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원전신첩 : 국보 제135호.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 전형필(全鎣弼)이 일본 오사카(大阪)의 고미술상에서 구입. 오세창(吳世昌)이 표제와 발문을 썼다.
화첩에는 「유곽쟁웅(遊廓爭雄)」을 포함하여 30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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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원님의 말에 동헌 뜰에 꿇어앉은 박참봉이 왕방울 눈을 뜨고
“소인은 죄지은 게 없습니다요” 하자
원님은 다짜고짜
“여봐라~
저놈에게 곤장 열대를 안기고 옥에 처넣으렷다” 고함쳤다.
늙은 박참봉이 찢어진 엉덩이를 안고 옥 속에 갇힌 그날 밤~
원님의 사촌동생인 집사가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박참봉네 집으로 스며들었다.
초상집처럼 가라앉은 집에 원님의 집사가 찾아오자 박참봉의 아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그에게 매달렸다.
그날 밤 박참봉은 풀려났고, 집사는 원님 숙소로 달려가 소매 속에서 한마지기 논문서를 내놓았다.
이것이 원님의 수탈 방식이니 해주 백성들은 죽을 지경이다.
고혈을 짜는 데는 있는 집 없는 집을 가리지 않았다.
논밭 한뙈기 없는 집은 부역에 나가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고는 일전 한닢 삯도 못 받았다.
원님이 그런 돈까지 가로채는 것이다.
산속의 중에게도 세금을 매겨 시주로 들어온 재물을 빼앗아 제 주머니를 채웠다.
어떤 사람들은 원님에게 하도 시달려 산속으로 들어가 움막을 짓고 살았다.
원님은 심지어 육방관속들도 트집을 잡아 목을 자르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재물을 빼앗았다.
마침내 말발깨나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원님을 성토하는 데는 선비도, 스님도, 심지어 원님 밑에서 일하는 이방과 예방도 한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병방까지 참여시켜 ‘짚둥우리’(학정을 한 고을 수령을 짚둥우리에 태워 지경 밖으로 쫓아내는 것)를 태우기로 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수청 기생을 껴안고 자는 원님을 해주 고을 사람들이 덮쳐 포박, 짚둥우리 속에 가두었다.
이튿날 아침~
해주 경계인 박고개에는 원님 짚둥우리 태우기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을 백성들이 원님을 포박하는 것은 일종의 민란이지만 짚둥우리까지 하는 것은 육방관속도 묵인하는 것이라 나라에서도 어쩔 수 없이 해임을 하고 새 원님을 내려 보내는 것이다.
거의 점심 나절이 되어서야 머리만 내놓고 짚둥우리에 쌓인 원님이 지게 위에 실려 나타나자 고개를 덮은 고을 백성들의 웃음소리가 산천에 울려 퍼지고 온갖 야유와 욕설이 퍼부어졌다.
고개 위에서 해주 밖으로 원님의 짚둥우리를 굴려 버렸다.
백성들의 박수 소리에 떠밀려 데굴데굴 굴러 내린 짚둥우리가 고개 아래 도랑에 처박혔다.
그때 얼굴을 못 들어야 할 원님이 우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저 화상이 미쳤구먼...”
선비와 스님과 백성들이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물을 끼얹은 듯 일순 조용해지자 웃음을 멈춘 원님의 대갈일성!
“이 어리석은 백성들아~
5,000냥을 바치고 원님자리에 앉게 된 나는 일만냥을 우려내 목표를 달성했으니 남은 1년은 선정을 베풀려고 했는데 이렇게 쫓겨나는구나.
요즘 원님 자리 값이 올라 일만냥은 줘야 살 터인즉 새 원님한테 새로 호되게 당해 봐라.”
백성들이 웅성거렸다.
틀린 말이 아니다.
고을 원로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고 나서 부랴부랴 가마를 가지고 와 원님을 다시 태워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