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사커월드 ............ .날으는 돈까스님글 글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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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선약수(上善藥水) 그리고 차범근 감독
‘노자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藥水)라는 구절이 있다. 최고의 경지는 마치 물과 같은 경지로서 물이란 그 어느 것도 거스르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우주의 도리를 체현하며 어떤 그릇에도 담기지만 그 본성은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말이다. 마땅히 道를 추구한다면 이러한 상선약수의 경지를 향해 정진해야겠지만 나는 이를 축구라는 영역에서 한번쯤 재해석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스포츠나 무술, 격투기조차 ‘기본적인 틀’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소룡의 화려한 아우라에 도취된 젊은이가 멋모르고 쿵푸도장에 입문했다가 어느 세월에 끝날지 모르는 ‘기마자세’에 진이 빠지는 법이며, 슈거레이 레너드의 화려한 예술적 연타를 모방해보려 입문한 권투체육관에서는 재미없는 스텝훈련과 줄넘기를 수 개월 땀흘리고서야 겨우 원투 스트레이트를 막 가르침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르시소 예페즈의 화려한 플라밍고 기타는 지루함의 극치인 야포얀도 주법을 몇 년이고 손에 익히고야 겨우 악보를 더듬더듬 따 봄으로서 첫 삽을 뜰 수 있는 것 - 사실 한국축구의 결정적 약점이 바로 이러한 기본기가 처절할 정도로 약한 데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긴 하지만..........
또한 기본 품세든 기본초식이든 축구의 전술과 포메이션이든 그것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또 익히기가 지루한 ‘기본형’을 수천번 아니 수만번 단련하고 체화시키고서야 달성되며 이를 단단한 초석으로 둔 경우라야만 기본에 대한 베리에이션을 충분한 실전훈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 유명한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 의하면 또 이런 부분이 있다.
“그 어떤 초식이나 검법에 물들지 말라. 눈을 감고 검을 잡아라. 그리고 보이는 상대를 베어라.”
그렇다. 요컨대 정리하자면 모든 스포츠나 무술은 기본형 + 변형과 유연성 그리고 실전감각이 어우러진 어떤 결정체인 것 - 이기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기본형의 밑그림을 답습하여 융통성 부재의 우를 범해서는 안되며, 또한 아무런 기본형없이 마구잡이, 우격다짐식의 잡초류도 곤란한 것이다. 현실은 이 어느 중간이며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上善藥水’의 교훈은 축구에서 어떤 틀에 박힌 전술이나 전형 못지않게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게임상의 변화에 그때그때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과 임기응변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으로 재해석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전의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알렉산더 대왕의 언명 - “전쟁은 물과 같이 일정한 형태가 없다. 따라서 전투에서의 행동은 격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틀에박힌 기본형류와 완전한 스트리트 파이터형의 잡초류가 대결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보통 이러한 경우 차라리 잡초류의 임기응변이 승부의 고비처에서 오히려 강한 경우가 많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인 듯 하다. 업라이트한 원투스트레이트 일변도의 알렉시스 아르게요가 변칙의 극치인 아론 프라이어에게 두 번이나 처참하게 난타당하다 넉아웃되는 것이나 무술도장에서 수년간 수련한 사람이 전문직업깡패에게 주먹싸움에서 오히려 불리할 가능성이 큰 것 등등이 나름의 예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감독 차범근”은 상선약수나 오륜서의 교훈과는 거리가 먼 답답한 기본형의 대입이 축구에서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는 어떤 허상에 계속해서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2. ‘감독’ 차범근 論
(1) 최고의 선수와 최고의 지도자
