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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역취(醒日亦醉)
술이 깬 날도 취해 있다는 뜻으로, 술에 빠져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현령을 평한 말이다.
醒 : 깰 성(酉/9)
日 : 날 일(日/0)
亦 : 또 역(亠/4)
醉 : 취할 취(酉/8)
출전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공직자(公職者)가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이다. 그중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제2편 율기(律己)이다.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듯이 수신(修身)이 가장 기본이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이란 말도 있다.
율기(律己) 6조는 ①칙궁(飭躬: 수령의 몸가짐), ②청심(淸心: 청렴한 마음가짐), ③제가(齊家 : 집안을 다스림), ④병객(屛客: 청탁을 물리침), ⑤절용(節用:씀씀이를 절약함), ⑥낙시(樂施: 베풀기를 좋아함)이다.
그러면 율기 6조의 명구(名句)를 읽어보자.
①칙궁(飭躬); "벼슬살이하는 데에 석 자의 오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맑음[淸]이고, 둘째는 삼감[愼]이고, 셋째는 부지런함[勤]이다",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됨이 없을 것이니, 이는 허물을 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②청심(淸心); "청렴은 수령의 본무(本務)로서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않은 것은 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무릇 지혜가 깊은 선비는 청렴을 교훈으로 삼고, 탐욕을 경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③제가(齊家); "몸을 닦은 뒤에 집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린 뒤에 나라를 다스림은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고을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제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④병객(屛客); "고을 안에는 반드시 문사(文士)라 칭하는 자들이 있어서 시(詩)나 부(賦)를 쓰는 일로 수령과 교분을 맺고, 그것을 인연삼아 농간을 부리니, 그런 사람을 끌어들여 만나서는 안 된다"
⑤절용(節用); "수령 노릇을 잘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로우려면 반드시 청렴해야 하며, 청렴하려면 반드시 절약해야 한다. 절용은 수령이 맨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⑥낙시(樂施); "절약만 하고 쓰지 않으면 친척이 멀어지니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이 바로 덕(德)을 심는 근본이다. 가난한 친구나 궁한 친척들은 힘을 헤아려서 돌보아 주어야 한다"
율기(律己) 6조 / 제1조 칙궁(飭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술을 금하고 여색을 멀리하며, 가무(歌舞)를 물리치며 공손하고 단엄하기를 대제(大祭) 받들 듯하며, 유흥에 빠져 정사를 어지럽히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斷酒絶色, 屛去聲樂, 齊遬端嚴, 如承大祭, 罔敢游豫, 以荒以逸)."
상산록(象山錄)에, "술을 즐기는 것은 모두 객기(客氣)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잘못 인식하여 청취(淸趣)인 양하지만, 다시 객기를 낳아서 그것이 오랜 습성이 되면 폭음하는 주광(酒狂)이 되어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게 되니, 진실로 슬픈 일이다. 마시면 주정하는 자, 마시면 말이 많은 자, 마시면 자는 자도 있다. 주정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폐단이 없다고 생각하나, 잔소리나 군소리는 이속들이 괴롭게 여기고, 술에 곯아 떨어져 깊이 잠들어 오래 누워 있으면 백성들이 원망할 것이다. 어찌 미친 듯 소리 지르고 마구 떠들어대며 부당한 형벌과 지나친 곤장질을 해야만 정사에 해를 끼친다고 하겠는가. 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아서는 안 된다"하였다.
象山錄云; 嗜酒皆客氣也. 世人誤以爲淸趣, 轉生客氣, 習之旣久, 乃成饕狂, 欲罷不能, 誠可哀也. 有飮而酗者, 有飮而談者, 有飮而睡者. 其不酗者, 自以爲無弊, 然細談贅語, 吏則苦之, 熟睡長臥, 民則怨之. 何待狂叫亂嚷, 淫刑濫杖而後, 害於政哉. 爲牧者, 不可不斷酒.
다산필담(茶山筆談)에, "매년 12월과 6월 두 철에 시행되는 팔도(八道) 포폄(褒貶)의 조목을 보면 '과도한 징수(斛濫)는 비록 공평해졌으나 주도(酒道)는 경계해야 한다(斛濫雖平 觴政宜戒)'하였고, '다스림을 원하지 않음이 아니나 술을 좋아함을 어찌하랴(非不願治 奈此引滿)'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잇달아 있는데도 다시 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니 또한 무슨 심정인가?"하였다.
