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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 공식 초청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지 4일째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아침 6시에 호찌민 정토회원인 이혜진 님이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해 숙소에 왔습니다. 공양물 소개가 적혀 있는 정성스러운 손 편지도 함께 건네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히 공양을 마치고 7시 30분에 숙소에서 출발해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 제2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불교승가위원회는 1971년 11월 7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위원회는 북부와 남부 지방의 행정 업무를 각각 관리하는 두 개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북부 지방은 29개 섬, 남부 지방은 34개 섬을 담당합니다.
지난 4일 동안, 스님은 호찌민 근교에 있는 절 아홉 곳을 방문했으며, 이를 기념하여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의 제2사무실에서 스님들과 마지막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여러 곳을 방문해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정은 베트남 불교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며, 불교 신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크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약간의 부담을 느꼈습니다. (웃음) 특히, 회장 스님께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국은계상사에서는 베트남 불교의 발전을 목격할 수 있었고, 불교대학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1,500여 명의 젊은 승려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빈쯩(Binh Duong)성의 틱후에통(Thich Hue Thong) 스님께서 공단 내에 건립한 새 절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모습도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이번 일정을 위해 노력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틱후에응 스님의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법륜 스님과 정토회 방문단을 환영합니다. 이번 일정은 스님의 한국 및 전세계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구성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열린 스님의 법회를 참석하고 스님의 법문이 베트남 재가자들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스님의 지침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베트남 불자는 30만 명 이상입니다. 한국에 있는 베트남 불자들이 한국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스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현재 베트남 내에는 빈곤한 불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가난한 지역의 불자들을 위한 법회도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자들의 믿음이 유달리 강한 지역도 있습니다. 그곳에도 법회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방문에서는 베트남 전역을 탐방하며 모든 지역 신도들의 마음을 이해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법륜스님의 제안대로 필리핀 및 다른 국가에서의 봉사 및 포교 활동도 고려 중입니다.”
스님이 틱후에응 스님의 말에 동의하며 답했습니다.
"네, 비록 우리가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까지는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동남아시아에서의 포교 활동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불교의 활발한 움직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불교와 정토회가 함께 협력해서 동남아시아의 어려움을 겪는 불자들을 지원해 보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남부 메콩강 델타 지역과 베트남-라오스 국경에 사는 소수 민족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 없이는 포교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 중앙 승가회가 정부의 허가를 확보해 준다면, 저는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함께 활동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부에 법륜스님의 포교 활동을 신청했으니, 별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6월 방문 일정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베트남 스님들은 다음 방문에는 캄보디아와의 국경 지대에 있는 사원, 크메르족 불교대학을 방문해 보고 학교 설립 가능성도 살펴봐 주시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저희들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부처라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듯이 돕고자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절을 건축하는 데 재정을 지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크메르 절에 재정을 지원한 것은, 절이 노동자들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메콩강 유역이나 중부 소수민족들을 지원하는 일이라면 베트남 승가위원회와 함께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과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일에는, 정부의 허락만 있으면 언제든지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 법명은 법륜(法輪)입니다. 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 즉 불법을 전파하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웃음) 젊은 스님들 몇 명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기쁨입니다. 이삼십 대에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먼저 공부를 시작한 우리가 젊은이들을 잘 이끌어줘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지 서로 교류합시다. 다만, 문화재의 복원과 보존 같은 문화적 교류는 제가 약한 부분이니, 그 일은 대한 불교 조계종과의 연결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저희도 스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틱낫뚜 스님은 두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 2025년 세계 초파일 대회 베삭(Vesak) 행사에 스님을 초대했습니다. 둘째,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와 더 깊은 교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MOU(양해각서) 체결을 제안했습니다.
스님은 두 가지 제안을 수락하며 용성스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6.13 대국민법회에 베트남 불교승가위원회 스님들을 초대했습니다. 베트남 스님들도 흔쾌히 응했습니다.
4일간의 베트남 일정을 마무리하며, 더 많은 계획과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베트남 불교와 정토회 간의 지속적인 만남과 교류가 기대됩니다. 베트남 스님들은 긴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담마차크라(법의 바퀴)를 스님께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제2 사무실을 나와 연짝공단에 있는 태화공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공단을 연상시키는 차창 밖 풍경이 한참 펼쳐지다 태화공장에 도착했습니다.
