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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왜 낙승으로 한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의혹투성이라도 경쟁자 자멸로 대선 압승 농후한 이유 / 5/14(수) / JBpress
(히라이 도시하루, 한국 한양여대 조교수)
한국 대통령 선거의 경쟁이 시작됐다. 5월 12일 오전 미국 대사관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이재명 후보가 모습을 보이며 이렇게 호소했다.
"더 이상 과거에 사로잡혀 이념과 사상, 신념에 얽매여 분열되고 싸울 시간과 여유 그런 것은 없어요. 앞으로는 진보다, 보수다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대한민국의 과제, 국민의 과제만이 우리 앞에 있을 뿐입니다. 이 나라를 책임지고 끌고 갈 사람은 이재명도 아니고 김문수도 아니고 바로 국민 여러분입니다"
이 말에 광장 일대는 큰 환호성에 휩싸였다. 한국의 지도자는 자신도 포함한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선언에 몰려든 청중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많은 피를 흘린 끝에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자부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듯한 압권의 연설이다.
리얼미터가 5/7~5/9일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 후보 지지율은 52.1%였고, 이를 경쟁 여당인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31.1%로 쫓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 일본에서는 이 씨와 김 씨만 주목받기 쉽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6명이 입후보했다. 그러고 보면 여론조사에서 과반에 달하는 지지율은 그의 압도적 강세를 보여준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 씨는 의혹투성이의 인물이다. 그런데도 왜 이만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상기의 여론 조사의 시기를 확인해 두고 싶다.
■ 유죄판결도 거의, 영향 없음
우선 5월 1일 대법원에서 이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다. 형량이 내려지지 않아 그대로 선거활동을 계속할 수 있지만 대선의 향배를 좌우할 수 있는 이 후보에게는 큰 마이너스 요인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여론 조사에는 그 영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 요인으로 이 조사는 윤석열 정부 시절 여당인 국민의힘이 공천자를 김 씨 또는 한덕수 전 총리 중 어느 쪽으로 할지를 놓고 좌충우돌 극을 벌이던 중 이뤄진 점이 꼽힌다.
정당하게 공천으로 결정된 김 씨를 제쳐두고 당 지도부가 아직 당에 소속돼 있지 않은 한 씨를 무리하게 공천하려고 기도하고 있었다. 한때는 김 후보자의 공천이 취소됐고 다음 날인 11일 오전 당내 경선이 진행돼 결국 원래의 칼집에 꽂힌 형태로 김 후보자가 최종 공천을 받았다. 이 좌충우돌로 국민의힘은 내부 분열에 빠졌다고도 한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도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김 씨로는 이길 수 없다" "한 씨라면 어떻게든 꿈을 이어갈 수 있다" 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가 보수 지지자들로부터도 인기가 없는 이유로 지나치게 강한 보수색이 있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냈을 때만 해도 그것의 위헌 여부를 떠나 대통령의 결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보수 지지자들도 적지 않다. 반면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몇몇 조반자를 제외하고 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탄핵소추안에 반대 입장을 당 차원에서 굽히지 않았다.
김 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결단에 반대했지만 탄핵 반대를 관철했다. 그는 12월 11일 비상계엄에 대해 국무위원들이 국민에게 국회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자 의자에 앉은 채 사과를 거부했다.
이래서는 강면의 이미지가 따라붙는 것은 당연하고, 진보계의 미디어나 이 씨를 거느린 민주당으로부터 「극우」라는 꼬리표가 붙여지고 있다.
참고로 김 씨는 선거 유세 첫날에야 계엄으로 인해 고통받는 국민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미지 개선에 얼마나 효과를 미칠지는 미묘하다.
■ 자멸한 여당·국민의힘
그렇다는 것도 첫머리에 소개한 이 씨의 연설과 비교하면 김 씨의 말은 나약하다. 보수색이 강한 탓인지 선거까지도 미국의 부탁이 묻어난다.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유세 첫날인 12일 보수의 지반인 한국 남동부 대구시장 유세에서 "이 씨냐 김 씨냐.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미국에 물어보세요" 라고 말한 것이다.
국민의힘 공천자 자리를 필사적으로 꿰찬 김 씨. 하지만 비상계엄과 이후 탄핵소추안 가결, 그리고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에 의한 대통령 파면이라는 흐름을 고려할 때 국민의힘이란 간판이 결코 선거전에서 유리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헌법 위반으로 판단된 비상계엄에 대해 당 차원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계속 호소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진정으로 이기러 간다면 당에서 공천을 하지 않고 한 씨를 무소속으로 입후보시켜 추천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그만큼 국민의힘에 대한 비난은 거세다.
이 때문에 김 씨와 한 씨로 후임자 선출의 좌충우돌을 거듭하던 시점에서 국민의힘의 대선 진정성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생각이 납득이 가는 보도가, 13일 아침에 있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대선 이후 당내를 장악하느냐가 초점이라는 시각이 강해 보수의 지반인 한국 남서부에서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면 유권자 지지를 중도보수로까지 넓히는 전략을 쓰는 것은 필연적이다.
