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문(사이 문)과 여백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행록(景行錄)』에도 "남과 원수를 맺으면 어느 때 화를 입게 될지 모른다."라고 했고,
제갈공명(諸葛孔明) 또한 죽음을 앞두고 "적을 너무 몰아붙인 것이 후회된다. 적에게도 퇴로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뜻을 남겼다고 합니다.
어릴 적 시골집에는 대문 말고도 뒤뜰이나 옆 모퉁이에 작은 샛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도 장독대 옆 샛문이 있어 대 밭 사이 지름길로 작은 집을 오갈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 주는 마음의 여유와 아량으로 그 샛문을 남겨 두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열세 살 되던 해, 가을걷이가 끝난 마당에는 탈곡한 나락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여름 내내 땀 흘려 일군 결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도둑이 들었습니다. 집을 지키던 거위가 도둑의 바짓가랑이를 물자, 도둑은 낫으로 거위의 목을 베고
나락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다음 날 새벽, 싸락 눈 위에 선명하게 남은 발자국을 따라 아버지와 함께 올라가 보니 마을 맨 꼭대기 오두막 집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집 문을 두드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발자국만 지우고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런 짓을 했겠느냐."
평소 호랑이처럼 엄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시던 아버지였기에 어린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힘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지혜였습니다.
그 후 그분은 평생 나락 한 가마니의 빚을 마음에 품고 우리 집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우며 살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일은 원칙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남의 허물을 끝까지 들추고 몰아세우지 말아라.
사람을 나무랄 때도 상대가 물러설 작은 길 하나는 남겨 두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샛문'과 '여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동양화의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구름과 새와 꽃,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도 담아내는 무한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림의 여백은 아름답게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는 여백을 두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적당한 소유는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고, 삶의 여유는 진정한 풍요를 선물합니다.
또한 지나치게 완벽한 사람보다 약간의 빈틈이 있는 사람이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습니다.
공자(孔子)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하고, 사람이 남의 허물만 따지면 곁에 사람이 남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약간의 여백과 아량,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사람을 이어 주고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만듭니다.
"재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재물을 얻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마음속에 작은 샛문 하나와 여백을 남겨 두는, 여유롭고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옮긴 글>
첫댓글 이 이야기의 핵심 교훈은 **“사람을 궁지에 몰지 말고, 돌아올 길을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풀어보면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는 지혜
상대가 잘못했더라도 막다른 곳까지 몰아세우면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관계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모든 말에 답하고, 모든 잘못을 따지고, 반드시 승부를 보려 하면 관계가 숨 쉴 공간을 잃습니다.
상대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배려다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설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남겨주면, 상대도 마음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용서는 약함이 아니라 지혜다
내가 옳다는 것을 끝까지 관철하는 것보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더 큰 힘일 수 있습니다.
샛문은 다시 만날 수 있는 문이다
관계가 틀어졌을 때 완전히 문을 닫아버리면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작은 샛문 하나를 남겨두면 언젠가 다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샛문’은 배려와 용서이고, ‘여백’은 기다림과 인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에 꼭 필요한 덕목이 바로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주는 것이다.”란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금의 정치를 보면 완전히 격투기 장이지요. 막말이 날아다니고 삿대질이 오고 가고 고함 소리가 귀를 찢는
추한 꼴이 난무하네요.
저에게 깊은 추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인데 하루는 친구가 가만히 다가 서더니 "친구 야,. 너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무슨 말이야? "너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에게 베푸신 감사함 때문이야"
시골에서는 가을 걷이를 하면 벼를 말리기 위해 논두렁에 가지런히 세워 놓았다가 .마르면 거둬 들이지요.
하루는 아버님이 일찍 논에 나가셨는데 방금 그 친구의 아버지가 남의 벼를 자기 논 두렁에 옮기다가 아버지를
보시더니 깜짝 놀라 다시 원 자리에 놓더랍니다.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으셨는데 .친구의 아버지가 친구에게 그런 사실을 말씀 하셨나 봅니다.
시골 작은 동네에서 그런 사실이 퍼지면 그 친구는 어떠했겠느냐며 우리 아버지께 감사드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