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두 가지 지혜를 갖고 계신다. 근본지와 후득지다. 근본지는 부처의 세계에서 쓰고 후득지는 중생을 교화하는데 쓴다.
하늘이 근본지라면 태양과 달 별이 인식의 세계다. 태양과 달 별들은 같은 하늘 속에 있지만 범부에게는 함께 보이지 않는다. 이 셋을 같이 보려면 지구를 벗어나야 한다.
그처럼 근본지와 후득지 그리고 중생의 의식세계를 알려면 중생세계의 지식을 완전히 버려야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범부로서는 단연코 근본지나 후득지의 지혜를 알거나 쓸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범부를 지탱하는 그 지식을 버릴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해 부처님은 6바라밀을 설하셨다. 하지만 범부는 이 6바라밀을 닦기 위해 먼저 5문수행으로 복을 지어야 한다.
사실 범부는 보시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보시를 잘못하면 안 한 것보다 더 못하다. 생돈 들여 보시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큰일 날 수가 있다. 그래서 6바라밀은 10주에서 닦는 수행이다고 했다.
불쌍하다고 길에서 주워 키운 아이가 살인을 저질렀다. 누구 책임인가. 주워 키운 자가 책임 져야 하는 것처럼 범부가 하는 그 어떤 동정도 보시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보시도 그런데 그 뒤의 5바라밀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그러므로 범부는 원천적으로 근본지를 일으킬 수 없다. 일으킬 수 있다는 자는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식으로는 절대로 지혜를 일으킬 수 없다. 물을 아무리 비벼도 불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지식을 쥐어짠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식을 치울 때 거기에 지혜가 나타난다.
지혜는 자신을 살게 만들고 지식은 자신을 죽게 만든다. 죽을 때가 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평생 익힌 지식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그때서야 뼈저리게 느낀다. 그게 지식의 한계다.
범부는 계속해서 지식의 업장을 포갠다. 그럴수록 지혜는 더 깊이 묻힌다. 대신 아만은 더 높이 올라간다.
그 아만은 물개목을 죄는 나일론 끈과도 같아 스스로는 절대로 못 벗는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내면의 복이 있어야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대중처소에서 듣는 소리가 있다. 세속에서 배운 잉크물을 빼려고 치문을 배우고 세속의 기준을 없애기 위해 장판때를 묻힌다고 했다. 그런 것들이 없어져야 자기 말이 아닌 부처님말씀이 나온다.
부처님말씀을 설하려면 적어도 방석 세 개 정도는 닳아 없앨 정도로 참회의 절을 하고 3년 정도는 자기정화의 기도를 해야 한다. 그 다음 3년 정도는 입을 닫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러고서 경율론 3분의 1인 700권 정도는 봐야 불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 분들에게 불교를 배워야 내면에 스며든다.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불교를 배우면 학문으로 지식이 된다.
지식이 최고다 하는 범부는 평생 자신을 살리려고 배운 지식 때문에 죽는다. 그걸 심의식을 쓰면 죽는다고 했다. 마약이 사람을 끌어당기듯이 그 지식이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축사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 가축들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다 도축된다. 지금 주위에서 자칭 똑똑하다는 사람들 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어느 날 자신에 의해 도축된다.
남을 죽이면 살인이다. 자신을 죽이면 더 큰 살인이다. 자신을 구하지 않고 죽음에 맡기는 것은 지연적 살인이다. 이 말이 섬뜩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그는 정통 불교와는 인연이 없다.
범부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죽음의 세계에 자신을 던져 넣고 있다. 똑똑하다면서 자신도 하나 제대로 건수하지 못하고 끝내 죽여 버린다. 그런데 남인들 왜 안 죽이겠는가.
그래서 살상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친다. 땅은 예나 지금이나 그 파이는 똑 같은데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가면서 그 땅을 차지하려고 참혹한 전쟁을 쳐댄다. 그게 지식이 하는 짓이다.
바보가 아무리 똑똑해도 바보다. 지식을 쓰는 범부는 아무리 똑똑해도 범부다. 그러므로 똑똑하다고 하지 말라. 똑똑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나는 바보다는 것을 선전하는 것이다.
