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담 중에서 손해를 볼 줄 알면서도 무언가에 강하게 이끌리는 모습을 두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방 같다’(Like a moth to a flame)고 하는 표현이 있다. 여름날 거리의 가로등이나 전광판 주변에는 하루살이, 모기, 나방 등을 보면 곤충들이 새카맣게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대체 곤충들은 왜 불빛 주변으로 모여드는 걸까? 곤충이 불을 찾는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곤충이 빛 주위에 모여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인공조명으로 곤충을 포획했다는 기록은 서기 1세기 로마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집을 나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빛을 이용한 덫을 만들었다. 이처럼 인류는 곤충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나은 방제를 위해서 곤충이 왜 빛으로 모여드는지 그 이유를 탐구해왔다. 그동안 유력하게 생각되어 온 가설은 주광성(phototaxis, 走光性) 탈출 이론, 나침반 이론 등이다.
주광성이란 생물이 빛의 자극에 반응해서 빛을 향해 혹은 빛을 멀리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식물이나 수생 조류가 광합성을 하기 위해 빛을 찾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주광성 탈출 이론은 이렇게 곤충이 낙엽 틈새를 날다가 빛이 있는 곳을 탈출구로 여겨 그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명 가설이 바로 곤충이 달이나 태양을 기준으로 삼아 이동하다 인공 빛에 영향을 받아 경로를 이탈하고 빛 주변에 모여든다는 나침반 이론이다.
이렇게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명확하게 규명되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 기존 가설들과는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는 연구가 나왔다. 바로 곤충들이 밝은 곳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빛에 이끌려 간다기보다, 인공조명이 곤충의 방향 감각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보이는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새뮤얼 파비안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대학 연구원과 국제연구진은 “인공조명은 곤충에게 비정상적인 비행 행동을 유발하는데, 이것은 곤충이 빛으로 위와 아래를 인지하는 독특한 감각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했다.
먼저 연구진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는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르데 클라우드 포레스트 자연구역에서 인공조명에서 곤충의 비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궤적을 관찰했다. 빛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조명을 다양한 각도로 설치했다. 전구의 빛이 아래쪽을 향하도록 설치한 경우와 삼각대에 전구를 장착해 빛이 위쪽을 향하게 한 경우, 그리고 빛이 한 지점이 아닌 넓은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나무에 흰색 시트(캐노피)를 펼치고 자외선을 투사하는 경우로 세분화했다.
곤충의 비행은 각기 어떻게 달라졌을까? 빛이 아래를 향하도록 설치된 경우, 곤충들은 날개와 등을 전구 쪽으로 기울여 빛을 등지고 나는 모습을 보였다. 잠자리, 나방 그 외 곤충 모두 이러한 각도를 유지하며 전구 주위를 일정한 궤도로 날거나 그 주변으로 날아올랐다, 빛이 위쪽을 향하게 되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종종 비행을 멈추거나 아예 빛을 향해 몸을 뒤집어 추락해버렸다.
연구진은 이런 행동이 곤충의 배광반사(Dorsal Light Response)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배광반사란 곤충이나 물고기에게서 나타나는 자세 조절 기능으로, 본능적으로 밝은 방향으로 등을 향하는 행동을 말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야시 손디 미국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대학 박사는 “인간과 달리 대부분의 곤충은 공간을 인지하는 전정기관이 없다. 이들은 오랜 진화를 통해 밝은 쪽을 위쪽으로 인지해왔는데 갑자기 빛이 위를 향하게 되면 곤충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상실해 추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곤충이 빛에 이끌려 전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빛에 의해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빛 자체가 곤충을 꾀어낸다면 먼 거리 빛을 향해 다가와야 하는데, 연구팀이 진행한 장거리(85m) 실험에서 빛에 끌려온 곤충은 50마리 중 2마리에 그쳤다. 즉 인공조명이 직접 곤충을 끌어들인 다기 보다는 지나가는 곤충을 가두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숲에서 촬영한 총 477개의 현장 영상을 통해 이런 행동 패턴을 관찰했고, 실험실에 진행한 빛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제기됐던 주광성 이론과 나침반 이론 등이 모두 이번 실험 데이터와는 맞지 않는다면서, 곤충이 인공조명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밝은 인공조명은 곤충의 비행 메커니즘에 방해하고 장거리 경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태양 빛이 땅을 향해 떨어지듯 가로등이나 건물 조명도 아래로 퍼지게 비추면 곤충들이 받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조명의 방향을 변경하거나 수를 줄여 곤충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