茶山筆談云; 每季冬季夏, 見八道褒貶之目. 其曰, 濫濫雖平, 觴政宜戒. 其曰, 非不願治, 奈此引滿. 若此之類, 項背相望, 猶復沈湎而不省, 抑何心哉.
옛날에 한 현령이 술에 빠져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는데, 감사(監司)가 그의 치적(治績)을 고사하여 쓰기를, '술이 깬 날도 취해 있다(醒日亦醉)'하여, 온 세상이 웃음거리로 삼았다(昔一縣令, 況醉不理事, 監司書考曰; 醒日亦醉, 一世傳笑).
▣ 성일역취(醒日亦醉)
예전 한 원님이 늘 술에 절어 지냈다. 감사가 인사고과에 이렇게 썼다. '술 깬 날도 취해 있다(醒日亦醉).' 해마다 6월과 12월에 팔도 감사가 산하 고을 원의 성적을 글로 지어 보고하는데, 술로 인한 실정이 유독 많았다. '세금 징수는 공평한데, 술 마시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斛濫雖平, 觴政宜戒)', '잘 다스리길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 술버릇을 어이하리(非不願治, 奈此引滿)." 정약용이 다산필담(茶山筆談)에서 한 말이다.
상산록(象山錄)에서는 또 이렇게 썼다. "술을 즐기는 것은 모두 객기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 알아 맑은 운치로 여긴다. 이것이 다시 객기를 낳고, 오래 버릇을 들이다 보면 술 미치광이가 되고 만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가 없으니 진실로 슬퍼할 만하다. 술을 마시고 주정하는 자가 있고,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자가 있고, 마시면 쿨쿨 자는 자도 있다. 주정을 부리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폐해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잔소리나 군소리에 아전이 괴롭게 여기고, 길게 누워 깊이 잠들면 백성이 원망한다. 어찌 미친 듯이 소리치고 어지러이 고함지르며, 과도한 형벌과 지나친 매질을 해야만 정사에 해롭겠는가? 고을을 맡은 자는 술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정선(鄭瑄)이 말했다. "인간의 총명은 유한하고, 살펴야 할 일은 한이 없다. 한 사람의 정신을 쏟아 뭇 사람의 농간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술에 빠지고 여색을 탐하며, 시 짓고 바둑이나 두면서 마침내 옥사나 송사는 해를 넘기고 시비(是非)가 뒤바뀌어, 소송은 갈수록 많아지고 일거리는 날마다 늘어난다. 어찌 탄식하지 않겠는가?"
모두 목민심서 율기(律己) 중 칙궁(飭躬)에 실려 있는 예화다. 어찌 목민관만의 일이겠는가? 과도한 음주는 끝내 문제를 일으킨다. 술에 취해 자기가 한 성폭행과 성추행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는 TV 드라마의 어느 남주인공은 이 실수 한 번으로 시청자뿐 아니라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단 한 번 실수로 치러야 할 대가가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술을 금하고 여색을 멀리하며 가무(歌舞)를 물리치며 공손하고 단엄하기를 대제(大祭) 받들 듯하며, 유흥에 빠져 정사를 어지럽히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선(鄭瑄)은 이렇게 말하였다. "총명에는 한도가 있고 일의 기틀은 한이 없는데, 한 사람의 정신을 다하여 뭇사람의 농간을 막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술에 녹아떨어지고 여색에 빠지며, 시 짓고 바둑 두어서 마침내 옥송(獄訟)은 해를 넘기며 시비(是非)는 뒤바뀌어 소송거리는 더욱 많아지고 일의 기틀도 더욱 번잡해질 것이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은가. 닭이 울면 일어나 정사를 처리하고 집안일은 아예 물리쳐 버리며, 주색 때문에 스스로 피곤하거나 행락(行樂)으로 몸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어느 일은 처결해야 하고 어느 공문은 보고해야 하며 어느 부세(賦稅)는 가려내야 하고 어느 죄수는 풀어 주어야 하는지 등을 때때로 살펴서 급급히 처리해야 할 것이요, 내일을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고 처리되지 않는 일이 없고 자기 마음도 편안해질 것이다."
부승우(傅僧祐)와 그의 아들 부염(傅琰), 염의 아들 부홰(傅翽)는 다 수령이 되어 모두 특이한 치적(治績)을 나타냈었다. 그때 사람들이, "부씨(傅氏) 집안에는 치현보(治縣譜)가 전해오는데 그것은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다"하였다.
