잘 안 돼서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가게 되는가, 가지 못하게 되는 건가.(웃음) 여기 고대 와 본 지 여러 해 됐는데, 지난해도 지지난해도 써서 내붙였다가 안 되고 했으니까 또 그렇게 되지 않나 그랬지. 요샛말로 천우신조인데(웃음, 박수) 하나님이 도와서 와 서게 됐어. 아니, 농담이 아니오. 모든 일은 하나님이 돕지 않고는 되는 것 없어. 하나도 없어. 나는 그대로 믿는 사람이야. 이렇게 구식적인가? 그래 좋아. 구식적이래도 좋아. 상관없어요. 왜? 그 세상엘 들어가면 신식도 없고 구식도 없어요. 영원이 있을 뿐이지. 그런데 데모를 하려면, 적어도 데모하는 자격은 구식도 신식도 없는, 성공도 실패도 없는, 그것을 초월한 마음을 아주 깊이까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어야지. 그것 없이 하면 울럭걸음에 봉통걸음이라, 남이 뛰어가니까 나도 뛰어가는 거야.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데모를 원칙적으로 긍정하는 거예요. 사람은 부정해야 사람이니까.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런 기쁨이 어디 있느냐, 그것도 아주 좋은 사상이지요. 그 생각도 못하는 미물들이 많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왜 이것만이냐?’ 뭔지 모르게, 자기만이 아니라 이 역사가 되어 간다는 걸 보고 뭔지 불만을 느껴서 ‘이럴 수가 있겠나!’ 안타까워 못 견디는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밀어서 예까지 온 겁니다. 다 성공적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류가 이 지경에까지 온 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온 거요.
그건 다 부정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대로가 아니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아, 얼마나 좋아요. 해 있지 달 있지 향기 있지, 참 좋기는 하지만 무언지 불만이 있다는 거야. 그랬기 때문에 저 유명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밤중에 그 언 가지 울부짖는 그 부르짖음 소리, 이 세상에 불평을 운다”고 했소만, 이 세상에 뭔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우는 것 아닐까? 바람이 무슨 그런 걸 알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브라우닝 자기가 그런 생각이 있으니까 그 시가 나오지 않아요? 그 시 한 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분발시켰겠나 생각을 해보시오. 그러니까 잘못된 일이 있을 때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 아니란 말이야. 남강 이승훈 선생님 얘기하려다가 딴말이 길어졌어. 나이 많으면 자주 이렇게 헤매기를 잘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정신이 다 나가진 않았어. 돌아와요, 이제.(폭소)
나도 오산학교 있을 때 스트라이크 겪어 봤거든. 선생들이 모여 앉으면 대개 젊은 선생들은 엄벌주의로 “에잇, 고 자식들 아주 안됐다” 그러는데, 남강 선생님 뭐라고 하는고 하니 턱 앉았다가, “그러면 안 돼. 말을 먹이려거든 시르죽은 말을 먹여서 뭘 하겠나? 물고 차는 상사말을 먹여야 먹일 재미가 있지.” 지금은 물고 차는 상사말이 뭔지 모를 거야. 그런 말은 보질 못했으니까. 지금은 기계만 봤지. 그러니 자연히 교육도 못 받게 돼서 참 불쌍한 일이오. 어쨌거나 말썽꾸러기 말썽피우는 걸 잡아타려거든 호랑이를 잡아타는 것이 재미가 있지, 옆집 개나 잡아타야 뭘 하겠어요?(폭소)
잘못하다가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볼 만하다, 그러니까 하지 않아요? 그건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그 잡아타는 짐승이 인류 전체에 무슨 방해물이라고 할 때 그거 한번 잡아탈 생각을 못한단 말이야. 세상을 지금 쥐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세상 못살게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왜? 두어둔다면 자꾸 달려가려는 건데, 여기 정치라는 건 말은 좋지만 걸핏하면 여기다 브레이크를 대서 자꾸만 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는 거지. 왜 브레이크를 대는지 아세요? 그 사람들은 가자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 흥청대며 노는 게 목적이니까. 너무 빨리 가다 고장 났다가는 나는 끝이다, 그러니까 이 차가 그저 가는 척하고 서서 놀다만 가면 좋겠다, 그런 심리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이 “부정 심리 없애라.” 좋은 말은 좋은 말이에요.(웃음) 하지만 긍정 심리만 있다고 해보시오. 그러면 불어나게 된 가죽이 졸아들어서 타질 것밖에는 소망이 없어. 그러니까 인간 속에는 뭔가 ‘왜 사람이 이것뿐이지?’라는 불평이 있는 그런 마음이 좀 있어야 돼.
