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용기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청합니다.’ 아침 등교 전쟁을 치르는 한 젊은 엄마가 라디오 방송에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하며 보낸 사연 내용이다. 진행자를 따라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경험은 없지만 그 아침 풍경이 그려지고 또 모양은 달라도 그와 같은 일을 겪기 때문이었을 거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일 말이다. 전쟁 같은 내 삶인데도 거기서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볼 수 있으면 그것은 희극이 되는가 보다.
그런 용기도 역시 사랑에서 나올 거다. 소리 지르며 야단치고 등짝을 때리는 것도 사랑이라고 하겠지만, 아이들의 행동이 악한 게 아니라면 더 인내하고 그의 성장 속도에 맞춰 그를 지도하고 인도하는 게 참사랑에 더 가까울 거 같다. 인내는 사랑에 정말 가깝다. 하느님이 인내하시지 않았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께 귀환하시기 위해서 그리로 들어가셨다. 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아니라 사람들, 기다리던 구세주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 이들과 자기들이 원하는 구세주만을 기대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살해한 거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당신에 앞서 왔던 예언자들에게도 똑같이 그랬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루카 13,34) 나의 적은 그가 아니라 내 뜻만 고집하는 나 자신이다.
세상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은 빛을 싫어한다. 자신이 어둡기 때문이다. 빛이 오면 자신은 없어진다. 세상이 아니라 내가 그렇다. 예언자를 배척하고 살해했던 이들, 순교자들을 만들었던 이들은 무지한 옛날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고 또 나도 그런 일에 일부 동조하고 있는 걸지 모른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않을 용기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향해 온몸과 마음을 개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수님,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니, 진심으로 그렇게 청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말과 생활을 아드님 뜻에 맞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