유현명(劉玄明)은 치민(治民)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건강(建康)과 산음(山陰)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치적이 천하제일이었다. 부홰가 그의 후임으로 산음령(山陰令)이 되어 유현명에게 묻기를, "원컨대 구정(舊政)을 신관(新官)에게 알려 주시오" 하니, 유현명이 대답하기를, "내게는 기묘한 방법이 있는데 그대의 가보(家譜)에는 없을 것이오. 오직 날마다 한 되 밥만 먹고 술은 마시지 말 것, 이것이 제일 상책이오" 하였다.
매지(梅摯)가 소주 지주(韶州知州)로 있을 때 장설(瘴說) 7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벼슬살이에 다섯 가지 고질적인 병통이 있다. 급히 재촉하고 함부로 거두어들이며 아랫사람에게서 긁어다가 윗사람에게 바치는 것은 조부(租賦)의 병통이요, 엄한 법조문을 함부로 사용하여 선악을 분명하게 못하는 것은 형옥(刑獄)의 병통이요, 밤낮으로 주연을 베풀고 국사를 등한히 하는 것은 음식의 병통이요, 백성의 이익을 침해하여 자기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재물의 병통이요, 계집을 많이 골라 음악과 여색을 즐기는 것은 유박(帷薄)의 병통이다. 이 중에 하나만 있어도 백성은 원망하고 신(神)은 노하여, 편안하던 자는 반드시 병이 들고 병이 든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벼슬살이하는 자가 이것을 모르고 풍토의 병을 탓하니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상산록(象山錄)에, "술을 즐기는 것은 모두 객기(客氣)이다.세상 사람들은 이를 잘못 인식하여 청취(淸趣)인 양하지만, 다시 객기를 낳아서 그것이 오랜 습성이 되면 폭음하는 주광(酒狂)이 되어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게 되니, 진실로 슬픈 일이다. 마시면 주정하는 자, 마시면 말이 많은 자, 마시면 자는 자도 있다. 주정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폐단이 없다고 생각하나, 잔소리나 군소리는 이속들이 괴롭게 여기고, 술에 곯아 떨어져 깊이 잠들어 오래 누워 있으면 백성들이 원망할 것이다. 어찌 미친 듯 소리 지르고 마구 떠들어대며 부당한 형벌과 지나친 곤장질을 해야만 정사에 해를 끼친다고 하겠는가. 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였다.
다산필담(茶山筆談)에, "매년 12월과 6월 두 철에 시행되는 팔도(八道) 포폄(褒貶)의 조목을 보면 '과도한 징수(斛濫)는 비록 공평해졌으나 주도(酒道)는 경계해야 한다(斛濫雖平 觴政宜戒)'하였고, '다스림을 원하지 않음이 아니나 술을 좋아함을 어찌하랴(非不願治 奈此引滿)'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잇달아 있는데도 다시 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니 또한 무슨 심정인가?"하였다.
옛날에 한 현령이 술에 빠져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는데, 감사(監司)가 그의 치적(治績)을 고사하여 쓰기를, '술이 깬 날도 취해 있다(醒日亦醉)'하여, 온 세상이 웃음거리로 삼았다.
창기(娼妓)들의 음란한 풍습은 삼고 선왕(三古先王)의 습속이 아니다. 후세에 오랑캐의 풍속이 점차 중국으로 젖어 들어와서 드디어 우리나라에까지 미친 것이다. 수령이 된 자는 결코 창기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한번 가까이하게 되면 그 정령(政令) 하나하나가 의심과 비방을 살 것이며, 비록 공정한 일일지라도 모두 계집의 말에 떨어진 것으로 의심을 받을 것이니 또한 민망하지 아니한가.
매양 보면 소박하고 순진하여 바깥 출입이 없던 선비가 처음 기생을 가까이하면 홀딱 빠지고 말아 잠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한 것을 철석같이 믿으니, 기생이란 사람마다 정을 주어 사람의 본성이 이미 없어지고 따로 정부(情夫)가 있어서 밖으로 누설되지 않는 말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밤중에 소곤거린 말이 아침이면 이미 성안에 온통 퍼지고 저녁에는 사경(四境)에 쫙 퍼지는 것이다.
