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향 친구인 L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평생을 '소방 공무원'으로 봉직했다.
작년에 정년퇴직하여 연금 생활자가 되었다.
최근에 L의 가장 절친했던 직장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동료는 건강검진에서 폐암이 발견되었는데 암 발견 후 3개월 만에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그만 눈을 감았다고 했다.
단 3개월 만에.
애를 끊는 아픔이었단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화재현장과 긴급출동, 대민봉사를 하면서 숱한 부상과 주검을 목격했지만 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단다.
평생을 같은 길에서 동고동락했던 사이라 그 절친과의 별리는 L에겐 형언할 수 없는 큰 슬픔이자 무력감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L이 말하길, 갑자기 자신의 인생도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삶 자체가 허무했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란다.
현직에 있을 땐 격무로 인해 쉬고 싶었고 화재현장이 너무 위험해 퇴직을 바라기도 했었지만 막상 직장을 떠나보니 그게 아니더란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연락이 끊어졌고 '고립무원'에 빠졌다고 했다.
자신이 연락을 취해도 상대방이 그닥 반가워 하지 않더란다.
뿐만 아니라 과거엔 쉴새없이 울려대던 자신의 휴대폰도 거짓말처럼 하루 아침에 긴 침묵 속에서 칩거하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했다.
그런 급격한 변화에 무척 힘들었노라고 했다.
그러던 차에 둘도 없던 절친한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단다.
모든 게 무의미 했고 운동을 해도,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으며 삶에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몇 개월의 세월이 흘렀고 어느날 갑자기 번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원망스럽기 까지 했단다.
지금은 오전에 맨발 걷기, 오후엔 공부및 독서, 저녁엔 금강변에서 싸이클 타기, 주말엔 봉사활동 및 축구 클럽에서 몇 게임을 뛰면서 다시 몸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통화 말미에 L이 나에게 우정 어린 '당부'를 건넸다.
"자네는 정년이 없는 개인사업이니 최대한 은퇴싯점을 늦추고 현장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삶의 리듬이 깨지면 자네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퇴직 후에 '시간관리'와 '건강관리', 자신의 '멘탈관리'를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잘 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며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고맙고 감사한 멘트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내 주변의 퇴직한 지인들을 보고 있고 자주 만나고 있다.
퇴직 이전의 삶보다 빛을 발하며 삶의 만족도가 증가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나눔과 비움'의 인생을 엮어가는 사람들도 극 소수였다.
이래저래 모두가 과거 보다 고민이 많았고 걱정의 깊이도 깊어졌다.
나도 L이 어드바이스한 대로, 할 수 있는 한 늦게까지 일하고 '현장'에서 규칙적인 삶을 엮어가려 한다.
열정적으로 나의 길을 가고 싶다.
소득도 중요하지만 그것 보다는 나의 '소망과 미션의 실행' 그리고 여전히 넘치는 '에너지와 젊음' 때문에 그렇다.
여러 공동체에서의 '헌신'도 내겐 매우 중요한 삶의 한 축이니까 말이다.
L의 아내도 얼마 전에 암수술을 했고, 내 동생도 며칠 전에 위암 판정을 받았다.
다수의 선배들도 병환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속절 없이 떠났다.
내일 일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늘 겸손한 마음과 감사의 정신으로 하루 하루를 예쁘게 모자이크할 수밖에 없다.
뜻 깊고 배려심 가득한 2024의 '한가위'가 되길 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고 건강할 때,
한번 더 사랑하고, 한번 더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그런 명절이 되길 바랄 뿐이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
평생 지켜야 할 모습이지요.
다시 한번 다짐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