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간척지와 이순신 장군
며칠 전 한 모임에서 변산반도 구경을 갔는데 구경거리의 백미(白眉)는 군산시-부안군의 새만금 간척지! ‘간척지’라기보다는 중도에 공사가 멎어버린 폐허다. 환경단체와 동조자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지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다.
갯벌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환경단체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으나 일단 시작된 큰 국책사업이 중단되면 어찌되는가? 다음에 있을 국책사업에는 환경을 으뜸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좋으나 일단 정해진 일은 밀고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경제전쟁의 와중에서 이렇게 갈팡질팡하면 그만큼 나라가 약해진다. 국력을 좀먹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환경 쪽의 표를 의식하여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민주주의인 줄 잘못 알고 있다.
싱가포르에 가면 그 땅의 대부분은 간척지임에 놀랄 것이다. 부산 목포 기타의 항구를 밟는 사람들은 그 땅이 간척지임을 잊기 쉽다. 국토의 상당한 면적이 그렇게 간척(reclaim)된 것이다. 간척은 영어로는 reclamation 곧 ‘되찾음’이다. 그만큼 국토가 넓어지는 것이다.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부르짖기보다는 우선 손쉽고 이미 착수된 국토 확장부터 해내야 한다. 이미 국책으로 가결하여 결정했으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일을 하도록 국민은 정부에게 위임한 것이다. 투표로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이 정부를 조직했으면 정부의 결정은 국민이 한 결정이다. 거기다 대 국책사업은 국회의 인준을 받는다. 한번 한 결정을 중도에 국민 일부가 반대하는 것은 자기가 한 결정을 망각하고 딴 소리를 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 길에서 미아가 된 꼴이다.
북미와 남미의 나라들은 토인(아메리칸 인디안들)의 땅을 공짜로 빼앗아서 국토로 삼은 나라들이다. 그들과 경쟁을 하는 우리가 바다를 메워 조그마한 면적(6400만 평)이나마 땅을 넓혀보려는데 그 일에 자중지난이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나라는 백척간두에 섰는데 우리가 낸 세금이 새고 있다. 행정도시를 만들어 정부기관을 옮기고 여러 기관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엄청난 모험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 경제가 휘청할 큰 모험이다. 수지맞는 일에만 돈을 써야 겨우 나라가 지탱하겠는데 대적들이 흐뭇해하고 박수를 칠 일들만 벌어지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가 참으로 염려다.
새만금을 보고 오는 차 중에서 이순신 장군이 화제에 올랐다.
근간(近刊) ‘이순신의 두 얼굴’은 이순신이 원균을 따돌리고 혼자서 임금에게 승전(勝戰)보고를 올려 전공을 독차지했다고 이를 도덕적으로 문제삼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순신을 이해한다.
이순신 자신 확실한 지휘권을 쥐어야 전쟁수행이 제대로 된다는 것을 밝히 내다보고 있었다. 결코 ;개인의 공을 자랑삼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소아병적 이순신이 아니었음은 물론인데 논자들 가운데는 그런 낮은 차원에서 이순신을 (비열했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에 갑옷을 입지 않고 나서서 지휘했다. 나는 그가 자살을 했다는 주장에 동감이다. 그는 지휘석에 그대로 서서 계속 출혈하여 짐짓 희생했다. 그런 그를 사적(私的) 명리(名利)를 추구하던 숨은 얼굴이 있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졸렬한 판단이다.
임금에게 호소하여 전쟁수행에 넉넉히 타당한 지위를 보장받는 일 이외에는 방법이 없던 당시,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적절히 자기 피알(PR)을 해서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은 이겨야 하는 것이다. 결과가 중요하다. 단호히 행동치 않고 원균과 보조를 맞추느라고 멈칫했더라면 어찌되었겠는가?
침략에 맞선 국방은 정의(正義)요 진리수행이다. 이 때문에 이것이 ‘종교간 화합의 모임’에서도 화제가 되는 것이다. 그의 국방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일본민족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멕시코에 가면 수백년간의 정복 아래 있던 그들의 현황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일본민족과 한민족은 얼굴이 비슷하기 때문에 멕시코 토인들보다는 동화가 더 쉬었을 것이다. 도둑에게 나라를 내어주어 그 산하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찔하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은 우리 민족에게 한하지 않고 만방의 식자들이 그에게 머리를 숙인다. 그는 유교의 충(忠)과 이퇴계의 성(誠)의 철학을 실천한 장군이다. 나라를 위한 그의 정성을 생각할 때 그의 행위가 종교적이었음을 느낀다. 그의 죽음은 순교였던 것이다.
새만금 간척지를 보며 이순신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구국을 위하여서는 이런 저런 눈치를 다 보아서는 안 된다는 그 점 때문이다.
장기홍(푸른 들소리 편집인)
첫댓글 아무리 여러번 들어도 감격하지 않을 수없는 우리의 자랑스런 선조,,이순신,,,그 분의 백분지 일이라도 애국의 마음이 있다면 우린 희망있는 민족으로 남겠지만, 코앞의 이익이나 챙겨 눈치로 일관한다면 우리 장래는 무척 어둡기만 하겠지요,,소신있고 참 애국을 밀고나가는 제2,3의 이순신장군을 원합니다,^^**
학바우 님~ 좋은 글 소개 아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