차범근 감독은 ‘푸스발레러’ 출신이다. 독일은 잘 알다시피 우리의 열악한 축구 인프라와는 달리 체계적으로 지도자를 육성할 수 있는 단계별 축구 지도자 훈련코스와 기관이 아주 잘 구비되어 있으며 차범근 감독은 지난날 위대한 분데스리가의 경력을 끝낸 후 바로 이 푸스발레러 과정을 그것도 꽤 훌륭한 성적으로 이수했다. 10년이 넘는 분데스리가 경력, 태극마크를 달고 뛴 수많은 A매치 경험에 정규의 지도자 최고급 과정까지 제대로 이수했으니 그야말로 ‘경험과 이론’이라는 환상의 조합이 이루어낸 조합물이 다름아닌 차범근 감독이다. 적어도 외형적 계량치로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뛰어난 레전드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그 현역시절의 위명 그대로 훌륭한 지도자로 반드시 변신하지는 않는다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한다. 에레디비지에의 그라프샤프에서 나름대로 키 플레이어였던 히딩크 감독은 그 70년대의 위대한 네덜란드의 전설들 안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는 못한다. 얼마전 퇴임한 농구의 김태환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의 체육교사시절 농구팀을 맡아 지도하다 급기야 프로팀 감독이 된 전형적인 잡초류이며, 또한 얼마전 대구에서 퇴임한 박종환 감독 역시 그리 신통한 현역시절을 보내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특별한 지도자 코스를 정식으로 밟아보지 못했다. 오죽하면 작고한 코미디언 이 주일씨가 “ 사실 춘천고에서 축구할때는 내가 종환이보다 볼센스나 게임을 읽는 눈은 더 좋았어요”라고 단언하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왜 선수경력이 신통찮은 지도자들이 ‘명장’이고 선수시절 레전드였던 이들은 ‘명장’보다 ‘패장’의 오명을 쓰는 일이 더 많을까? 확실히 선수로서의 자질과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일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가지 확실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것은 ‘감독’ 차범근의 능력을 평가할 만한 시간과 기회는 그동안 마르고 닳도록 충분히 주어졌다는게 필자의 견해다.
(2) 97년과 98년의 기억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의 차범근 號는 우리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의 실패로 인한 위기로부터 출현한 대안이다. “빠르고 강한 대표팀을 만들고 싶습니다”는 취임일성의 전후에 사실 그 화려했던 울산 현대의 멤버들로도 번번이 우승을 놓친 과거로 인해 ‘감독’으로서의 자질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이미 그때부터 외국인 감독론이 상당한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대감독으로서의 능력은 한번쯤 차범근이라는 이름 석자가 주는 광휘가 발휘될 수도 있지 않을 까 하는 기대감과 아울러, ‘ 그 재론의 여지없는 위대한 커리어가 적어도 선수장악에는 확실히 특효를 발휘할 것’이라는 논점과 결합하면서 차범근 호는 출범하게 되었다.
당시 필자 개인적으로는 차감독이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발현되기 시작한 일본의 미들축구에 과연 어떠한 전술적 시스팀과 조밀함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대단히 흥미롭게 그리고 기대하면서 주시했다. 물론 기억에도 생생한 도쿄대첩의 통쾌한 승리를 비롯하여 별탈없는 출전권 획득은 여하튼 결과로는 우리의 기대를 충족했었지만, 솔직히 그 승리는 감독 차범근이 배태한 전술적 꽉참의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늘 그러했듯 선수개개인의 개인능력과 체력 그리고 한국축구 특유의 투지와 임기응변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적지않은 실망감을 느꼈었다. 특히 필자는 그 문제의 잠실벌에서의 일본과의 2차전에서의 2대0패배에 더 무게감을 두었으며 특히 우리가 먹은 두 골이 모두 일본의 튼실한 조직축구의 능력이 우리의 미들을 압도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이미 차범근 호의 운명이 어느정도는 예감되었었다. 당시 우리의 미들라인은 포항의 김기동까지 긴급수혈하면서 무려 5명의 미들을 운용했지만 나카타와 나나미 두 명에게 철저히 농락당하는 패배를 안았다. 특히 최용수의 부상(이 부상이후로 이상하게도 최용수는 그 특유의 위험성이 크게 반감된 경기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이라는 손실까지 겹쳐진 씁쓸한 경기였다.
이 경기로부터 나는 감독 차범근의 능력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3-5-2의 전형을 사용하는 변화를 꾀했지만 전혀 미들의 수적우위와는 거리가 먼 일방적인 수세를 면치 못했다면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의문말이다. 정보화에도 탁월했던 차감독이 그의 노트북에 저장했던 수많은 전술적 도해들은 도대체 다 뭐였단 말인가? 아니면 그 화려하고 정교한 전술개념들을 당시의 구식축구를 구현하던 국대멤버들이 ‘전혀’ 소화할 능력이 없었던 데 기인한 것이었는가?