평생에 단정하던 선비가 하루아침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니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릇 기생이란 요염한 것이니 눈짓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초하루 보름의 점고(點考) 때를 제외하고서는 일체 문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자제나 친척 손님들이 기생을 가까이하는 것은 더욱 엄하게 막아야 할 것이니, 만일 금계(禁戒)가 본래 엄하면 설혹 범하는 자가 있더라도 깊이 빠져들어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발각이 되면 여러 사람 앞에서 꾸짖지 말고 다만 밀실로 불러놓고 그가 금법을 범한 것을 책망한 후, 그 이튿날 말을 주고 여장을 준비시켜 곧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정사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고 자신의 법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는 것이 다시 없이 좋은 방편이다.
조청헌공(趙淸獻公)이 촉(蜀)을 다스릴 때, 한 기녀가 살구꽃을 머리에 꽂았으므로 공이 우연히 희롱하기를, "머리 위의 살구꽃이 참으로 행(幸)이구나(髻上杏花眞有幸)"하니, 기녀가 즉시 응하기를, "가지 끝의 매실(梅實)은 중매가 없을쏜가(枝頭梅子豈無媒)"하였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공(公)이 노병(老兵)을 시켜 그 기녀를 불러오게 하였는데 2고(鼓)가 되도록 오지 않으므로 사람을 시켜 재촉하고는 공이 방안을 거닐고 있다가 문득 소리 높여 부르기를, "조변(趙抃)아, 무례해서는 안 된다"하고, 곧 불러오지 말도록 명령하였다. 그때 노병이 장막 뒤에서 나오면서, "저는 상공(相公)께서 몇 시각이 못 되어 그런 마음이 식으리라 짐작하고 실상 부르러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였다.
조청헌(趙淸獻)이 매양 색욕을 끊을 때면 침상(寢床) 위에 부모의 화상을 걸어 두고 스스로를 감계(監戒)하였다. 유봉서(柳鳳瑞)가 북평사(北評事)가 되어서 한 요사스러운 기생을 만나 헤어나지 못하여, 그 아버지인 정승 유상운(柳尙運)의 화상을 걸어 놓고 밤낮으로 쳐다보며 울었으나(유 정승이 그가 여색에 빠져서 혹할 줄 미리 알고서 임지로 떠나던 날 화상을 주었다) 끝내 금하지 못하고 마침내 임지에서 죽었으니, 아 슬픈 일이다.
장괴애(張乖崖)가 촉(蜀) 지방을 맡아 다스릴 때 빨래와 바느질하는 두 계집이 있었는데, 그중 한 계집을 좋아하였다. 밤중에 정욕이 동하자 일어나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면서, "장영은 소인이다, 소인이다"하고는, 드디어 그만두었다.
정선(鄭瑄)이, "정욕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채우고 나면 반드시 후회하고 참고 넘기면 반드시 즐겁다. 분노도 마찬가지이다" 하였다.
장괴애(張乖崖)가 촉(蜀) 지방을 진무(鎭撫)할 때에 유연(遊宴)이 베풀어지면 사녀(士女)가 좌우를 에워쌌지만 3년 동안 그들을 돌아다본 일이라곤 없었다.
상산록에, "수령이 성부(城府)를 출입할 때나 여염집들을 지날 때에 담장 머리, 거리 위에 여자들이 있는 것을 알더라도 눈길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장영(張詠)이 익주지주(益州知州)로 있을 적에 요속(僚屬)들이 그의 준엄한 성품을 두려워하여 감히 비첩(婢妾)을 거느리지 못하였다. 공은 사람들의 인정(人情)을 끊게 하고 싶지 않아서 드디어 여종 하나를 사서 시중을 들게 하였다. 이로부터 요속들이 점차 시중하는 계집을 두게 되었다. 촉 지방에 있은 지 4년 만에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돌아가면서 그 여종의 부모를 불러 재물을 주면서 시집을 보내게 하였는데, 그 여종은 그대로 처녀였다.
정언빈(程彥賓)이 나성(羅城)에 사자(使者)로 나갔을 때 좌우가 세 처녀를 바쳤는데 모두 예뻤다. 공이 그 처녀들에게, "너희는 내 딸과 같다. 어찌 서로 범할 수 있겠느냐?"하고 손수 문을 잠그고 한 방에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부모들을 찾아서 돌려보내니 모두 울면서 감사하였다.
