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에서부터 복장 규정으로 인해 엄격하게 의복과 그 재료의 기준을 정하였다. 여기에 맞추는 것은 골치아팠지만, 일단 자격을 통과시키면 옛날보다 비싼 가격에 양모와 염료, 그리고 의복을 팔 수 있었다.
가톨릭 교도의 특성상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교황청의 분노쯤이야 머나먼 동방에서는 무시할만한 성질의 것. 무난하게 북미 개척을 지속하기로 했다.
한편 쇼군은 사무라이나 지배층의 자제 뿐 아니라 중산층, 서민층의 자제들도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마치 후대의 어느나라 부모님들처럼 빚을 내서라도 아이들을 교육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 덕에 평민시절부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문, 무 양쪽 관직에 진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알래스카 담로에서 엄청난 돈이 들어왔다. 다만 사략선들로 인해 잃어버린 돈도 많았다. 쇼군은 이를 갈았지만 최소한 당장은 무언가를 할 돈이 없었다. 당장 테라코야 건으로 진 빚도 상당하건만...
한편 브루나이는 일본이 기를 쓰고 개척하는데 성공한 반자르를 점령하자는 운동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이는 일본을 확실히 자극해버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패자 일본은 자극받으면 당연히 할 일을 했다.
1만 5천명만으로도 1만에 불과한 브루나이군을 제압하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결국 브루나이의 멸망과 함께 전 보르네오 섬을 제패하는데 성공하였다.
전 보르네오섬을 점령하고 일시적으로 육군 유지비를 최소화시켜 돈을 마련한 정부는 겨우 부채를 갚는데 성공하였다. 쇼군은 이제 다시는 빚을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보르네오의 쿠타이 섬에 일본식 행정체계를 심는데 성공하자, 쿠타이 주를 준주에서 그냥 주로 승격시켰다. 그랬을 뿐인데 세금과 생산, 무역으로 인한 부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를 계기로 그간 준주로 놔두었던 주를 승격시키고 새롭게 행정체계를 바로잡았다.
비록 여전히 육군 유지비를 최소화시킨 덕이긴 했지만, 개발도가 높은 몇몇 주를 정식 주로 승격한 효과는 바로 나왔다. 월 수익이 35두캇 가량 늘어나 국가 재정에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었다. 이대로 몇 년만 반란을 피한다면 이제 저질 화폐 발행이나 대출을 받는 일은 과거의 일로 묻을 수 있었다.
1669년. 일본 정부는 부유해진 재정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퍼진 세계 무역 시대관을 정식으로 수용하였다. 이제 기술 수용이 안 되어서 쩔쩔 매던 옛날 일은 잊을 수 있게 되었다.
2년 후, 쇼군은 다시 한 번 조선을 정벌하기로 하였다. 이번에야말로 사할린을 점거하고 조선을 멸망시키리라고 다짐하였다.
한편 각지에 공장이 건설된 덕에 그로 인해 생산력이 증대되고 부가 많이 쌓였다. 쇼군은 그 덕에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공장제 시대관도 수용하였다. 이제 일본의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사라졌다.
한편 일본에 인본주의 이념이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 이제 일본은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신토나 불교, 유교, 개신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믿어도 불관용스럽게 때려잡는 일이 줄어들였다.
전쟁 발발 1년만에 조선의 전토가 일본군에게 유린당했다. 오죽하면 조선의 정규군보다 분리주의자들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겠는가.
결국 조선은 일본에게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오이라트로부터 얻어낸 동몽골 일대를 모조리 얻어냈다. 이로 인해 조선은 결정적으로 기세가 꺾이고 망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맹주로서 호령하였으며, 식민지까지 합칠 경우 명나라를 능가하는 국력을 자랑하였다.
사할린-쿠릴열도 경략의 완료로 인해 동북태평양 일대에서 일본의 힘을 의심하는 세력은 없었다. 그리고 만주 또한 완전히 점령하였는지라 그 지방에서 군사력을 얻었고, 일본 사람들이 군부, 특히 육군에 지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고 쇼군의 권위 또한 향상되었다.
그리고 테르나테가 외교적인 모욕을 일본에게 날린 것을 꼬투리잡아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너무나도 싱거웠다. 테르나테도 합병당했다. 이제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을 거스르고도 살아남을만한 국가는 파사이, 말라카, 란상, 그리고 식민지 사업을 벌이는 스페인 정도였다.
한편 절대주의 정부 체제가 채택되어 사람들 마음 속에 절대주의 체제가 뿌리박히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상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무역 관리를 더욱 폭넓게 했다. 이제 일본과 지린, 여송(필리핀)과 말라카 일대까지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늘어나고 무역 또한 일본에 의해 관리되었다.