그러나 특히 필자가 실망을 넘어 결정적으로 차감독의 능력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그 운명의 황선홍이 부상당한 중국과의 평가전이었다. 혹자는 불가항력이었거나 우연한 사고였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사고에서 차감독의 ‘새가슴성’과 ‘일관성의 부재’를 확실하게 규정할 수 있었다. 아시아 지역예선을 통과한 이후 치른 일련의 평가전에서 국대는 그리 신통한 결과물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은 물론이고 축협의 차감독 축구선배되는 인간들의 이래라 저래라에 엄청나게 시달리던 차감독의 심리에서 필자의 정황적 추측이지만 아마도 만만한 중국에게 여유있는 승리를 거두면서 당당한 출정식을 거행하게 싶었을 게다. 그랬다면 이 양반아....... 왜 황선홍을 하필 그 경기에 투입시켰는가 말이다. 그것도 우리한테 잔뜩 독이 오른 중국을 상대로.......... 그건 마치 시집갈 날 몇 주내로 받아둔 꽃다운 예비신부를 야심한 시각에 우범지대로 돈심부름 시킨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지금까지도 필자는 치부한다. 결과적으로 중국과의 평가전은 범전끝에 비겼고 결국 모두가 잘 알다시피 애초에 차감독이 구상했던 전술적 최대치 - 황선홍과 최용수의 투톱라인을 지원하는 변형 352는 98년 프랑스에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2대0으로 끌려가다가 황과 최의 연속골로 따라붙자 우리가 일전을 벌일 벨기에 언론들은 한국의 수비라인은 별거 아니지만 공격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방심하다간 큰코 다칠 것이라는 코멘트를 연일 게재하고 있었는데........ 황선홍, 최용수 라인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다면 98년의 치욕과는 사뭇다른 결과가 도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감독이라면 선수와 구단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매스컴이나 축협에게도 강단있는 저항과 능수능란함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심지어 요즘의 축구PC게임에서도 나오는 기본적인 매뉴얼이다. 히딩크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다’와 매스컴의 엄청난 질타를 속된말로 생까는 여유와 고집스런 일관성에서 나는 상당히 안심했었다. 차감독은 이와는 너무도 다른 ‘새가슴’과 ‘귀얇음’과 ‘비일관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레전드로서의 차범근은 여전히 존경하나 ‘축구지도자’로서의 차범근은 이미 바닥을 보였다고 단정했다. 98년 프랑스에서의 치욕은 어쩌면 이미 97년부터 노정되기 시작한 어두움의 당연한 결과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 - 그리고 그 이후 소위 차감독 부부의 월간지 인터뷰에서 불거진 ‘축협인사 똥파리 論 ’은 이왕 할거면 차라리 월드컵 출전 이전에 일갈했어야 마땅했었다는 생각이다. 크게 틀린말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당시의 차감독이 자꾸만 요즘 사회인 야구에도 참패한 김재박의 철면피 변명과 자꾸 오버랩되는 것일까?
(3) ‘서독’축구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차범근
본 호프와 브라이트너 그리고 휄첸바인으로 짜여진 극강의 미들라인은 결국 회네스와 게르트 뮐러라는 공포의 투톱라인을 지원하는 강력한 포사격지원이었다. 또한 이는 푀르스터, 포그츠, 칼츠, 슈퇴리히로 이어지는 철벽을 이끄는 고감도 중앙 컴퓨터 베켄바워로 완벽히 다져진 사이보그 혹은 전쟁로봇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는 톱니바퀴의 시스팀을 보여주었다.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흐루베시로 대물림한 투톱라인은 81년의 우루과이에서의 골드컵에서 브라질에게 4대1로 처참히 무너지고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알제리에게 충격의 2대1패배를 당하기 전 까지는 A매치에서 연전연승하는 무적함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서독축구는 이미 84년의 유럽컵에서 플라티니가 이끄는 프랑스에게 우승을 내어주며 서서히 몰락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위대한 레전드들은 서서히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으며 그 서독 특유의 기계적 정밀성에 가까운 엄격한 틀들은 오히려 마라도나나 카레카로 대변되는 기술축구의 들쑤심에 여기저기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86년의 월드컵 결승은 이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서 결과는 2대3 분패였으나 경기내용은 아르헨에게 내내 레벨의 수준이 미달됨을 보여준 그림이었다. 그저 소위 ‘게르만 혼’을 경기 말미에 잠깐 보여주었다는 위안 외에는.......... 더욱이 유로 88에는 굴리트의 재능에 내내 시달리다 반 바스텐에게 통한의 쐐기골을 먹고 주저앉으면서 더 이상 서독축구가 ‘극강’은 아닌 ‘열강 중 하나’로 끌어내려진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90년 이탈리아에서의 우승은 과거의 영광이 마지막 타오름으로 승화된 결정체였으며 이후는 이제 식어버린 하얀재 속에 기억의 편린을 헤쳐보는 몸부림이 있었을 뿐........