한지(韓祉)가 감사(監司)로 있을 때에 시기(侍妓) 수십 명을 항상 한 방에 두고 끝내 범하는 일이 없으니 여러 속관(屬官)들도 감히 여자와 가까이하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조용히 속관들에게 묻기를, "오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에 더러 여색을 가까이해 본 일이 있는가?"하니, 모두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한지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찌 내 자신이 금하고 있다 하여 다른 사람까지 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난잡하게 하지 않을 따름이다. 그러나 색정을 참기 어려움이 이러하단 말인가. 내가 일찍이 호서 아사(湖西亞使)로 있을 적에 토지를 점검(點檢)하는 일(檢田都會)로 청주(淸州)에 보름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재색(才色)이 뛰어난 강매(絳梅)란 기생이 늘 곁에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잠결에 무심코 발을 뻗으니 문득 사람의 살결이 닿았다. 물어보니 강매였다. 그녀가 말하기를 '주관(主官 청주원을 가리킴)이 잠자리를 모시지 못하면 장차 죄를 주겠다고 명하시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몰래 들어왔습니다'하였다. 나는 '그것이야 쉬운 일이다'하고 곧 이불 속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후 13일 동안 동침하였으나 끝내 어지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서 돌아올 적에 강매가 울기에 내가 '아직도 정이 남아 있느냐?'하니, 강매가 대답하기를 '무슨 정이 있겠습니까. 다만 무료했기 때문에 울 뿐입니다'하였다. 주관이 희롱하기를, '강매는 좋지 못한 이름을 만년에 남기고 사군(使君)은 좋은 이름을 백대에 끼쳤구나' 하였다."
조운흘(趙云仡; 호는 석간石澗)이 강릉부사(江陵府使)로 있으면서 빈객들과 접촉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백성을 번거롭게 괴롭히지 않아 지금까지도 청백하다고 일컫는다. 하루는 부(府)의 기생들이 자리에 앉아서 서로 희롱하며 웃으므로 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한 기생이 대답하기를, "소첩이 꿈에 주관(主官)을 모시고 잤는데,이제 친구들과 함께 해몽(解夢)을 해 보았을 따름입니다"하였다.
공이 붓을 찾아 들고 다음과 같이 글을 지었다.
心似靈犀意已通
마음이 영서(靈犀)같아 뜻이 통했는데
不須容易錦衾同
비단 이불 함께하기 쉽지 않구나.
莫言太守風情薄
태수의 풍정(風情)이 박하다 이르지 말라
先入佳兒吉夢中
예쁜 여인의 길몽(吉夢) 속에 먼저 들었거니
박신(朴信)이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는데 강원도 안렴사(按廉使)가 되었을 때 강릉 기생 홍장(紅粧)을 사랑하여 정이 자못 두터웠다. 임기가 차서 돌아가게 되자 부윤(府尹) 조운흘이 거짓으로, "홍장은 이미 죽었습니다"하니 박신은 슬퍼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강릉부에 경포대(鏡浦臺)가 있는데 부윤이 안렴사를 청하여 나가 놀면서 몰래 홍장에게 곱게 단장하고 고운 의복 차림을 하도록 하며, 따로 놀잇배 한 척을 마련하고 또 눈썹과 수염이 허연 늙은 관인 한 사람을 골라 의관을 크고 훌륭하게 차리도록 한 다음 홍장과 함께 배에 태우게 하였다. 또 배에는 채색 액자를 걸고 그 위에 시를 지었다.
新羅聖代老安詳
신라 성대(聖代)의 늙은 안상(安詳)이
千載風流尙未忘
천년 풍류를 아직도 못 잊어
聞說使華游鏡浦
사자(使者)가 경포대에 노닌다는 말 듣고
蘭舟聊復載紅粧
난주(蘭舟)에 다시 홍장 싣고 왔네.
천천히 노를 두드리며 포구(浦口)로 들어와서 바닷가를 배회하는데 풍악 소리가 맑고 그윽하여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하였다. 부윤이, "이곳에 신선이 있어 왕래하는데 바라다만 볼 뿐 가까이 가서는 안 됩니다"하니, 박신은 눈물이 눈에 가득하였다. 갑자기 배가 순풍을 타고 눈깜빡하는 사이에 바로 앞에 다다르니, 박신이 놀라, "신선이 분명하구나"하고 자세히 보니, 바로 기생 홍장이었다. 한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생각하건대, 박 안렴사는 본디 색에 빠진 사람이지만, 조공(趙公)이 꾸며서 상관을 놀려준 것도 잘못이다. 내가 서읍(西邑)에 있을 때 이런 일을 겪었는데, 기생을 아프다 핑계하고 모시고 놀지 못하게 하였다가 놀이가 끝나서야 바른대로 말했더니 안찰사(按察使)도 사례할 뿐 노엽게 여기지 않았다.