베트남 태화공장은 현대에 모터를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공장장이 세세하게 공장을 둘러보도록 안내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 출하를 기다리는 모터까지 전체 공정을 살펴봤습니다.
“국은사 바로 앞에 왔다가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이 있다고 듣고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뜻밖의 방문에도 친절히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은 어제 큰 스님이 언급하신 죽림선파로 이동했습니다. 도량 내부는 고요했습니다. 죽림선파 관리위원회 비서인 쾅투(Quang Tu) 스님이 입구에서 조용히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해가 뜨거워 스님은 베트남 전통 모자인 논라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법당을 참배하고 쾅투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법륜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엊그제 국은사에 들렀는데, 틱엔논 큰 스님이 죽림선파에 가보라고 권하셨습니다. 혼자 조용히 들르고 싶었는데 스님께 연락이 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웃음)
“괜찮습니다. 사실 주지스님이 나와서 스님을 안내해야 하는데, 주지 스님이 101세 노승이셔서 이 자리에 못 나오셨습니다. 죽림선파의 주지 스님은 틱티엔논 큰 스님의 스승이자 베트남 대부분 고승들의 스승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 주신 것도 좋습니다. 늘 준비된 절의 모습만 보는 것보다, 이렇게 일상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웃음)
저희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3시 15분부터 5시까지 명상합니다. 그다음 산책을 하고 아침을 먹습니다. 6시 30분부터 10시까지는 과제를 하고 할 일을 합니다. 10시 45분에 점심을 먹고 휴식을 합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학습을 합니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경전을 독송합니다. 밤 7시부터 9시까지는 명상을 합니다. 매일 두 번의 명상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명상을 중심으로 합니다. 새해를 제외하고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꼭 공식적으로도 방문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왔는데도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쾅투 스님은 일행이 문을 나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했습니다.
스님은 숙소로 돌아가 잠시 휴식한 후, 즉문즉설 장소 로비에서 베트남 청년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한 작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장소는 호찌민시의 남부에 위치한 멀펄르 크리스털 팰리스(MerPerle Crystal Palace) 호텔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님은 호찌민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150여 명의 한국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베트남에서 살 만한가요?”
“네.”
“저는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많이 살고,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에 적게 사는 줄 알았는데, 베트남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국에는 현재 베트남 사람들이 30만 명 이상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온 분들이 10만 명, 일하기 위해 노동자로 온 분들이 10만 명, 유학생들이 8만 명, 그리고 불법 체류자들까지 합하면 35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해요.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을 포함한 분들이 90만 명 정도로 된다고 하니 제일 많고, 두 번째는 베트남 분들이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에도 그에 못지않게 한국 분들이 많다고 하네요. 호찌민시와 그 주위에 사는 분들만 1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사실이에요?”
“네.”
“또 북쪽에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해서 교민들이 한 10만 명 정도 산다고 하던데 그것도 사실이에요?”
“네.”
“베트남에 한국 교민들이 20만 명이나 사니까 최근에 해외에 나가서 사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중국이고, 그다음으로 가장 많은 나라가 베트남인 것 같아요. 물론 미국은 옛날에 가장 많이 나갔고, 요즘은 그렇게 많이 나가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또 요즘 교민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는 곳이 인도입니다. 인도 경제가 부흥하면서 교민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동남아시아부터 서남아시아까지 12개국을 순방하고 왔거든요. 가장 안정적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있는 곳이 베트남과 인도였습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요즘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베트남이 가장 활기가 있는 것 같네요.
경제적 부유가 꼭 좋다고 할 수 없는 이유
베트남 청년들이 한국 정토회를 견학 와서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어봤는데 굉장히 건강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1980년대 대학생들처럼 활기가 있었어요. 지금 베트남 청년들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 보였어요. 그러나 한국 청년들은 요즘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도전 의식도 많이 부족하고요.
