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드는 인생 / 양선례
인생은 우연이 만든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친구나 선생님도 영향을 끼친다. 출생과는 달리 사회 관계는 내 의지나 선택이 작용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지나고 보면 우연이 나를 크게 바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연히 공모 교장 공문을 보았다. 해마다 오는 공문이지만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고향의 아주 익숙한 학교 이름이 보여서다. 그 학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해 봤더니 공모 절차는 거치지만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라서 도전해 봤자 힘들 거라고 말했다. 전남에서 공모 교장이 되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교장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뽑는 초빙형과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도전할 수 있는 내부형이 그것이다. 진보 교육감 체제에서 내부형 공모 교장은 특정 단체 출신의 교사가 가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내가 점찍은 학교 역시 교사가 오랫동안 그 학교 언저리에 근무하면서 터를 닦아 놓았다고 했다. 승산 없는 싸움에 도전해서 망신당하지 말라는 조언도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실태나 알아볼까 해서 전화한 건데 끊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얼마나 잘 났기에 순번을 정해 놓고 형식만 거치는 건가 싶어 씁쓸했다. 교단에 들어선 이후 어느 한 해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야 마음이 편했고, 아이들의 담임교사로 25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뭐가 부족해서 미리 방패로 막나 싶었다. 게다가 내 25년의 교사 경력 중 17년을 고향에서 근무했기에 어느 정도는 승산이 있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도전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처음에 마음이 갔던 고향의 학교를 포기하고 현 근무지 바로 인근의 학교에 도전장을 냈다. 그 지역에 근무한 적도 없고, 해당 학교에 아는 선생님이라고는 안면이 있는 교장 선생님이 전부였다. 오죽했으면 1차 면접을 보고 나서 분위기가 어땠는지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역이나 학교의 사정도 전혀 모른 채 덤빈 꼴이었다. 대다수의 공모 교장들이 일 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에 비하면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20쪽의 학교경영계획서와 12쪽의 자기 소개서, 5쪽의 주요 경력과 실적을 써야 했고, 각각의 증빙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도전하기로 마음 먹고 나서도 일주일 간을 고민했다. 괜히 창피만 사는 건 아닌가. 소시민으로 만족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평소 생활 신조에도 분명히 역행하는 일이었다.
서류를 내 놓고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공모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1차 면접 일주일 전까지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면접을 보러 간다, 안 간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두 마음이 싸웠다. 조금 늦더라도 마음 편히 살자. 밑져야 본전이니 하는 데까지 해 보자. 그때쯤 무모한 도전은 주변에 소문이 났고, 응원하는 사람과 말리는 사람이 반반이었다. 엿새를 남겨 놓고 학교 밖 전학공 모임에서 1박 2일 전북 부안으로 가는 워크숍이 있었다. 망설인 끝에 워크숍을 따라 갔다. 공모 교장을 포기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어제까지 마음을 짓누르던 부채가 사라진 듯, 저녁노을은 아름다웠고, 사람들과 어우러져 먹는 꽃게탕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에서 돌아왔다. 이제 공모 1차 시험일까지는 딱 4일이 남았다. 12월 29일부터 1월 1일까지. 보신각 종소리도 듣고,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들과 주말주택에서 일박하면서 율포 해수욕장에서 주는 해맞이 떡국 먹을 일만 남았다. 그동안 응원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그만두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여 전화를 돌렸다. 본인이 공모 교장 할 때의 서류를 넘겨주면서 면접의 방법과 준비사항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던 A교장, 공모 학교 옆 학교라서 수시로 정보를 물어다 주던 B선배, 고향의 학교 대신 이 학교로 도전해보라고 안내해 준 C친구. 다시 생각해 보라고, 이제 다 왔는데 포기하느냐고 한결같이 말렸다.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내게 ‘떨어지면 특정단체에 떨어진 거지 교사한테 떨어진 것 아니지 않느냐’고 용기를 줬다. 그동안 준비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도 했다. 결정적인 한 방은 처음부터 나를 도전하는 학교로 밀었던 친구 C였다. “그래, 알았다.” 짧은 한 마디였으나 그 말 속에 감춰진 분노와 실망이 전화기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또 맘이 약해졌다. 결국 재야의 종소리도 해맞이 떡국도 포기하고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시험을 준비했다.
1월 2일 오후 2시에 시험이 시작되었다. 준비실에서 봉투에 담긴 번호표를 뽑았다. 내가 뽑은 번호는 3번. 나와 경쟁하는 두 명의 후보는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인솔하는 선생님을 따라 시험장에 입실하니 그 너른 강당 중앙에 내가 앉을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학교에서 선정한 심사위원 열 명이 단상 아래 줄 맞춰 앉아 있고, 좌측에는 사전에 신청을 한 참관인 3명, 오른쪽에는 진행과 방송을 맡은 학교 관계자 3명이 있었다. 입구에는 전 일정을 감독하는 교감 선생님이 있었다. 그 17명 중에서 눈에 익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적지에 홀로 진군하는 소년병처럼 나만 홀로 이 모든 일정을 감내해야 했다.