정한강(鄭寒岡)이 안동 부사(安東府使)가 되었는데 관사에 전부터 '기녀(妓女)'라 불리는 꽃나무가 있었다. 공이 그 꽃나무를 베어 버리게 하였다.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사람이 빠지기 쉽기가 여색보다 더한 것이 없으므로 그 이름을 미워해서 베어버렸을 뿐이다"하였다.
성악(聲樂)은 백성의 원망을 자아내는 풀무이다. 내 마음은 즐겁지만 좌우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고, 좌우의 마음이 다 즐겁더라도 한 성(城) 안 남녀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으며, 한 성 안 남녀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겁더라도 사경(四境) 안 만민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다.
그 중에는 혹 가난하여 춥고 배고프거나, 형옥(刑獄)에 걸려 울부짖고 넘어져서 하늘을 보아도 빛이 없고 참담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없는 자가 있어서 한번 풍악을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이마를 찌푸리며 눈을 부릅뜨고 길에서 욕하며 하늘에 저주할 것이다. 배고픈 자가 들으면 그의 주림을 더욱 한탄할 것이요, 옥에 갇혀 있는 자가 들으면 그의 갇혀 있음을 더욱 슬퍼할 것이니 맹자(孟子)의 금왕고악장(今王鼓樂章)을 깊이 음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시경 소아(小雅) 백화(白華)에, '궁중에서 종을 두들기면 소리가 궐문 밖까지 들려 온다'하였고, 주역(周易) 예괘(豫卦) 초육(初六)에는, '즐거움을 입 밖에 내면 흉하다'하였다.
매양 보면, 수령으로서 부모를 모신 사람이 부모의 생일에 풍악을 베푸는데, 자신은 효도라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저주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부모를 저주하게 한다면 이는 불효가 아니겠는가. 만약 부모의 생일에 양로(養老)의 잔치도 겸하여 행한다면 백성들이 저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일장(白日場)을 베풀고 선비를 시험보이는 날에도, 바야흐로 음식상을 올릴 때에 잠깐 풍악을 베풀 것이요 자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할 필요는 없다.
당(唐)나라 설평(薛平)은 3진(鎭)의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는데도 집에서 풍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헌종(憲宗)이 그의 치행(治行)을 보고 어사대부(御史大夫)로 발탁하였다. 유관현(柳觀鉉)은 성품이 검약(儉約)하였다. 그는 벼슬살이할 때 성대한 음식상을 받고는, '시골의 미꾸라지찜만 못하다'하였고, 기생의 노래를 듣고는, '논두렁의 농부 노래만도 못하다'하였다.
▶️ 醒(깰 성)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닭 유(酉; 술, 닭)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星(성)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醒(성)은 ①술이 깨다, 잠이 깨다 ②깨닫다, 깨우치다 ③병이 낫다 ④다시 활동하다 ⑤청신(淸新)하다(맑고 산뜻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취할 취(醉)이다. 용례로는 술에 취함과 술이 깸을 성취(醒醉), 자기의 잘못을 깨달음을 각성(覺醒), 술 기운이나 졸음이 반쯤 깸을 반성(半醒), 혼란한 사회에서 홀로 각성함을 독성(獨醒), 정신을 차려서 다시는 그릇된 행동을 못하게 타일러 깨우침을 경성(警醒), 큰 병을 치르고 난 뒤에 다시 몸이 회복됨을 소성(蘇醒), 잊었던 것을 생각하여 깨우치게 함을 제성(提醒), 잠자는 사람을 깨움을 환성(喚醒), 아직 조금도 각성하지 못함을 미각성(未覺醒), 술을 너무 오래 마셔서 깨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장취불성(長醉不醒), 어제 먹은 술이 아직 깨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작취미성(昨醉未醒), 술이 취한 듯도 하고 깬 듯도 함을 이르는 말을 반취반성(半醉半醒), 크게 깨달아서 번뇌나 의혹이 다 없어짐을 일컫는 말을 대오각성(大悟覺醒), 반은 잠들고 반은 깬다는 뜻으로 깨어 있는지 자는지 모를 몽롱한 상태를 일컫는 말을 반수반성(半睡半醒),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에서 다만 홀로 깨끗하고 정신이 맑음을 일컫는 말을 독청독성(獨淸獨醒) 등에 쓰인다.