이런 점을 보면 꼭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좋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전세계를 오랫동안 다녀보니 사람의 정이 많이 느껴지는 곳은 대부분 1인당 GDP가 5천 불 정도가 되는 나라였어요. 1인당 GDP가 5천 불보다 많이 떨어지면 곤궁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1만 불이 넘어가면 사람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인간성이 많이 없어지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5천 불 전후로 해서 사람들이 가장 건강하고 활기차며 사람 사이의 정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을 보면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만이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지금 출생률이 0.68명 정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0.71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0.6대로 떨어져서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자살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물론 10년 전보다는 자살률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하루 평균 43명까지 올라갔는데 지금은 34명 정도 됩니다. 매일 고속버스 한 대가 사고가 나서 죽는 꼴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위에 자살한 사람을 보는 것이 요즘은 드물지가 않게 되었어요. 한국 사회가 너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를 한 명만 낳아 키우다 보니 젊은이들의 자생력도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은 아이 1명을 어른 8명이 보살피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셨나요? 우선 아기 하나 낳으면 엄마, 아빠 있죠. 그 엄마, 아빠의 양쪽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 벌써 6명이 됩니다. 그리고 이모와 고모도 있으면 아이 1명에 어른 8명이 쳐다보고 있게 되는 겁니다. 주위에서 먹을 것을 사주거나 선물을 사주거나 많은 관심을 주거나 해서 과잉보호를 하다 보니 아이가 자생력을 점점 잃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가서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질환도 어릴 때부터 많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한국 안에서 보면 문제가 많은데, 밖에서 보면 한국처럼 좋아 보이는 나라가 없습니다. 부탄에 가서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한국을 ‘꿈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정작 한국 안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다고 하잖아요. 생활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베트남처럼 성장하는 곳에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러분 모두 베트남으로 오신 것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웃음)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일곱 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AI(인공지능) 관련 직종에서 종사하는 분인데 앞으로 AI가 고도로 발달하게 될 시대를 대비하여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AI(인공지능) 시대,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까요?
“저는 4살 된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한국의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양육과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AI(인공지능)가 큰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감히 상상조차 안 갑니다. 앞으로 30년 뒤에 저희 아이가 사회에 나가게 되었을 때 현재 직업의 대부분이 소멸하거나 AI로 대체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재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미래를 위해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고, 어떤 관점으로 양육해야 할까요?”
“질문자가 보기에 현재 우리나라에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인구가 얼마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퍼센트로 봤을 때 약 10퍼센트가 채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조선시대 말엽쯤 대부분의 사람이 주업으로 삼던 일이 무엇이었을 것 같습니까?”
“농업이었습니다.”
“질문자의 말대로라면 200년 전에 주업으로 삼던 농업 인구의 90퍼센트가 현재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할 때 ‘주업으로 삼던 농업이 사라지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걱정을 했을 것 같아요, 안 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살고 있잖아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저는 AI시대가 도래했을 때 우리 딸이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을지 부모로서 걱정되는 마음입니다.”
“조선 시대에 미래 산업 사회가 올 것을 대비해서 아이들한테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살았을 것 같아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요즘 시대의 여러 직업과 기술력에 대해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태어나면 다들 잘 적응해서 살아갑니다. 특별히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신출귀몰하거나 특수한 교육을 받아서 잘 적응하고 사는 게 아닙니다. 그 시대에 태어나면 그 시대에 맞게 살아지는 거예요. 일본에 태어나면 다 일본말을 하게 되고, 한국에서 자라면 한국말을 하게 되고, 베트남에서 살면 베트남말을 하면서 살게 되는 거예요. 꼭 누가 가르쳐서라기보다 스스로 적응해서 사는 겁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로 땅 파고 집 짓고, 자동차가 먼 길까지 데려다 주고, 기계로 농사짓는 모습을 본다면, 사람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겠다고 여기겠죠.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초반에는 어땠어요? 방직 공장에서 더 이상 사람의 힘이 아닌 기계의 힘으로 모든 생산물을 만들게 되니 기계에 저항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運動)이 벌어졌죠. 그랬는데 지금 어떤가요? 산업 사회 초기보다 월등하게 효율적인 기계가 나왔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손톱에 색칠해 주고 먹고사는 사람, 마사지해주고 먹고사는 사람, 머리카락 다듬어 주고 먹고사는 사람 등 다들 무언가를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미래에 뭘 해서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해서는 지금 알 수도 없을뿐더러 그때가 되면 다 적응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스마트폰이 생긴 지가 10년도 훨씬 지났는데 저를 비롯한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사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세 살만 되어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알아요. 