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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 산 원문보기 글쓴이: 파랑새
다.원래 300대 남짓 생산될 예정이었지만 최종적으로 484대로 증강되었다.
승세를 타고 있다해서 방심은 금물!
06월 06일 현충일은 여러 국가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는 현충일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국가들에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된 날이기 때문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은 독일군을 점차 내륙으로 몰아내며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노르망 디 상륙작전이 실행된 06월 06일에는 주요 국가의 수반들이 참석해 그 날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월 13일, 비에흐 보까즈( Villers Bocage ) 읍내에서 미하일 비트만( Michael Wittmann ) SS 중위가 이끄는 무장 ( Waffen SS ) 제101 독립 중전차대대 2중대의 공격을 받아 전차와 장갑차 합계 28대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어 애써 점령한 비에흐 보까즈 읍내를 포기하고 퇴각해야 했다.
◀ 강철의 사신 "미하일 비트만" SS 중위 동부전선에서 숱한 실전 경험을 통해 110대 이상의 소련 전차와 자주포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뒀고 노르망디로 이동해 비에흐 보까즈에서의 전과를 통해 06월 25일, 백엽검 기사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그야말로 전차병들의 우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며 제2차 세계대전 독일 전차병들의 격파 스코어 4위에 랭크되었다. 현대전에서 미하일 비트만 SS 중위가 수립한 전차 격파 138대, 대전차포/기타 차량 격파 142대의 기록은 쉽게 깨지기 어려울 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을 통털어 이와 같은 기록을 수립한 연합군이나 소련군 전차병은 전무하다. 연합군은 이후 점차적으로 증원된 제102 SS 독립 중전차대대와 제503 독립 중전차대대 등의 타이거 대대와 기타 기갑사단들로 인해 적지않은 전차 손실을 입어야 했고 종전 이후 전차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우리라고 해서 이와 같은 경우를 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50년 06월 25일, 새벽 04시 30분! 천 일대에서 선전한 것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전 전선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전차 전력 확보에 만전을 기했다. 희 전 대통령 함 으로써 북한에 대처하고 있다. 로써 보급의 용이함과 더불어 북한군의 T-54/55 전차대에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있었다. 로 재침공을 시도하지 못했다. 200이 탄생했고 1987년에는 자랑스러운 국산전차 제1호 K-1이 데뷔했다. 할 만한 발전이었다. 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했지만 그가 다져놓은 기반으로 인해 오늘날 한반도의 지상은 평온하다 할 수 있다. 더욱 공고히 다져질 것이다.
게 갖추고 있고 어지간한 국가의 주력전차보다 낮은 전고와 높은 지상고로 인해 매복 전투가 많은 한반도의 지형에 최 적화 되어 있다. 하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1 보병사단 "전진부대", 제9 보병사단 "백마부대" 등에 배치되었으며 최근에는 동부전선의 제102 기갑여단에도 배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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