그렇다고 일부러 불평을 만들어서 하면 못써. 그러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 어떡하지요?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오.(웃음) 그래도 젊음이 좋으니까 그래. 나는 젊은이의 친구지. 이때까지 노인정에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어.(폭소) 사람이 얼마나 못났으면 노인정에 가서 화투하고 앉았겠어요?(웃음)
한번 잘못되면 거지가 되더라도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대모험 한번 뜬다’는 심리가 있어야 돼.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내 집에 있던 가산을 대고 뜨는 건 놀음꾼이고 투전꾼이지만, 신앙은 내 일생을 대고 뜨는 거요. 내 일생이라면 우주가 다 달린 거요. 우주가 내게 달렸단 말이야. 하지만 내 마음 없으면 우주 없는 거요. 남이 생각하는 우주 내게는 상관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우주가 어드메에, 하늘 나라가 어느 장소, 어느 별에 가 있겠나?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 하지 마세요. 어디 있어? 내가 앉았으면 이 안에 있어. 크다 하면 한이 없이 커져요. 이제 줄일까 하면 한없이 줄일 수밖에. 내 마음대로예요. 그건 네 상상 아니냐? 상상이 네가 뭔지 알아서 말로 해? 상상보다 무서운 게 어디 있냐, 네가 나온 것도 상상 때문에 나온 거다.
세상이 이렇게 할말도 못 하게 하고 갈 데도 못 가게, 이것도 “노”(no), 저것도 “노”, 못 하게만 하면, 나는 다 죽게 되어서 설움이 없지만, 이십대 이 청년을 놓고 여기도 가지 마, 하지 마, 이런 소리만 자꾸 하면 어쩌자는 거요? 나도 하지 말라는 소리 상당히 한 사람이오. 아무리 데모를 한다 그러더라도 담배는 빨지 마라, 술은 먹지 마라, 그거 하다가는 데모 옳게 못 된다, 또 젊은 놈들이 사랑도 안하겠냐, 사랑하고 싶은 생각도 있기는 있겠지만 친구가 지금 감옥에 가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네가 어떻게 옆방에서 맛있게 자고 있겠냐.(폭소) 어느 문제가 된 다음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어찌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있어요? 차마 못 하는 마음(不忍之心), 다른 사람의 일을 보면 하고 싶은 노릇도 차마 못 하는 마음이 그게 인간다운 마음인데 말이야.
젊었을 땐 젊은 기운이 있지만 그건 그런 데 쓰자는 힘 아니에요. 젊어서 이런 거 알았더라면 나도 요렇게만은 안 되는 건데, 그런 후회가 많아요. 나는 이왕 잘못했지만 내 잘못한 걸 살리려면 여러분이 가다가 구렁엔 안 빠져야 하는데 말이야. “아무 데 가면 구렁 있더라, 빠지면 안 된다, 아무 데 가면 큰 돌파구 있다, 그리로 가다가는 큰코 다친다” 그렇게 해줄 의무가 있지 않아요? 사람이 잘못 안할 수는 없지만, 잘못한 다음에는 그것을 반드시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그리로 안 가도록 하는 게 의리예요.