인간의 적응력이란 게 그런 거예요. 태어난 시대 상황에 맞게 살아지는 겁니다. 만약 현대 사회에 태어난 아이를 뉴기니 원시림에서 살게 한다면 원시 사람으로 살게 될 겁니다. 원시림에서 태어난 아이를 현대 사회에 데려와서 살게 하면 현대인으로 살게 되고요. 인간은 환경에 적응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미래에 대해서는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를 키울 때 미리 걱정하고 예측해서 교육의 방향을 잡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한 거예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한테 어떤 교육을 시켜야 미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방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동생이 태어나면 갓난아기도 키우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라면 전천후가 되는데, 요즘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가르칩니다. 공부만 하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할 줄 아는 것이 자신이 공부한 부문에만 한정되어 있어요. 만약에 운전하는 방법만 공부해서 운전밖에 못 한다면 나중에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타났을 때 낭패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교육이라면 특정한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처럼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는 등 뭐든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학교 교육은 미래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모든 교육 내용을 세분화해서 오직 전공 분야에만 특출 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을 기계 부속품과 같이 교육시키는 일과도 같습니다. 미래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기에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걸림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한정적인 교육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집에서건 밖에서건 뭐든 할 수 있도록 교육했을 때 미래 사회에 더 잘 적응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스님이 되어서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해 온 공부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나 학위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공부를 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대학에서 전공 분야를 공부하거나 유학을 다녀오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면 지금처럼 즉문즉설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것처럼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꾸 특수한 교육을 시키려고 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이것저것 경험하게 하는 것이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지금 학교 교육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조선조 말엽에 과거 제도가 없어져서 서당이 다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평민들이 다녔던 선교사들이 세운 소학교는 현대에 와서 교육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교육도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러분들은 학교에서 공부 1등 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유학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교육들은 더 이상 창의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이런 교육으로는 앞으로 미래 사회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요.
앞으로는 의료인과 법조인의 역할도 점점 줄어드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계 하나만 차고 있으면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진찰해서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혈압을 체크해서 조심해야 할 음식도 알려주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 판사들이 판결문을 쓸 때 초안을 인공지능에 맡겨서 법률적으로 잘못되었는지 먼저 확인한다고 합니다. 아직은 의사나 판사 같은 직업들이 사회적인 권위가 있어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점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의사를 많이 양성하겠다고 난리인데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의사를 양성하는 게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의사가 부족한 것보다 의사들이 돈 많이 벌리는 곳으로 몰려서 생긴 문제가 더 큽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돈을 많이 벌 수 없으니까 성형이나 미용 등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쪽으로 의사들이 많이 몰려있는 거예요. 이런 불균형 때문에 의료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의사 양성이 꼭 필요하다고 해도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수를 교육해 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고요. 그렇다면 조금씩 양보해서 올해는 500명 내년에는 1,000명 이렇게 점진적으로 양성하는 쪽으로 서로 타협을 해야 하는데, 한쪽은 무조건 밀어붙이고, 한쪽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 결국 피해는 국민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혼란이 반드시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옛날에는 의사가 자기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부족하니 간호사한테 그 역할을 좀 맡기게 되거든요. 실제로 미국은 수간호사가 되면 어느 정도 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의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들이 현재와 같은 혼란 시기를 계기로 간호사들에게 일부 넘어가게 되겠죠. 이처럼 모든 문제는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합의를 하면 좋겠지만 합의를 못해도 또 그 속에 있던 다른 불합리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분은 아주 나빠지거나 어떤 부분은 그 덕택에 좋아지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너무 단기간으로 보지 말고 넓은 눈으로 길게 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제일 좋다고 여기는 직업인 의료인과 법조인 관련 직업의 인기가 얼마나 오래갈까요? 