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일본에서 광복절을 맞이하였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는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경축할 날이지만
일본은 광기의 전쟁을 수행하다 마침내 패전을 선언한 날이다.
8월 15일의 일본의 공식 명칭은 종전기념일이다.
이 날은 일본의 천황이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전몰자를 위한 추도식도 거행하면서
천황이 직접 국가에서 일으킨 전쟁으로 사망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의 인사도 하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염원하는 말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중국이나 주변국에 대해서도,
그리고 징병으로 끌려가 사망한 한국인에 대해서도 한 마디 사과의 말이 없다.
자세히 들어보면 전쟁 자체의 비극에 대해서는 몸서리를 치면서도
자신들이 바로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것에 대한 반성의 말이 없다.
새삼스럽게 일본의 역사 인식이 정말 문제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은 교토지역의 민단에서 거행하는 광복절행사에 참가하였다.
일주일 전에 우연히 민단 지부에 들렀을 때 행사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국내에 있을 때는 광복절 행사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데
이곳 재일동포들은 광복절 행사를 어떻게 치를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참석하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등의 국민의례로부터 시작하였는데
일본에 와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어서 이쪽 지역 영사가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를 대독하였는데
솔직히 너무 길었고 번드레한 말잔치만 난무하여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계속해서 교토부 지사와 교토시 시장의 광복절 축하 인사말을 위시해서
여러 한일교류단체에 소속된 일본인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광복절에 일본인들의 축하인사를 받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그 내용은 한일우호와 민단의 발전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내용이었지만
그 말들이 그들의 실제 행동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씁쓸하였다.
마지막으로 민단에서 지방선거참여권을 쟁취하기 위한 결의문 낭독이 있었다.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동포들은 선거권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고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배타적이고 그래서 많은 차별이 있는 이곳에서
꿋꿋하게 국적을 바꾸지 않고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기개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무려 1시간 20분에 가까운 공식 행사가 끝나고
10분 정도의 휴식 뒤에 흥겨운 광복절 축하공연이 계속되었다.
풍물놀이나 한국 고전무용 민요 등의 공연이 계속 이어졌는데
한국에서 온 팀이 아니라 이곳 교토 교포들이 주축이 된 팀들이었다.
대부분 재일교토 3세대로서 한국어는 서툴지만 그래도 문화를 통해서
민족적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 아마추어들이어서 공연 자체가 조금 엉성한 면도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그런 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중간에 한국에서 인간문화재 28호 살풀이춤 전수자 한 분이 오셔서
살풀이춤을 보여주었는데 과연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멋진 무대였다.
우리 전통이 담긴 공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중간에 확 무대가 바뀌면서
교포 3세인 젊은 아가씨들이 나와서 현대 무용도 보여주고
젊은 남녀 가수 지망생이 나와서 댄서들에 둘러싸여 섹시한 춤을 추면서
최근에 유행하는 한국 노래도 선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흥겨운 즉석반주로 이어지는 민요메들리에
관객들도 무대에 올라 같이 어우러지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쑥스러워 무대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객석에서 흥겹게 춤을 추는 것을 보니
역시 한국 사람들은 신명이 있는 민족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1시에 시작했으니 대략 3시면 모든 행사가 끝날 줄 알았는데
시계를 보니 무려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한국 사람들.^^ 예상밖의 기나긴 공연에도 마음은 흐뭇하였다.
누구나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곳 일본에 와서 지내다보니 국가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식민지 시대에 타의반 자의반으로 일본에 와서 3세대 가까이 지나는 동안
차별의 설움 속에서도 꿋꿋이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재일동포분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지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1. 교토회관 로비에서 인사를 나누며 식장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재일교포들
2.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교포 3세 도우미들
3.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4. 태극기 옆에 붙어 있는 현수막의 내용들
5. 엄청나게 긴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고 있는 영사
6. 일본측 인사들의 광복절 축하와 한일우호를 기원하는 인사말이 이어지고
7. 마지막으로 한복을 입은 젊은 여인을 중심으로 참정권 조기 획득을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8. 기나긴 1부 행사가 끝나고 그보다 더 긴 2부 행사가 시작되는데...
9. 재일동포 3세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무용단의 공연이 첫 테이프를 끊고
10. 풍물놀이 공연이 이어지는데 조금 어슬픈 감은 있지만
11. 백발의 노인과 중년, 젊은이가 함께 어우러진 그들의 진지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12. 교포 주부들이 중심이 된 합창단에서 우리의 가곡과 민요를 부른다
13. 이어서 한국 전통 무용이 나오고
14. 광복절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인이 얼후로써 도라지타령과 아리랑을 연주한다
15. 사회를 보는 교포 3세, 한국발음이 조금 서투르지만 매끄럽게 사회를 잘 본다
16. 이날의 클라이막스인 인간문화재이자 숙대교수인 정재만씨의 살풀이춤 공연
17. 과연 전문가라서 무대를 압도하는 포스가 느껴졌다
18. 이어지는 고전무용 부채춤 공연
19. 그리고 젊은 교포3세의 소고 공연
20. 예상을 깨고 나타난 교포3세 가수와 백댄서들의 발랄한 공연
21. 그리고 젊은 남자 가수의 빠른 노래에 맞추어 격렬한 춤을 추는 백댄서들
22. 민요메들리와 아울러 관객과 어우러지는 무대
23. 무대에 오르지 못한 관객들도 객석에서 다같이 신명에 겨운 춤을 추다
24. 마지막 인사와 함께 무려 2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첫댓글 서울로 휴가 나오시기전 마지막 포스팅아주 새롭고 유쾌한 경험 하셨네용저도 잘 보았습니다아
살풀이의 대가 정재만선생님의 춤을 보셨군요. 너른돌님이 살풀이 하실일이 있으셨다면 다 풀렸을겝니다. 아주 귀한 경험을 하셨네요.
저도 잘 보았습니당
이 무렵에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면 군국주의가 아직도 살아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있습니다. 독일과 달리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민족. 오직 전쟁의 피해만 있고 가해는 없는 나라.
doctor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독일 정치인들이 나찌 전범들 묘소에 가서 참배라도 하는 날엔 정치 생명 끝이지요.
너른돌님, 덕분에 일본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행사 처음으로 접해보았습니다.
마음이 짠합니다.
어제 한국으로 돌아왔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보는 일본 신문에 쓰여진 종전기념일에 대한 특집기사, 독자투고 등을 보니 정말 자기들 반성은 거의 없고 미국의 전범재판에 대한 불만, 심지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글까지 있더군요. 그 신문이 우익신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분노와 함께 우려가 일어나더군요.
너른돌님 우리나라에 와 계시네요.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는 없거늘...일본 본받을 거도 많지만, 기본적인 것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정재만 감독님이 보이니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