■ 선거전 첫날 빨강-파랑 섞인 구두 신은 이유
한국에서는 각 정당에 색깔이 지정되어 있고, 선거전에서는 후보자가 그 색깔로 몸을 감싼다. 하지만 선거 첫날 광화문에 나타난 그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섞인 구두를 신고 있어 화제가 됐다. 파란색은 더불어민주당의 색깔, 그리고 빨간색은 국민의힘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즉, 연설의 말대로 진보와 보수의 대통합을 지향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의 대선은 전날까지 알 수 없다고 정치학자들도 말한다. 그래도 이 상황이 뒤집히려면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대일 강경파로 꼽혀온 이 씨. 최근에는 일본애(日本愛)를 이야기했지만, 최근 들어 본심을 내비치고 있다.
이달 9일 "과거사 문제는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 것이다.
윤정부 시절 극적으로 개선된 한일관계지만 먹구름이 벌써 끼었다. 아니, 오히려 한일관계로 따지면 윤 정권 시절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꿈은 언젠가 깬다. 혹은 튕겨져 나간다.
5월 8일 이 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현종 씨가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떠났다. 그 때, 「한일은 삿쵸동맹 레벨의 협력을」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삿쵸동맹(薩長同盟) : 1866년,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과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 사이에 맺어진 동맹. 대립하고 있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이었지만, 도사번(현재의 고치현)의 사카모토 료마의 중개로 동맹을 맺어 에도 막부의 타도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이 인물은 문재인 정권이던 19년 당시,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파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이 씨뿐 아니라 그 측근도 유화적인 자세를 언뜻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일본은 이재명 대통령의 탄생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히라이 토시하루(平井 敏晴)
1969년, 토치기현 아시카가시 출생. 가나자와대 이학부 졸업 후 도쿄도립대 대학원에서 독일 문학을 연구해 한국으로 건너간다. 전문은 한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정신사. 한양여대 조교수.
히라이 토시하루
https://news.yahoo.co.jp/articles/b554d392198c454d616deaefa661a3a60a754a84?page=1
李在明はなぜ楽勝で韓国大統領になれるのか、疑惑まみれでもライバルの自滅で大統領選で圧勝濃厚なワケ
5/14(水) 11:51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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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press
韓国大統領選の最有力候補、李在明氏(写真:Lee Jae Won/アフロ)
(平井 敏晴:韓国・漢陽女子大学助教授)
韓国大統領選挙の火ぶたが切られた。5月12日午前、アメリカ大使館があるソウルの光化門広場に最有力候補とされる李在明(イ・ジェミョン)氏が姿を見せ、こう訴えかけた。
【写真】李在明氏が赤と青の靴を履いたワケ
「これ以上過去にとらわれ、理念や思想、信念に縛られて、分裂し争いあう時間や余裕、そんなものはないんです。これからは進歩だ保守だなどと言ってなんかいられません。ただひとつ、大韓民国の課題、国民の課題だけが我々の前にあるだけなんです。この国を、責任をもって引っ張っていくのは、李在明でもなく、金文洙(キム・ムンス)でもなく、まさしく国民の皆さんなのです」
この言葉に、広場一帯は大きな歓声に包まれた。韓国のリーダーは、自分も含めた大統領候補ではなく、国民なのだとの宣言に、詰めかけた聴衆が共感したからだ。多くの血が流された末に民主主義を勝ち取ったと自負する韓国人の心を鷲掴みにするような、圧巻の演説である。
リアルメーターが5月7日から9日の3日間にわたって実施した世論調査では、最大野党・共に民主党の李氏の支持率は52.1%で、これをライバルの与党・国民の力の金文洙(キム・ムンス)氏が31.1%で追っている。
韓国の大統領選挙について日本では李氏と金氏のみが注目されがちだが、今回の選挙では6人が立候補している。そう考えると、世論調査で過半数に達している支持率は、李氏の圧倒的な強さを物語っている。