참선하면 지혜가 터진다고?! 천 년 만 년을 해 봐라. 지혜가 터지는가. 부처는 6년 만에 깨달음을 얻었잖은가? 천만의 말씀! 석가모니부처는 이 땅에 보신부처의 화신으로 오셨다.
그래서 8상성도에 깨달음의 대목이 없다. 부처님오신날 의미도 모르는가. 그분은 우리를 구제 하시려고 부처의 신분으로 오셨다. 그러니 참선해서 부처된다는 소리는 제발 좀 걷어치워라.
참선은 단순히 복을 짓는 수단이다. 거기에 깨달음의 의미를 부각시킨 것은 중국의 조사들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범부가 참선해서는 깨달음을 이룰 수는 없다. 그게 부처님 말씀이다.
지식을 쓰면 죽는다고 기신론에서 말했지만 범부가 지식을 안 쓰고 어떻게 살 수가 있나. 지식이 없으면 손발이 고생하는 거 아닌가. 그럼 동물처럼 본능으로 살란 말인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지식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지식을 가장 값어치 있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지식으로 지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식이 최고다 라고 한다면 금생에도 죽고 내생에도 죽는다. 반대로 그 피같은 지식으로 지식을 없애는 도구로 쓴다면 금생에만 죽고 내생에는 죽지 않는다.
동물은 지식 가진 인간에 의해 죽는다. 지식의 인간은 죄업에 의해 죽는다. 동물이 지식이 없어 죽듯 인간도 지혜를 모르면 죽게 되어 있다. 살려면 선생이 아닌 스승에 의존해야 한다.
무당은 보살이 아니다. 박수도 법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생은 스승이 아니다. 선생은 공공 장소에서 학생 모두에게 정보를 주지만 스승은 은밀하게 선택된 제자에게만 가르침을 전수한다.
선생은 학생을 맡겨진 시간 안에서만 책임진다. 스승은 끝까지 책임진다. 선생은 기억을 다그치지만 스승은 그 기억을 제거한다. 그만큼 선생과 스승의 역할이 확연하게 다르다.
죄 많은 여자는 꼭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 결과는 얻어터진다. 어리석은 인간은 꼭 지식인을 최고라 받든다. 결과는 허망이다. 그렇게 범부는 언제나 믿어선 안 되는 것에만 기댄다.
배고픈 사람은 아무 것이나 찾아 먹는다. 배부른 사람은 몸에 좋은 것만 골라 먹는다. 복 없는 사람은 아무 불교나 받아들인다. 복 있는 사람은 불교의 정수만 받아들인다. 그러니 복을 지어라.
복을 지어야 스승을 만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칭 똑똑하다는 선생을 만난다. 선생에게서는 귀가 열리고 스승에게서는 가슴이 열린다. 복덕에 따라 불교를 받아들이는 차원이 그렇게 다르다.
지식을 배우는 데는 돈이 들고 지혜를 일으키는 데는 복이 든다. 복 없이는 천하없어도 지혜의 말씀이 와 닿지 않는다. 지식 그 너머에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려면 복부터 지어라.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식으로 불교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이런 기회에 입을 닫고 복을 짓는 수행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게 진정 자신을 살리고 불교를 살리는 일이다.
본능 위에 지식이 있다. 그 지식 위에 지혜가 있다. 지혜없이 죽는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부처님이 그 지혜를 열어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원대한 원력으로 오셨다.
그런 원대한 원력은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올바른 지식이라면 그 위대한 스승에게 깊이 무릎을 꿇고 그분의 가없는 자비를 찬탄해야 한다. 그러면 그분이 구세주가 된다.
그렇게 부처님이 위대한 스승이면서 동시에 자비로운 구세주로 보일 때라야 비로소 불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년 365일이 부처님오신날이라 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
ㅡ終ㅡ
출처:대승기신론 해동소 전문도량 원효센터 1부법회 중 공파스님 법문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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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지식이 최고다 할 때 대승기신론전문가는 말한다. 인간에게 지식은 가장 위험한 것이다고 한다. 그런 것인가.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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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
들깨를 짜면 들기름이 나오고 참깨를 짜면 참기름이 나오는 건 정한 이치.