그럴 생각이 있기만 하면, 어떤 엉뚱한 일을 하다가 터무니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감옥에 갔다든지 해도 상관없다, 괜찮다 그 말이야. 다 잘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래도 요새는 너무 기분이 요렇게 작아졌어. 한 푼 한 푼 아껴 집 사고 논 사고 해서 자식 길러 내고 그런 마음에 그러는 게 아니라, 맘대로 소위 멋지게 살아보자는 그 썩어진 생각. 하필이면 '동아일보'에서 '멋'이라는 잡지를 시작하더라. 다른 걸로 좀 붙였으면 좋겠는데, 멋이 좋긴 좋지만 멋 차리는 민족이 따로 있지. 이 차제에 무슨 놈의 멋, 멋지게 죽으려거든 데모하다 죽는 게 멋지게 죽는 거요.(웃음)
젊은이에게 넘겨 줄 바통
이런 속에서 젊은이의 속은 자꾸자꾸 죽어 들어가. 그러니까 나는 다 될 대로 됐는데도 지금도 죽어 들어가요. 도저히 육십년대, 칠십년대에 글 쓰던 모양으로 쓸 수가 없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도 알지 못하는 동안 여기 가도 뭐 걸리는 거 있지, 저기 가도 걸리는 거 있지, 무의식중에 벌써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 자체가 쑥쑥 자꾸 나와야만 하는 거예요. 그래야 글이 되는데 그걸 못하니까 글이 될 리가 있어요? 글이라는 건 써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자는 게 목적인데 감동도 못 주는 글 써서 뭘 하겠어요? 그렇다면, 젊은이가 그런 그늘 속에서 살아가면 이 나라의 장래는 아주 결정이 됐다 그 말이야. 그러니 정치하는 자리에 앉아 그런 짓을 하고 어떻게 될 수가 있겠나. 제발 좀 고쳐야겠는데.
나 개인으로는 이런 얘기 하면 돈 한 푼이라도 손해 나지 이익 날 것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아요. 욕먹지. 나이 많은 사람이 가만히 못 있고 괜히 젊은 애들을 놓고 선동을 한다고 그럴는지 모르지만(웃음), 내가 세상에 아무리 조그맣기로 남의 집 불 붙는데 키질하겠어요? 제가 알아서 할 것이지.
선동이라니, 대학생이 지금 누구라고? 기성 세대를 뭐같이 알고 있는데, 나 보기에도 요새 젊은이 생각이 앞섰더라 그저 탄복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네 골방을 짓고 소위 긍정이라는 담 안에 있어서 밖을 내다볼 생각을 않고 “오늘부터 귀 막고 나 안 들을란다” 그러니까 그런 말, 그런 정책밖에 안 나오지. 나랏일을 한번 사명을 지고 하자는 생각을 하자면 모험하는 생각 없이 어떻게 나아갈 수가 있어요?
생명이란 그 자체가 본래 모험이야. 무생물의 체계에 어떡하다 하나가 꿈틀하고 생겼는데, 그런 모험이 어디 있어요? 가상을 해보세요. 정말 그 생명이 나던 거기를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비상한 건데, 예상할 수 없었던 데서 생겨 나오는 건데, 그것이 이 우주 안에 생명의 원리인데, 현실 문제에 너무 근시안을 끼고 보기 때문에 거기에만 붙잡혀 버렸어. 긍정적이라는 사람들이 사실은 부정적이에요. 제대로 부정을 했던 건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랬기 때문에 그들 속에서 정말 긍정적인 세계가 나온 거 아니에요?
그건 제2차 대전 나던 때부터 내가 두고두고 하는 얘깁니다. 이것이 내 나름대로 지금 젊은이들한테 넘겨 주는 바통입니다. 신통치 않은 바통입니다만 어쨌거나 바통은 바통이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건 릴레이 같은 건데, 아무도 자기가 나와서 모든 것을, 천지 창조하던 데서 시작해서 자기 혼자 하는 법은 없어요. 인류 전체 속에 나고, 다시 전통을 받아 가지고 나는 건데, 그 중에 민족이 더하지요. 비교적 국한된 지역 속에서 오랫동안 말과 문화가 같고 모습도 그렇고 사고하는 것도 같은 민중 속에 살아가니까, 민족이라는 건 특별히 가까운 존재예요. 나중에 말하겠지만 국가는 안 그래요. 민족은 상당한 시간을 거의 영원성을 띠고 어느 정도 계속해서 갈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민족의 정신이 뭐냐 하는 건 아주 중대한 문제인데, 그걸 얘기하려니까 현대가 그전과 다르다는 얘기를 하게 됩니다.
