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자유 반납
혼인은 우리 하느님이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표징이다. 혼인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성은 하나 됨, 결합이다.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가 혼인해서 하나가 된다. 성적인 결합은 둘이 하나가 됨을 표현한다. 하느님과 내가 그렇게 하나가 되는 게 구원이다. 성사로 맺어진 혼인은 죽음 말고는 둘을 갈라놓지 못한다. 그런데 하느님과 나의 결합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다.
혼인 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유로운 합의다. 아무런 강박 없이 자유롭게 상대방을 선택하고 그와 하나가 됨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결합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사랑하시니 나도 선택하셨다. 나를 부르셨다. 나의 선택이 남았다. 나는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또 그럴 수 있다. 외아들을 내어주면서까지 사랑을 고백하시는 건 당신이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뜻이 분명하지만, 사실 그건 당신 말고는 다른 구원은 없다고 하시는 절박한 청원이고 간절한 사랑 고백이다. 이런 우리 하느님 안에 무서운 폭군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어떤 재판관’(루카 18,2)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매달리는 과부 같고, 자식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쓰며 애쓰는 엄마의 모습이다.
십자고상이 그 명백한 표징이다. 당신과 혼인해달라는, 당신에게 오라는, 당신 말고 다른 길은 없다는 간절한 호소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떻게 사셨고,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신 줄 알고, 그분을 따라 전 생애를 바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그분의 간절한 청혼 앞에서 주저하고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인 나는 도대체 뭔가? 혼인에는 자유로운 합의가 필수지만, 하느님과 하나 됨, 나의 구원에는 나를 버림이 필수다. 하느님이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잘 사용할 줄 모르니 그냥 되돌려 드리는 게 좋겠다. 그래서 모든 성인이 자기 의지를 하느님께 드린다고 매일 고백하고, 하루하루를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기를 바랐던 거다. 순교자들이 바로 그날로 하느님과 완전히 결합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루카 12,49) 불은 하느님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면서 동시에 불순물을 걸러내는 정화를 상징한다. 하느님 사랑은 세상 모든 인간관계와 사랑에 앞선다. 가족, 부모와 자식 관계보다 앞선다. 하늘나라에서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 아래 우리 모두 형제자매다.(마태 23,9; 마태 22,30) 사실 부모와 자식 관계, 형제자매 관계를 끊고 그들을 하느님 아래 한 형제자매로 다시 새롭게 받아들일 때 제대로 효도할 수 있고 진정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다. 부부와 우정은 말할 것도 없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사실 세상살이에서 남는 건 사랑뿐이다.
예수님, 오늘도 저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릅니다. 주님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제게 주신 이 육체로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모든 애정을 어머니께 드리니, 저를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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