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출발점은 '결혼'이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그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기까지 가족은 매 순간 운명을 함께 했던 비교불가의 유기체였다.
갓난아이가 젖먹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듯 가족도 끊임 없이 성장하고 변해야 했다.
변하지 않으면 퇴보였고 분열이었다.
살아보니 그랬다.
또한 자식을 키우면서 겪어보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절대적이어야만 했다.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러나 그 사랑도 무제한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무제한일 경우엔 여러가지 문제들이 가족이란 공동체에 심각한 파열음을 냈다.
자식이 성인이 될수록 부모의 사랑은 제한적으로 기능하고 작동해야 좋았다.
자녀들이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서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돕는 데까지, 딱 거기까지 국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애들이 소싯적에는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여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게 맞았다.
사춘기가 되면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고, 성인이 되면 '정을 끊는 것'이 부모의 진정한 사랑일 터였다.
적어도 우리 부부의 생각은 그랬다.
"정을 끊으라고?"
너무 비장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은 진짜로 그렇게 산다.
그래서 걔네들 세계에선 본능은 존재할망정 갈등과 배신, 존비속 살해와 사기가 없다.
모두가 자연의 이치 안에서 자연의 법도를 따라 살아갈 뿐이다.
인간만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괴짜 중의 괴짜다.
또한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거스르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그랬다.
만지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 키웠던 자녀들도 그들이 성장하면 그에 따라 부모의 그릇도 커져야 했다.
부모가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작은 껍데가 속에 갇혀 있으면 부모자식 간의 갈등과 불화는 피할 길이 없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내 자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장성한 남녀가 사랑하고 결혼하여 애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애들이 사춘기에 돌입할 즈음 비로소 깨달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는 길은 없었다.
기도와 수행 그리고 간절한 자기 성찰이 선행되지 않으면 부모역할도 무지 힘든 영역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부끄러웠다.
각성하고 보니, 내가 자녀의 '부모될 자격'을 먼저 얻어야 되는 것이었다.
그게 핵심이었다.
부부가 서로 사랑했고, 그 사랑의 결과로 자식을 얻는 건 합당하고 축하할 일이었다.
하지만 천하보다 더 소중한 그 녀석들을 키우다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랬다.
제대로 된 부모노릇, 올바른 부모역할이 무엇이고 어떻게 가이드할 것인 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했던 거였다.
어떻게 가족이란 이름의 '운명 공동체'를 향기롭고 반듯하게 경작할 것인지, 그리고 그런 경작을 위해 부모는 어떤 자격을 겸비해야 하는 것인 지에 대해 깊게 고민했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오랜 세월 사유했고 부부가 함께 토론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민주적이며 자유로운 '소,공,추'(소통,공감,추억)란 테마였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번 돈으로 '경험과 추억'을 축적하는 데 쓰자고 했다.
일정 부분은 주변을 위해 '나누고 섬기'는 데 할애하는 것도 잊지 말자고 했다.
이것이 돈의 효용가치 중 으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의 기준과 부합하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우리만의 준칙이 세웠졌고 그대로 준용하면 될 일이었다.
또 하나, 내 마음 속의 대리석에 새겨넣은 다짐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가족들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희를 위해 사느라 내 삶을 희생했노라"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인생, 어디서 보상받느냐"고.
이 따위의 파렴치하고 개념없는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보다 더 바보같은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평소부터 우리 가족만의 원칙을 가지고 살자 했다.
애들 키울 땐 최선을 다해 헌신하지만, 애들이 성인이 된 뒤에는 매정하리만치 돌아서서 우리의 삶을 살자고 했다.
오롯이 부부의 인생과 추억을 위해.
그러나 부부도 더 늙으면 각자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 반드시 존재할 터였다.
궁극적으로는 부부 간에도 서로 의지하지 말고 혼자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노후에 부부가 서로에게 짐이되면 그건 곧 불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영혼은 의지하되 인생길은 혼자서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맞았다.
적어도 내 생각과 기준엔 그랬다.
또한 이것이 가족의 시발과 종착의 순리이자 삶의 핵심이라 믿었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한 심신, 안정적인 재정, 신뢰하며 공감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도 필요했다.
젊어서부터 이 부분을 잘 예비하고 다듬어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애들을 반듯하고 강하게 키우려 노력했다.
자녀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분야로 진출해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올 가을과 내년 봄에 각각 결혼도 앞두고 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8월 16일은 금요일이었다.
내년 봄에 결혼하는 아들 커플이 산본에 왔었다.
쉬는 날이라 인사차 방문한 줄 알았다.
나는 근무 중이었고, 엄마와 함께 산을 넘어가 '추억의 고깃집'에서 세 명이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단다.
좋은 일이었다.
저녁에 퇴근해 집에서 젊은 커플을 만났다.
식사하며 소맥도 한 잔씩 나눴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청춘들이 송파구로 돌아가기 전에 가져온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최신, 최고급 '노트북'이었다.
그리고 작은 봉투를 하나 건넸다.
"두 분이 동갑이자 금년에 환갑이신데, 아버지께는 '노트북'을 어머니껜 '롯데백화점 상품권'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상품권의 금액도 매우 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물이었다.
뭉클했다.
애들이 학생일 때엔 내가 '노트북'을 비롯해 각종 선물을 건네곤했는데 이제는 자식에게서 받는 나이가 되었다.
꼭 뭔가를 주고 받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부모를 생각하며 마음을 써주었다는 점에 잔잔한 감흥이 일었다.
고마웠다.
지금까지 예쁘게 연애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 행복하게 둘만의 스토리텔링을 싸목싸목 엮어가길 소망한다.
내년 봄에 결혼하면 아들 커플도 자식을 낳겠지만,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으로 멋진 스윗홈을 꾸려갈 것이라 믿는다.
오래 전부터 나도 그리 기도하고 있었다.
부모의 자격.
청춘들은 자기들만의 새로운 준칙을 만들어 갈 것이며 이타, 헌신, 열정의 삶을 엮어가리라 생각한다.
고성능 최신 노트북은 지금 '빛의 속도'로 작동하고 있다.
매우 놀랍다.
사용할 때마다 잔잔한 감흥이 밀려든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아침이다.
이제 오늘의 '큐티 노트'를 덮는다.
오늘도 최고의 하루가 되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와~ 감동이네요.
정말 멋진 가족입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