사람이 나서부터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두 발로 선 거요. 그러게 사람에겐 선다는 게 제일 중요해요. 사람이 곧장 선 것은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서예요. 그게 누가 생각을 해 그렇습니까? 그건 생명 자체가 하는 거예요. 종교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이 거기 들어 있다 그럽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시계를 만들어 매일 아침 틀어 주고, 자는 걸 내일 아침 다섯시에 깨게 하자, 그렇게 하는 하나님 아니에요. 한번 만들어 놓으면 “네가 이제 알아서 살다 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데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로 해봐” 하고 하나님이 자유를 준 게 이 세상이지. 이건 자치 기구야.
엿새 동안에 모든 걸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에 가서는 하나님이 안식에 들었다고 하지요. 이제는 손 안 대는 겁니다. 아버지도 조그만 아버지가 자식들을 일일이 간섭해. 큰 아버지는 그러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 잘못으로 내가 요렇게밖에 못 됐는지 모르지만(웃음), 나는 그런 아버지 안 겪어 봤어요. 그래 좋은 점도 있고 아까 얘기대로 나쁜 점도 있어요. 자식 낳거든 아버지가 뒤에서 감독해야지 제가 알아서 하겠거니 방임하면 못써요. 만들 때만 맘대로 만들고 그 다음엔 모른다(폭소), 무책임한 건 못쓰는 겁니다.
지금도 그래서 안 된 거요. 나이 많은 세대들이 낳기만 해 놓고 감독을 할 줄 몰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걸 잃어버렸어. 왜 잃어버렸나? 6․25 때 미군이 달려들어 왔는데, 거기 어리둥절한 거요. 말도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딴 말인데, 신문 기자들이 어디서 한 마디씩 얻어듣고 자꾸 신문에다가 영어 글자를 쓰고 불란서 글자를 쓰고 하니까 어리둥절해. 그래 그만 자신을 잃었어.
오늘 신세가 이렇게 됐는데, 괜히 애들한테 망신이나 할까봐 말도 하나 못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왜 그렇게 앉나, 똑바로 앉아라”, 어른이 들어오면 “야, 어른이 들어오시는데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지”, 그런 걸 잔소리 아니게 자연스럽게 턱턱 해요. 밥이라도 먹을 땐 “다른 사람이 먹은 다음에 먹는 법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됐는데 그만 세대 밖에서 다른 일이 생겨서 들어오는 그 바람에 자신을 온통 잃어서 바통을 넘겨 줄 생각을 못하게 됐어.
역사란 으레 릴레이 경주 같아서 바통을 넘겨 줘야 하는 건데, 넘겨 준다고 생각을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곧 바통이란 말이야. 밥 먹거나 손님 대할 때, 학교 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내가 공부를 왜 하는지, 그런 것이 다 아버지 어머니나 동네 어른이 하는 걸 보고 따라서 하면 자연히 됐어. 그런 가운데, 어려운 말로 하면 가치 체계를 배워. 어떤 게 도덕적으로 보람 있는 건지, 인생으로서 의미가 있는 건지. 그래서 쾌락보다도,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다는 그런 것보다도 요것이 사람으로서 보람 있는 거다, 사람은 이걸 해야만 사람이지 그거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하는 의식이 내 속에도 생기게 돼. 그렇게 믿는 줄도 모르게 바통을 받아 쥐었다 그 말이야.
적어도 죽어서 가게 된 다음에, 아무개 보면 인생이란 이렇다 할 만한 것을 남겨 놓아야 할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전통으로 되는 일인데, 근래 급작히 변동이 되는 바람에 기성층이 그걸 못했어. 전통을 배울래야 배울 수가 없어. 몸은 가졌지만 문화는 뭔지, 문화 살림이 어떤 건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 말이야. 그러니 정신이 남아 있겠나 그 말이야. 민족의 정신이 남아 있겠나, 없단 말이에요.
더구나 젊은 시절을 군인으로 나가서 전쟁 속에 보낸 사람이 무슨 전통이 있겠어요. 그저 총 가지고 본능적으로 쏴라. 왜 쏜다는 것도 없어. 장군이 쏘라고 해서 쐈지. 장군이 명령을 한다고 개가 되겠는지 사람이 되겠는지 판단할 생각도 없어. “군대 안에서는 이유 없다!” 군대 가 봤지요? 여러분이 들어봤는지 모르지만, 하필이면 우리 원수였던 일본 사람의 군대에서 배운 사람들이 우리 국군을 창시했단 말이에요. 그게 아주 불행해. 알지 못하는 새 우리가 군국주의를 배우게 됐어.
