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다눈치오의
사랑과 죽음의 승리
제 젊은 날에 즐겨읽던 책들 가운데의 하나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던 가브리엘 다눈치오가 1894년에 쓴 죽음의 승리란 책이었습니다.누구나 한 때 열병처럼 앓던 허무와 좌절, 그리고 이유모를 반항기가 지나칠 무렵에 읽던 책들은 조금 탐미적이고 퇴폐적인 것들일 수밖에 없었지요.일본의 태양족이나 서구의 비트족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지요.
이시하라 신따로우,미국의 피츠 제랄드가 쓴 책,그리고 영화도 진세버그와 장폴벨몬드가 출연한 누벨버그의 "네멋대로 하라" 등등 우리들의 60년대는 요즘 세대가 맛보지 못한 허무와 퇴폐, 그리고 낭만과 어둠의 그림자를 찾아 무작정 떠나는 방황의 시간이 많았던 것같습니다.특히 죽음의 승리란 책은 당시에 돌파구가 없는 사랑의 벽을 탈출하는 최후의 선택이란 점에서 많은이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승리란 장편소설은 주인공인 조르즈란 청년이 성욕이 강하고 아름다운 유부녀인 아폴리타 산찌오와 즐기는 이야기가 전부를 차지 합니다.그녀는 남편모르게 젊은 미남의 청년 조르즈와 밀라노의 본집을 떠나 로마에 와서 동거를 합니다.그녀가 남편과 이혼을 하려해도 가톨릭 국가인이탈리아에서는 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두사람은 사랑의 행위를 하더라도 그저 간통 이상의 관계외는 아무런 법적 장치를 갖고 있지 못하지요.
그래서 둘은 고향에 가까운 보르띠노의 성당인 성모마리아 교회에 나가서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이 무렵부터 과거 권총자살한 숙부 데미트리오의 환영이 나타나 그를 유혹하지만 자살은 번번히 실패로 끝납니다. 그러나다 두 사람은 한적한 시골에 정착해서 매일매일을 애욕에 빠져 남자는 여자를 완전한 자기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여자 역시 마찬가지로 완전한 자신들의 소유로 하려하나 밤이 지나면 그들은 법적으로 남남이란 사실을 알고 절망을 합니다.
니체의 짜라스트라에 의하면 고뇌를 통하여 내면생활을 충실히 하면 사랑의 승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실행했으나 이것역시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절망에 빠진 두 사람은 결국 서로 부둥켜 안고 절벽에서 투신 자살을 합니다.세기말적인 남녀의 사상과 사랑의 결말이지요.그 시대에 또 다른 죽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극작가이자 부호였던 김우영과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이 현해탄에서 부둥켜 안고 투신 자살한 사건이지요.이때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불러서 그 노래가 사후에 일본의 레코드계를 휩쓸었다고 합니다.두 사람 역시 정상적인 혼인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일탈, 즉 권태로운 일상에서의 탈출을 원하고 실제로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러나 그 이름으로 합리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정사(情死) 를 한다고 해서 완전한하나가 된다는 것은 정사한 사람들의 생각일뿐입니다.완전한 내것, 그것은 조물주가 사람들에게 허락을 하지 않은 것같습니다.사랑이란 사랑을 하는 상대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줌으로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랑의 양이 많지 않나하는생각을 가져봅니다.그리고 사랑도 한때의 불과 열과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용서와 겸한 사랑,그리고 마침내 노숙해 오직 마음으로 하는 사랑 등등 여러 종류로 변해간다는 생각입니다.육신의 욕망은 시간으로 볼때 잠깐이고 고귀한생각은 언제나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