그런데 이러한 서독축구의 몰락의 과정은 현대축구가 시스팀 전형과 토틀사커 그리고 개개인의 기술적 능력이 결합되는 축구 전술의 3차혁명기( 1차는 푸스카스와 콕시스가 이끄는 헝가리의 유명한 424전형과 마리오 자갈로와 펠레, 가린샤가 어우러진 초기 433전형 / 2차는 네덜란드의 리누스 미켈이 74년의 서독 월드컵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토틀사커)로서 아리고 사키로 대변되는 밀란식 352가 마라도나와 카레카가 이끄는 나폴리의 유연함과 치열하게 충돌하면서 생성되던 과정과 묘하게 일치한다. 이 과정은 또한 반 바스텐, 굴리트, 라이카르트의 오렌지 3총사(AC밀란)가 클린스만, 마테우스로 대변되는 인테르와 충돌하는 시기이기도 한 유럽리그 전체의 이합집산에서도 역시 대변혁기였다. 거두절미하고 서독축구는 이러한 변화의 전환점에서 여전히 과거의 성공방식의 매뉴얼을 답습하는 최대의 우를 범했고, 기대했던 리가의 신진들은 과거의 레전드 만큼 결코 성장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이 역시 필자의 추측이지만 아마도 ‘감독’ 차범근이 은퇴 직후 밤을 밝혀가며 탐구한 푸스발레러에서의 과정은 혹시 구닥다리 매뉴얼로서의 ‘서독’축구가 아닐까하는 의문의 실마리 인 것이다. 이미 실전에서의 승리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퇴색해버린 기본형이 차범근의 뇌리에 켜켜히 침잠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 기본형들은 과거 서독축구의 찬란한 레전드들 만이 또다시 재현할 수 있는 실현불가능한 ‘무공비급’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적인 중간결론은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그러한 푸스발레러에서의 기본형을 최근의 흐름에 맞게 적절히 변형하고 개정하려는 ‘감독’ 차범근의 노력부재가 그간의 차감독이 보여준 문제점의 근원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둘째는 십수년간의 차감독의 발언과 글들(물론 차감독의 칼럼들 중 상당수가 부인 오은희씨의 대필이었다는 지적도 무게감있게 존재하지만)에서 짙게 배어나오는 ‘독일축구에 대한 지나친 외경심’으로 미루어 그 푸스발레러의 기본형에 대한 맹신이 지나친 나머지 벌어진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 노트북의 수많은 매뉴얼과 자료가 결국은 기본형의 답습일 것이라는 연장선상에서 98년의 한국국대는 물론이고 최근의 FC수원 선수들이 실제로 그 기본형의 수행에 턱없이 부족한 능력이거나 아니면 능력이 없을 거라는 차감독의 단정아래 그동안 수많은 칼질이 단행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축구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패싱의 정확성과 창조성에서 누가 가장 뛰어났었나 하는 질문에 역시 축구매니아 개개인의 견해가 다를 수 있으나 필자는 요한 크루이프와 본 호프, 플라티니 그리고 마라도나를 꼽는다. 이들 중 패싱 그 자체의 순도로는 단연 서독의 본 호프다. 속칭 센티미터 단위로 패스를 조절할 수 있었다는......... 그러나 70년대의 서독축구는 결코 본 호프가 보여주는 섬세함과 정밀성을 수용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브라이트너같은 거친 투사형 미들필더를 더 선호했다. 혹시 차감독도 그랬던 건 아닌가? 김호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건져올린 수많은 재능들....... 한국의 본 호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김두현마저 차감독의 답답한 고정관념의 칼날을 결코 비껴가지 못했다는 건 나만의 억측인가?
3. 삼성? ‘돈성’? FC 수원 !