사실 쪼개 놓고 말이지, 6․25 직전에 국군 창설한다고 하는데 군인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었겠소? 재주 있고 공부할 일 있고 뭐 있는 사람들이 “나 군대 갈란다” 그런 생각을 누가 했겠어요? 그랬는데 그후에 전쟁이 나고 “야, 이것 봐라, 괜찮다.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살아남고 보니까 군인 생활 괜찮다” 이렇게 되었어요. 전쟁 끝나고 남아 있는 건 자리밖에 없으니까 좋은 길 찾아 생각을 하게끔 되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민족혼이고 뭐고 생각 없었지. 그건 그들을 나무랄 수가 없어. 세계 역사의 물결이 이렇게 오는 바람에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나 사람인 다음에는 나이 좀 들면 알아야 돼. 내가 사람 노릇을 하려면, 내가 한국 사람인 다음에는 한국 민족으로서의 삶이 뭔지를 알아야지. 아무것도 없는 막연한 사람이란 없단 말이에요. 사람이면 구체적으로 나라는 사람, 둘도 없지 않아요? 민족으로 볼 때도 같은 민족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자기 삶을 자기가 세우지 못하고 그저 떠돌아다니는 빈 생각만 하게 됐으니까, 옛날에 있던 수천 년 전통을 살릴 수가 없었을 거야. 불행하기는 참 불행한 민족이오.
해방이 되고 나서 그래도 몇 해 우리 생각대로 선거를 해봤단 말이에요. 그랬는데 난데없는 5․16이니 뭐니 딴 일이 벌어지게 되었어요. 일본서 나오는 라디오로 들으니까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해. 그러면 이게 뭐지? 요전에 4․19 학생 혁명이 있었는데 이제 군인하고 학생하고 붙는다는 말 아니냐. 이제 군인이 한번 일어난 다음엔 군사 쿠데타가 계속 일어나게 마련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번 무기를 들고 나선 다음엔 다른 걸 들고 나설 수가 없어. 사람대로 있을 때 이치고 뭐고 캐지, 무기 든 다음엔 말이 나와? 이치를 설명해도 소용없고 인정에 호소해도 소용없다, 말이 안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입이 딱 막혀 버려요. 그러니까 양심의 정도가 내려가고 말아요. 그것이 오늘날까지의 역사 아니냐 그 말이야.
하여간에 지금은 무서운 대통령으로 칠 년까지 한다는데, 칠 년이라는 거 난 처음 봤어. 하여간 칠 년을 하고 재선만 안해도 고마운 일 아니오?(웃음) 재선 안할 줄 나는 믿고 싶어요. 믿고 싶지만, 공명 선거를 할 수 있도록 조건 마련을 해 놓고 물러가야 그게 바통 넘겨 주는 사람의 일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책임을 과연 다하고 갈 수 있을까?
전 대통령 한 분은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할지 몰라도 주위의 사람들이 다 그럴까? 그렇지만 독재 정치 못해요. 태고적에나 독재 정치를 하지 지금같이 이렇게 된 때에 독재 정치가 어디 있어요? 누가 하나 있으면 모두 다 달라붙기 때문에 독재 정치가는 마지막에 자유가 없어져요. “이번엔 난 그만둔다” 그러면, “못 그만둔다, 당신 그만두면 우리는 어떻게 할 작정이오?” 그러고 그 사람들이 단식 투쟁한단 말이에요.(웃음, 박수)
웃는 말이 아니에요. 권력의 역학이라는 건 그런 건데, 이쪽에 싸우는 사람도 알아야 해요. 우리 싸움할 때 난 그랬어. “당신들, ‘일인 독재’라는데 모르는 말이오. 지금 벌써 ‘집단 독재’ 된 거니까 그렇게 쉽게 알아서는 안 됩니다” 하니까, “에이, 아닙니다, 선생님.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맥없이 넘어갑니다” 그래. 그래서 우리끼리 얘기하면서 “저 사람들 단순해서 저렇게만 생각한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판단이 인정받았지요. 앞으로 가도 그럴 겁니다.
