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2~47 / 초대교회의 모습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오순절에 처음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일대일 성경공부, 그룹성경 공부, 공중 메시지 다양하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말씀이 있어야 성령님이 지속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님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입니다.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 말씀을 전해야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은 사경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전할 때 마음이 찔려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공부해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사랑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교제하며 떡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때 떡은 간식으로 먹는 게 아니고 식사를 의미합니다. 공동식사를 하면서 사랑을 나눴고 사랑이 있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의 처음 열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어지고 싸우면 사단이 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성령님이 임하면 더욱 힘써 기도합니다.
성령은 기도의 영을 주십니다. 사단은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서 규칙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통성기도를 해야 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부흥역사에 대해서 쓴 논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공통점은 통성기도였습니다. 새벽에 우리는 소리를 내어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43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람들마다 하나님과 사도들을 경외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지위가 높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남으로 예수님이 높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사도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경외하였습니다. 바로 그곳에 크신 하나님이 살아계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자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사도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표적과 기사는 축복의 일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재앙도 표적과 기사입니다.
44,45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이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의 물질생활이 나옵니다. 이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당시에 오순절이라 예루살렘에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예루살렘에 남아서 말씀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은 재산을 팔아서 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에 호소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득이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자본주의는 일을 하는데 효율성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빈부의 격차가 생긴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공산주의가 나왔습니다. 모든 생산수단과 토지를 공유화하여서 빈부 격차를 줄이고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보려고 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일할 의욕을 빼앗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 공산주의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제도에 의해서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이런 이기심을 극복하는 길은 이런 제도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임할 때 가능해집니다. 성령님이 임하면 우리는 이기심을 극복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은 제도와 법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주신 자녀에 대한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회 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교회 생활은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말세가 가까이 올수록 모이기를 폐합니다. 처음 성령님은 성도들이 모인 곳에 임하였습니다. 말세가 되면 모이기를 폐한다고 나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힘써서 모여야 성령께서 친히 일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교회에 들려야 합니다. 자주 들려서 말씀도 나누고 사랑도 나누고 기도도 해야 합니다. 모이되 마음을 같이 해서 모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일하십니다.
둘째, 사랑의 가정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성전에서 모이고 집에서는 떡을 떼었습니다. 떡을 뗀 것은 성만찬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성만찬을 하며 애찬을 하고 예배드리며 가정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집에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상적인 가정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성도들은 집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가정을 교회같이 만들었습니다.
교회는 가정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반면에 가정은 교회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전이 예루살렘에 하나뿐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고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서로 초청하여 음식을 먹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가정의 사생활을 중시하고 폐쇄적이 됩니다. 집을 방문하기도 어렵습니다. 먼저 경비실에서 한 번 막고 아파트 라인에서 막고 집에서 다시 문을 잠급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정을 오픈하고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자 백성들도 성도들을 칭송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룩함이 있었고 높은 도덕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들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역 사회에서 칭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칭찬받는 성도가 많은 교회는 성령이 함께하셔서 부흥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교회를 이루자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수를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처럼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죄를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날마다 매주 구원받는 자가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