앞으로 10년이 갈지 20년이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20년 후에 그 직업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적 권위를 갖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거기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물론 그렇다고 당장 내일 그런 직업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아이가 그 직업을 좋아하면 괜찮은데, 안 좋아하는 걸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모의 마음이 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신이 학교 다닐 때 주변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어서 돈 많이 버는 모습 밖에 보고 들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도 무조건 그렇게 공부시키는 것밖에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20년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병드는 건 학생들입니다. 시대가 바뀌는데 기성세대가 과거에만 꽉 사로잡혀 있으니까 아이들만 힘들어지는 거예요. 이런 현상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요즘도 한문을 열심히 공부하면 그 나름대로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모든 직업이 다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아직도 서당이 필요합니다. 고전을 연구하려면 한문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처럼 필요는 하지만 전체적인 수요는 줄어들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되더라도 농사짓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옛날 농법과는 다르게 농사를 짓게 되겠죠. 그래서 농사가 어쩌면 다른 직업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 너무 아이들에게 짜인 틀만 고집하지 마세요. 부모가 너무 강제로 공부를 시키니까 오히려 공부가 더 하기 싫어지는 겁니다. 안 그래도 공부가 하기 싫은데 옆에서 누가 게임을 하면 그게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겠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꾸 게임과 SNS 쪽으로 빠져드는 거예요. 만약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함께 놀기도 하고 공부도 재밌게 한다면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될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갔다 와서 숙제한다고 앉아 있으면 저희 아버님이 작대기를 가져와서 마룻장을 때리면서 ‘야, 이놈의 자식아. 공부하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당장 일하러 가라’ 고 야단을 치셨어요. 그래서 제가 불평을 하면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일하고 싶은데도 지게가 없어서 일을 못 했다. 삽이 없어서 일을 못 했다. 낫이 없어서 일을 못 했다. 땅이 없어서 일을 못 했다. 야 이놈아, 그런데 너는 땅도 있고 낫도 있고 다 있는데 왜 일을 안 하느냐?’
이처럼 옛날 어른들은 공부하는 걸 보면 논다고 생각하셔서 몰래 숨어서 공부해야 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공부가 제가 어릴 때 강제로 해야 했던 일과 똑같은 것 같아요. 부모들이 ‘야, 이놈아 책이 없나? 방이 없나? 선생이 없나? 다 제공해 주는데 왜 공부를 안 하느냐?’ 이렇게 야단을 치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공부가 중노동인 거예요. 이해가 되세요? 제가 어릴 때 노동과 똑같은 것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하는 거예요.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는 속담처럼 여러분들도 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을 쳐다보거나 여학생을 쳐다보며 놀러 다녔잖아요. 그래 놓고는 지금 자녀가 남자친구를 만나거나 여자친구를 만나면 막 야단을 치거든요. 마치 자기는 어릴 때 안 그랬던 것처럼요. 이처럼 요즘 교육이 너무 아이들을 규격화시켜서 가두어 놓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저항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인형도 아니고 사람인데 어떻게 저항을 안 하겠어요? 아이들이라고 공부하면 좋은 것을 왜 모르겠어요? 사춘기가 되면 남자가 눈에 들어오거나 여자가 눈에 들어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여러분도 다 경험해 봤잖아요.
학교 다닐 때 착실한 아이들이 교직에 가니까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생은 착실해야 한다’ 이런 생각만 하게 되는 겁니다. 학교 다닐 때 사고도 좀 치고 이런저런 경험도 많이 해본 사람이 교사가 되면 아이들이 사고를 치거나 말썽을 피워도 다 감안을 해줄 수가 있는데 본인도 착실했고 친구들도 착실했고 동료 교사들도 다 착실하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거나 농땡이를 부리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아니 학생이 왜 저래?’ 이렇게만 생각하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좁게만 보지 말고 생각의 틀을 조금 더 넓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6월 달에 베트남 중앙불교상가위원회의 초청을 또 받았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 자주 오게 될 것 같아요. 다음 방문 때는 호찌민 말고 다른 곳에도 더 가볼 예정이니 그때 또 여러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또 강연 들으러 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의 강의만 듣고 끝나버리면 남는 것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행복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한 달에 네 번 하는 프로그램인데 종교적인 요소가 전혀 없어요.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 운동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갖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합니다. 그러니 행복학교에 한 번 참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곳 동남아시아를 많이 다니지만 종교와는 상관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습니다. 오늘도 제가 베트남 스님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절 짓는 데에는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정토회는 사람이 곧 부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면 지원을 합니다. 그러나 절을 짓는 일은 스님들이 알아서 하세요. 대신에 사람들이 괴롭다고 하면 그건 제가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중에 혹시 종교가 기독교이거나 종교가 없으신 분들도 전혀 부담 없이 참가를 하시면 됩니다. 함께 만나서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느냐’ 이런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난 후 책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정토회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 공항에 도착해 새벽 2시 50분에 호찌민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중국을 경유해 내일 오후에 인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