잔뜩 주무르다가 덥석 놓고 물러간다,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하고 싶어도 그렇게 안 돼요. 잘못된 일이지만, 권력을 독점했으면 못 물러가. 못 물러가는 것이 복이 아니라 그 값을 받는 거예요. 놓고 가면 얼마나 쉽나요? “난 이제 관계 안하겠소.” 그러면 참 행복이겠지마는 그저 그렇게 안 놓아져. 그때 봤던 재미에 대한 값을 톡톡히 내고야 갈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안 된다 그 말이에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닙니다.
몰락하는 국가주의
내가 제2차 대전 날 때부터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가지고 있는 생각인데, 이 시대가 왜 이러는가 하면 국가주의가 몰락하느라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어렵다는 건 현존해 있는 좌익 국가, 우익 국가, 국가라는 모든 국가가 다 멸망해 가느라고 고민하기 때문이에요. 소련이나 미국도 고민이 여간 아닐 거요. 다른 소소한 나라야 말할 것 있어요? 이날까지 좋다 좋다, 대국 대국, 국가 국가 우리 국가라고 국가 지상주의를 부르짖을 때만 해도 좋았지만, 이제는 놓을래도 놓을 수가 없어. 현실이 놓아 주지 않아요. 제 죄의 값을 받는 거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 감정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돼요.
내 모든 이론은 여기서 풀려나오는 건데, 지금까지는 국가라는 것이 인류를 길러 왔어요. 국가가 시작되던 때는 인류가 어려서 후견인이 필요할 때지요. 가령 우리 아버지가 일찍 죽은 뒤에 오촌이라든지 칠촌이 내가 어리고 세간 살림할 줄 모른다고 후견하는 모양으로, 소학교 선생님이 날 지도하는 모양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수가 있지 않아요? 인류가 어릴 때 국가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인류가 이날까지 진보해 올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국가라는 건 생명은 아닙니다.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제도일 뿐이지요. 개인이 살아가려면 옷이 있어야 하는 모양으로, 사회가 살아가려면 우선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기에 그 근본악이 어디 있느냐 하면 국가에 있어요. 우리 나라 말로 ‘나라’라는 것과 ‘국가’를 나는 구별해서 말해요. 전에 내 말 들은 분은 알 겁니다만, 나라는 사회적인 것이고, 국가라고 그럴 때는 아주 몇이서 정당 조직하듯이 하는 거예요. 이 정부도 조직할 때 몇 사람이 모여서 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이 짜서 할 때 필요한 건 힘이에요. 반대자의 입을 닫게 만들 만한 무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 아니에요?
세계의 문제가 그 점에 있단 말이야. 국가라는 제도가 초창기 때는 비교적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서 결정을 해 놓고 “나를 따라 오너라” 하면 좋은 군중이 오고 그래서 유지가 됐지만, 사오천 년 오는 동안에 달라졌어. 민중이 이제 공부도 많이 했고, 옛날에는 그저 소수의 사람만이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다 교육을 받게 됐어요. 쉽게 말하면 지금 인류는 성인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전 인류는 소아 시대, 청년 시대, 중년 시대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주 장년기에 들었다 할까? 사람이 뭔지 “나도 이젠 세금을 바치는 데 이유를 알고야 내겠습니다”, 말 못하는 사람도 마음에 그것쯤은 다 들어 있단 말이에요. 다른 나라에서는 그래요. 일본만 해도 “나는 세금 중에서 군사비만은 안 내겠습니다” 하고 그건 안 물어요. “징역을 살리겠으면 살리고 마음대로 하시오.” 우리 나라는 아직 거기서도 멉니다만, 이제 그렇게 안 될 줄 아세요? 이 나라도 그렇게 될 거예요.
역사라는 게 뭔지 인류에게 분명한 의식이 없을 때에는 국가가 후견인모양 몰아칠 수가 있었지만, 교육이 보급되고 사업도 자기가 알아서 할 줄 아는 이런 때 와서는 옛날같이 그럴 수가 없어졌어. 그런데 국가라는 그것만은 옛날보다도 아주 중앙 집권으로 되어 가요. 웃지 못할 일이지. 권력이나 모든 것이 점점 분산이 돼서 헤어져야 이상적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시대 착오 아니오? 권력도 돈도, 모든 게 한데 모여. 이게 후진성이라 그 말이에요.
