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생태적 회심
배가 아프면 점심때 무엇을 먹었는지 떠올린다. 사고나 재난 같은 큰 어려움을 겪으면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런 고통을 벌로 받는다고 생각하곤 한다. 빌라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부정적이다. 성격도 포악한 편이어서 예루살렘에 여러 번 군대를 보내 유다인들이 피를 많이 흘렸다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고하는 일도 그중 하나일 거다. 뭘 잘못 먹어서 배가 아픈지 되짚어보는 거처럼 사람들은 재난과 고통의 이유를 그들 죄의 결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 대신 지금 여기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렇게 될 거라고 하신다.
하느님은 언제나 용서하시며 우리에게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과 함께 형벌을 받았던 한 죄인이다.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1-42) 순전히 세속적인 태도로 제 마음대로 살다가 마지막 시간에 회개하고 고해성사 받고 성체 모시면 천당 가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들도 용서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거다. 하늘나라까지 훔친 그 도둑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은 기계가 아니라서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우리가 매일 매 순간 회개해야 하는 거처럼, 세상살이가 하느님 나라를 찾아가는 긴 영적 순례인 거처럼, 사람은 조금씩 점진적으로 바뀌어 가는 거다. 하느님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다.
하느님은 언제나 끝까지 용서하시고, 사람은 어쩌다 한두 번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자연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은 하느님도 어쩌실 수 없이 그 안에 새겨진 법칙대로 움직인다. 기계는 같은 입력값에 같은 결과물을 내주지만 고장 나면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러나 자연 안에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한 그대로 우리에게 되갚는다. 지금 우리는 과거 우리가 자연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 특히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이 그 고통을 더 받는다. 과학이 발전하고 여러 NGO와 좋은 사람들이 힘을 더 발휘해서 재앙 수준인 이 환경 변화가 선진국들이 누리는 풍요와 사치를 위한 자연 훼손으로 인한 결과라는 인과 관계가 밝혀지면, 선진국들은 천문학적인 배상을 하게 될 거다. 자연은 용서하지 않고 받은 그대로 되갚는다.
선하고 정의로운 하느님이 살아계시고 여전히 세상 안에서 일하시는데 왜 선하고 가난한 이들이 고통을 받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나도 모른다. 나도 하느님을 원망한다. 그러면서도 그걸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아픈 마음을 조금 전해 받는다. 하느님은 악인이 회개하기를 바라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 33,11)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다 망가뜨려 놓고 달이나 화성으로 이사 가서 생명을 이어 나갈 생각하지 말고 생태적으로 회심하고 회개해서 우리 공동의 집을 되살려 놓는 게 더 좋을 거다. 지난 코로나 때 잠깐 봤던 거처럼 자연의 생명력과 회복력은 참으로 놀랍고 강력하다. 우리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마음 같다. 우리가 씀씀이를 조금만 더 줄이고 귀찮음을 조금만 더 견디면 자연은 반드시 우리에게 훨씬 더 좋은 선물로 보답해 줄 거다.
예수님, 저의 생태적 회심과 회개가 자연 회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느님이 저희에게 주신 기회에 대한 응답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연을 자기 집처럼 자기 몸처럼 아끼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 모두에게 어머니 같은 마음을 주셔서 모든 피조물을 아끼고 보호하게 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