それにしても、李氏は疑惑まみれの人物だ。それなのに、なぜこれだけの支持が得られるのだろうか。
そのことを考えるうえで、上記の世論調査の時期を確認しておきたい。
■ 有罪判決もほぼ、影響なし
まず5月1日、大法院(最高裁に相当)で、李氏の公職選挙法違反の疑惑について有罪が宣告された。量刑が下されなかったためにそのまま選挙活動が継続できるものの、大統領選挙の行方を左右しかねない、李氏にとっては大きなマイナス要因と報じられた。
だが、世論調査にはその影響がほとんど現れていないと言ってよいだろう。その要因として、この調査は、尹錫悦(ユン・ソンニョル)政権時代に与党の国民の力が公認候補を金氏か、あるいは韓悳洙(ハン・ドクス)前首相のどちらにするかで、ドタバタ劇を演じていた時に行われた点が挙げられる。
正当に公認と決まった金氏を差し置いて、党の執行部がまだ党に所属していなかった韓氏を強引に公認しようと企てていた。一時期は金氏の公認が取り消され、その翌日の11日午前に党内で選挙が行われ、結局、元のさやに納まった形で金氏が最終的に公認候補となった。このドタバタ劇で、国民の力は「内部分裂」に陥ったとも報じられている。
これには韓国社会も嫌気がさしていた。国民の力の支持者の間でも「金氏では勝てない」「韓氏ならなんとか夢をつなげられる」という声がよく聞かれる。
金氏が保守派支持者からも不人気な理由として、強すぎる保守色がある。
昨年12月、尹大統領が非常戒厳を出した時でも、それが違憲かどうかはさておき、大統領の決断が間違っていると考えていた保守派支持者も少なからずいる。一方で与党であった国民の力は、数名の造反者を除き、野党が国会に提出した弾劾訴追案に反対の姿勢を党として崩さなかった。
金氏は非常戒厳宣布の直前に開かれた閣議で尹大統領の決断に反対したものの、弾劾への反対を貫いた。それどころか、12月11日に非常戒厳について閣僚が国民に対して国会で頭を下げて謝罪したとき、金氏は椅子に座ったまま謝罪を拒否した。
これでは強面のイメージが付きまとってしまうのは当然で、進歩系のメディアや李氏を擁する共に民主党から「極右」のレッテルが貼られている。
ちなみに、金氏は選挙遊説の初日になってようやく「戒厳により苦痛を感じている国民に心から申し訳なく思う」と謝罪した。しかしこれがイメージ改善にどれだけ効果を及ぼすのかは微妙だ。
■ 自滅した与党・国民の力
というのも、冒頭で紹介した李氏の演説と比較すると、金氏の言葉は弱弱しい。保守色が強いせいなのか、選挙までもアメリカ頼みがにじみ出てしまう。産経新聞の報道によると、遊説初日の12日、保守の地盤である韓国南東部の大邱の市場での遊説で、「『李氏か金氏か』。信頼のおける政治家が誰か、米国に聞いてください」と述べているのだ。
国民の力の公認候補の座を必死に獲得した金氏。だが、非常戒厳とその後の弾劾訴追案可決、そしてそれを受けて憲法裁判所での全員一致による大統領罷免という流れを考慮すると、国民の力という看板が決して選挙戦で有利になるとは考えにくい。憲法違反だと判断された非常戒厳について、党挙げて違憲でないと訴え続けたのだ。
そうした状況で、もしも国民の力という政党が本気で勝ちに行くのなら、党から公認候補を出さず、韓氏を無所属で立候補させて推薦にまわるしかないと私は考えていた。もちろん、そんなことができるとは思っていなかったが、それくらい国民の力への風当たりは強い。
そのため、金氏と韓氏とで後任選びのドタバタ劇を繰り返していた時点で、国民の力の大統領選挙への本気度は疑わざるを得なかった。
そうした考えが腑(ふ)に落ちる報道が、13日朝にあった。国民の力では、「大統領選挙で勝てるとは考えていない。誰が大統領選後の党内を掌握するかが焦点」という見方が強く、保守の地盤である韓国南西部でしか勝つ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
李氏にしてみれば、そうなれば、有権者の支持を中道保守にまで広げる戦略をとるのは必然だ。
■ 選挙戦初日、赤と青が混ざった靴を履いた理由
韓国では各政党に色が指定されており、選挙戦では候補者はその色で身を包む。だが、選挙戦初日に光化門に現れた李氏は青と赤の混ざった靴を履いていて話題となった。青は共に民主党の色、そして赤は国民の力の色だからだ。つまり、演説の言葉通り、進歩と保守の大統合を目指すと訴えている。
韓国の大統領選挙は前日までわからないと、政治学者も口にする。だがそれでも、この状況がひっくり返るには、よほどのことがないとあり得ないだろう。
長いこと対日強硬派と言われ続けてきた李氏。最近は日本愛を語っていたが、ここへきて本音をちらつかせている。
今月9日、「過去の歴史問題は未来志向的な関係を構築するために必ず解決しなければならない課題」だと述べているのだ。
尹政権時代に劇的に改善した日韓関係だが、暗雲がすでに立ち込めている。いや、むしろ、日韓関係でいえば尹政権時代は夢物語だったのだ。夢はいつか覚める。あるいは、弾け飛ぶ。
5月8日、李氏の側近とされる金鉉宗(キム・ヒョンジョン)氏がトランプ政権の関係者に会うためワシントンに赴いた。その際、「日韓は薩長同盟レベルの協力を」と述べている。
だが、この人物は文在寅(ムン・ジェイン)政権であった19年当時、日韓の軍事情報包括保護協定(GSOMIA)の破棄で大きな役割を果たしたとされる。李氏だけではなく、その側近も融和的な姿勢を一見示し始めたようにも見えるが、果たしでどこまで信用していいものか。
日本は李在明大統領の誕生に備えておく必要がある。
平井 敏晴(ひらい・としはる)
1969年、栃木県足利市生まれ。金沢大学理学部卒業後、東京都立大学大学院でドイツ文学を研究し、韓国に渡る。専門は、日韓を中心とする東アジアの文化精神史。漢陽女子大学助教授。
平井 敏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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