▶️ 日(날 일)은 ❶상형문자로 해를 본뜬 글자이다. 단단한 재료에 칼로 새겼기 때문에 네모꼴로 보이지만 본디는 둥글게 쓰려던 것인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日자는 태양을 그린 것으로 '날'이나 '해', '낮'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의 껍데기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日자가 비록 네모난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래는 둥근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에 나온 日자를 보면 사각형에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두고 태양의 흑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먼 옛날 맨눈으로 태양의 흑점을 식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日자는 태양과 주위로 퍼져나가는 빛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반복했기 때문에 日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 또는 '밝기'나 '날씨'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日(일)은 (1)일요일(日曜日) (2)하루를 뜻하는 말. 일부 명사(名詞) 앞에서만 쓰임 (3)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날의 뜻을 나타내는 말 (4)날짜나 날수를 셀 때 쓰는 말 (5)일본(日本)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날 ②해, 태양(太陽) ③낮 ④날수 ⑤기한(期限) ⑥낮의 길이 ⑦달력 ⑧햇볕, 햇살, 햇빛, 일광(日光: 햇빛) ⑨십이장(十二章)의 하나 ⑩나날이, 매일(每日) ⑪접때(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 앞서, 이왕에 ⑫뒷날에, 다른 날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달 월(月)이다. 용례로는 그 날에 할 일을 일정(日程), 날마다를 일상(日常), 날과 때를 일시(日時), 하루 동안을 일간(日間), 해가 짐을 일몰(日沒), 해가 돋음을 일출(日出), 그 날 그 날의 당직을 일직(日直), 직무 상의 기록을 적은 책을 일지(日誌), 하루하루의 모든 날을 매일(每日), 날마다 또는 여러 날을 계속하여를 연일(連日),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일을 쉬고 노는 날을 휴일(休日),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있는 날을 가일(佳日), 일본과 친근함을 친일(親日), 일본에 반대하여 싸우는 일을 항일(抗日),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날마다 내는 신문을 일간지(日間紙), 일상으로 하는 일을 일상사(日常事), 날마다 늘 있는 일이 되게 함을 일상화(日常化),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뜻으로 학업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함을 이르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이미 늙어 앞으로 목적한 것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힌다는 뜻으로 늙고 병약하여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모도궁(日暮途窮),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짐을 이르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한낮에 그림자를 피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중도영(日中逃影), 해가 서산에 가깝다는 뜻으로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옴을 이르는 말을 일박서산(日薄西山), 같은 날의 두 번의 만조 또는 간조의 높이가 서로 같지 않은 현상을 일컫는 말을 일조부등(日照不等), 날로 달로 끊임없이 진보 발전함을 일컫는 말을 일진월보(日進月步),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점차 이지러짐을 일컫는 말을 일월영측(日月盈昃), 날마다의 생활을 이르는 말을 일상생활(日常生活), 해와 달과 별을 일컫는 말을 일월성신(日月星辰), 아침 해가 높이 떴음을 일컫는 말을 일고삼장(日高三丈), 항상 있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일상다반(日常茶飯),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등에 쓰인다.
▶️ 亦(또 역, 겨드랑이 액)은 ❶회의문자로 腋(액)의 본자(本字)이다. 大(대)는 사람 모양, 八(팔)은 겨드랑이 밑을 나타낸다. 음(音)을 빌어 ~도 또한이란 뜻의 어조사(語助辭)로 쓰인다. ❷지사문자로 亦자는 '또한'이나 '만약', '겨드랑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亦자는 亠(돼지해머리 두)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돼지머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亦자의 갑골문을 보면 大(큰 대)자 양옆으로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겨드랑이를 가리키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그래서 亦자의 본래 의미는 '겨드랑이'였다. 그러나 후에 亦자가 '또한'이나 '만약', '단지'와 같이 다양한 문법적인 관계를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月(육달 월)자를 더한 腋(겨드랑이 액)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亦(역, 액)은 ①또, 또한 ②만약(萬若), 가령(假令) ③~도 역시(亦是) ④단지(但只), 다만 ~뿐 ⑤이미 ⑥모두 ⑦쉽다 ⑧크다 ⑨다스리다, 그리고 ⓐ겨드랑이(액)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마찬가지로 또는 또한을 역시(亦是), 또한 좋음 또는 역시 가함을 역가(亦可), 이 또한 그러함이나 마찬가지로를 역연(亦然), 이것도 또한을 차역(此亦), 그 역시를 기역(其亦), 어떤 일에 또한 참여한다는 말을 역참기중(亦參其中),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는 말을 불역열호(不亦說乎), 도둑에게도 도둑으로서의 도리가 있다는 말을 도역유도(盜亦有道), 나도 또한 모른다는 말을 오역부지(吾亦不知), 사람과 말이 한 가지로 같다는 의미의 말을 인마역동(人馬亦同) 등에 쓰인다.
