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김홍희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연말 우체국의 넓은 방. 회색 자루들이 입을 벌린 채 사내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다.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편지 뭉치를 들더니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자루에 기계처럼 정확히 편지를 던져 넣고 있었다. 아가리를 벌린 채 편지를 날름 받아 먹는 자루들의 위치는 보지도 않는다. 눈은 그저 편지에만 고정되어 있고 손목의 움직임은 짧지만 절도가 날카롭다. 던지는 사내의 편지는 바늘이 꽂히듯 정확히 자기 갈 곳을 향해 정해진 자루 속으로 날아드는 것이었다.
“요새는 그런 거 보기 쉽지 않습니다. 혹시 우편집중국에 가면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전화로 문의한 부산우체국 직원의 말이다.
우편물이 대량으로 수거되어 1차로 들어온다는 시간이 오후 네 시에서 다섯 시. 여기저기 문의를 하다 시간을 다 빼앗겼다. 그래도 서두르면 우편물 대량 수거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바쁘게 차를 몰아 김해 대저의 부산우편집중국에 도착한 시간이 세 시 반.
“잠시 견학을 해보시면 알겠지만, 요즘은 모두 기계로 합니다. 여기에만 하루 100만 통에서 150만 통이나 들어오는 편지를 일일이 손으로 분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손으로 분류하는 것은 기계가 읽어내지 못하는 것들뿐입니다.”
전국의 22개 우편집중국은 어느새 전산화되고 기계화되었다. 구구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도, 절박한 삶의 위급함도 맹렬히 돌아가는 기계가 분류할 뿐이다. 사람의 손으로 넘겨지는 것은 제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길 잃은 편지들뿐.
연말의 우편집중국을 촬영하러 들어온 나 역시 길 잃은 추억의 편지 한 통에 불과했다. 우체국 직원은 나보다더 아쉬워하며 말했다.
“손으로 편지를 분류하는 추억의 사진을 못 찍어 어쩌지요?”
--김홍희 시집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