이것은 대단히 민감한 주제다. 그러나 필자는 원래 이리저리 말을 돌려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어떤 형태로든 이 부분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수원’이라는 팀 그 자체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며 오히려 K리그 전체가 직면한 엄연한 현실의 바로미터로서 작금의 차감독과 삼성 그리고 수원을 진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 멤버의 압도적 화려함과 구단 프런트의 상대적 선진성, 탄탄한 서포트조직, 경험과 이론이 겸비된 지도자라는 4박자를 고루 갖춘 FC수원은 결정적 길목을 넘지 못하고 올해의 목표와는 거리가 먼 결과를 산출하게 되었는가? 이에 반해 전북과 성남은 수원이 지니지 못한 어떤 어드밴티지가 올해 그들의 만족할 성과물로 연결되었는가?
(1) 어떤 에피소드: 삼성의 기업문화?
“ 저게 뭐여? 조것이 계약금 몇십억짜리 투수가 던지는 공이여? 군산상고 애들보다 느리구먼......... 한마디로 야글혀서 삼성 단장은 속에서 열불이 날 것이여........”
“ 나가 듣기로는 무쏘 자동차까지 줬담서?”
“그러게 말이여.... 허 참......”
십 몇 년전에 현역생활의 말미 무렵 우연히 고향친구들과 삼성 2군의 야구경기를 관전하던 김 성한이 내뱉은 말이다.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는 당시 믿었던 투수력이 기대를 밑돌아 번번이 우승을 놓치자 급기야 캘리포니아 대학리그에서 12연승을 구가했다던 재미교포 투수를 고액의 계약금과 편의제공으로 모셔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단 1승만을 거둔 채 곧바로 2군을 전전하다 어떻게 선수생활을 접었는지도 모르게 그 선수는 묻혀버리고 만다. 공교롭게도 김 성한이 고향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관중석 그 자리 바로 옆에서 역시 삼성 단장이 그 투수의 투구를 관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김성한의 지적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FC수원이 과거의 삼성라이온즈처럼 그저 외형의 계량치나 허명에 헛돈주는 헛똑똑이 삼성직원들의 한심한 병신짓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수원만이 어쩌면 그래도 이땅에서는 제법 제대로된 유소년 시스팀과 2군 그리고 구단다운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유일한 구단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중국리그를 전전하고 해설자로 변신한 차감독을 굳이 차기 감독으로 내정한 데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늘 그러했듯 새로운 리크루트와 인사과정에서 항상 외형의 계량적 수치와 간판에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지금도 별로 달라진 바 없다) 경도되는 연장선상의 결과물이라 진단하고 싶다. 그렇게 통찰력이 없는가? 내 사견으로는 조금이라도 축구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다면 김 호 감독이 일구어놓은 팀빌딩의 그랜드 디자인에 결코 차감독은 부합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렸을 텐데....... 김호 감독이 재배한 다양하고 빛나는 재능들을 제대로 여며 어떤 상황에서도 전술적 기본형 속에서도 유연성을 발휘하는 팀으로 만들어가는 능력을 지닌 감독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차감독의 푸스발레러적 구닥다리의 틀이 조형되고 대입되는 과정에서 탄탄한 토대는 현재 여기저기 균열이 목격되고 있다. 갉아먹혔다. 차감독의 전술은 간단하다. 피지컬의 우위와 단단함을 지닌 수비와 미들에 측면의 발빠른 윙어 그리고 투톱의 장신기둥의 포스트 플레이가 어우러지는 매우 도식적인 그림들......... 그러나 현대축구에서 심지어 K리그의 어떤 팀이든 수원이 그렇게 간단하게 득점하도록 허용할 팀은 없다. 현대축구는 흐르는 물이다. 김대의가 원톱하고 혹은 중앙미들자리에서 그러다 김동현이 측면으로 벌린 공간을 곽희주나 마토가 순간적인 투톱으로 뛰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작년 프리미어의 심심찮은 존테리의 득점을 보라. 그러나 백지훈과 이관우라는 섬세한 본호프가 가세한 지금에 조차 수원은 결코 전남과의 FA컵 결승에서 상선약수의 원리를 체현하지 못하는 답답한 루트로 일관했다. 공격수가 제몫을 다하지 못해서라는 건 감독이 할 수 있는 말은 분명아니다. 공격라인의 문제가 아닌 어떤 전술적 한계를 보았다는 건 나만의 시선이 아닌 상당수 그랑블루의 시선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니까........