▶️ 醉(취할 취)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酔(취)의 본자(本字), 酻(취)는 와자(僞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닭유(酉; 술, 닭)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없어질 때까지 하다의 뜻을 가지는 卒(졸, 취)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醉자는 '취하다'나 '(술에)빠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醉자는 酉(닭 유)자와 卒(군사 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酉자는 술병을 그린 것이다. 卒자는 고대에 졸병들이 입던 옷을 그린 것으로 옷 가운데에는 X자가 표시되어 있다. 졸병이란 계급이 가장 낮은 군사를 말한다. 전투력이 약했기 때문에 卒자에는 '죽다'나 '끝내다', '마치다'라는 뜻이 있다. 醉자는 이렇게 '끝내다'나 '죽다'라는 뜻을 가진 卒자에 酉자를 결합한 것으로 술을 '(죽을 때까지)마시다'나 '죽을 만큼 술에 취해있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醉(취)는 술을 없어질 때까지 마셔 취하다의 뜻으로 ①취(醉)하다 ②취(醉)하게 하다 ③술에 담그다 ④빠지다 ⑤지나치게 좋아하다 ⑥탐닉(耽溺)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술 취할 정(酊), 술 취할 명(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깰 성(醒)이다. 용례로는 술에 취한 사람을 취객(醉客), 술에 취하여 일어나는 흥취를 취흥(醉興), 술에 취해 얼근한 기운을 취기(醉氣), 술이 취하여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를 취가(醉歌), 술에 취한 동안을 취리(醉裏), 술 취한 노인을 취옹(醉翁), 술 취한 사람의 태도를 취태(醉態), 술이 취해 누움을 취와(醉臥), 경사스러운 일에 도취함을 취서(醉瑞), 술에 취해 함부로 하는 말을 취담(醉談), 술이 취하여 잠을 잠을 취면(醉眠), 술이 취해 춤을 춤 또는 그 춤을 취무(醉舞), 술이 취하여 쓴 글씨를 취묵(醉墨),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취보(醉步), 술에 취한 기색을 취색(醉色), 술이 취한 얼굴을 취안(醉顔), 취중에 마구 하는 말을 취어(醉語), 술에 잔뜩 취한 친구를 취우(醉友), 술에 취하여 이리저리 비틀거림을 일컫는 말을 취보만산(醉步蹣跚),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는 뜻으로 아무 의미 없이 이룬 일도 없이 한평생을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하여 눈이 흐려 앞이 똑똑히 보이지 않는 상태를 이르는 말을 취안몽롱(醉眼朦朧), 밀밭을 지나면 밀 냄새만 맡고도 취하게 된다는 뜻으로 술을 도무지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과맥전대취(過麥田大醉),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한다는 뜻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비유하는 말을 금미지취(金迷紙醉), 자기가 어떤 것에 끌려 취하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자아도취(自我陶醉), 기뻐서 미친 듯도 하고 취한 듯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광여취(如狂如醉), 취한 것 같기도 하고 꿈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취여몽(如醉如夢), 술이 취한 듯도 하고 깬 듯도 함을 이르는 말을 반취반성(半醉半醒), 밝은 달을 벗삼아 오래도록 술을 마심을 일컫는 말을 완월장취(玩月長醉), 시름하여 마음이 술에 취한 것처럼 흐리멍텅함을 일컫는 말을 우심여취(憂心如醉), 한 번 마시면 천일을 취한다는 말로 술이 대단히 좋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천일(一醉千日),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한다는 뜻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비유하는 말을 지취금미(紙醉金迷) 등에 쓰인다.