전면의 스크린에는 30분으로 맞춰진 커다란 시계가 보였다. 문제지가 담긴 책상 위의 서류철을 여는 순간부터 시간은 흘러갔다. 대답해야 할 문제는 10문제. 예상한 질문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30분 안에 그 모든 문제의 답을 해야 했다. 9문제를 완벽하게 답하거나, 너무 일찍 끝내버리는 것도 감점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형식의 시험이었다. 취업 준비생들이 이런 마음으로 면접을 보겠구나 생각하니 청춘들이 짠해졌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작은 시골 학교의 여고를 나온 것을 고마워한다. 임원을 하면서 남 앞에 서 본 여러 경험들이 학교를 벗어난 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힘이 되어 준다. 긴장했던 마음이 서서히 안정되어 간다. 부장 교사 10년, 교감을 6년이나 해서 들은 풍월은 많았다. 게다가 혁신학교 교감을 4년 했다. 딱 20초를 남기고 시험을 끝냈다. 나는 30분간 말했고, 심사위원 10명은 30분간 들었다. 오전의 경영계획서와 자기소개서, 증빙서류를 보고 낸 서류 점수와 합산하여 순위를 매긴다. 일주일 후에 도전자 셋은 교육지원청 회의실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내가 1번이었다. 또 30분간을 쉬지 않고 말했다.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서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학교와는 달리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그렇게 나는 교감 6년 만에 내부형 공모 교장에 당선되어 교장이 되었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2년쯤 후에 이 자리에 섰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변칙적으로 운영된 올해는 계획한 대로 뜻을 펼치지는 못했다.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 수업안 작성과 내실 있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 운영, 읽기 능력을 신장시키는 교사 연수 등 교사의 성장에 방점을 둔 한 해였다. 그래도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이곳에서 학교의 구성원으로 튼실하게 뿌리내린 스스로가 대견하다.
오래전에 내가 만난 선배 한 분이 그랬다. 교장은 ‘교장’의 역할을 하고, 청소 선생님은 ‘청소’ 역할을 할 뿐이지, 교장은 높고 청소 선생님은 낮은 게 아니라고. 역할이 다를 뿐이지 위치까지 다른 건 아니라고.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살 것이다. 나와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이 행복하고, 선생님들이 한 뼘쯤 성장하여 그 배운 내용이 남은 교직 성장의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이곳으로 나를 이끈 알 수 없는 힘, 그 우연으로 인생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창밖에 겨울 햇살이 환하다.
첫댓글 이번 글쓰기 반에서는 한 번도 빼 먹지 말고 글을 쓰는 걸 스스로와 약속하였습니다.
늦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인 것으로 위로를 삼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글씨는 흐릿하고, 눈은 아프지만 그래도 보람찬 하루네요.
고맙습니다!
끈끈한 선생님의 인내에 고개 숙여집니다.
네 고맙습니다!
길들여진 것에 책임을 지셨군요. 여러 사람이 궁금했을 것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까지의 내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간 열심히 갈고 닦았기에 얻을 수 있는 열매였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은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하
여러 사람의 응원 덕분에 용기를 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교장선생님 삶의 향기 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 감동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합니다. 열정이 많은 교장선생님과 함께 하시는 선생님들도 든든하시리라 생각해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써 보고 싶은 주제긴 했는데 마침 교수님이 주시네요.
그래도 아직은 아닌 듯 하여 고민하다가 어렵게 썼답니다.
어디까지 나를 내 보일 것인가가 글 쓸때마다 고민이지요.
다음에 다룰게요. 앞 대목은 대폭 줄이거나 빼고 공모 교장에 응모한 얘기만 집중적으로 해야 좋지 않을까요?
첫째 단락만 볼게요.
인생은 우연이 만든다. 어떤 부모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이 달라진다. 학창 시절에는 어떤 친구를, 혹은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많이 바뀐다. 출생은 선택 밖의 문제지만 친구나 선생님은 조금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도 지나고 보면 그 가운데 끼어 있는 알 수 없는 우연이 인생의 커다란 물줄기를 바꾼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인생은 우연이 만든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친구나 선생님도 영향을 끼친다. 출생과는 달리 사회 관계는 내 의지나 선택이 작용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지나고 보면 우연이 나를 크게 바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 이렇게 바꿨는지 생각해 봅시다.
교수님! 역시 전문가십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해 주셨네요. 내공이 깊은 교수님께 많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삼 년 전 제가 겪었던 일이네요. 하루에도 몇십 번 포기하다 도전도 안 해보는 건 비겁하다 싶어 면접에 나갔다가 손발이 떨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던 난감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관리자로 고생했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드라구요.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던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용기가 오늘을 만들었네요. 그 용기에 한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저랑 같네요 하하
공모교장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여실히 깨달았답니다.
준비하면서 세상의 모든 공모교장이 위대해 보였지요.
한 번이지 하지, 두 번은 참으로 못할 일이었어요.
박수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님은 내년이면 끝이 나는군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미리 응원합니다.
공모교장 지원할 때 이야기로만 들어서 이 정도로 깊게 고민했는지 몰랐어요. 글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알 수 있게 해 주네요.
전북 부안으로 워크숍 갈 때 한창 고민중이었다는 사실을 글을 보고 알았네요.
선배님!
함께 부안 갈 때는 마음을 비우고, 포기하고 간 거지요. 하하
결과적으로는 그 여행으로 마음이 많이 편해졌고,
다시 도전할 용기도 얻었어요.
1박2일동안 실컷 놀다가 다시 하니 그간의 스트레스가 반쯤 사라졌더라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운이 좋아서 된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