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린은 피렌체 지방의 상인은행들이 만들던 통화맞습니다. 메디치가가 만들던 것은 절대 아니고, 피렌체 지방의 은행업 연합회 비슷한 '아르테 델 캄비오'란 길드에선 만들던 금화로 뒷면에는 피렌치의 라틴어 이름인 플로렌티아가 그리고 앞면에는 피렌체시의 상징인 백합이 세겨져 있습니다.
피렌체 지역이 플로란스라 불리기도 하기 때문에 금화 이름도 플로렌스 혹은 플로린이라 불리게 됩니다.지금가치로 환산하기는 어렵고 대략 150 플로린이면 아주 안락한 생활을 즐길정도였답니다. 시내 아담한 집과 정원을 임대하는 비용이 연 35플로린정도, 하녀 1명 1년연봉이 10플로린 정도, 노예는 한명당 50플로린에
첫댓글 두카트는 베네치아에서 유통하는 금화고 플로린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유통시킨 금화일 겁니다. 둘다 비슷한 가치를 지니고 동시에 유럽에서 사용되었죠. (맞나?;; 두카트는 확실하지만;) 두카트는 14~15세기의 경우 우리돈으로 액 15~20만원 상당이라 합니다.
두카트와 플로린화는 중세의 달러라고 불릴 정도로 중세유럽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높았죠. 이전의 베잔트와 디나르 화를 대체합니다.(베잔트는 비잔티움의 화폐, 디나르는 중동화폐)그나저나 플로린화는 피렌체 아닌가요?
플로린은 메디치 가 은행에 의해 보급된 국제통화입니다! 아님 말구...
두카트화는 순도가 0.999이고 무게는 대략 3.94그램정도 나갔습니다. 플로린화는 결국 못찾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정한 아우레우스 솔리두스 눔무스를 줄여서 솔리두스라 부르고, 이를 그리스어로 표준화폐라 부른게 노미스마이며, 노미스마를 유럽에서는 베잔트라고 불렀습니다(복잡하네)
아. 맞아요.플로린은 피렌체산입니다 ㅡ,.ㅡ;; 어감때문에 헛갈림 ㅡ,.ㅡ;
오로구트님 잠깐질문이요;; 두카트의 현재가치가 15~20만원이라는겁니까(그럴리가;)아니면 그당시 살수있는 식용품,의식주생활 모그런데쓰는 가치가 현재로의 15~20만원정도라는 겁니까,(나에게 100두카트만주소..흑흑)
당연히 후자입니다 ㅡ,.ㅡ; 물론 완전한 계산이 아니라 그 당시 금의 가치 정도 당시 그 돈으로 살수 있던 제품의 가치 정도 등등을 비교한것이라 정확한 건 아니고요. 상업혁명이후 인플레가 일어나기 전엔 금의 가치가 비교적 일정했기에.
음. 또다른 이야기로는 35만원 상당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금화 한개에 최소 15만원~35만원 가량이란 이야기니.
아르키메데스님이 작성하신 중세물가표에 페니로 환산해서(페니는 약 3000원가량) 매긴 것이 있는데 지금 날아갔군요 ㅡ,.ㅡ;
유로파2에서는 1두카토도 대단히 큰 돈입니다.(뭔소리야?)
유로파에서 1 이라고 표시되는건 1000 두카토랍니다.. 100 이라고 써 있으면 10만 두카토로 계산하면 되지요.
1.47두카트 이런 식으로 표시되니까 그게 1470두카트였느지 어찌 압니까..(설마 국가재정이 몇십만원 밖에 안되겠냐!)하여튼 그랬군요.감사.
참고로 중세말 베네치아의 국가 제정이 연 100만 두카토라더군요. 유럽 최대의 부국인데...
흠 두카트 지금 까지고 15만은 훨씬 넘을듯하는데요. 50년전 한국화폐가 1원인가? 5원인가가 지금 5000원의 가치가 있다고 하던데 ㅡㅡ;
지금은 두카트 안쓰잖습니까;; ㅡ,.ㅡ;;; 상평통보를 지금 화폐로 유통시키지 않는 것처럼;;;(골동품으로서 비싼 거겠죠;)
플로린은 피렌체 지방의 상인은행들이 만들던 통화맞습니다. 메디치가가 만들던 것은 절대 아니고, 피렌체 지방의 은행업 연합회 비슷한 '아르테 델 캄비오'란 길드에선 만들던 금화로 뒷면에는 피렌치의 라틴어 이름인 플로렌티아가 그리고 앞면에는 피렌체시의 상징인 백합이 세겨져 있습니다.
피렌체 지역이 플로란스라 불리기도 하기 때문에 금화 이름도 플로렌스 혹은 플로린이라 불리게 됩니다.지금가치로 환산하기는 어렵고 대략 150 플로린이면 아주 안락한 생활을 즐길정도였답니다. 시내 아담한 집과 정원을 임대하는 비용이 연 35플로린정도, 하녀 1명 1년연봉이 10플로린 정도, 노예는 한명당 50플로린에
흙.. 무슨말들 하시는지 이해가안가 나는 역시 동양사 스타일인가
흐흠..그럼 매운국(??)님, 농부 1부대가 노예 1명가치밖에 안되는 거였습니까?(미디블 중독현상. 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크레타 공방전 끝 무렵인 1668년 당시 베네치아의 한해 세입이 300만 두카토를 조금 넘었습니다. 그 해 크레타 공방전에 사용된 금액은439만 2천 두카토 전쟁이 괜히 소모전이 아니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