들깨로 아무리 참기름을 만들려해도 안되듯이 지식으로는 지혜를 낼수 없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지식을 가르치면 지식이 나와야하는데 자꾸 지혜를 들먹이니 뭔가 안 맞는 거는 분명합니다.
수학을 배우려면 수학학원에 가고 영어를 배우려면 영어학원에 가야하듯이
지식을 배우려면 학교로 가고 지혜를 배우려면 사찰로 가야하는 겁니다.
지식의 연장선상에서 지식이 심화되면 지혜가 발현 되는줄 알았습니다.
아예 근본출처가 다른 것이군요.
놀랍게도 _()_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연등행렬의 최전선에 서는 기이한 시대.
한식 전문가가 제똑똑하다고 다니면서 양식의 우수성을 설한다면
누가 그 사람 말을 믿고 듣겠는가.
다 자기가 다진 분야가 다르듯이
지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식의 세계에서 살아야지 전혀 딴판인 지혜의 세계를 지식으로 해결하려니
전혀 이치에 맞지를 않지요. 다른데는 몰라도 불교에는 좀 겸손해야 할 거 같습니다.
세속적인 지위 만으로 함부로 법문을 하면 안됩니다. 출세간의 영역은 그 분야의 전문가만이 설 수 있는 법석.
태양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빛뿐만 아니라 세상을 비추는 능력으로 인해 가치가 인정되는 것.
선지식의 눈동자에 한 번이라도 자신을 비춰본 사람이라면 공감하실 듯.
들기름 짜고서 완전히 기름틀을 씻지 않고 참기름을 짜면 두 기름들이 섞여서 산폐되어 버린다.
그처럼 지식을 완전히 걷어낸 자리에 지혜가 있다. 두개가 섞이면 그 기능이 충돌되어 사람이 돌아버린다.
그것을 공파스님이 주행하는 차에 후진기어를 넣는것과 같다고 했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신 거 같다.
영어권에 가면 거기서 영어만 쓰야지 한국말을 섞어쓰면 어떻게 되나. 미쳤다 하겠지.
지혜는 10주보살부터 나오기 시작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10주에서 집착을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충고 정도로는 결코 변하지 않고 행복한 돼지에게 불행한 소크라테스의 우월성을 설명한들 설득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문을 보고 정말 감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래서 화엄경에 수행자는 반드시 선지식이 필요하다.고 하셨군요.
참회의 땀방울로 방석 세 개 닳아 없애고 3년 자기정화의 기도를 하며 3년 묵언 수행을 하신 분.
그리고 경율론 700권을 기어이 보신 분을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대사는 혈맥론에서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善知識을 찾아서 生死의 근본을 밝혀내어야 한다 고 하셨고.
석가모니부처는 이 땅에 보신부처의 화신으로 오셨다.
그래서 8상성도에 깨달음의 대목이 없다. 부처님오신날 의미도 모르는가. 그분은 우리를 구제 하시려고 부처의 신분으로 오셨다. 그러니 참선해서 부처된다는 소리는 제발 좀 걷어치워라.
이런 법문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자신에게 너 진짜 잘 버텼다 여지껏 고생했어 라고 쓰담쓰담.
이래서 달마대사는 혈맥론에서 만약 급히 스승을 찾지 않는다면, 헛되이 일생을 보낼 것이다 라고 하셨구나.
邪道가 있는 세상은 버려야 하지만 이 세상을 내던질 수가 없으니 그들을 피해 師道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부처님이 위대한 스승이면서 동시에 자비로운 구세주임을 연기경전과 실상경전에 의거해 ㅡ心開二門으로 확실히 뚫어버리게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오신지 2570년이 지나도 아직 부처님전에 무릎꿇을 수 있음에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_()_
감사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또 새롭게 맞이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감사드립니다_()_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감사드립니다_()_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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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
고맙습니다 ~_()_
나무석가모니불_()_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