민족 얘기를 하라는데, 나는 민족주의는 아니오. 민족, 국가 반대하는 사람이오. 민족주의는 엄정하게 말하면 민족주의 국가라는 말인데, 민족주의 국가 이제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남들은 세월 좋을 때 그것 잘 해먹었지만 이제 그것이 차차 낡아빠져서 도저히 인류의 이성을 만족시킬 수가 없어졌어요. 지금 있는 나라들도 그걸 벗어 버려야 할 땐데 뒤늦게 우리 민족이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겠어요. 그래야 국민들이 떠나가지 않고 자기들이 쥔 것이 영구히 보존될 테니까 그런 거지. 자꾸 변해 가는 이 시대에 이 민족을 진실로 보람 있게 발달시켜 나가자는 목적에서 그러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그 말이에요. 그런 점을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가령 데모를 한다 합시다. 옳지 않은 일 앞에서 항의를 하는 건 좋은 일인데, 지느냐 이기느냐 결과에 너무 신경적으로 빠져 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잘못되기가 쉽습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싸우는 의미가 어디 있느냐, 겨누는 포인트가 어디 있느냐, 그런 걸 생각해야 돼. 근시안으로 지금 곧 이긴다는 것보다는 우리들의 사명이 어디 있나를 깊이 생각하시는 게 옳은 일이에요. 그 점에 주의해 달라는 게 내 부탁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싸움도 싸움이지만 공부를 많이 하셔야 할 거예요. 그리고 마음이 정치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넓은 사람, 또 큰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 사람들 우리보다 생각의 정도가 낮은 사람들이지. 그건 본래 그런 역사에 났으니까 무리도 아니지. 불쌍히 보는 생각으로 하세요.(웃음)
국가 조직으로 보면 그 사람들이 아재비(아저씨)고 여러분은 어리겠다고 하겠지만, 지식 정도에서 보면 우리가 아재비에요. 저 사람들은 언제 교육을 받을 새가 없었어. 그러니까 6․25 때 나가서 전쟁하느라 수고했어. 그렇지만 생각을 좀 잘못해서 아주 그것이 목적인 것처럼 그렇게만 하는 건 잘 안 된 일이다, 이제 그걸 잘 끌어가는 것이 우리 일이다, 이런 아재비 같은 생각을 가져야 돼.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사람은 마음이 커져야, 큰 생각을 해야 일을 공정하게 하거든.
나는 우리 나라에 정치가 아직도 없다고 그래요. 수사 기관, 경찰 기관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정치는 없어요. 나는 정치를 모르고, 더구나 싫어서 안하지만 정치하려면 사람이 좀 통이 커야 돼. 통이 크다는 건 사람 잘 죽인다, 그 말이 아니에요.(웃음) 통이 크다는 건 높은 사상을 가진다는 겁니다. 어떤 사상이 높은 사상입니까? 구약의 「이사야서」를 가서 읽어 봐, 얼마나 사상이 높은가! 이제 “세상 끝날이 오면 사자와 소가 한데 같이 있어 풀을 뜯어먹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놀아도 상하지 않는다.” 그런 게 정말 무서운 소리지. 그런데 뭘 밤 동안에 군대 끌고 왔다갔다……(폭소)
어쩌면 우리 나라에 사람이 이렇게 아주 작아져 버렸을까? 옛날 분들은 반드시 그렇지 않아요. 단군 할아버지 보세요. 단군은 어떤 이냐 하면 군인이 아니에요.(웃음) 단군이 나라 시작했다는데 어드메 칼 도(刀)자 하나 있습디까? 없어요. 사람 죽였다는 말 하나도 없어요. 호랑이도 안 죽였다고 그랬는데. 네가 사람이 되려거든 이렇게 하라, 그래서 호랑이는 안 되긴 했지만, 그것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겠지만, 내 마음에 맞지 않는 놈 모두 없애 버린다든지 그러진 않는다 그 말이야. 그리고 거기 전쟁해서 이겼단 말이 없잖아요. 본래 우리 민족이 그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