한편 오랫동안 후계자가 생겼다가도 죽어나는 통에 50대 후반이 되도록 후사가 없던 카츠라 테루히토에게 뒤늦게 아들이 또 생겨났다. 카츠라 테루히토는 아들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옛 무로마치 막부의 창시자인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이름을 따 카츠라 다카우지로 명명했다. 천황가에게는 남북조시대를 열어서 역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다카우지를 쇼군의 아들 이름에 붙인다는 현 상태가 개탄스러웠지만, 별 방도가 없었다. 이미 카츠라 가문은 만세일계의 천황가와 혈통이 많이 섞였고, 당장 다카우지의 어머니인 요키코 또한 천황가의 여인이었다. 카츠라 가문과 천황가는 운명공동체가 된지 오래였다.
쇼군은 수도인 수오 일대에 비단 사업을 더욱 부흥시켰다. 생산량 확보를 위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한편 쇼군은 가톨릭 국가들의 공위상태를 노려 신앙의 수호자 칭호를 획득했다. 이제 동방의 일본이 쟁쟁한 서방의 가톨릭 국가들을 제치고 가톨릭 교도들의 수호국이 된 것이다. 그런 국가 치고는 이교나 이단을 많이 허용하긴 하지만.
한편 해군병력을 늘리기 위해 큰 돈을 들여 동 미크로네시아 일대에 해군성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쇼군은 새롭게 양적 이념을 개설하였다. 명나라의 대군에 맞서서 대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국민개병제의 도입으로 인력 한계를 늘린데 이어 소년들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군무에 봉사하라는 메세지를 분명히 했다. 이는 육군의 인력 보충 속도를 대폭 상승시킬 것이었다.
한편 개발도가 잘된 준주를 주로 승격시키는 행정적 행동 또한 이어졌다. 행정력은 현재 남아도는 상태이니 망설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군은 적극적으로 준주를 주로 만드는 행위를 망설였다. 마치, 마치 어딘가를 위해서 일부러 정식 주의 자리를 남기는 듯한 눈치였다.
물론 백제의 후예를 자처하는 일본에서 어느 정도 먹물이든 짬물이든 먹은 자들은 쇼군이 준주를 주로 승격시키는데 소극적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중상주의 발전과 경제 개발, 군사력 증강, 그리고 슬슬 종속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외교적 운동. 이것은 다음 공세가 지금까지 종주국으로 섬겼던 명나라를 겨냥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역사에서도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백제의 형제의 역사로서 고대 일본사에 편입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정부 차원에서 조장하고 백제의 강역을 산동과 절강, 복건에 이르기까지 있었다는 무리수까지 띄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다음 공격 상대를 명나라쪽으로 돌리려는 정부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명나라에게 꿀리지 않기 위한 병력 확보를 위한 이념 확립은 멈출 줄 몰랐다. 양적 이념이 확립되는 그날, 일본의 군사력은 명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고, 이는 피비린내나는 대전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늙은 쇼군은 부자와 고위 관리들로부터 거둔 기부금을 자비롭게 사용하고자 했지만, 이미 쇼군과 황실의 위신이 하늘을 찌르는 터였는지라 기부해봤자 별 소용 없다고 판단, 국고에 넣어 향후 일어날 대명전쟁에 대비코자 하였다.
한편 부라티야가 대 일본 무역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카라코룸 지역에 무역소를 지었다고 했다. 쇼군은 '그들도 먹고 살아야지.' 라면서 코웃음쳤다.
한편 제국 각지에 성직자를 중심으로 빈곤층을 위한 학교를 설립케 했다. 쇼군은 지역민들의 불만을 무릅쓰고 이를 허가해주었다.
한편 일본은 동남아시아의 강국인 파사이를 상대로 도발을 일삼았다. 말라카 무역의 이득을 확대키 위한 전쟁을 노리는 것이었다.
한편 북미 식민지에서는 가톨릭 광신도들의 봉기가 이어졌다. 쇼군은 "폭도는 가톨릭 교도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일갈하고 단호하게 병력을 증원하여 진압하게 했다.
이츠키 요시미츠라는 자가 일본에서 <국부론>을 저술했다. 그의 성과에 만족한 쇼군은 전국적으로 이를 알리도록 하였다.
첫댓글 뭐 운에 맡기셔야...
스샷 확보 말입니까, 아니면 대명 전쟁 말입니까?
@박팽년과박원종 대명전쟁이요
@931117 프랑스가 동맹으로 참전해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준주를 정식 주로 승격시키니까 수입이 그렇게 증대되네요. 특히 브루나이처럼 개발도가 잘 된 곳은 더더욱. 준주와 정식 주의 수입 차이가 이렇게 클줄은 몰랐습니다.
궁금한 건데, 저 무지막지한 개척자 수는 어떻게 나온 겁니까?? 52명이라니...ㄷㄷㄷ
모르겠어요. 제가 받은 게임 모드가 저렇네요. 어떻게 고치는지도 모르겠고...
유로파시대에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를 인물 중심의 크킹으로 하고싶은데 동아시아는 죽어도 안나오니 ㅠㅠ
별개로 재밌게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크-킹을 안합니다. 송나라나 요나라나 고려나 금나라나 일본... 꿀잼거리들이 많은데 왜 뺐는지!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명이 떨어져주면 좋으련만....
개혁 다 끝났어요. 천명 떨어질 여지가 음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