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삶의 무게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데 어떤 사람이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루카 13,23) 왜 그렇게 물었는지 짐작이 된다. 그는 먹고 사느라고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을 거다. 그때는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믿었다.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주일미사 참례하기도 어렵다고 말하는 교우들이 생각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두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도 있고, 몇몇 본당에서는 주일 밤 9시 미사도 있다. 직업상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주중 하루 미사참례하고 성체를 모실 수도 있다. 주일미사 참례 의무는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다. 하느님께 바치는 게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한 의무다. 하느님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에 따라 그 의무의 무게가 달라질 거다.
그렇게 묻는 그에게 예수님은 많다 적다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라고 하셨다. 선문답 같다. 그 숨은 뜻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계셨는데도 그리로 들어가셨다. 그분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3) 거기서는 십자가 수난 죽음만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오라는 뜻이다.
사는 것도 힘든데 신앙이 그 삶의 무게를 덜어주기는커녕 거기에 더해 십자가를 지라고 하니 성당에 가고 지루한 주일미사 참례하고 메마른 기도를 바쳐야 하는 종교적인 의무가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렇게 불평할만했을 거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먹고 사느라 일하셨고 유혹도 받으셨다. 그분이 삶의 무게 모르셨을 리가 없다. 삶의 무게에 더해 율법의 무게에 짓눌려 희망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먹고 사느라고 져야 할 짐을 예수님과 함께 지면 어떨까? 살아내야 하는 숙제 같은 삶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찾아가고 내 영혼을 구하는 하나의 긴 영적인 순례로 여기면 어떨까? 1등은 하나고 성공해서 돈 많이 번 사람은 정말 소수다. 게다가 그렇다고 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거 같다. 단지 불편함이 덜할 뿐이다. 행복은 소유한 재물에 비례하지 않는다. 행복은 예수님과 친밀함에 비례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잠시 쉬고 있던 교우가 되는 일도 없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소문을 듣고 한 점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이 그 교우에게 이마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면서 성당에 열심히 나가라고 했다. 그 뒤로 그 교우는 성당 생활을 다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들은 얘기다. 세례성사로 머리에 새겨진 인호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또 다른 삶의 무게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인호처럼 삶의 무게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는 길이다. 그런 보물을 이 질그릇 같은 몸에 담아 주셨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2코린 4,7-9) 교리는 복잡하고 인자하신 교황님 책은 어려워서 읽어볼 엄두도 안 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신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믿기만 하면 된다. 그분도 나처럼 일하셨고 억울한 일을 당하셨고 헛된 노력 같은 수고도 하셨다. 그분이 부활하셨으니 나도 그분을 따라 부활하리라 믿는다.
예수님, 허리가 끊어지게 일해도 주님이 겪으신 십자가 수난과 죽음에 비하겠습니까? 다르게 사실 수도 있었는데도 안 그러셨으니 다른 길은 없는 게 분명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길이 이 이콘 안에 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이들도 어머니에게서 희망을 찾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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