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추구하고 싶은 삶이 무엇일까?
나는 “행복”이라 생각한다. 우선은 내가 행복하고 싶으니까!
행복을 찾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시고 받아들여 주시며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과 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믿는다.
불교에서는 업보로 인해 인생을 고뇌라 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로 말미암아 사람에게는 고통이 있다고 한다.
이 여정이 행복이라 믿고 있지만
늘 나의 환경이 행복한 것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삶이란 때때로 오아시스를 품고 있는 사막이 아닐까?
나는 고통 중에 있을 때, 무미건조한 시기를 지낼 때
사막을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여행에도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사막을 그냥 걸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아시스가 있음을 마음에 품고 사막을 걸어가는 것이다.
둘 다 머지않아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사막을 걸어가야 한다면 오아시스를 마음에 품고 걸어갈 때
사막에 있으면서도 물을 마시는 행복을 느끼며 걸어 갈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 때문이다.
봄이 오기 직전 초봄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많은 나무들과 풀꽃들은
자신들의 때가 온 줄 알고 싹을 틔운다.
겨울은 따뜻하고 초봄이 많이 추웠던 올해는 꽃봉오리들과 화초들이 싹을 틔우다 얼고,
얼었다 다시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되지만 역으로 바라보면 참 성실한 모습이다.
만약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면 이 추위에 싹을 틔우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어려운 환경과의 싸움보다 포기가 편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잡초가 없다고 하듯이 하찮게 생각되는 풀꽃 하나도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사람의 잣대로 필요하다고 필요 없다고 말해버리지만
어떤 의미로든 세상에 온 의미가 있을 것이다.
햇볕만 난다면 나중에 얼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나무들과 화초들이
그렇게 싹을 틔워 자신의 꽃을 피우려고 하는 것도,
또 결국 예쁜 꽃을 피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완전하기에 완전한 그분의 사랑을 오롯이 느끼며 살지 못하고
작은 유혹들에 넘어가 얼지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오늘도 희망을 가지고 작은 싹을 틔우고 있다.
나도 나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내게 주어진 행복을 감사하며 더 나아가 이 작은 행복들을 나누며 살고 싶다.
우선은 가까이 있는 이들 안에서, 더 나아가서는 온 세상의 많은 이들과
사랑으로 함께 하고 싶다.
이것이 지금 내가 걷고 있고 앞으로 걸어가고 싶은 순례의 길인 동시에 나인 것이다.
삶이 없는 나는 없으니까!
[4] 언젠가 사막을 건너는 법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 같군요. 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막을 건넌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지만, 실상 내 삶은 사막따위랑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사막을 꿈꾸는 건 사치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말이죠.. .행복하소서...
첫댓글 (3) 조금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셨더라면 좋았을텐데... 수고하셨습니다
(4) 간결하지만 자연에 비유하여 자신의 의도를 잘 나타내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3) 자신의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4)작은 싹을 크게 만드시는 사람이 되세요^^
[4] 언젠가 사막을 건너는 법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 같군요. 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막을 건넌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지만, 실상 내 삶은 사막따위랑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사막을 꿈꾸는 건 사치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말이죠..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