(2) 계량주의로부터의 탈피/ ‘돈성’에서 수원으로
두 번 다시는 수원 프런트와 삼성그룹 출신의 구단 경영진들은 이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전의 글들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지나친 기계적 합리성과 계량화에 대한 맹신은 위험하다. 최근의 MBA과정에서조차 과거 계량적 경영관리로부터 감성경영, 인성경영의 심리학적, 사회학적 접근이 상당한 정도로 강조되고 있는 추세임을 명심해야 한다. 차범근씨를 감독으로 내정했던 배경이 진실로 수원이라는 팀이 처해있는 현실과 미래의 프로젝트를 정확히 진단하고 여기에 부합되는 능력과 전문성을 대조했던 그런 통찰력의 결과물이었나? 내가 보기엔 아니다. 그저 이력서와 신분조회의 결과 그래도 제일 학점좋고 토익점수 높은 미국대학출신을 뽑았는데 그가 삼성이 원하는 능력과 실적을 보여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리크루트는 기업의 존망을 결정한다. 하물며 축구구단의 감독선임은 더 말해 무엇하랴? 아무리 그랑블루 서포터들이 FC수원은 삼성이나 ‘돈성’이라는 레토릭이 상징하는 어두운 냉혹함과 연결짓지 말라는 항변을 거듭해도 엄연히 현재의 구단운영과 관리의 총체적 측면에서 ‘삼성’ 혹은 ‘돈성’이라는 존재를 제외시킬 수 없다는 건 명백한 현실이므로....... 서포터들의 입김이 무시못할 정책결정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때만 그랑블루의 항변은 적절하다. 그러나 현실은 내팀의 열정이라는 측면에선 그랑블루의 뜨거운 가슴이 평가받을 수는 있어도 그간 진행된 수원의 팀빌딩에서 그랑블루의 가슴은 무시되고 있다. 아닌가? 아니라면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흔히 수원을 ‘한국의 첼시’에 비유하기도 한다. 과연 상대적인 자본의 우위와 구단의 인프라, 심지어 선수영입과 유니폼 색깔마저 첼시의 그것과 FC수원은 닮아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첼시와 수원이 차이나는 하나 - 그것은 축구를 제대로 느끼고 호흡하고 열정하는 아브라모비치와 전술의 귀재 무링요가 첼시에는 있고 수원에는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축구를 아는 인간이 구단을 경영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논공행상의 과정에서 선임되는 구단주 혹은 이사는 정말 곤란하다. 우리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미 남패륜의 강성길인가 하는 미친X으로부터 여실히 목격했다. 기업경영의 부산물쯤으로 축구를 이해하는 점에서 한국의 K리그는 수많은 강성길들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그랑블루들이여! 다른 글들에서도 여러차례 지적했지만 그대들이 사실상 우리 K리그의 서포터들이 해야하는 역할모델의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저 같은 레플을 입고 서포팅하는데만 의미를 부여하고 실제로 수원이라는 팀이 가고 있는 행보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통찰에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4. 무엇을 할 것인가? : 진정한 FC수원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결론적으로 차감독의 역량은 이제 여실히 증명되었다고 본다. 물론 차감독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앞으로 얼마든지 한국축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임은 재론의 필요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감독의 선임과 그로인한 과정이 보여준 질곡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보다 강력한 서포팅은 어제 2대0의 안타까운 패배와 칼날같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랑블루의 함성 못지않게 구단의 총체적 메커니즘에 대한 보다 강력한 프레싱과 모니터링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모든 다른 팀들의 서포터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과 행동과 참여가 요구될 때다.
첫댓글 정말 포항팬으로써 이분의 글솜씨 존경스럽다는...
글솜씨 있는사람 너무 존경스럽움...
읽어보니 정말 글 솜씨가 독보이네요. 자신의 논거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자료도 준비하셨고 거기에 따른 주장도 매끄럽게 내포해 상대방에게 흡입력을 끌어들일 수 있어 좋네요. ^^
최고의 글입니다. 박수가 저절로 나네요
와~죽인다~ 아무리 요새 싸월이 망했다지만 이런분들이 존재하는 한 싸월 ㄷㄷㄷ
대박........글한번 진짜잘썻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